〈 2화 〉 일장 유년기 (1)
* * *
목리원은 올해로 7세가 되는 소년이었다.
사는 곳은 강서 어딘가의 깊은 산골 속 초가집이오, 가족은 그를 길러준 노인이 끝인 말 그대로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
동시에, 과거에 한 사내가 이름을 걸고 거둔 꼬맹이였다.
꼬맹이는 산골을 노닐면 들려오는 작은 동물들의 지저귐을 사랑했다.
또한 그를 거두어 키워준 노인을 사랑했다.
그랬기에, 어느 날 노인이 내뱉은 말에 짙은 당황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원아, 너는 살겁의 별을 이고 태어났단다.”
초가집의 안방.
목리원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끔뻑이며 노인을 바라봤다.
“살겁이 뭐예요?”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이르는 것이란다.”
“그럼 저는 생명을 빼앗는 사람이 되는 건가요?”
“틀렸다. 그것은 네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다.”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노인.
그 언젠가 검성이라 불리었던 사내, 목선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구나.”
“네….”
목선오는 아이를 바라봤다.
순진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는 모습은 이런 산골짜기가 아닌 저 대도시의 도련님이라 해도 될 어여쁜 모습이었다.
새까만 흑발 아래 있는 것은 날이 갈수록 흑색에 가까워져 가는 다갈색의 눈동자.
피부는 뽀얗기 그지없었으며 속눈썹은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아직 남성의 태가 나지 않아 자칫 소녀로도 오인할 여린 인상이었고, 실제로 그 인상에 걸맞게 여린 성정을 가진 소년이었다.
지난 7년, 혈사가 있던 날 거둔 아이가 어느새 이리 어여쁘게 자라있는 것이었다.
“모르는 것은 괜찮다.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이니.”
목선오가 목리원의 머리를 쓸었다.
그러자 목리원은 뺨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목선오는 말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알겠느냐?”
“아니요….”
“원이 네가 생명을 앗아가는 이로 자라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노인과 아이의 눈이 맞았다.
“이 스승이, 네가 타인을 구하는 이로 자라길 바라는 까닭이란다.”
“저도 구하는 게 좋아요!”
“그래, 너는 덫에 걸린 토끼도 구해주는 착한 아이지.”
장장 7년, 아이를 그저 사랑으로 키워온 목선오는 이제와 아이에게 전할 진실이 너무나도 잔혹하게 느껴졌다.
이리 어여쁘고 순수한 아이건만, 상제께선 어찌 아이에게 그런 가혹한 명을 주셨는지 그것이 못내 원망스러운 것이다.
하나 그렇다 해서 사실을 숨길 수는 없는 일.
천살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살겁을 행하게 만드는 별이었으며, 동시에 그 별을 이고 난 자를 끊임없는 나락으로 처박는 별이다.
그러니만큼 사실을 숨기는 것보다 그것을 일러 저항할 힘을 길러주는 게 옳은 것이다.
“네게 내려온 별을, 우리는 천살성이라 부른단다.”
목리원은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오성(??)이 뛰어난 아이는 대화의 맥락만으로 그 단어의 뜻을 풀어낸 것이었다.
“하늘 천(?), 죽일 살(?), 별 성(?)자를 쓰는 게 맞지요?”
“그래, 벌써 단어의 뜻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아주 장해.”
“헤헤….”
“그럼 이 별이 무엇을 위한 별인지도 알겠구나.”
“생명을 앗아가기 위해 하늘이 내린 별이요!”
자신있게 외친 직후, 목리원은 뒤늦게 ‘앗!’ 하고 놀라며 말했다.
“그, 그럼 저는 살귀가 되는 건가요?!”
“말했다시피, 그것은 네가 하기 나름이란다.”
“제가 하기 나름이요?”
“그래, 네가 하기 나름. 너는 그 운명에 맞게 살업을 쌓을 수도 있고, 있는 힘껏 저항해 선업을 쌓을 수도 있지.”
목리원은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는 살업은 싫어요. 동물이 죽는 걸 보면 너무 슬픈 걸요.”
“그럼 선업을 쌓아야겠구나.”
“네!”
목리원이 눈을 반짝였다.
이런 대화의 흐름 끝에서 노인이 어떤 말을 할지 이미 잘 아는 까닭이다.
‘배움!’
노인은 배움을 줄 것이었다.
한문을 가르치기 위해 꽃의 이름을 일러주던 때처럼, 농사를 가르치기 위해 새 모이를 쥐여주던 날처럼.
그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을 가르쳐 줄 것이었다.
목선오는 아이의 기대를 알았다.
하여 불필요한 말을 더하지 않고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이 스승은 네게 무공을 일러줄 것이란다.”
“무공이요?”
“그래, 무공. 이것을 잘만 배우면 너는 호랑이와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지.”
목리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호랑이.
그것은 목리원이 아는 가장 크고 무서운 동물이었으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었던 까닭이다.
“저는 천하제일이 되는 거네요!”
“천하제일이라… 그래, 네게 내려온 재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목선오는 웃었다.
지금 아이가 생각하는 천하제일과 자신이 말하는 천하제일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 탓이었다.
‘천살성은 무재(??)다.’
하늘이 내린 살귀.
천살성은 그런 이름에 걸맞게도 별을 타고난 이에게 경이로운 무학의 재능을 선사한다.
즉, 아이가 제대로 수련한다면 천하제일의 경지에 오르는 일도 불가능은 아닌 것이다.
목리원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웃었다.
목선오는 그런 아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하나만 약속해주겠느냐?”
“네?”
“내 너에게 가르쳐줄 무공을 협(?)에 쓰겠다고, 그리 약속해주겠느냐?”
“협이요?”
“그래, 협. 의롭고 정당한 일을 말하는 것이란다.”
“의롭고 정당한 건 어떤 일인가요?”
“너의 신념이 옳다고 말하는 길이지.”
아이에겐 어려운 이야기였다.
목리원은 한껏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함을 토해냈다.
목선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줄였다.
“협은 평생을 고민해야 할 공부란다. 어쩌면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럼 평생 무공을 쓰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목선오는 아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하며, 이제까지 중 가장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 순간 협을 고민하며 무공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목리원은 노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언제나 웃으며 자신을 대해주는 그는 이따금씩 지금과 같은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이런 순간마다 목리원이 하는 일은 하나였다.
“네! 저는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 될게요!”
그가 미소 지을 수 있는 답을 건네는 것.
그가 웃을 수 있도록 먼저 환히 웃어주는 것.
“…참으로 장하다.”
다행히, 이번 역시 노인은 함께 웃어주었다.
*
“무공이란 육신을 단련해 마음을 키우는 공부란다.”
초가집의 마당.
목리원은 그곳에 선 채 노인의 말을 경청했다.
“세상만물에 오롯이 선 개인을 만드는 공부. 그리하여 한걸음 진리에 다가가는 공부. 우리는 그것을 무공이라 부른단다.”
“우리가 누군가요?”
“무림(??).”
목선오는 그리 말하고, 이어 그런 설명을 덧붙였다.
“무공을 배운 무인들의 사회. 무인이라는 나무가 숲을 이뤄 만든 작은 사회다.”
“그럼 무림인들은 모두 협객인가요?”
목리원으로선 당연한 질문이었다.
목선오는 무공은 협에 사용해야 한다 말했다.
또한 무림인은 모두 무공을 사용하는 이라 말했다.
그런 논리에 따르면, 무림인은 당연히 협객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선오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아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협을 부르짖는 이들은 많아도 행하는 이들은 적을지도 모르겠구나.”
“나쁜 사람들인가요?”
“글쎄, 이 스승도 잘 모르겠구나.”
한때 협을 등진 이들을 악인이라 이른 일이 있었다.
도덕이 아닌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비난한 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의 목선오는 알았다.
다만 그들의 협과 자신의 협이 다른 곳에 있음을.
마음 속에 품은 정의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음을.
“이것은 네가 세상을 겪으며 직접 판단할 일이니, 말을 아끼고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꾸나.”
“아, 네!”
“여하튼, 무공이란 그런 근본을 가지고 있기에 힘보단 그 속에 든 의미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공부다.”
목선오가 그제까지 지고 있던 뒷짐을 풀었다.
마침내 목리원의 시야에 들어온 그의 손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이 스승이 조금만 보여주도록 하마.”
스릉.
검이 뽑혔다.
낡아 보이는 겉과는 달리, 검날은 무림인이라면 한눈에 이 검이 꾸준히 관리됐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사아아.
바람이 이는 소리.
필시 그리 말해야 할 소리 뒤로 일어난 현상은 목리원의 눈을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별.’
환한 대낮, 그럼에도 그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은 별이었다.
그가 뽑아 든 검엔 그다지도 시린 별빛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유성칠검(??七?).”
목선오가 말했다.
“앞으로 원이 네가 익힐 무공의 이름이란다.”
목선오의 팔이 흔들렸다.
이어 펼쳐진 것은, 목리원의 추억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아름다운 검무(??)였다.
*
늦은 밤.
목리원은 이불 속에 웅크려 잠을 청하려 했으나 좀처럼 그 시도를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낮에 보았던 목선오의 검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는 까닭이었다.
‘유성칠검…!’
자신이 앞으로 배워나갈 검술.
시린 별빛을 온 공간에 수놓는 아름다운 검술.
‘빨리 배우고 싶다!’
목리원은 상상했다.
자신이 하얗게 빛나는 검을 들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리하여 이 숲속을 가득 밝히는 모습을.
콩.
콩.
목리원의 어린 심장이 분주하게 뛰었다.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가지 못하고 길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목리원은 이어 떠올렸다.
무공은 그 수위에 맞게 경지를 나누고 있단다. 아래부터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으로 기본은 그 다섯이지.
기본은요?
그래, 즉 그 위도 있다는 말이다. 하나 벌써부터 신경 쓸 경지는 아니란다. 무릇 공부라는 것은 너무 먼 곳을 바라보다간 지금 배워야 할 것을 신경쓰지 못하게 되는 법이니 당장은 그리만 알 거라.
가장 기본적인 구성에 대해 배운 날이다.
목리원은 잠을 방해하는 설렘을 굳이 지우지 않은 채 낮에 들었던 내용을 복기했다.
‘나는 삼류야!’
아직 본격적인 무에 입문하지 못한, 그렇기에 기를 느끼지 못하고 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하지만 목리원은 걱정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이라… 그래, 네게 내려온 재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그의 스승이 자신의 재능을 단언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은 검에 재능이 있을 것이다.
낮에 본 것처럼, 태양 아래서도 환히 빛나는 별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리원은 낮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몽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별을 뿜어낼 수 있는 경지.’
강호가 이르길 절정의 경지.
검기상인(??人). 원이 네가 본 것을 우리는 그리 이르고 있단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그제야 우리는 고수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것이지.
목선오는 낮에 보았던 별을 그리 칭했다.
순간 드는 생각은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형태.
하나, 목리원은 이내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냈다.
‘할 수 있댔어.’
스승은 분명 자신에게 그리 일렀다.
분명 천하제일이 될 것이라 했으니 의심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목리원은 ‘흡!’ 하고 숨을 들이쉬어 몸을 진정시킨 후, 눈을 감았다.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몸은 이리도 피로에 취약했기에, 목리원은 생각을 이어가다 그만 까무룩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