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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338화 (338/338)

시작 (200)

***

“조심해서 다녀와.”

“이이-, 그려.”

조슬찬은 할머니와 김은정을 차에 태우고 장거리 운행에 나섰다.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다고 둘러댔지만, 진혁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껏 상기된 표정이 말해주었으니까.

몇 해 전에도 조슬찬은 김은정과 함께 엄마를 만나 저녁도 먹고, 용돈도 드리고 왔다며 진혁에게 자랑하듯 보고했다.

- “내가 시상이 태어나서 시 번째루 행복했지이-.”

- “두 번째로 행복한 건 언제였는데?”

- “우리 은정이헌티 멕살 잡혔을 때여어-.”

엄마는 지나간 사람이라서 함께 살고픈 욕심은 없다고 했다.

그저 만나서 한을 푼 것으로 만족한다고.

함께 살아야 가족이라고.

그래서 현재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하고, 그 때문에 행복한 거라고.

현재의 행복은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진혁, 은정이 덕분이라고.

김인랑과 황가윤, 황가영 자매는 두 모친을 모시고 동남아여행을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 비행기를 탄다며 황가영은 출국 전날 진혁에게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점심상을 물린 평상에는 아빠와 홍기준, 천길룡과 유명선, 그리고 최장환이 자리 잡고 술잔을 기울였다. 진혁이 천길룡에게 선물한 조니 워커가 메인이었다.

“이 워커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우리 손 씨 가문의 지넥 사장이 오오스츄레일리아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면세점에서 사 온 귀한 것으로써······.”

최장환의 집에는 사람이 없다.

최태양은 추석장사씨름대회 때문에 추석 당일 저녁이 되어야 집에 오고, 최미경은 공부를 하다가 오빠를 응원한 후에 함께 온다고 했다. 오빠를 응원하러 간 것인지, 2년 연속 천하장사를 노리는 애인을 응원하러 간 것인지는 이제 애매하지만. 뭐, 둘 다 응원하겠지.

집안에서는 한유영과 유세라, 김순복과 홍수정, 유진이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진혁 엄마, 차례상 같은 건 따로 안 해요?”

“애들 아빠가 일부러 하지 말자고 해서요. 제사도 따로 안 지내잖아요. 그래서 식구들 좋아하는 음식만 해요.”

갈비찜, 불고기, 육회, 잡채, 갖가지 전, 식혜, 고기, 고기, 그리고 고기.

그나마도 김순복과 장진남, 인근에 사는 SSS 가족이 함께 준비하기에 힘에 부치지 않는다.

“추모관에 향만 피우고 끝? 편하다.”

“산 사람이 중하다고 고생하지 말래요.”

으응-. 광연 오빠답네. 유세라가 와인 잔을 기울였다.

유럽 여행 중 구입한 유명 와인인데, 거기에 말린 망둥이 구이를 곁들였다.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메뉴의 조화에 놀라는 유세라에게 김순복이 말했다.

“망댕이 말린 거 이눔이 이게 어따 내놔두 흡족헌 규우-.”

한유영이 옆에 다소곳이 앉은 홍수정에게 잔을 건넸다.

“수정이도 마셔.”

“어머님, 저는 술을 안 마셔봤는데요?”

“어머나? 우리 수정이 백일주도 안 마셔봤어? 수능 보기 전에 다들 마시잖아.”

“네. 저는 백일주도 안 마셨어요. 징역 오빠도 안 마셨다고 해서요.”

덜렁이 홍수정도 한유영 앞에서는 더없이 조신했다.

“에헤헤-, 엄마. 수정 언니 대신 제가-.”

“스읍-. 혼나.”

제법 머리가 컸다고 유진이가 어른들 자리를 기웃거렸으나 가장 무서운 엄마 앞에서는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네에-. 저는 행운이 알이나 보러······.”

다시 꺼낸 부화기는 여전히 작동했다.

이제 2주만 지나면 행운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유진이와 정원이가 주는 애벌레를 받아먹으며 크겠지. 다 큰 후에는 아침마다 삐이이- 노래를 부르고, 동그란 눈을 빛내며 갸웃거릴 거야.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꽁지를 좌우로 까딱일 행운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유진은 행복했다.

“야, 홍수정. 엄마도 있고 진혁 엄마도 계시니까 한 잔만 해. 이거 비싼 와인이야.”

“네에-.”

진혁은 정원이와 홍수혁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미혼 남성의 역할. 꼬맹이들 돌보기.

명절이면 어느 집에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임무였다.

‘광마가 엄청나게 쌩쌩해졌네? 죽을 때 됐나?’

장군이는 목욕을 시켜서 윤기가 흐른다 치고, 기운이 예전 같지 않던 광마가 노루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에 절로 회광반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동네가 이상해졌어. 강아지도 미친 것 같잖아.’

유진이가 주워왔다는 강아지는 겁도 없이 수로에 뛰어들었다가 홍시에게 구조되어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놀랍게도 강아지 입에는 송사리나 피라미가 물려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그런데 이 혈기왕성한 열 살짜리 꼬맹이들을 데리고 뭘 하면 좋을까.

“정원이, 수혁이. 뭐하고 싶어?”

“엉아! 연 만들어 주세요!”

“오오! 핸드 메이드 카이트! 형아! 저도 연이요!”

뭐······ 그럴까?

아직 연을 날리기에는 덥고 바람도 적당하지 않지만 놀이에 때가 정해진 건 아니지.

문구점이나 완구점에서도 연 재료를 팔지만, 아이들에게는 직접 만드는 것만큼 좋은 경험도 없을 듯했다.

평상에서 위스키와 콜라를 번갈아 마시는 천길룡에게 다가갔다.

대낮부터 얼근하게 취한 천길룡이 진혁을 향해 눈썹을 치켰다.

“여어-, 젊은 손 사장. 한잔하시려오? 어허허-.”

“아니에요. 할아버지 많이 드세요. 그런데 대나무 하나만 잘라도 될까요?”

“무엇에 쓰려 하시는고?”

“동생들이 연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요.”

“오호호-. 그렇구먼. 좋은 놈으로 하나 잘라 쓰시오.”

“어떤 걸 자르면 될지 알려주셔야 하잖아요.”

유진이와 정원이를 위해 낚싯대를 만들 때도 아무 대나무나 베면 안 된다며 일일이 점지해주던 천길룡이다.

“일 없소, 이 사람아. 번거롭게 고민하지 말고 아무거나 싹! 둑! 베어서 쓰시오오-. 어허허-, 날 한 번 조오타-! 하늘님 오늘 또 한 놈 올라갑니다아-.”

“예? 누가 올라가요?”

“어허허-. 아닐세-.”

아무거나 자르라고 해서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선 놈으로 하나 잘랐다.

대나무를 베는 동안 장군이가 끼잉- 끼잉- 소리를 냈지만, 대나무숲에 올 때마다 장군이가 저러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무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개로 나눈 대나무 중 하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따라오던 홍수혁이 궁금한 게 있다는 듯 진혁을 올려보았다.

“형아-. 연 만드는 거 어려워요?”

“아니. 금방이야.”

겨울이면 유진이를 위해 썰매뿐만 아니라 팽이와 연을 많이도 만들었다.

낫으로 대나무를 가르고, 부드럽게 다듬고, 사료 포대나 달력에 대나무를 붙이고 묶으면 끝이다. 더 신경 써서 만들 때는 창호지를 사용했다.

집에 도착해 평상에서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홍기준의 시선이 영 불편했다.

금지옥엽을 훔친 중죄인인데 자중하는 게 최선이다.

어쩐지 홍기준의 눈빛이 아침보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다정했지만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조심할 수밖에.

쩍-. 쩍-.

정확하고도 경쾌한 손길에 대나무가 일정한 굵기로 갈라졌다.

겨울에는 거실 바닥에 앉아 만들었는데, 9월의 따가운 볕을 피해 거대한 신갈나무 밑에서 연을 만드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와아-. 우리 엉아. 잘한다아-.”

“형아 잘해요.”

“수혁이는 형이 연 만들어주는 거 처음이지?”

“우리 엉아가 나는 많이 만들어줬는디이-.”

“좋겠다. 저도 형아 같은 형아 있으면 좋겠어요.”

“허허. 지금도 형이잖아.”

“아, 그런가?”

아, 그런가. 홍수혁은 홍수정이 하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자라는 중이다.

영특하기도 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유세라가 일찌감치 교육 중이었다. 행동거지 교육 말이다. 점심 먹을 때도 한소리 했지.

- “너 큰외삼촌처럼 함부로 그, 그-. 그거 휘두르면 안 돼. 아빠처럼 큰 회사 회장님이 되고 싶댔지? 그, 그거 함부로 휘두르면 회장님은커녕 큰외삼촌처럼 쫓겨나는 거야. 진혁이 형아처럼 점잖고, 믿음직한 남자가 되어야 해.”

뭐, 주책이긴 했지만 어른들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알아듣는 말이었다.

점잖고 믿음직이라······.

그 서슬 퍼런 교육에 진혁이 목을 움츠린 건 비밀이다.

“집에서 밥풀 좀 가져올게. 여기서 기다려.”

*

까하하하하-!

주방 식탁에는 얼굴이 벌게진 여인 넷이 벌써 와인 두 병을 비운 상태였고, 유진이는 구운 망둥이를 먹기 좋도록 잘게 찢고 있었다.

“얼레? 수정이 술 마셨어?”

“졔에-. 에헤헤. 툴 마디떼야-.”

하아-. 꽐라의 부활인가.

그래도 홍수정이 기분 좋게 웃으니 진혁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마침 찬밥이 있어서 밥공기에 옮겨 담고, 다용도실에서 창호지를 챙겼다. 그리고 식용유와 색연필도 들고 나왔다.

“형아, 식용유는 왜요?”

“수혁아, 내가 설명해줄게. 여기 종이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여-.”

“색연필로?”

“기지이-. 그 위에 식용유를 바르면 반투명해지는 겨-. 그럼 그림만 선명하게 뵈지.”

“그림 그린 다음에 바로 발라?”

“아니지. 그림을 그리고, 연을 만들고, 그담이 식용유를 발르는 거여.”

정원이 덕분에 설명에 들이는 수고를 연 제작공정에 쏟을 수 있었다.

수조 원 자산가가 찌질하게 뭐하는 짓이냐고?

진혁은 어려서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아빠와 직접 잡은 갯지렁이로 낚시를 하고, 엄마를 위해 산과 저수지를 뒤집고, 홍수정을 위해 개울에 댐을 만들고, 동생을 위해 갯벌을 쑤셨다.

이제 정원이와 수혁이도 그 수혜를 입어야 하지 않겠나.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은 함께 추억을 쌓는 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행복 만들기.

“와-. 수혁이는 잠자리 그린 거야? 그림 잘 그리네. 정원이 나비도 근사하다.”

“에헤헤-.”

“우리 엉아는 칭찬만 하더라. 선생님보다 선생님 같다니까요?”

정원이는 서울말과 사투리 중 하나만 쓰면 좋겠는데 언어 정체성이 오락가락한다. 뭐, 그게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동생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대나무 살을 납작하게 다듬었다.

말랑한 풀이 굳은살처럼 목질화된 대나무는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낫으로 밀 때마다 동그랗게 말리는 나뭇밥의 곡선도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엉아, 근디 바람이 안 불먼 어떡해요?”

“달리면 되지. 잊었어? 이 형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야.”

“아, 맞다.”

에헤헤-.

동생들과 연을 만들며 진혁은 모처럼 동심을 찾았다.

‘영원했으면 좋겠다.’

동생들의 웃음처럼 평화로운 나날이.

그러나 평화는 채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

주방에서는 술이 센 김순복을 제외한 세 여자가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식탁 위에는 빈 술병이 다섯 개나 있었다.

“헤헤-, 나만 바쁘네요오-.”

유진이는 과일과 마른안주가 떨어질세라 부지런히 대령하고,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는 남자들을 위해 라면 물을 올렸다. 사람이 많아 즐거웠기에 유진이는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홍수정은 처음 마신 술에 몸이 고되었는지 거푸 고개를 저었다.

몰려오는 잠에 게슴츠레해지는 눈에 힘을 주며 버티는 거다.

“얘, 힘들면 가서 좀 누우라니까?”

“에헤에-. 나 홍투덩이야. 갠타나아-.”

으흐흥-. 기분 조으당-.

누가 유세라 딸 아니랄까 봐 허세도 빼다 박았다.

유세라의 강력한 주책에 가려졌지만 한유영도 주책으로는 뒤지지 않는 사람.

평소 거의 마시지 않는 술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한 병이 되자 슬슬 족쇄가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라서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진혁이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빨랐어요? 흐끅-.”

유세라는 그런 한유영이 반가워 계속 이야기를 부추겼다.

“맞아, 그랬지.”

“열두 살 때였나? 아니 이 녀석이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는데 며칠을 도망을 치는 거야아-.”

“어머나? 그래서, 그래서요?”

“뭘 그래서예요? 못 깠지 뭐. 아해해해행-.”

“어머나! 어떡해! 까하하하하항-.”

그때였다.

눈을 거의 감고 꾸벅꾸벅 졸던 홍수정이 눈을 번쩍 떴다.

술기운아, 내게 용기를 줘!

진실을 말할 용기.

‘오오-. 용기가 솟는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튀어나왔다.

“어머나, 어머니? 오빠 까졌던데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유세라와 한유영도, 입을 쩌억 벌린 유진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보글보글- 라면 물 끓는 소리만 어색한 침묵을 방해했다.

홍수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이해를 못 하시는 모양이야. 설명을 해드려야 하나?

봉을 잡듯이 모은 네 손가락에 엄지를 대고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어머님, 여기 좀 보세요오-.

언니 안 돼요! 가스레인지 앞에서 유진이가 격렬하게 두 손을 휘저었지만, 술에 취한 홍수정의 시야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스읍- 좀 더 컸던가? 한 번 갸웃거리고는 원을 키웠다.

“이케-. 훌···.”

···떡.

아차. 손을 내리면서 정신을 차렸다.

눈이 마주친 한유영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고 있었다.

차라리 술에 취한 척 기절을 할걸.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 수정이가 그걸 어떻게 아니?”

짐작되는 바가 있었으나 한유영이 숨을 고르며 물었다. 살짝 악문 턱에 힘이 들어갔다.

술이 깬 유세라도 눈을 빛냈다.

“그래. 네가 어떻게 알아?”

정신은 돌아왔지만 술이 조종하는 주둥이는 멋대로 움직였다.

“봤더.”

유세라의 눈빛을 본 홍수정은 망했음을 직감했다.

몸은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정신은 말짱했으니.

‘조때따······.’

거의 동시였다.

콰아앙-!

세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현관으로 내달린 것은.

***

“짜잔-. 다 만들었다.”

“와아아-. 돈주고 사는 것보다 훨씬 멋있어요!”

“이게 우리 엉아만 아는 방법이야. 학교 가져갔더니 애들이 다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친절하게 갈챠줬어-.”

과연, 멀리서 보면 나비와 잠자리만 보였다.

비닐로 만든 연만큼 투명하지는 않아도, 창호지에 식용유를 발라 만든 반투명 가오리연은 근사했다.

거기에 길게 꼬리도 달았다.

“꼬리가 길어야 멋있어.”

연실도 맸으니 이제 얼레와 연결만 하면 된다.

바람이 부족한 건 달리기로 때우지 뭐.

“잠깐, 정리부터 할게. 얼레에 연결하는 건 직접 해볼래?”

“네!”

정원이와 홍수혁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각자 연과 얼레를 이어 매듭지었다.

그러는 동안 진혁은 나뭇밥과 종이 쪼가리, 남은 밥풀 등을 아궁이에 태우기 위해 한데 모았다.

“자아-, 이제-.”

콰아앙-!

“우왓! 깜짝아!”

굉음에 놀라 돌아보니 겁먹은 얼굴로 현관을 박차고 나온 홍수정이 보였고, 그 뒤로는 엄마들이 따라붙었다.

“수정아, 무슨-.”

벌떡 일어선 진혁이 물을 새도 없이 홍수정이 진혁의 손을 낚아챘다.

“오빠! 튀어!”

“뭐, 뭐 뭔데!”

“걸렸어!”

와씨. 술 마실 때 예감했어야 하는데.

설명이 필요 없어서 더 슬프다.

역시나 설명하지 않아도 사태를 짐작한 홍기준이 이마를 덮은 모습이 보였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진혁과 홍수정을 보는 다른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 이년! 공부하라고 대학 보내 놨더니! 열심히 공부만 한대서 유학 안간다는 것도 허락했더니 뭐가 어째! 오빠 뭐가 까져?”

신발도 신지 않은 유세라가 홍수정을 향해 독기를 날렸다.

“얘야, 무슨 일이니?”

“아빠는 몰라두 돼!”

유세라는 유명선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너 이늠 새끼! 일은 않고 어린 수정이한테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니이-!”

한유영은 진혁을 향해 싸리비를 겨누었다.

홍수정과 보조를 맞춰 달리며 진혁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가뜩이나 홍기준 때문에 눈칫밥을 먹고 있었는데 엄마까지 잡아 죽이려 들잖아.

“왜요! 나 일도 열심히 했어! 엄마도 수정이 나이 때 나 낳았잖아요오오-!”

“이눔 시끼가 뭘 잘했다고!”

부창부수.

홍수정도 이때다 싶어 엄마를 향해 항변했다.

“엄마도 하잖아아아아아-!”

“너, 너 이년! 너랑 나랑 같냐악! 거기 안 서-!”

아, 이건 아닌 모양이야. 역효과를 불러왔네?

징역 오빠 손을 잡고 마당과 잔디 정원을 빙빙 돌며 홍수정은 서러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제목 했더

〇〇대학교 경상학부 1학년 홍수정

매일 하는 것도 아닌데

안 하는 날도 있는데

나만 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도 다 하는데

엄마는 마흔 넘어서도 하던데

나도 성인인데 못할 건 뭐란 말인가

엄만 내 맘 조또 몰라」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자포자기한 홍기준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고, 무슨 뜻인지 모르는 손광연은 제 사람들이 달리니 좋은 일인가 보다 생각하며 헤벌레 웃었다. 오오-, 우리 자기도 역시 잘 뛰잖아.

최장환은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미갱이도 수정이맨치루 1학년 때 외박헌 거 들켰다가 지 오메랑 술래잡기혔지.

천길룡과 유명선은 모른 척 술잔만 비웠다. 참으로 좋을 때로다-.

“우우웁-.”

“너, 너너너-! 우우웁-.”

“아냐! 한 달도 안 됐어! 술 마셔서 그래! 엄마도 우웁- 하잖아-!”

달리기로 진혁을 잡을 사람은 없지만 홍수정은 사정이 달랐다.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유세라와 한유영의 주력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었다. 게다가 한유영은 육상 챔피언의 엄마 아닌가.

홍수정과 보조를 맞추던 진혁은 몇 번이나 머리를 숙여 빗자루를 피해야 했다.

“수정아, 안 되겠다!”

홍수정을 번쩍 안아 들었다.

왜 계속 도망을 쳐야 하는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느허허허허-.

미친놈처럼 행복한 웃음이 나왔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뒷전, 그저 달리다 보니 즐거우니 계속 달리는 거다.

‘안 되겠다. 이러다 잡히겠어.’

자신에게 유리한 코스로 경로를 변경했다.

뒷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수정아, 가즈아-!”

월월월-!

으르르-!

끼이이잉-.

추격전에 신난 개들이 뒤를 따랐다.

“수혁아, 연 날리러 가자!”

“오예에-! 우리 엄마도 입으로 년 날린다아-.”

연을 높이 든 꼬맹이들도 힘차게 땅을 박찼다.

“너 이년, 거기 안 서어어! 머리를 확 밀어버릴 거야아악-!”

“너 이놈 새끼! 엄마가 못 잡을 줄 알고!”

누가 그러더라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엄마 둘이 합세하니 두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헉헉헉-.

키 큰 홍수정을 안고 오르막을 달리니 숨이 금세 턱까지 올라왔다.

아야-. 엄마가 휘두른 빗자루가 엉덩이를 스쳤다.

버둥거리다 바닥에 내린 홍수정이 진혁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렸다.

“오빠 달려요! 여자친구 대머리 되는 꼴 보기 싫으면 달려!”

느허허허허-.

맑고 고운 홍수정의 목소리를 진혁의 묵직한 웃음이 받쳤다.

‘그래, 수정아.’

시작하는 우리.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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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해주셔서 여기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자손e

* 〈시작〉 에피소드를 200화까지 쓰라는, 한 독자님의 의견에 따라 완결 회차 소제목은 〈시작 (200)〉으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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