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7)
***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진혁은 삭도 연구소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였는데, 2001년에는 절반 이상을 삭도에서 보냈다.
우우우우웅-.
공기조차 진동하지 않았다.
마치 겨울밤, 멀리 떨어진 보일러실의 보일러가 가동되는 듯한 은근한 소음과 함께 물체가 떠올랐다. 물체 하단과 측면에 케이블이 너저분하게 매달렸지만 이 순간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떠오른 물체는 지름 2m 크기의 원반, 소형 UFO를 연상시키는 양력발생기였다.
“오오오! 떠, 떠떠 떴다!”
“이야아!”
“진짜로 될 줄이야······.”
기대 이상의 성과에 연구원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얼싸안았다가 서로에게서 풍기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는 연구원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진혁은 홀로 팔짱을 끼고, 턱을 괸 채 눈을 좁혔다.
“공 팀장님.”
“예, 스티브.”
공 팀장이라는 30대 중반 여자가 눈가를 훔치며 한 걸음 다가섰다.
“세로 형태, 그러니까······ 현재 쿼드론 엔진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과, 저 형태 그대로 비행체를 만드는 방안 중 뭐가 더 효율적일까요?”
“당연히 지금의 원반 형태가 유리해요. 텅스텐 입자가 운동할 트랙이 더 길어지거든요.”
과연 그런가.
여전히 쥔 턱을 만지작거렸다.
유진이에게 홍기준의 레시피를 원안대로 보여준 후 얻어낸 결실.
지름 1mm 크기의 완벽한 구체로 조형된 고밀도 입자가 서로 닿을 듯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채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해야 하는데, 절대 접촉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유진이는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인력이 양력으로 치환된다고 말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야.’
개념이 모호하고 모순적이니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방법을 직접 설명하는 수밖에. 설명하고 가르쳐 완성한 엔진이 저것이다.
뭐, 운동에너지를 양력으로 바꾸는 발명품이니 엔진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진행 방향을 전후좌우로 바꿀 컨트롤러도 심어야겠네요. 제동 성능도 확인해야겠고요.”
“우선은 외부에서······, 이를테면 페이크 마그네틱이라든가, 아니면 진동 자극을 주어 입자의 결집 위치를 유도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에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세요.”
“넵! 스티브가 그려준 이론 덕분이에요.”
공 팀장이 어설픈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진혁은 머쓱하게 웃었다.
유진이가 읽어주는 것을 알아듣고, 유진이가 설명한 것을 암기했다가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을 뿐이니까.
진혁은 공학자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건 다른 경영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구소장으로 부임한 직후, 연구원들에게 부탁한 것이 있다.
- “메커니즘을 일반인 눈높이에서 설명할 재주가 없다면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만의 언어로 설명하려 드는 공학자들의 시간을 아끼고, 청취할 경영자의 피로를 고려한 요구였다.
그 덕분인지 연구소 괴짜들은 소통 능력이 몰라보게 향상되어 있었다.
짬을 내어 일반인 수준의 토론을 하며, 보고서를 쉽게 풀어쓰는 연습을 한다고.
‘그래도 괴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놀라운 발전이야.’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이들에게도 괴짜보다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이라는 아이덴티티가 더 도움될 것이다.
양력발생기도, 연구원들의 변화에도 흡족해할 때, 공 팀장이 진혁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활용도가 높겠습니다, 스티브. 획기적인 발명입니다.”
“그렇겠죠. 그래도 상용화에는 오래 걸리겠죠?”
“네. 소형화, 대형화뿐만 아니라 용도의 다양성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보편적으로 사용할 기술을 완성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어요. 공개를 지시하기 전까지 기밀 엄수하겠습니다.”
피로를 잊은 공 팀장이 다짐하듯 씩씩하게 말했다.
삭도 연구소의 모든 연구는 특급 기밀이었다.
공개가 결정된 후에야 여의도 연구소를 거쳐 다듬고, 개선하는 상용화 준비 단계에 들어간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승인만 해주시면 에너지순환 모듈 이식을 검토할까 해요.”
“순환 모듈······.”
초기 시동에는 전기 등 외부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나 순환 모듈을 적용할 경우 엔진 운동에너지로 배터리를 충전하고, 그 배터리로 다시 시동을 걸게 되는, 무한동력에 절반쯤 발을 걸친 개념이었다.
“물론입니다. 승인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진혁은 아래층으로 향하는 승강기로 몸을 돌렸다.
“저는 지하 연구소에 들렀다가 본부로 이동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시간은 많이 드릴 테니 충분히 휴식도 취하시구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 항상 신경 써주세요.”
“넵! 아아아! 그런데 스티브.”
“네?”
“드디어 완성한 프로토타입인데 모델명이라도 지어주시면 어떨까요? 기존의 코드명은 입에 안 붙어서요.”
“아아, 저는-.”
“그래도 보스가 지어주는 게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아하, 이런······.
작명 고자가 이름을 지어야 한다니.
이 무슨 장희빈 셀프 사약 제조하는 소리냐.
“스티브도 아시겠지만 우린 그런 쪽에 재주가 전혀 없어요.”
저도 그런 재주는 없는데요. 그리 말하고 싶었으나 나이에 맞지 않게 똘망한 공 팀장의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유······오에프가 좋겠네요.”
“예? 잘 못 들었는데 말입니다?”
낮술 드셨나? 한참 작은 공 팀장이 벌게진 진혁의 얼굴을 갸웃거리며 올려다보았다.
“유오에프요······.”
“아-! 유오에프! 그것 괜찮네요. 그런데 뜻은 뭔가요?”
연구가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 하나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끈기였다. 바로 지금처럼.
진혁은 수만 개의 텅스텐 입자가 전기의 힘을 빌려 초음속으로 회전하는 원반에 눈을 두었다. 그리고 그 속도로 잔머리를 굴렸다.
“궁극적으로 평범한 비행 개체요. 앞으로 이십 년, 삼십 년 후에 모든 탈 것에 저 엔진 방식을 적용할 겁니다.”
Ultimate Ordinary Flying-unit.
겨우 작명인데 어법이나 문법은 장군이나 주라지.
“아하, 그렇죠. 널리 퍼지면 그게 곧 평범하고 일반적인 거니까요.”
유유상종.
그래도 똘아이끼리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김은정이 저작권을 주장하지는 않겠지?
*
투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후두두두둑-!
SAR3A2. 7.62mm 탄을 사용하는 중기관총이 불을 뿜자, 흉갑 형태의 방탄복을 입은 더미가 감전된 것처럼 후두두 떨었다.
[사격 중지-.]
진혁을 비롯한 참관자들이 헤드셋을 벗고 모니터 앞으로 모였다.
데스크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더미가 받은 충격량과 방탄복이 상쇄한 충격량이 실시간 그래프로 표시되었다.
“스티브, 어떻습니까? 절개부에는 충격이 강하게 들어가기는 했습니다만, 이 정도면 골절까지 이어지지 않는 대미지입니다. 늑연골처럼 약한 뼈의 경우 금이 갈 수는 있겠습니다. 그래도 사슬갑옷처럼 연결한 것 치고 대단한 충격 흡수 역량입니다.”
“방탄복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파편탄이나 비산탄이 발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탄복 홀로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할 것을 주문했다.
관통만 막아서는 골절이나 쇼크를 예방할 수 없고, 충격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낙상 등 2차 피해도 발생할 수 있는 까닭이다.
너무 단단해서도 안 되었다.
탄두가 깨질 경우 튕겨 나간 탄두에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삭도 연구원들은 제너럴 연구소에서 공수한 소재를 응용, 합성하고 다층으로 적층한 다음 다시 압착했다. 그 작업을 반복한 것만 12회. 두께 1cm의, 최소 60겹이나 되는 합성 방탄복을 만들어냈다.
“무게는 조금 아쉽네요.”
“식물성 소재 때문으로 파악 중입니다. 감량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단점이라면 역시 다소 무겁다는 점이었다. 목부터 발목까지 전신 적용할 경우 12kg을 상회했으니까. 현재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미국 제품이 겨우 상체만 보호하면서 8kg이라는 걸 감안할 때 비교우위에 있었으나 무거운 건 사실이다. 굳이 타사 제품과 비교하고 경쟁하기 위해 개발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 보시면-.”
방탄복 개발을 맡은 차 팀장이 하얀 분필로 피탄흔을 가리켰다.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서 뒤로 흘렸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탄두가 모두 바닥에 떨어진 것도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방탄복에 박힌 총알이 없다는 건 내구도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벌당 생산 단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진혁을 수행하던 연구소 데이터 관리직에게 물었다.
“현재 개발 시제품에 들어간 소재에 지출한 예산은 일억구천만 원입니다.”
“흐으음-.”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격에 절로 침음이 흘렀다.
약 2억 원. 2001년 3분기에 2억 원이면 서울 한복판의 괜찮은 2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돈이다. 물론, 어느 동네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집 한 채 가격을 상회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재료비만 그 정도 들어갔다는 뜻.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 해도 같은 재료, 같은 작업을 들이는 만큼 단가 절감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량 생산을 한다고 해서 재료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소재 생산은 제가 제너럴과 협의하겠습니다. 효과는 좋은데 너무 비싸네요. 소재 대량 생산이 가능하면 방탄복 생산 단가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생산에 들어갈 일도 없지만, 만약 생산에 돌입한다면 제너럴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제너럴로부터 고가의 소재를 사들여야 하니 말이다.
“브이아이피를 위해서라면 그 금액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요, 스티브?”
“돈 많은 사람들이나 정치인들 입히려고 만드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군인들과 소방관들이 입을 거예요. 해저 연구소에서 위험작업 수행 로봇을 완성하기 전까지 대체할 안전장치예요.”
“아······.”
“전신 방탄방화복 착장에 방탄 전투화까지 신겨서 테스트 해주시고 영상 녹화본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영상은 어디에 쓰실지 알려주시면······ 기밀출납부를 작성해야 해서요.”
“우선은 미국에 비싸게 팔아서 그 돈으로 찍어낼까 해요. 그 돈으로 시작하면 될 것 같아서요.”
백악관 정도면 못해도 100개 정도는 사주지 않겠어?
중동 기름 부자들도 있지.
내전과 암살 위협에 놓인 왕족도 몇 벌 사주려나?
본부에 올라가는 대로 해먼드와 통화해야겠다.
***
벌써 겨울에 접어드는 초입.
중학교 때 짝꿍 채규호가 여의도로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방학 때마다 만났고, 진혁이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종종 얼굴을 봤지만, 채규호가 졸업반이 된 후로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여어- 재규어-. 벌써 졸업반이지? 대학교 금방이구나?”
“회장, 그런 소리 하지 마. 공부만 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다고오-. 의대 갔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라고 형들이 놀려.”
채규호는 여드름만 사라졌을 뿐, 중학교 시절의 귀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술을 못하는 녀석이라 회사 앞 공원 벤치에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진혁을 알아본 행인들이 곁눈질을 했지만 모른 척했다. 얼굴 좀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공공재가 되어버린 얼굴이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공부해 보니 어떻더냐?”
“어후-, 뭔가 막막해.”
“막막해?”
“으응-. 작년에 홍기준 회장님 강연 들은 후에 든 생각인데, 대학은 현실과 안 맞는 학문만 가르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뭐, 그래서 나름대로 다른 여러 가지도 공부하기는 했지만 말여어-.”
어떤 대학은 여전히 자격증 취득, 취업률 따위로 수험생을 유치하는 반면, 학문의 전당 역할에 충실한 대학은 학생들로 하여금 현실과의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드는 중이었다. 나름 일류대로 꼽는 대학에 다니는 최미경 의대생은 빤쓰 한 장 걸치고 그리스에서 수업받는 느낌이라는 평을 남겼더랬다.
“그게 대학의 역할 아니냐? 학문과 현실의 가교역할은 학자와 학생들 몫이지 대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아니잖아.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회장은 여전히 어려운 말을 쉽게 하는 재주가 있어. 회장이 교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짜식, 별소릴 다하네.”
거의 1년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채규호는 장래 고민을 털어놓았다.
“형들은 돈도 잘 버는데 너는 뭐 먹고 살 거냐, 어디 연구직이나 가겠냐, 유학 다녀와서 교수라도 할래, 이러시는데 내가 아주-. 어후-.”
“유학은 싫어?”
“응. 공부하고 연구하는 건 좋은데 뭔가 눈에 보이는 걸 만들고 싶어. 공부할 만큼 했어, 나도.”
“병역부터 해결하는 건 어때? 세인 테크니카에 원서 넣으면 되겠다.”
“벌써 넣었지.”
“아, 그래?”
“졸업하면 섬으로 끌려가는 거여-.”
두 친구가 함께 키득거렸다.
채규호가 어디 염전이나 새우잡이배에 끌려가는 느낌으로 말한 탓이었다.
“아무튼, 네 말대로라면 대학 전공자 중에는 쓸만한 인재 찾기가 힘들다는 거야?”
“내가 볼 땐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문제야. 우리 학교는 그나마 국내 최고로 친다지만 다른 학교는 현실이 어떤지 알아?”
“어떤데?”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처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을지 연구를 한다면서 비싼 돈 들여서 미국에 간다? 거기서 관광을 하는지 술을 마시는지 몰라도 일단 졸라 길게 다녀와. 그러고 나서 한다는 짓이 뭔지 알아?”
“뭔데?”
왜 그랬는지 알 듯했지만 일부러 되물었다.
“캠퍼스에 뜬금없이 거라지를 지어.”
“거라지? 개리지? 차고? 왜애-? 주차장이 부족하대?”
좋은 친구의 시작, 상대의 말에 공감하고 호기심을 표하는 것.
이제 진혁은 그런 것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