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6)
***
2000년의 마지막 밤, 여의도 옥탑저택에 고향의 가족들과 친구들, 홍기준의 가족이 모였다.
“여기를 보스 녀석 혼자 사용한다고?”
“혼자 무섭겠다.”
“진혁이가 세상에 무서울 게 있을까?”
모처럼 서울 여행에 나선 문석일과 정상태, 강헌창도 옥탑저택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상태 형, 이 빌딩에 엘리베이터가 열두 개래!”
모친과 황가윤의 가족을 모두 챙기느라 가장 늦은 김인랑도 펜트하우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겨우 찾아 얼굴을 비쳤다.
민용락 등 가까운 직원들을 비롯해 몇몇 입사 동기들도 참석한 자리, 12월 31일의 한파 따위 문제도 아니라는 듯, 옥상정원에 모인 이들은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했다.
“자아-, 여러분! 곧 시작한답니다.”
유세라는 유세라.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성격은 여전했다.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것도.
“오! 사! 삼! 이! 일!”
맞은편 빌딩 옥외 전광판의 숫자를 따라 입을 모아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목소리가 흥겹다.
「HAPPY 2001!」
펑-! 펑! 퍼엉-! 퍼버벙-!
한강에 둥둥 뜬 바지선에서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솟아올랐다.
퍼엉-! 짜자자작-.
“매우 아름답군.”
“워어이-. 스울서는 이런 것두 뷔네이-.”
김은정과 조슬찬이 팔짱을 낀 채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아, 여기가 원래 건축자재 공장이 있던 곳이래.”
“언니는 좋겠어요. 여기 전망 좋아요.”
“나도 여기 온 건 처음이야.”
홍수정이 내놓은 의외의 대답에 유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울 살면 매일 만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깩깩-.
박수를 치며 깡총거리던 유세라가 홍수정을 올려다보았다. 어쩐 일인지 낯빛이 상냥하다.
“이십일 세기가 되면 대단한 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다 그치?”
“응.”
“스읍-.”
“네에-, 어마마마.”
“너 말투가 어째 쫌 많이 그렇다?”
“아닙니다, 유세라 어마마마. 오해이십니다아-.”
해가 바뀌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홍수정은 넉살도 늘었다.
이제 내려다보이는 엄마에게 두 손 모아 읍소하면서 실실 웃는 것이 딱 유세라 주니어다.
모녀의 전혀 팽팽하지 않은 신경전을 본 진혁이 빙긋 웃었다.
‘많은 게 달라졌지.’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는 시간, 진혁이 아끼는 모두가 함께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넘치도록 가졌는데 더 바라는 건 탐욕일 뿐.
종종 까탈을 부리지만, 아홉 살 홍수혁은 정원이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정원아, 여기 봐. 물고기 엄청 크다아-.”
“이이-, 소풍 가서 봤어. 비단잉어랴.”
“얘, 맛있을까?”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다들 먹는 것에 환장하는 편이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먹성은 변치 않을 듯했다.
수영선수가 되겠다며 매일 곰짐에서 사는 정원이는 키도, 머리도 커서 홍수혁과 초등학교 3학년생과 유치원생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조슬찬과 보내는 시간이 많고, 시골의 어동초등학교에 다니며 자연스레 익은 사투리도 서울 아이 홍수혁과 비교된다.
“수혁아, 비단잉어는 비단 맛 날 거 같어.”
“비단 맛?”
“이이-. 비단은 누에고치로 만드니까 고치 맛이 날 겨.”
“고치 맛은 무슨 맛이지?”
“매운 맛이겄지. 고치니께.”
동네 아이들에 대한 조일헌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매운 맛 나는 건 고추 아냐?”
“고치나, 꼬추나 똔똔이여-.”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정신상태가 이상하다는 점도 두 집안의 공통점이지.
‘나만 멀쩡해.’
월월-!
으르르-.
“어머, 어머! 장군아! 그거 먹으면 안 돼!”
금방이라도 연못에 뛰어들 것 같은 개들을 달래려 한유영이 다급히 뛰어갔다.
누가 손진혁 엄마 아니랄까 봐 발놀림이 잽싸다.
‘엄마도 멀쩡해.’
*
새해가 밝고 며칠 후.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거의 동시에 연락을 취해왔다.
“네. 아버지와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2년 전의 일이다.
진혁은 아시안게임을 마친 직후 청와대 초청을 받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국군 유해발굴 사업을 거론했다.
필요하다면 민간기업 차원의 재정 지원을 약속하겠다는 제안과 함께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문관 두구 엘릴의 활약이 숨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공신, 그림자.
**
【짜잔-.】
‘똥 쌀 때 찾아오지 마. 엉덩이 까고 기절해서 엎어지면 얼마나 우습겠냐고.’
존재감이 많이 약해진 두구 엘릴이었으나 깨어있을 때 불시에 찾아오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두통은 여전했다.
혼자 사는 저택, 조일헌의 부친처럼 구세주를 만날 수도 없는 곳이다.
【나는 괜찮다. 보이긴 하나 느끼지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한다.】
존나 이기적인 새끼네 이거.
누가 지 걱정해서 그러는 건 줄 아나?
‘서로 조심 좀 하자고.’
바지를 조심스레 끌어올리며 부탁하듯 말했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으니 진혁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아시안게임 3관왕을 축하한다.】
‘별소릴 다하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부르지도 않았는데 온 걸 보면 중요한 일인가 본데?’
그제야 두구 엘릴이 본론을 꺼냈다.
【워낙 인간종이 많아 그대의 할아버지를 몇 번이나 놓쳤다. 찾다가 눈알이 빠져서 몇 번을 집어넣어야 했지. 그래서 오래 걸렸다.】
‘고생은 했다.’
【잠이 들면 눈앞에 보여주지. 그때 확인해 보라.】
그날 밤.
두구 엘릴이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젊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잡혔다.
서른이나 되었을까, 옛사람인 데다 수염과 땟국물 때문에 얼굴만으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만 눈매와 턱선이 아빠와 똑 닮은 분이었다. 잘 먹지 못한 탓에 살집 없이 날카로운 얼굴이었지만 호랑이 눈매는 어둠 속에서도 형형했다.
멋쟁이 콧수염의 지휘관은 권총을 들고 전투를 독려했다.
멀쩡한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시뻘건 겨울 산, 전투가 길어지며 피아가 뒤섞여 백병전을 벌였다.
시간이 멈춘 어둠, 흩뿌리는 눈보라 속에서 전사들은 천사처럼 강림하는 조명탄 줄기에 목숨을 맡겼다.
조명탄이 터질 때마다 붉은 산을 기어오르는 개미 떼 그림자에 지켜보던 진혁은 숨이 막혔다.
조명탄이 꺼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오면, 피아식별을 위한 암구호에 의지한 채 휘두르는 총검으로 목숨줄을 이어붙였다.
“까랏!”
“죽엿!”
중과부적이었다.
이미 팔에 총상을 입은 손정원은 적의 대검에 허벅지를 찔렸다.
겨우 한 뼘 날붙이, 그럼에도 무디기에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무기였다.
옆구리를 깊이 찌른 적의 대검이 빠지자, 물풍선 같은 핏덩어리가 뜨거운 김을 풍기며 밀려 나왔다.
누군가 손정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손 대장니메! 인민군마이 아이오. 중공 아새끼들이 너무 많소. 날래 이탈하기요. 의용군이라도 살라 말임메.”
민무늬 전투복과 그물 씌운 철모가 아니었다면, 말투 때문에 인민군이라는 오해를 살 사람이었다.
의용대장 손정원은 옆구리를 틀어쥔 채 외쳤다.
덕분에 진혁은 할아버지의 음성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송 상사! 진내 포격을 요청하시오!”
“손 대장, 내래 일 없소. 기건 중대장 권한 아임메?”
“당신네 중대장은 죽었단 말이다! 이제 당신이 지휘관이야!”
이미 내장에 붙은 체력까지 긁어 싸우는 전황.
송 상사는 포기한 듯 총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삐쩍 마른 얼굴에 짙은 그늘이 잡혔다.
“기카믄 우리도, 이 아들도 죄- 죽자 소리 아임메······.”
“아니! 우리만 죽느니 저놈들도 데리고 가자는 소리다! 으하하-! 어차피 포위된 마당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마에서 흐른 피가 얼굴에 묻은 흙을 끌고 입으로 들어가는데도 야차처럼 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기이하다기보다 자식들과 어울리며 웃는 아빠를 닮아 친근했다.
“기럼 알갔소. 기캅시다. 황천길 동무하지비.”
할아버지를 응시한 송 상사가 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 땍때기! 날래 이리 오라!”
“물러서지 마라! 놈들을 여기 잡아둬야 한다!”
의용군은 부상에도 악전고투를 벌이는 지휘관을 보며 전의를 불살랐다.
쉬이이이잉-.
이윽고 날카롭게 공기를 찢는 소리가 하늘을 덮었다.
“엄폐하라-!”
꽝-! 꽈광-!
곳곳에서 포격으로 인해 흙이 튀고, 절단된 사지가 날아오르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졌다.
‘안 돼! 할아버지 엎드리세요. 엄폐! 복지부동이라도!’
꽈광-!
닿을 까닭 없는 진혁의 외침은 포성에 묻혔다.
손정원은 동분서주하며 부하들을 참호로 밀어넣었다.
‘할머니 복중에 아빠 있단 말이에요!’
사냥꾼 복장, 교복 차림, 농사꾼의 후줄근한 의복···. 군복도 통일하지 못하고 철모도 쓰지 않은 군대는 포격이 멈추고 아군이 전멸한 후에도 최후의 1인까지 싸웠다. 산과 사람을 덮은 포연 속에서.
진혁은 꿈속에서 볼 수 있었다.
파편에 심장을 관통당한 할아버지가 왼쪽 상의 주머니를 움켜쥔 채 숨을 거두는 모습을.
얼굴이 흙에 덮이고 눈송이가 각막에 내려앉아도 감지 못한 두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고맙다. 두구 엘릴. 덕분에 할아버지의 임종을······.’
【내 이름은 ⬛⬛⬛⬛이다. 친구여.】
**
티격태격······이라기 보다 진혁이 일방적으로 갈구는 관계였지만 두구 엘릴도 많이 감성적으로 변했다.
아무렴, 만물은 그런 변화를 거치며 성장하고, 죽어가는 거겠지.
신조차도.
‘그놈 이름을 적어뒀어야 하는데 희한하게 기억이 안 나네. 아낙네? 아낙수나문? 아락실?’
변비약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었으나 입안에서 맴돌 뿐, 또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느 꿈처럼 영상으로 본 탓일까, 오래된 영화처럼 장면도 흐릿하고 대화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가 묻힌 곳은 집중한 덕분에 잠에서 깬 후에도 기억해냈다.
진혁의 할아버지 손정원은 북한과 협상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에 잠들어 있었다.
***
손광연과 진혁은 철원으로 이동해 손정원의 유해를 인수했다.
옷은 썩어 없어졌으나 철제 담뱃갑 속에서 제법 보존이 잘된 사진이 나왔다. 손광연이 보관 중인 것보다 선명한, 진혁의 할머니 문예의 사진이었다. 숨을 거두면서도 놓지 못하고 움켜쥔 상의 주머니에 있던 물건이다.
“아버지······.”
부친의 유해 앞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매만지는 사람, 손광연은 눈이 충혈되고 코가 빨개졌지만 울지 않았다.
“집으로 가요, 아버지. 엄마 곁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손광연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름을 웅얼거렸다.
정부 고위 인사가 나타나 예우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손광연이 거절했다.
“내가 손광연이 아니었다면, 내 아들이 손진혁이 아니었다면 그런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군적에도 오르지 못하고 인식표도 없으신 분인데 정부에서 인민군이었다고 우겨도 제가 할 말 없는 거 아닙니까?”
군적에 들지 못한 자를 국가에서 차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었다.
힐난하는 듯했으나 손광연의 어조는 점잖았다.
어차피 차별을 한다 해도 이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정부 인사는 안경을 고쳐 쓸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는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저분들 가족을 찾아주세요. 예우는 그분들이 받으셔야 합니다.”
무명 용사.
손광연이 가리킨 곳에는 소속과 신원이 불명한 이들의 유해가 속속 지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
1월의 한복판, 찬 겨울비가 쏟아졌다.
할아버지의 유해는 수로변 공터에 공원처럼 조성한 가족 납골당에 안치했다.
멀리서 보면 작은 탑처럼 생긴, 밤에도 은은하게 조명을 비추는 시설이다.
훗날 죽으면, 죽어서도 함께 살고 싶다며 손광연이 천마총 뒤편에 마련한 시설. 충견의 묘가 지키는 납골당.
이웃들도, SSS도 원하면 누구든 안치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진혁의 할아버지 손정원이 드디어 안식에 들어갔다.
먼저 터 잡은 사돈들과 뒤늦은 상견례를 하리라.
손광연은 일체의 국가유공자 혜택을 거부했으나, 진혁이 정부 관계자에게 요청한 것이 있다.
저벅저벅-.
힘차되 절제된 동작으로 걷는 모습이 힘을 주면 꺾어질 듯하다. 차라리 대나무로 만든 군인들 같았다.
제자리- 섯.
쿵-!
우향- 웃.
처척-!
앞에 총.
차착-, 처커덕-!
한치의 오차도 없는 일사불란하고 절도 넘치는 동작.
의장대는 앞에 총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가 놓았다.
곧바로 방아쇠울에 검지를 걸치는 손동작이 매끄럽다.
조준.
쭉 뻗은 왼팔을 따라 총구가 비스듬히 하늘을 겨눴다.
하나- 둘- 셋.
민감한 진혁의 귀에, 빗소리를 뚫고 개미 소리 같은 의장대 예령이 잡혔다.
탕-!
탕-!
탕-!
육군의장대의 조총弔銃.
영웅을 위해 그 정도는 부탁해도 될 듯했다.
예총 발사를 마친 후, 절도 넘치되 나직한 구령이 다시 들렸다.
앞에- 총!
좌향- 좌!
앞으로- 갓!
빗속에도 영웅을 위한 예식을 지원해주니 감사한 일이다.
조촐하고 엄숙한 안치식을 마치고, 진혁은 동생들의 어깨를 쥐었다.
“유진아, 정원아. 이제 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계속 여기서 주무실 거야. 할아버지 심심하시지 않게 유진이랑 정원이가 여기서 놀아드려. 팽이도 치고, 딱지도 치고, 제기도 차고.”
손정원이 형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시끄럽다고 하시면 우즈캐지요?”
빛바랜 사진을 소중하게 감싸쥔 손광연이 막내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어이구 잘한다 우리 손주’ 하실 거야.”
“녜, 에헤헤-.”
진혁은 납골당을 향해 먼저 묵례를 해 보였다.
“이렇게 인사드리자.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드리는 거야.”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오-.”
꼬빡 고개를 숙이는 어린 녀석들을 보며 손광연이 환하게 웃었다.
마찬가지로 동생들을 보며 웃고 있는, 할머니를 닮고 엄마를 닮은 큰아들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할아버지 찾아줘서 고맙다.”
*
돌아온 주말, 다른 곳에 모셨던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만났다.
혼자 계시면 외로울 거라며, 그동안 누워계셨던 곳에서 친구들과 머무시는 게 나을 거라며 손광연이 이장을 서두르지 않은 까닭에 늦어졌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납골당을 마주한 손광연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사람처럼, 몇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부모 영전 앞에 다짐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내 새끼들 키우며 잘 살겠습니다. 못한 효도는 그것으로 대신하렵니다.’
따스한 해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보라가 흩날리는, 동화처럼 포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