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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318화 (318/338)

인탄忍歎(Intern) (6)

말의 무게와 달리, 너무나 가볍게 걸린 홍기준의 미소는 유세라와 다를 바 없었다.

부부는 닮는다던가.

장난을 치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개구쟁이의 눈빛도 닮았다.

그래도 예의상 놀라는 척은 해줘야지.

“예에-?”

진혁은 일부러 눈을 크게 키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랍도록 얍삽하고 가증스러운 순발력이었다.

으하하하하!

홍기준이 배를 잡고 웃었다.

“농담이다, 농담.”

아니, 무슨 농담을 그렇게 설레게 하시나.

장난인 줄은 알았지만 좋다 말았다.

‘재미없어요.’

견물생심.

시켜줘도 할 자신 있는데. 진혁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왔다.

홍기준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가족에게도 비밀이다. 네 아빠가 졸랐는데도 내부 기밀이라면서 알려주지 않았거든. 아직까지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이제 너도 알게 되겠지. 네게도 출근하는 날 알려줄까 하다가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흐음-. 이 양반이 또 소소한 재미에 빠지셨구먼.

깜짝쇼. 전생에도 곧잘 하던 짓이다.

홍수정 전무의 생일날, 함께 저녁을 먹는 곳에 화해의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일도 있었다. ······결말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진혁은 홍기준의 계획을 짐작해 보았다.

‘민용락 과장과 같은 본부에 배치할 테지. 그렇다면 그 양반과 함께 일하게 될 테고, 나는 운동이나 시합 때문에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없으니까 민용락 과장은 내 사수 겸 보조가 되려나. 그럼 대리로 시작하는 건가.’

경력직이라면 과장도 가능하겠지만 홍기준도 직원들 사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대기업 대리. 스무 살의 사회 초년생으로서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채용시험에는 회장이 출제하는 주제가 하나 포함된다. 이 물건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채용시험에서 증명해 봐. 내 강의를 모두 숙지했다면 어렵지 않게 풀어낼 테지.”

홍기준이 가슴팍을 검지로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봤는데, 역시 그게 좋겠어······.”

홍기준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진혁은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

쿼드론으로 태워다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지 못했다.

다른 때였다면 사양했겠지만, 얼른 가족이 보고 싶었다.

‘이제 좋은 일, 신나는 일만 생길 것 같다.’

희망찬 앞날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지금보다 와닿는 순간은 없을 듯하다.

세상에 나가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하고, 군사훈련까지 마쳤다.

출세를 보장하는 든든한 인맥과 부를 갖추었는데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가족도 있지.’

점점 다가오는 집을 본 진혁이 흐뭇하게 웃었다.

잔디밭에서 놀다가 쿼드론을 발견한 동생들이 방방 뛰고 있었다.

천천히 비행했는데도, 세인그룹 본사 옥상에서 출발해 20분 만에 집에 닿았다. 파일럿은 연수원이 아닌 정원 한편에 진혁을 내려주고 돌아갔다.

“오빠다아아! 오빠! 오빠!”

“응아아아아-! 응아다! 응아!”

월! 월!

눈물나게 반가운 녀석들을 꼬옥 안았다.

겨우 4주 만인데 이렇게나 반가울 일인가.

‘내 가족.’

장군이와 개친구들도 번갈아 만져주었다.

“내 동생들 지키느라 고생했다, 이놈들. 장군이, 홍시, 광마, 검마······.”

그런데 천마가 보이지 않는다.

아, 설마······.

신병교육대에 입소하던 날 새벽, 힘겹게 일어나 배웅하던 천마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유진아, 천마는?”

오랜만에 본 오빠를 보며 환하게 웃던 유진이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천마는 힘이 없어요오-. 밥도 안 먹어요. 오래 됐어요.”

“응아아-. 천마, 물 안 먹어서 손정원이 이케이케- 먹였더요.”

정원이는 양손을 모아 물을 뜨는 시늉을 했다.

옆으로 누운 늙은 개의 입에 손으로 물을 흘려 넣는 아이의 모습이 뇌리에 그려졌다.

“아이고오-. 우리 천마 안 되는데에-.”

금세 울상이 된 진혁은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천마는 개집 앞에 힘없이 엎드려 있었다.

히에······.

진혁을 발견하고는 일어서려 몇 번을 반복하다가 픽 엎어져 버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사지에서는 이미 젊고 건강할 때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물질을 하던 녀석인데······.

심장을 칼에 베이는 고통이 이럴까.

입술을 꽉 깨문 진혁은 냉큼 달려가 무릎을 꿇고 천마를 다독였다.

“천마야, 괜찮아. 일어나지 마.”

끼이이-.

천마는 눈꺼풀을 힘겹게 열고 눈동자를 올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을 뜨기도 힘든 모양, 진혁의 손을 한 번 핥고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쉭- 쉭-. 뜨거운 입김만이 생명을 증거할 뿐, 천마는 더이상 맹견의 위용을 보이지 못했다.

“아이고, 이놈아······. 나 기다리느라 버티고 있었던 거야?”

순식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컥 메어왔다.

끄이이-.

늙은 개가 내는 쇳소리에, 녹슨 못으로 고막을 긁는 통증이 따랐다.

‘나와.’

【사니얼이 죽어가는군.】

맨몸으로 불러냈음에도 두구 엘릴을 견뎌낼 만했다.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는 정도의 두통이었고, 심장을 짓누르는 박력도 없었다.

녀석의 말대로 연결이 약해진 탓이리라. 어쩌면 간절했기에 수월하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울까? 수명을 늘려 준다거나······. 10년만 더 살게 해준다거나.’

【불가하다. 세계마다 정해진 규칙이 있는 법. 수명 또한 세계의 규칙이다.】

지나치게 단호했다.

일말의 기대도 배제하겠다는 듯한 건조한 음성에 오기가 생겼다.

‘생명 연장 같은 건 안 되는 거야? 내 친구를 살렸을 때처럼?’

【영혼을 되돌리는 것과, 주어진 수명보다 늘리는 것은 전혀 별개의 권능. 내 권능으로 행할 수 있으나, 타자의 몸을 빌어 행사할 수 없는 권능이다. 그것이 그대의 몸이라 해도.】

‘직접 오면 되잖아. 욕한 것도, 반말한 것도 내가 다 사과할게. 제발 와서-.’

【냉정을 잃다니 그대답지 못하다. 나 역시 갇혀 벌을 받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현현한다면 그 세계는 내 힘을 버티지 못하고 파멸한다. 늙은이에게 듣지 않았나.】

단호했으나 진혁의 간절함을 아는지 시종일관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그럼에도 끝내 희망적인 말은 들을 수 없었다.

흙이 묻어도 털지 못하고 늘어뜨린 천마의 혀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죽음.

누구도 피해가지 못하는 생의 마지막 관문.

접하기 싫어도 보잘것없는 생명으로서 피할 수 없는 결말.

“아이고오-. 천마야. 천마야아-. 아이고 이놈······ 고생만 하다가 가네. 으흐흐흑-.”

주책맞은 눈물이 흘렀다.

천마의 혀를 잡아 모래를 털고, 입에 돌려주어도 천마의 혀는 계속 삐져나왔다. 그 모습에 진혁의 입에서도 울음이 새어나왔다.

순식간에 눈물이 시야를 덮고 콧물이 입술을 더럽혔다.

“히이이이잉-.”

“우애애애앵-.”

진혁이 울자, 유진이와 정원이도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끄이이-.

힘을 쥐어짠 천마는 울지 말라는 듯 유진이와 정원이의 눈 밑을 한 번씩 핥고는 다시 축 늘어졌다.

【충성스러운 녀석이군. 이 어린 것들을 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니.】

‘개 말을 알아듣는 거야?’

【그대는 알아듣지 못하나?】

‘당연하지! 다른 말은? 다른 말은 없어?’

사지에 힘이 빠져 늘어진 천마를 흔들었다.

“천마야! 더 말해 봐! 더-!”

끼이이-.

【녀석이 말하길, 그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대들과 함께 행복했다.】

그 말에 눈물이 온천처럼 터져 나왔다.

때를 빼고 더 훤해진 얼굴도 못나게 일그러졌다.

“아이고오오! 천마야아아아! 조금만 더 같이 살자, 이놈아-!”

진혁은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몰랐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거다.

행복에 겨웠던 자로서 전혀 예상 못한 애사를 대하는 자세가 어찌 초연할 수 있을까.

흐이이······.

【죽어서도 그대의 가족들을 지키겠다.】

그 말이 더욱 슬펐다.

“안 돼애애애애애-! 으아아아아-! 안 돼애애애-! 천마야아아!”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나설 때면 가장 먼저 일어나 문 앞에서 대기하던 녀석. 주둥이가 시커매서 수염 난 아빠곰 같던 녀석. 늘 꼿꼿이 몸을 세우고 앉아있는 모습만 보인 터라 과연 잠을 자는지 의심스러웠던 녀석.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친 셰퍼드 천마는 한마디의 원망 없이, 충성스러운 말만 남기고 잠이 들었다.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축 늘어진 천마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일뿐이었다.

“어이구우- 이 새끼, 안 되는데에-.”

“으애애애앵-. 천마야아-.”

“첨마아아아-. 음마아아아-.”

유진이와 정원이도 엄마 품을 찾는 아기처럼 천마에게 매달렸다.

워우우우우-!

워워월!

워우우우우우-.

장군이 녀석들도 목을 길게 뽑았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울링이리라.

【이미 숨을 거두었다.】

‘알아. 그걸 아니까 슬퍼하는 거야. 이 녀석 좋은 곳으로 갈까? 고생 없고 안전한 곳으로?’

【보장하지. 내가 손을 쓰겠다.】

워우우우우우-.

개들이 내는 곡소리가 진혁의 침통한 심장을 더욱 찢어발겼다.

“아이구우-. 우리 천마 불쌍해서 어떡해애-.”

“으애애-. 오빠. 천마가 숨을 안 쉬어요오-.”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벚꽃이 피기 시작한 봄날 저녁은 잔인할 정도로 화창했다.

***

수줍게 얼굴을 내민 연분홍 꽃잎 사이로, 특별할 것 없는 석양이 걸렸다.

그러나 시나브로 물드는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변하는 생명체처럼, 석양 또한 생명을 불살랐다.

푹-! 푹-!

흐르는 콧물을 손등으로 슥 닦고는 삽질에 열중했다.

쏟아낸 눈물의 여운이 남은 가슴을 때때로 흐느끼며.

물을 좋아하는 천마인데 수로가 잘 보이는 언덕에 묻어주고 싶었다.

집에서도 잘 보이는 곳이 좋을 듯했다. 그래서 유진이가 구덩이를 파고 숨던 곳 근처에 묘터를 잡았다.

“잘 파지네······.”

진혁을 거들고 나선 문석일은 말을 아꼈다.

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다.

그런데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입을 꾹 닫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올라오는 흐느낌을 꾹꾹 억누르면서 말이다. 소리 죽여 우는 모습이 더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이게 인간다운 거겠지.’

감정의 전염일까, 문석일의 눈도 어느새 충혈되었다.

훌쩍-.

눈이 퉁퉁 부은 유진이와 정원이는 근처에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았다. 남매는 무덤을 파는 모습을 지켜보며 도란도란 말을 나누었다.

“누나아-. 천마 하늘나라 갔더요?”

“으응.”

“손정원, 이제 천마 못 봐요? 천마, 손정원 썰매 안 끌어요?”

겨울이면, 정원이는 잔디밭에 쌓인 눈 위에서 비료 포대 눈썰매를 타고 즐거워했었다.

비료 포대에 길게 연결한 줄을 천마가 물어 당기는 방식이었다. 빠르지 않은데도 정원이가 넘어지지는 않는지 거듭 돌아보던 천마의 모습이 유진이의 눈에 아른거렸다.

“으응. 이제 못 봐요오-. 썰매는 누나가 끌어줄게요.”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손유진은 정원이의 이마를 쓸어넘기며 애써 웃었다.

동생 앞머리가 길게 자라 눈을 찌를 듯하다. 엄마에게 말해 다듬어달라고 해야겠다.

“정원아. 그래도 천마는 우릴 볼 수 있을 거야. 천마는 행복하게 살다가 갔대. 오빠가 그랬어요.”

“천마, 행복해요?”

“응!”

손유진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큰 눈에 맺혔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진남 아저씨가 그러는데, 천마는 죽으면 무림으로 간다고 했어. 아마 거기 갔을 거야.”

“천마, 무림, 응, 갔는데 손정원 우즈캐 보지요?”

“거기서는 보이나 봐. 우리 집도 보일 거야.”

정원이는 누나의 말을 곰곰 곱씹어 보았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천마가 이곳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알아들었다.

“누나, 천마, 꽃 좋와해지요?”

“아? 우리 천마 무덤에 꽃 심어줄까?”

눈물을 닦고 벌떡 일어선 손유진이 동생을 잡아 일으켰다.

엄마와 가을마다 모아둔 꽃씨가 창고에 많이 있지.

***

해가 떨어졌지만 가로등 불빛이 있어 어둡지 않았다.

평소에는 식물의 생장을 위해 잘 켜지 않았지만 작업을 위해 스위치를 올렸다.

퇴근한 조슬찬과 함께 나무로 관을 짰다.

장진남이 내어준 캔버스로 천마를 정성스럽게 싸서 관에 눕혔다.

“응아-, 천마 안 답답해요오?”

“응. 괜찮을 거야.”

한유영이 색색깔 꽃을 천마의 관에 넣었다.

아이들의 곡소리를 듣고는 달려 나와 함께 울고, 그 길로 조일헌의 하우스에 찾아가 얻어온 꽃이었다.

“여기가 볕도 잘 들고, 수로도 잘 보여서 천마도 마음에 들어 하겠다.”

어떤 이는 경관을 해친다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한유영은 아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천마가 아끼던 소뼈도 깨끗이 씻은 후 검은색 리본을 묶어 천마 옆에 두었다.

퇴근한 손광연이 합류했을 때, 관 뚜껑을 닫았다.

딱- 딱- 딱-!

관 뚜껑에 못을 박는 소리가 흥겹게 들리면 곤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진혁은 일부러 느릿하게 망치질했다.

“에휴, 이 녀석아. 나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지 그랬어어-. 우리 아들 오는 날이라고 신나서 왔는데 이게 뭐냐아-. 어이구흐흑-.”

관을 매만지며 눈물을 참지 못한 손광연 때문에 다시 눈물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눈물을 흉보는 이는 없었다. 냉정한 문석일조차 감화되어 눈물을 훔쳤으니.

반듯하게 각을 잡아 판 구덩이에 관을 넣고, 번갈아 삽을 들었다.

유진이와 정원이는 손을 짚고 엎드려 조막만 한 손으로 흙을 뿌렸다.

“천마야, 놀아줘서 고마워. 또 만나자-.”

“첨마, 고마어? 또 만나요?”

죽음에서 배운다는 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동생들은 죽음을 천천히 알기를 바랐다. 나중에 더 큰 후에.

그러나 정든 천마를 떠나보내면서도 유진이와 정원이는 초연한 모습이다. 오감으로 확인하고, 감정으로 대응하고, 끝내 섭리로서 받아들인 자세 아닌가. 떠난 개에게 추억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두구 엘릴의 말처럼 하찮은 존재면 어떠한가.

두구 엘릴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영혼에 무게를 더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개들과 정이 많이 든 장진남과 조슬찬도 천마가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래도 좋은 주인 만나서 축생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 믿어오.”

“츤마야, 또 보자이-?”

장군이와 개친구들은 진정이 되었는지 혀를 집어넣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대장 자리를 탐내지 않고 친구로 머물던 맹견이 안식에 들어가는 모습을.

푸르르-.

가끔 주둥이를 떨어 우는 녀석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견디는 듯했다.

어쩌면 녀석들은 늘 붙어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날이 쇠약해가는 천마를 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유진이와 정원이가 금세 안정을 찾은 것처럼.

봉분이 올라가고, 진혁과 조슬찬이 잔디밭에서 걷어온 떼를 입혔다. 장진남과 문석일도 거들었다.

“오빠, 꽃 심어도 돼요?”

“응아, 천마 꽃 좋와해지요?”

“아하하, 내 동생들 때문에 웃는다. 그래, 심자.”

무덤 주위로 꽃씨를 심고, 물을 뿌렸다.

시기적으로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따뜻해서 씨앗을 심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천마의 무덤에 꽃이 만개하리라.

모처럼 톱질과 망치질 솜씨를 발휘한 정상태가 푯말을 들고 나타났다.

“유진아, 부탁한 거 만들어왔다.”

땅에 박기 좋도록 끝을 비스듬히 자른 각목에 노트 크기의 널빤지를 댄 푯말이었다.

“상태 삼촌, 감사합니다.”

“유진아, 그걸로 뭐 하려고?”

“누구 무덤인지 알려주는 거예요오-. 오빠, 이거 꽂아도 되지요?”

아, 비석이나 비목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역시 유진이가 더 생각이 깊구나.

오빠에게 허락을 구하는 유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뽁-.

유성매직 뚜껑을 뽑은 유진이는 널빤지 가장 자리에 무늬를 그려넣었다.

다른 이들 눈에는 미로처럼 보이는 문양.

스윽- 스윽- 스윽-.

“레에므 엘릴. 레에므 엘릴. 레에므 엘릴.”

오직 진혁만이 동생의 중얼거리는 말을 알아들었다.

‘둘째 하늘? 두 번째 하늘? 작은 하늘?’

가장자리에 반복된 무늬를 그려 넣은 유진이가 널빤지 하단에 한자로 묘비명을 썼다.

「天麽塚」

“천길롱 할아버지한테 배웠는데 이름에는 ‘작을 마’ 자를 쓴대요. 한글로도 쓸 거예요.”

묻는 이도 없는데, 유진이답게 친절히 설명하고는 한자 위에 커다랗게 한글로도 써넣었다.

슥슥- 스윽-.

유진이 표정이 진지했기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열한 살이 되었어도 어여쁘고 기특한 동생의 머리를 진혁이 쓸어넘겼다.

「천마총」

썩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니, 너무나 근사하다.

헤휴우-.

천마의 빈자리가 서운했을까, 납작 엎드린 장군이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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