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탄忍歎(Intern) (3)
한편, 내무실 밖에 숨어 엿듣던 조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소대장 정해졌네.’
대개 첫 주차에는 1번 훈련병에게 소대장을 맡긴다.
그러다가 기가 센 훈련병에게 넘어가거나, 지원자가 없을 경우 조교가 지목한다.
프로 운동선수가 오면 무조건 그 훈련병에게 소대장을 맡기곤 했다.
힘도 세고 조직 생활에도 익숙한 데다, 타고난 체력으로 훈련도 잘 받아 모범이 되는 까닭이다.
프로 선수들은 대개 나이도 많고 유명하기까지 하니 따르지 않는 훈련병들이 없었다.
손진혁은 나이가 어려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말도 잘하고, 완력도 좋은 데다 먼저 사인해주겠다며 나서서 인심까지 샀다. 머리도 엄청나게 좋다지?
이번 기수는 좀 잘하려나······.
설마. 어리바리한 훈련병들이 그럴 리 없어. 조교가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유명인이 입소하면 훈련 강도는 몇 배나 강해진다. 손진혁이 입소하면 더 무섭게 굴리라는 사단장 지시도 내려온 터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로부터 압력이 들어왔다는 소문과 함께였다.
사악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조교는 발소리를 죽여 행정반으로 멀어져 갔다.
***
겨우 4주.
매일 혹독한 훈련을 반복하며 몸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온 진혁이다.
편하게 병영캠프나 즐기다 가려는 소박한 계획은, 내무반 기선제압과 함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일 소대! 엎드려뻗쳐!”
우당탕쿵탕-!
“관물대에 발 올려!”
“똥 싸고 물 안 내린 놈 누구이야아-!”
“화장실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었드아-!”
“연대책임이다!”
야, 고대 애들 서운하겠다.
얼차려라지만 받을 만했기에 진혁은 속으로 아재 개그를 날리는 여유를 보였다.
흐끄으으으응-.
끼이이이잉-.
“누가 개소리를 내나!”
“소대장은 뭘 했어!”
“소대장 잘못이 더 크다!”
갑자기?
아니, 조교님 시발. 지들이 등 떠밀어 소대장 만들어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인 것입니까요! 존나 억울하네 이거?
‘내가! 메달리스트에! 수능 만점자인데!’
엄마 보고 싶어요!
거의 물구나무선 자세가 되어 터질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 목에서 솟은 땀이 턱을 타고 흘러 콧구멍을 기웃거렸다.
킁-킁-.
여기저기서 땀방울을 밀어내려는 노력이 감지되었다.
“누가 개새끼처럼 킁킁대나!”
아, 얼차려는 견딜만한데 조교는 너무 무섭다.
‘테스 형, 세상이 나한테 왜 이래?’
이상한 동기들을 만나 얼차려로 점철된 훈련병 생활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러나 누굴 원망하랴.
이곳은 군대. 특전교육단이 아닌, 전생에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열악한 옛날 신병교육대.
자유를 박탈당한 청춘이 인격과 인권을 짓밟히며 참을 인을 새기는 곳.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엄마 보고 싶다.’
엄마, 엄마, 엄마-.
밤 깊은 신병교육대 막사, 여기저기서 엄마를 찾는 잠꼬대가 들렸다.
엄마아아아-!
다른 소대에는 잠꼬대로 비명을 지르는 놈도 있었다.
그 소리에 진혁의 마음도 흔들렸다.
추적추적-.
청승맞게 밤비까지 쏟아져 청춘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찌질함이 극대화되었다는 뜻이다.
‘에휴-.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거야.’
모포를 끌어 이마까지 덮었다.
빼꼼- 발이 삐져나왔다.
‘에잇! 짜증!’
군대 줫같네 진짜!
*
동기들은 못미덥지만······.
기초군사훈련은 진혁이 평소 하던 훈련에 비하면 아이들 놀이보다 못했다.
그렇다고 대충 임한 건 아니다.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손진혁이니까.
때로 수로변 트랙에서 동생들과 달리기 시합할 때도 전력 질주를 하는 사람이다.
아직 차가운 연병장에서 기본 제식 훈련을 하고. 총검술도 다시 익혔다.
“야이- 기즵애야! 뜨옥빠로 하른 말이여어!”
“누가 전투화 끄느아!”
조교들은 발음이 왜 저럴까.
아래턱에 힘을 주어 조금 내밀고 윽박지르는데, 딕션은 또렷하기 짝이 없다.
‘조교 이십세기들이 나만 노려보는 느낌인데?’
욕설은 실수한 동기를 향했지만 시선은 진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한 채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소총이 전생에 다루던 K1이 아니라는 점도 진혁에게는 이색적이었다.
제식명은 SAR2A5. K2소총과 비슷한 디자인의 이 돌격소총은 세인 테크니카에서 개발하고 개량까지 거친 모델로, K2 소총보다 정확도가 높고 연사 시 반동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외에도 K2보다 20% 가까이 가볍다는 점 때문에 전투원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오래간만에 하는 사격술 예비 훈련은 호흡 조절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틱-. 틱-. 티칵-.
여기저기서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리면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총신에서 바둑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르아-!”
사격술 예비 훈련에서 전진무의탁을 빼놓을 수 없지.
사거리별 사격 자세를 익히는 것이 훈련 목적······이라고 설명한 것과 달리, 소총을 지면과 평행하게 파지한 채 허리를 숙인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때문에 요통을 호소하는 동기들이 속출했다.
‘세상에, 이 훈련을 실제로 받게 될 줄이야.’
훈련을 빙자한 얼차려다.
그러나 조교 선발 조건에 ‘무자비’가 필수인 모양, 조교들은 누가 죽기 전에는 훈련 강도를 낮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쓰러질 듯하면 자세를 풀어주었다.
“이 보 앞으로!”
“이 보 후퇴!”
그래,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낫다.
“후퇴할 때 총구 휘두르지 마라! 총구는 항상 전방을 향하도록 해!”
“발 끌지 말란 말이야아-!”
어째 조교들이 점점 악랄해지는 느낌인데.
“이백오십 사로- 봣!”
아주 가끔은 훈련 목적에 맞는 명령도 내렸다.
*
예비훈련을 마치고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탕-! 탕-. 타아앙-!
쿰쿰한 화약 냄새가 옛 복무 시절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고, 사격장의 긴장감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점 사격은 사격통제관 통제에 따라 단발로, 총 세 발을 쏜다.”
“일 차 사격이 끝나면 표적지를 회수해 선임조교에게 확인을 받도록 한다.”
“선임조교 지시에 따라 크리크를 수정한다. 쉽지이-. 모두 교육받은 내용이다.”
조교들도 힘들겠다.
시나리오대로 앵무새처럼 진행하는 교육이라지만 동기들은 저게 뭔 소리여 하는 표정이잖아?
‘얼마만의 실탄 사격이냐.’
삭도 연구소에서 연구용 총을 몇 번 만져봤지만 보는 눈이 많아 실탄 사격은 해보지 못했다. 그때 얼마나 아쉬운 입맛을 다셨던가.
탄알집을 받아든 진혁은 맨 위에 노출된 실탄을 검지로 스윽 매만졌다.
오랜만에 만지는 5.56mm 보통탄의 감촉이 반가웠다.
디자인은 어떻고. 하나 슬쩍 하고 싶은 디자인과 빛깔 아닌가.
빨리 쏘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분명 재미있겠지.
두근두근-.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개시.]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로의 동기가 불을 뿜었다.
투타탕-!
재미있겠······.
와씨, 어떤 놈이 영점 사격 세 발을 한 방에 털어버리냐.
진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 사로 사격 중지. 조정간 잠금. 사수 탄알집 제거. 노리쇠 후퇴. 조교들 대가리 박아.]
사격통제관의 물 흐르는 듯한 명령이 이어졌다.
얼마나 많이 해봤으면 저럴까.
하아-, 사람을 보며 한숨 쉬면 안 좋다는데. 당나라 동기들을 보고 있자니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
군 생활 꼬인다, 꼬여.
조교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훈련병들 앞에서 벌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쪽팔리겠냐고요.
[어떤 놈이 연사로 쏘나. 조정간 단발 확인 안 할래?]
확성기를 사용하기 때문인지 사격통제관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었다.
진혁은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꾹 물었다.
사격장에서는 절대 이빨을 보여선 안 된다고 배웠는데, 지금은 전생보다 몇 년 더 빨리 찾아온 군대 아닌가. 당연히 더 조심해야 한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나 교육을 하고 연습을 하는데 말을 참 더럽게도 안 들어먹는 훈련병들이다. 영점 사격하라고 준 실탄 세 발을 한 방에 갈기는 놈이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에휴-. 군대 복 중 하나가 동기 복인데. 동기 복 조또 없네요.’
조교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공익요원이 아니라 해도 신병훈련 중에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격통제관으로 나선 중대장도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확성기가 뿜어내는 음성을 타고 살기가 흘렀다.
[부사수 누구야. 조정간 확인 안 해주나? 너도 대가리 박아.]
[사수 너는 왜 안 박아?]
[시발, 그냥 다 박아 좆만한 새끼들아.]
중대장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었지만 종종 급발진하는 편이었다.
호르몬에 문제 있나?
진혁은 그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소대장 훈련병. 너는 왜 안 박나?]
혼자 멀뚱히 있다가 눈에 띄고 말았다.
아, 다 박으랬지?
시발, 시발, 시발. 철모 쓰고 박으니까 더럽게 불편하네.
역시 군대에 오면 절로 욕이 는다.
*
한바탕 얼차려 폭풍이 지나가고, 심기일전해서 1차 영점 사격을 마쳤다.
더이상 말썽을 일으키는 동기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표적지 교체.]
“표적지 교체.”
동기들의 표적지를 본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탄착군 형성은커녕 구멍이 하나 또는 둘밖에 없는 녀석도 있었다.
‘돌 던져도 맞힐 수 있는 거리인데 그걸 못 맞히냐.’
에휴우-. 훈련병 신분이라 한숨도 조심스럽게 쉬었다.
선임조교가 진혁의 표적지를 보며 갸웃거렸다.
“소대장 훈련병은 왜 두 발은 중앙에 탄착군이 형성되었는데 한 발은 떨어져 있나?”
“첫 발 쏘고 옮겨 쐈습니다!”
“어······ 그런가?”
선임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예비군훈련 조교를 하다 보면, 그런 예비군 선배들이 있다. 첫 발 사격 후 25m 떨어진 표적지를 뛰어난 시력으로 확인하여, 가상의 조준점을 자체 수정하는 사람들···.
“시력이 좋구만. 이대로 수정한다.”
“예! 알겠습니다!”
··· 손진혁도 과거에는 그런 예비군이었다.
붉은색 볼펜으로 수정할 방향과 숫자가 적힌 표적지를 받아들었다.
[크리크 수정.]
“크리크 수정!”
사격통제관이 확성기로 명령하면 훈련병들이 복창하며 훈련이 진행되었다.
[사수 위치로.]
“사수 위치로오호오오-.”
저건 판소리하다가 온 놈인가?
[말꼬리에 멜로디 넣는 훈련병 누구야. 모내기하러 왔어? 조교, 얼차려 부여해.]
그래도 총기 사고 없이 사격을 마치고 안전검사를 진행했다.
[노리쇠 이삼 회 후퇴 후 전진.]
“노리쇠 이삼 회 후퇴 후 전진!”
[어깨 위에 총.]
“어깨 위에 총!”
[왜 일 번 훈련병만 복창하나? 본 중대장의 지시에 복명복창한다.]
“예!”
[예?]
중대장은 물론이고 조교들도 이를 꽉 깨무는 것이 느껴졌다.
진혁도 턱에 힘을 주었다.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나사 빠진 동기들 아닌가.
[후우-, 어깨 위에 총.]
“어깨 위에 총!”
[조정간 단발.]
“조정간 단발!”
[일제히 격발.]
탕-!
[어떤 새끼야······.]
시발, 고문관 새끼들.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조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곧 내려올 명령이 무엇인지 뻔했기에.
[조교들. 전원 완전군장 꾸려서 연병장으로 집합.]
***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40바퀴나 구보한 조교들은 더욱 독이 올랐다.
“야 이, 병신새끼야!”
독기 오른 신병교육대 조교는 특전교육단 교관보다 무서웠다. 진혁이 기억하는 교관들은 저렇게 욕을 하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훈련병들 수준 때문에 조교들 성격도 나빠진 게 아닐까.
“얘야-! 너는 여기 놀러 왔어!”
“어떤 새끼가 이빨 보이나!”
“죽고 싶으어?”
“죽을래?”
“여긴 군대다! 알겠나!”
나중에 듣고 알게 된 사실인데, 공익요원들을 훈련할 때 조교들이 일부러 더 욕을 한다고 했다. 늦게 입대했으면서 먼저 전역하는 탓에 시기해서 그런 거라나?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그래도 유명한 인물이 섞여 있으면 훈련 분위기가 부드럽다고 들었는데, 이번 기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했다.
“까스! 까스! 까스!”
“방독면 벗는다! 실시!”
“실시! 우웨에에에-!”
콜록- 콜록-.
화생방은 진혁에게도 고역이었다.
하사관 교육대보다 약한 CS탄을 쓴다는데도 눈과 목은 물론이고 드러난 피부까지 맵고, 따가웠다.
“우웨에에에-!”
“으어거거거- 사람 살려요오-.”
“끄어어- 잘못했-.”
“엄마아······.”
진혁도 동기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깩깩-. 살려주세요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뛰쳐나가지 않고 버텼다. 소대장 아닌가. 모범을 보여야지.
“일 조! 퇴장!”
화생방 훈련의 고통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저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낄 뿐.
“흐어어어어-.”
“꾸애애애액-.”
화생방실을 빠져나온 훈련병들은 상체를 숙이고, 바닥을 기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 걸쭉하게 늘어지는 침도 빠질 수 없지.
‘흐아-, 살겠다. 헤헤.’
고개를 올려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조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 번 더 가스 경험할 훈련병 있나?”
진혁이 주먹을 높이 들었다.
“일 번 훈련병!”
“소대장답다! 위치로!”
“위치로!”
동기들이 변태를 보듯 했지만,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진혁은 그렇게 다음 조에 섞여 한 번 더 화생방교육실에 들어갔다.
“방독면 벗는다! 실시!”
끄어어어어-.
“반동 준비! 군가한다!”
깨애애애액-.
“군가는! 진짜! 사나이!”
깨애애애액-!
“군가 시작! 하낫! 두얼! 셋! 넷!”
깨애애애-.
동기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진혁이 용기를 냈다.
“멋있-! 깨애애애-.”
“사나-! 깨애애애-.”
깨애애애-.
‘아, 내가 왜 한 번 더 한다고 했을까.’
맑은 공기를 더 맛있게 흡입하기 위해서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내보내 주어어어-! 깨애애애-.”
조교를 밀치고 탈출하려는 동기들이 있었지만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사랑은 뜨겁게! 사랑은 뜨겁게! 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진 사나에!”
군가를 완창한 진혁은 빙구처럼 웃었다.
헤헤-. 콜록콜록-.
헤벌레 벌어진 입으로 주루룩- 침을 흘리면서였다.
‘다른 노래 불렀는데 조교 녀석이 뭐라고 안 했어.’
뭐, 이렇게 서로 적응해 가는 거지.
그게 인간 세상 아니겠어?
콜록콜록-.
얼룩무늬 전투복 입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맛탱이가 가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