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주 (2) >
***
아마, 진혁처럼 훈련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육상선수라도 말이다.
고된 훈련을 지켜본 주신영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뛰지?”
민용락의 뒤에 서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주신영이 고개를 저었다.
진혁 홀로 진행하는 하계 훈련을 지원할까 하는 마음에 온갖 의료용품을 챙겨 곰짐에 왔는데, 저 녀석에게 의무지원은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떤 지원도 무의미해 보였다.
그 생각은 방학이 끝나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주신영에게는 파스를 뿌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400미터, 500미터 순으로 전력 질주를 하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주신영 역시 UDT 출신으로 힘들다 하는 훈련을 모두 소화한 예비역. 그러나 진혁처럼 훈련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젊어서 그런지 회복력이 좋아요.”
매일 지켜보며 충격에 면역이 된 민용락이 쫍- 빨아들인 콜라를 삼키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물리치료사도 없이 저 정도라니, 비결이 있나?”
“어릴 때부터 근력, 지구력, 심폐훈련, 회복훈련. 이런 훈련, 저런 훈련 혼자 알아서 해왔더라고요. 진혁이는 훈련 마치면 사우나도 하고 냉탕, 온탕도 번갈아 들어가는데 그것도 근육 이완, 에 또······”
민용락은 잠시 수첩을 뒤적였다.
책상이 따로 있으나 배 위에 올려두는 게 더 편해 보였다.
“아, 여기 있다. 심폐 지구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음-.”
어릴 때부터 해왔다면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회복도 남다를 터, 체화보다 무서운 무기는 없지. 안경을 올려 쓴 주신영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구야?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민용락의 시선이 주신영이 턱짓한 곳을 향했다.
주신영이 가리킨 곳에,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벤치에 앉아 접은 다리를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 보건소장이래요. 이름이 유재운이랬나?”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린 민용락이 관심없다는 듯 말했다.
“보건소? 여기서 멀잖아.”
“지난번에 천마 봐주고 갔잖아요. 그때 친해졌나 보더라고요. 매일 자전거 타고 운동하러 와요.”
“다리는 왜 저래?”
유재운의 오른쪽 종아리에는 언제든 탈착이 가능한 반깁스가 채워져 있었다.
“아-, 몸 만든다고 보건소 공터에서 운동하다가 그 뭐야-.”
사용하려는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아 민용락이 눈을 찡그렸다.
“갱개미? 도다리?”
“가자미근?”
“네. 그거요. 가자미근 파열됐다고 저래요.”
주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심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가자미근 파열이라 해도 자전거를 탈 수는 있다.
페달을 발끝이 아닌 발바닥 전체로 밟으면 종아리가 아닌 허벅지에 부하가 걸리게 되는 이치다.
“여기 보건소가 널널하긴 하죠. 할아버지들도 날아다니는 마을인데 가끔 겨울에 감기 주사나 놔주는 게 일이래요. 사람보다 가축 진료하는 날이 더 많대요. 그래도 그렇지 미련하게 다치면서까지 운동을 하냐아-.”
쩝쩝-.
쉬지 않고 과자를 오물거리며 민용락이 썰을 풀었다.
“웨하스 맛있는데 좀 드세요. 참, 저 양반 집이 옥수동이래요. 주 의무관님 댁도 거기 아니에요?”
작작 좀 처먹어라. 뭐 씹으면서 말하지 좀 말고. 주신영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린 채.
“대단한 정성이네. 저 다리로 몸 만들러 여기까지 오고.”
“읍내보다는 훨씬 가깝잖아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민용락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유-. 주신영은 가만히 한숨을 뱉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에라이, 이 시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그룹 회장이 심복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데 얄밉다고 손찌검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보건소 의사는 저렇게도 열심인데. 누구는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살면서도, 운동 중독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아령 한 번 드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그 누구는 지금도 과자부스러기가 배에 떨어졌는데도 모르는 눈치다.
그 누구는······.
결혼도 여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연기됐다고 들었다.
뱃살 때문에.
그런데도 그 누구는 아직 식장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며 뱃살을 출렁거린다.
열심히 운동 중인 유재운에게 눈을 돌렸다.
조만간 개구리가 되려는지 숨도 쉬지 않고 콜라와 과자를 흡입하는 올챙이보다 훨씬 신선한 인물이다. 반짝이는 금테도 뭔가 도회적이며 지적이지 않은가.
‘나랑 안경테가 비슷하네.’
게다가 고향까지 같다니.
서울에서 만난 지방 사람들이 동향 출신을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인구도 별로 없는 시골에서 같은 옥수동 출신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보건소장이라······.
의사면허까지 있는 사람이니 여러모로 대화도 통할 테고, 친해 두면 여러 의약품을 구하기도 쉽겠다. 운동과 담쌓은 올챙이랑 노는 것보다도 즐거울 듯한데 운동 지도나 해주며 친해져 볼까?
주신영은 배불뚝이 민용락을 버려두고 유재운에게 갔다.
“어어-, 거기 닥터님. 허리 펴고, 허리. 자세가 중요해요. 그렇게 둥글게 말아서 힘주면 허리 다쳐요.”
“아, 그래요?”
아예 유재운의 곁에 자리잡고 지도를 시작했다.
자세 교정을 위해 손으로 여기저기 짚으며.
“허리 펴기가 힘들면 등을 꽉 조여봐요. 가슴을 활짝 펴고 배에 힘을 줘서 복근을 아래로 밀어 내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그렇지. 다리 차올리면서 숨 뱉고-, 투-! 옳지 잘한다. 다리 올린 채로 잠깐 버텨요. 복근을 쥐어짜는 거야. 아이고 잘한다. 올챙이보다 낫네.”
“예?”
“어어? 집중해요, 집중. 올챙이는 잊는 거예요오-. 자아-, 쥐어짜는 동안 폐를 비우는 거야-. 폐와 근육을 함께 쥐어짠다, 오케이?”
“예, 예-.”
“내릴 때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 찍고 바로 올라와요. 종아리도 아픈데 너무 오래 대면 안 좋아요. 발을 아주 띄우는 것도 좋은데 잘못하면 허리 다치니까 천천히 갑시다.”
“예, 예-.”
“옳지, 옳지 잘한다아-. 푸우- 비우고오-. 하나만 더-! 옳지, 다왔어.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더더더-.
다른 운동할 생각이었는데.
말도 꺼내지 못하고 복근 단련에 매진한 유재운은 보건소로 돌아가는 자전거 위에서 허리를 펴지 못했다.
삐거덕-.
녹슨 페달이 유재운의 심경을 대변하듯 구슬프게 울었다.
“동생! 내일도 와!”
삐거덕-.
파열된 종아리보다 복근이 더 아팠다.
“안 오면 잡으러 갈 거야!”
삐거덕-.
내일부터 교회에 나갈 거라고 둘러대도 안 통하겠지.
끄으으-.
어차피 말도 안 나온다.
‘튀어야 한다.’
삐거덕-.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전거의 애칭을 되뇌었다.
달려라, 썬더 스톰.
삐거덕-.
***
다음 날, 그다음 날, 그다음 날의 다음 날에도.
진혁은 유재운의 자전거를 수리하고 거친 포에 방청유를 묻혀 녹을 제거했다.
‘이 모델은 쌀 자전거 조상님인가?’
보건소 근처 주민이 선물한 자전거라는데, 이건 엿장수에게 줘도 엿장수가 불쌍하다고 울며 엿만 던져주고 갈 몰골이다.
녹을 제거한 후에는 유성페인트를 얇게 발랐다. 이를테면 산화 방지막이랄까.
검은색 유성페인트가 마르면, 그 위에 흰색으로 ‘Thunder Storm’이라는 이름도 넣었다.
‘페달이 돌아가는 게 신기하네.’
그러고 나서는 작동부에 윤활유를 듬뿍 쳤다.
어쩌면 유재운의 가자미근은 운동이 아니라 뻑뻑한 자전거를 무리해서 타다가 근육이 터진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사실이라면 참 속 편한 위인이다.
“보건소 의사는 월급이 많이 짠가요?”
“적긴 한데 자전거 살 정도는 나와.”
질문의 의도를 안다는 듯 제법 똑똑하게 대답한 유재운이 궁색하게 덧붙였다.
“선물로 주신 거잖아. 아껴야지.”
사람은 참 착하네.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를 진료할 때도 느낀 거지만 매사에 성심으로 임하는 남자 아닌가.
그런데 자전거를 아낀다는 양반이 관리법도 모르나.
심성이 고운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는 싫어서, 진혁은 핀잔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다리는 어때요?”
“다 나았어. 젊을 땐 금방이야.”
글쎄. 젊어서일까?
어제 주신영에게 개인 트레이닝 받다가 잠시 기절했을 때 유진이가 만져준 덕분일걸?
기절에서 깨어난 유재운은 반깁스를 떼어버리고 트랙을 질주했었다.
뭔가에 홀린듯한 눈으로.
간간히 괴성도 질렀지.
***
한 번 비워낸 힘을 의도적으로 다시 채우지 않은 채로 지냈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주제에 이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였기에.
그 기운이 없다 하여 근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저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똑바로 세워 이놈아!”
“예, 예!”
보충수업이 끝나면 천길룡 할아버지댁으로 달려가 대나무 세우는 일을 거들었다. 거들었다기보다는 혼자 다 세운 거지만.
어쨌거나 사고를 쳤으니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헥헥-. 하이고 힘들다.”
“아, 힘도 좋은 놈이 왜 안 하던 요령을 피워? 왜 헥헥대느냐?”
대답할 말을 떠올리니 씨익- 웃음이 나온다.
‘저도 이제 인간이라 그래요.’
속으로만 대꾸한 진혁은 천길룡이 검처럼 휘두르는 곰방대가 두려워 대나무를 미는 일에 기를 썼다.
애초에 근력이 남다른 몸이고 기운은 예전에도 힘쓰는 일에 동원하지 않았다. 사용할 줄을 몰라 그런 것이었지만 아무튼.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부러지지 않도록 서서히 힘을 쓰면 누웠던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섰다.
‘운동 된다.’
뿌리가 고정된 대나무의 탄성은 놀라워서, 무식하리만치 강함 일변도도 아니었고, 맥없이 밀려나지도 않았다. 지그시 밀고 있자면 전완근을 따라 이두근이 자극되었고, 버티느라 용쓰는 삼두근은 빨래를 짜듯 조여졌다.
팔부터 허리까지 일자 형태를 유지해서 삼각근과 승모근에도 고루 자극을 퍼뜨렸다. 견갑을 타고 내려온 물리력에 맞서 척추 기립근이 스스로 힘을 뽐낸다. 마침내 허리 좌우의 요근에 힘이 도착하면,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대둔근을 따라 대퇴사두근으로 대나무의 반발력을 흘렸다.
허벅지에 쥐가 나지 않도록 햄스트링의 긴장에 집중하며 가자미근육을 활짝 펴고, 마지막으로 족저근을 활짝 펴서 이완하면, 대나무의 저항력이 땅을 딛고 진혁의 몸을 타고 역으로 올라온다.
‘배에 항상 힘을 줘야지.’
후배들에게도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가슴이 펴진 상태로 복근을 쥐어짜니 쩍쩍 갈라진 복직근과 복사근이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받쳤다.
완벽한 전신운동이었다.
하나의 대나무를 완전히 세운 진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지양성 식물이라 냅둬도 비 좀 맞고 하면 알아서-.”
“그저 풀이었다면 알아서 섰을 것이나, 이놈들은 보통 풀이 아닌 게여어-.”
“아, 예에······.”
보통 풀이 아니면 곱빼기 풀인가? 별거 없어 보이는 그냥 대나무인데 어지간히 유난이시네. 그래도 지은 죄가 있어서 말을 아꼈다. 저 할아버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낑낑-.
멧돼지도 드는 장사인데 대나무 밀기가 힘든 걸 보면 보통 풀이 아닌 것 같기는 하다.
쯧쯧-.
뿌리가 뽑힐 듯 기울어진 대나무를 보며 천길룡이 혀를 내둘렀다.
‘별일이여.’
서울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대나무숲을 찾은 천길룡은, 서럽게 우는 차사 창림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바탕 시원하게 웃어버렸다. 네놈들이 임자를 제대로 만났구나, 박수를 치며.
‘음양오행의 조화가 잡귀를 품기도 하고, 쫓기도 하지.’
응달과 양달의 이치처럼 그렇게 말이다.
어떤 신령한 기운인지는 몰라도, 허약한 몇몇 잡귀는 버티지 못하고 쓸려버렸다며, 차사 창림도 저 하나 건사하기 어려워 휩쓸린 영들을 잡아두지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 애송이가 무슨 짓을 벌였느냐 물었을 때는 창림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천년을 넘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그조차 처음 목격한 현상이라고.
천길룡조차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육신에 홍황우주를 품었으니 그게 곧 음양오행의 기운인 거여-. 사술이 아니라.’
천천히 걸음을 놀리며 빨아들였던 곰방대 연기를 뿜었다.
대나무숲을 돌면서 계속 반복하는 거다.
떠난 영을 뒤늦게나마 배웅하는 의식이다.
‘갈 때 가더라도 멋스럽게 갔으면 좋았으련만······.’
승천한 것이 그들에게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승천하고 싶어도 못하는 잡귀가 널린 세상이니. 하나 이승이 좋아 들러붙었던 녀석들의 최후치고는 애달프면서도 익살스러웠다.
하늘까지 닿은 폭풍의 회오리에 휘말려 슈웅-.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게 놈들의 운명이고 거기까지가 우리 인연이었던 게여.’
아무것도 모르는 저 키만 큰 애송이에게 천벌을 내릴 순 없는 일 아닌가.
아무렴, 이미 죽었던 귀신보다 살아있는 사람을 더 귀히 여길 수밖에.
*
며칠간.
용오름과도 같은 현상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이 간간히 천길룡의 안부를 물었으나, 그저 말 그대로 노인의 안부를 물었을 뿐. 대낮에도 천둥 번개가 치는 등, 해괴한 일이 자주 벌어지는 곳인지라 주민들은 대나무숲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음양이 만나 늘상 벌이는 일이란 그런 것들인 게여어-. 자네들도 자식을 보았으니 다 아는 진리 아닌고?”
니들도 한창때는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지 않았느냐는 말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의도하지 않아도 들리는 말에 진혁이 내적 감탄을 표했다.
천길룡이 무사함을 확인한 주민들은 순순히 물러갔다.
불룩 솟은 곶과 우묵한 갯벌의 음기가 만나 질척이는 곳이라 해괴한 변고가 잦다는 천길룡의 설명에 진작 세뇌된 탓도 컸다.
“헤헤-. 곧 개학인데-.”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이놈아.”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