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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217화 (217/338)

< 사점死點 (5) >

***

방학을 맞은지도 벌써 사흘.

특훈을 할 계획이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으니.

그러나 아직 어린 동생들이 눈에 밟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여의치 않았다.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진혁의 개인적인 계획은 후순위로 밀려나야 했다. 그렇다 하여 아쉽다는 뜻은 아니다.

함께 종이학을 접던 유진이가 물었다.

“오빠, 우리 집은 왜 경운기 없어요?”

“음······, 필요가 없어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농기구랄 수 있었지만 진혁의 집에는 경운기가 없다. 그나마 있던 것도 아빠가 사업을 시작하며 김춘삼에게 줘버렸다.

“우리 집은 관리기가 있잖아.”

“그건 텃밭용이잖아요. 짐칸이 없어서 여럿이서 못 타요.”

“그건 그렇지. 유진이 경운기 타고 싶니?”

“특별히 꼭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에요. 김호진이 그림 숙제를 했는데, 경운기 뒤에 탄 그림을 보고 궁금했을 뿐이에요.”

유진이, 너.

의사 표현 능력이 아주 우수해졌구나.

“학은 그만 접고 오빠랑 바람 쐬러 갈까?”

경운기는 없지만 튼튼한 두 다리는 있지.

무더위와 강추위를 불문하고, 시골살이하며 집안에만 머무는 것도 고역이다.

답답함과 별개로, 문을 나서면 눈이 호강하는 경치가 펼쳐져 있는 까닭이다.

“잠깐만요! 정원이 모자 씌우고요.”

유진이는 밖에 나가면 행운이가 찾아오니 밖에 나가는 걸 더 즐겼다.

여전히 팔다리가 짧지만 제법 사람 모양새를 갖춘 정원이도 촌놈답게 바깥세상 탐험을 더 선호했고.

“누나아-. 하늘- 파다다-.”

아기 손정원은 하늘을 좋아한다.

비행기처럼 팔을 벌리고 나는 시늉을 하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행운이가 누나의 어깨에 내려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누나가 손 위에 올려주기 전에는 행운이를 잡으려 들지 않는 점도 기특하다.

형 된 자로서, 그런 아기라면 마땅히 하늘 높이 안아 들어야 한다.

“읏챠-. 우리 막내 엄청 튼튼해졌구나! 형 팔이 뻐근한데? 가자-.”

“출발-!”

“투빠아-!”

무더위를 잠시 견디며 단단히 다져진 인도를 밟자면, 꼬맹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 나타난다.

동생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명상 터를 찾았다.

바다와 저수지, 구봉산과 마을이 두루 보이는 그 숲이다.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의 바람이 불어 탁 트인 시야만큼이나 시원한 곳.

‘여기만 앉으면 기분이 추워.’

돈가스를 먹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가 겨울바람을 맨몸으로 버텼던 기억 때문이리라.

“정원아 이거 봐. 개미예요.”

“꺠미-.”

“먹으면 안 돼요오-. 지지-.”

“깨미 지지지.”

장군이 보호 아래 동생들이 노는 동안, 진혁은 나무에 기대앉았다.

석가의 보리수나무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어릴 때부터 듬직한 등받이를 내어주고, 솔향으로 심신을 달래주는 고마운 나무였다.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도로는 2차선으로 확장되었고, 넉넉히 꾸민 인도에는 코스모스가 빼곡히 높아졌다. 누가 한해살이 아니랄까 봐 봄과 여름이 다른 녀석들. 진혁도 봄과 여름의 차이처럼 그때와는 딴판으로 자랐다.

부우우우-.

안마을 방향에서 들려오는 힘찬 엔진 소리가 명상을 방해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진혁이 자라고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이제 집집마다 차가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으니.

세상이 변했으면 변한 대로 발맞추어 사는 게 인간이라고 그랬다.

‘엊그제 선글라스 쓰고 나타난 천길룡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지.’

천길룡도 양반은 못되는 모양이다.

“여어-, 지넥아아아-.”

천천히 내달리는 유명선 회장의 벤츠 뒷좌석에서 천길룡이 중절모를 흔들었다. 문석일의 것과 흡사한 갈색 선글라스를 쓴 채.

부우웅-.

그리곤 뭐라 인사할 틈도 없이, 가버렸다.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아셨지? 하여간 용한 할아버지야.’

찻길과 가깝기는 하지만 나무와 풀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텐데.

진혁은 멍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세단 꽁무니를 배웅했다.

- “서울에 마실 좀 다녀올 테니 종종 들러 대나무밭 좀 살펴주거라.”

엊그제 찾아온 천길룡은 분명 그렇게 부탁했다.

대나무밭에 꿀단지를 숨겨두셨나, 집을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대나무밭을 봐달라니. 역시 이상한 할아버지다.

뭐, 천길룡 덕분에 이번 방학에도 홍수정이 내려오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헛심 빠지는 일은 덜었다. 서울 초등학생이 놀러 오는지 전화해서 묻기 쑥스러웠는데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생각했지?’

명상이 끊겼다.

‘맞다. Dead point.’

다시금 심호흡하며 내면으로 몰입했다.

누가 있어 정체 모를 기운을 빼는 법을 물을 수 있을까.

‘있지.’

단 한 명.

명으로 세는 것이 맞는지도 불확실한 존재.

차라리 사신死이라 부르는 게 어울릴 그림자.

눈을 계속 뜨고 있어도.

잠시 감았다 떠도 세상은 정지한 듯 보였다.

정경은 그대로 머물렀고, 시야 안에 움직이는 존재는 동생들과 개들뿐. 그리고 어여쁜 동생의 머리를 벌레를 잡듯 부리로 휘젓는 뱁새 한 마리.

세상은 언제 봐도 신기함을 넘어 현묘한 감탄을 선사한다.

의도하여 청력을 떨구자, 소리마저 사라진 세상에서 해맑게 노니는 생명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진혁은 다시 한번 내면의 변화를 느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진지해지는 기분이랄까.

‘나와라.’

‘도와줘.’

부탁하려는 입장인데 반말은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세요.’

‘힘 빼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제발요.’

충분히 간절한 것 같은데 반응이 없다.

‘야, 쌩까냐?’

‘시밤바야, 현피 떠.’

포부도 당당하게 도발을 했으나 보이는 것은 여전한 정경이요, 들리는 것은 무성 영화 상영을 마친 후의 잡음처럼 귓전을 파고드는 바람 소리와 아이들 노는 소리뿐이었다.

“에휴-. 몇 번을 해봐도 안 나타나네.”

진짜 갔나 봐.

예전에도 궁금해서 육성으로, 마음속으로 틈틈이 불러봤으나 이름 모를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인지 궁금한데. 도움도 필요하고.’

내가 언제는 도움 구걸했냐. 듣는 이 없는 푸념과 함께 정원이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지만 동생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게 최우선이니까.

지금 정원이가 노는 곳은 풀이 나지 않는 흙무덤인데, 그 안에 개미집이 있어서 자칫 잘못 건드리면 온몸에 개미를 뒤집어쓸 수 있다. 어린 진혁이 경험한 바 있는 일이다.

동생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읏챠-. 우리 정원이 여기는 위험해요. 물리면 아파.”

“꺠미-. 아포-. 아야 해떠-.”

정원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동생의 정강이에 빨간 반점 같은 것이 있었다.

이미 개미에게 응징을 당한 모양이었다.

“유진아, 여기 호 해줄래?”

“어디요? 아이고! 누가 그랬어!”

유진이가 있어 정원이는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겠다.

별것 아닌 상처에도 저리 호들갑을 떠는 누나인데 누가 정원이를 해칠 수 있으랴.

요 며칠, 진혁은 유진이와 더불어 힘 빼는 연습을 반복했다.

별건 아니었다.

수영, 달리기, 웨이트 따위로 힘이 빠지면 유진이가 기운을 북돋우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유진이의 그릇이 작아지고, 오빠에게서 힘을 뽑아갈 수 있으니.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4년 전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작년보다도 진혁의 체력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그리고 유진이가 사용하는 기술의 효율은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유진이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던 것. 성장하는 이는 진혁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혹여 유진이가 조금 빼내어도 진혁은 낭패를 맛보아야 했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숨을 쉬는 자체로 힘이 다시 모여든 탓이었다.

‘분명 그 께름칙한 힘이 커지면서 지치지 않게 만드는 건데.’

그 외에 달리 의심할 게 있다면 그 자체로도 문제일 터였다.

“유진아, 이제 집에 갈까? 배 안 고파?”

“배는 고픈데요오-. 음······.”

행운이 혼자 밖에 두기 싫어서 저러나?

말끝을 흐린 유진이는 사람 머리카락처럼 뭉텅이로 자란 풀을 땋았다.

결초보은에 사용하기 좋은 풀인데, 동네 산에 많이도 자생하는 식물이다.

“라면 먹구 싶다······.”

“누나. 나면퍼-.”

피식-.

의사 표현이 분명한 녀석인데도 엄마가 못하게 하는 건 몸을 배배 꼬며 어렵사리 말하는 동생이었다. 정원이가 쉬 마려운 아이처럼 허리를 비틀어대며 누나를 흉내 냈다.

“오빠가 끓여줄게. 가자.”

유진이는 이제 양갈래로 땋은 머리풀을 둥그렇게 모아 양 끝을 만나도록 했다. 그 모양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엘프의 헤어스타일을 닮았다. 바삐 손을 놀리면서도 유진이는 빨간 입술을 연신 놀려 작게 종알거렸다.

“엄마한테 혼나요. 엄마가 혼내면 무서워요.”

“엄마. 무터어-.”

엄마 무섭다고 라면도 못 먹는다면 그게 사는 거냐.

진혁은 소나무를 감고 올라간 머루 덩굴을 잘라 유진이가 땋은 머리풀에 왕관처럼 씌웠다.

“오빠가 막아줄게.”

히이-.

쪼그려 앉았던 유진이가 종아리에 붙은 개미를 털며 일어섰다.

정원이를 안고, 유진이 손을 잡은 진혁은 지네를 괴롭히는 개친구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군아, 홍시야. 지네는 먹지 마. 가자.”

“검마야, 지네는 지지예요오-.”

월-!

저 냄새 고약한 녀석을 가지고 노는 장군이 애들도 참 어지간히 악독하다.

개친구들은 뱀에 물려도 크게 고생하지 않고, 지네나 두꺼비처럼 독이 있는 녀석들이 고약하게 굴어도 겁을 먹지 않는다. 거친 시골에서 자란 녀석들일수록 내성이 있어 다른 생물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구봉산 아랫동네에서는 들개들이 노루와 송아지를 사냥해 잡아먹었다던가.

조심하는 게 좋다.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녀석들이라 해도 언제 돌변해 사람에게 달려들지 모르니.

그래서 장군이가 다른 약한 생물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말리는 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언젠가 미쳐서 사람에게 덤빌까 봐.

헤헤헥-.

“옳지, 착하다.”

말을 잘 듣는 녀석들을 보면 그래도 걱정은 들지 않는다.

*

동생들을 데리고 흙집으로 이동했다.

은밀히 뭔가를 추진하기에 맞춤한 장소다.

바가지로 가마솥에 물을 붓고, 다시 비워내며 낯선 단어를 곱씹었다.

‘두구 엘릴······.’

올 봄, 유진이가 학교 숙제로 제출한 「우리 가족 소개」에서 보았던 이름이다.

당시에는 인형이나 디즈니 캐릭터 이름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이유는 뭘까. 마치 우연히 들은 노래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처럼, 불현듯 떠오른 이름은 계속해서 입안을 맴돌았다.

‘생각날 듯 말 듯.’

콜라를 마셨는데 트림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을 때와 비슷한 스트레스다.

“마루에서 정원이랑 놀고 있어.”

“네-.”

동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젖은 걸레로 마루를 싹싹 닦았다.

새로 지은 후 거주라고 할만 한 행위를 하지 않은 터라 마루의 나무는 결이 살아있고, 재질 또한 그대로였다. 오래된 마루가 반들하고 좋은데.

‘가마솥에 라면을 끓이면 엄마도 모르시겠지.’

그저 아들이 옥수수를 찌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실 거다.

진혁이 흙집에서 뭘 하든 간섭하지 않으시니까.

그런데 몇 개나 끓여야 하나.

일단 네 개면 충분하겠지.

진혁은 혼자 오래 살았어도 라면 물 조절에 번번이 실패하는 특성을 가진 생물이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라면 한 개당 물 한 대접. 오랜 실패 끝에 얻은 교훈이었다. 다른 재료도 넣어야 하니 물을 한 대접 더 부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무섭게 면과 건더기 스프, 분말 스프까지 넣었다.

먼 훗날 물리학자인지 무슨 박사인지 하는 양반이 라면을 끓일 때는 처음부터 넣는 것이 맛있다는 발표를 해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미래를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아무튼.

‘한심한 사람들.’

크게 호응하는 이들을 보며 진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안 좋은 쪽으로.

혼자 사는 남자는 처음부터 모조리 다 때려 넣는다.

‘귀찮으니까.’

하여, 자취를 해보지 않았거나, 곱게 자란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다.

찬물에 라면을 넣고 끓인다는 말에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열광했던 사람들 말이다.

이제 진혁만의 노하우가 들어갈 차례다.

이건 과거에 좋아했던 라면에 왜 거부감이 들었는지 고민 후 도입한 방법이다.

‘대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두부, 콩나물······.’

약간의 참치, 또 뭐가 들어가야 하나.

북어채를 한 주먹 넣고 계란도 톡- 까 넣었다.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넣는 거다.

싱거울지 모르니 간장도 반 큰술.

‘이렇게 하면 인공 조미료 풍미가 많이 감쇄되는 느낌이랄까.’

유세라에게 건네받았던 자료에는 성장기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영양 자료도 있는데, 라면을 영양 만점 식품으로 조리하는 내용이었다. 진혁은 그 레시피를 참고해서 가용한 식재료를 활용 중이다.

아궁이는 신기하다.

재래식인데도 화력은 가스레인지보다 더 좋잖아. 아니면 가마솥이 좋은 건가?

“으흐음-, 스멜스 긋-.”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끓이는 라면은 확실히 냄새가 황홀하다.

‘옛날에 엄마가 가마솥에 끓여주신 라면 생각난다.’

마루에 둥그런 양은 밥상을 펴고, 유진이가 사용할 젓가락과 자립심 강한 정원이가 사용할 포크를 세팅했다.

김치도 씻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각각 상에 올렸다.

“아휴-, 땀나네.”

“오빠, 도와줄까요?”

“아니야. 다했어.”

작은 냄비에 라면을 모조리 옮겨 담았다.

불 앞을 오간 터라 몸이 후끈거렸다. 오랜만에 벽걸이 선풍기를 가동했다.

어설프게 손바닥을 포개 ‘주세요’ 자세를 취한 정원이부터 챙겼다. 적당량을 덜어 찬물에 씻은 면발을 주고, 다음으로 유진이도 한 그릇 푸짐하게 떠 주었다.

“헤헤-. 잘 먹겠습니다아-.”

후우우-.

뜨거운 라면을 식히기 위해 볼이 터지도록 부풀렸다가 바람을 불고, 그 볼안에 다시 라면을 넣는다. 유진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은 언제 봐도 복스러워서, 지켜보는 사람도 절로 입맛이 돌게 만든다.

정원이는 아기답게 입술을 오물거리며 면을 빨아들이는데, 면이 입속으로 사라질수록 면에 묻었던 물기가 면을 따라 떨어지는 모습도 재미있다. 마치 입술로 물기를 훑어내는 듯한 오물거림.

“어이그으-! 귀여워라!”

형이 볼을 꼬집거나 말거나, 크고 검은 눈동자를 굴려 형을 힐끗 본 정원이는 냄비를 가리켰다.

“응아- 나면- 맘마-.”

“그으래-.”

저도 배고플 텐데 형을 챙기다니, 어린 녀석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나도 먹어야지.’

후우우우-.

더운 날 먹는 뜨거운 라면 한 젓가락을 기대하며 길게 입바람을 불었다.

폐를 비롯해 위장과 몸속 어딘지 모를 곳에 있던 공기를 모조리 밖으로 쫓는 거다.

이제 라면을 빨아들이면 된다.

후룹-.

비워졌던 공간에 뜨거운 김이 들어가며 컥-!

딸꾹!

‘어?’

까르륵- 웃는 동생들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 들렸다.

갑자기 선명하게 도드라진 관념에 완전히 몰입한 탓이다.

라면을 입에 문 채로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라면을 고기처럼 먹는 장군이와 흡사하다.

‘생각났어.’

반가운 한편으로 자괴감도 들었다.

창작물 속 주인공들은 대단한 기연을 만나거나 멋들어진 사고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던데.

‘참 모양 빠지네.’

라면 딸꾹질 중에 떠오르고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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