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점死點 (3) >
그나마 오빠의 논리적 분석 덕분에 손유진은 위안을 얻고 있었다.
- “음. 유진이가 가진 기술은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거라서 천마에게 안 통하는 게 아닐까? 꼭 그렇다기보다는 하나의 가설이야. 가설이 뭐냐면······.”
- “무슨 소리지요?”
- “배탈 났을 때도 유진이 손이 안 통했다며. 종양 덩어리는 없앨 수 있어도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생명으로 여겨서 유진이 약손이 안 드는 거 아닐까?”
대장균, 포도 모양 균, 또 무슨 무슨 균. 오빠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걔들도 일반 세균이라는 생명이라고.
- “그냥. 그렇게라도 생각하라고. 우리 유진이 마음이 덜 속상하게.”
진실인지 확실치는 않아도 정황이 들어맞으니 달리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손유진이 알기로 가장 똑똑한 사람이 하는 말 아닌가.
- “그래도 계속 만지면 나아진다며?”
- “네. 따뜻하게 만들면 아프게 하는 애들이 막 움직이다가 문? 출구? 그걸 찾아가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대피하기 위해 출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살길을 찾아 떠나는 것인지, 못살겠어서 도망치는 것인지. 아, 같은 말인가?
배탈 났을 때도 그렇게 뭉쳐 몸 밖으로 내보냈다.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 하는 녀석들 말이다.
물론,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어서 손유진 덕분이라고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차도였지만.
“누나-, 누나아-.”
정원이가 손유진의 손가락을 잡고 흔들었다.
아기 손유진이 오빠에게 조를 때 그랬듯이.
“응? 내 동생, 왜 그러지요?”
“어브바아-.”
정원이가 누나를 향해 만세 자세를 취했다.
챙 넓은 모자를 씌웠음에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뺨에 홍조가 가득했다.
아이코, 이 어린 녀석을 계속 걷게 했구나.
그런데도 칭얼대지 않는 걸 보면 손유진의 눈에도 의젓함이 남다른 정원이다.
무릎을 굽혀 쭈그린 채 두 팔을 뒤로 뻗었다.
“자-, 우리 애기 누나한테 어부바-.”
“어바-!”
“아이쿠우-, 누나 넘어지겠네요.”
믿음 가득 담긴 점프로 손정원이 누나 등에 덥석 올라탔다.
곧바로 누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신난 까마귀 소리를 낸다.
“까아-.”
아기의 손을 피해 잠깐 날아올랐던 행운이가 머리에 앉자, 손유진이 튼튼한 다리를 곧게 폈다.
“에헤헤-. 집으로 출발!”
“뚜빠아-!”
체열이 올라 헉헉 대면서도 손유진은 즐거웠다.
소뼈를 보며 꼬리를 흔들 천마가 떠올라서, 졸린지 누나 등에 얼굴을 부비는 동생이 애틋해서.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툭 투둑- 빗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
장군이는 도토리나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
꼬리로 살랑살랑 흙바닥을 쓸며 그늘이 주는 휴식을 즐겼다.
헤헤헥-.
이 집 개들이 가장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라면 손앵앵이다.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 정도 많이 들고, 그 야들야들한 손으로 만져주면 기분이 좋거든.
개들 중에서 손앵앵을 가장 좋아하는 녀석을 꼽으라면 단연 천마가 으뜸이다.
천마는 충성심이 강한 녀석이라 손왕왕, 손앵앵, 장군이, 또 누가 있냐. 아무튼 저보다 힘이 세든, 약하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라 그렇다.
손앵앵도 그 사실을 알기에 천마가 좋아하는 소뼈를 구해주고 나들이를 나간 거겠지.
야, 그래도 삶은 걸 줘야지, 익히지 않은 날 뼈다귀를 주면 어쩌라는 거냐.
하여간 손앵앵도 답 없다.
헤흐-.
그나저나 너무 덥다.
헥-헥-헤엑-.
이건 주댕이에서 나는 소리가 아녀.
너무 더운 나머지 달궈진 허파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여.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그런 것두 알어.
작년에는 그냥 뜨거웠는데, 올해는 습해서 더 힘들다.
여름은 개에게 힘든 계절이다. 기온보다 습도가 더 무섭다.
그냥 뜨겁기만 하다면 그늘을 찾아 몸을 뉘면 그만인데, 습도는 그늘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는 탓이다.
하휴-.
뽕알에 땀 차도록 더운 날이다. 뽕알은 없지만 그 정도로 덥다는 과장법이다.
장군이는 문학적인 개라서 그런 표현도 안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해가 나타나더니 숨 쉬기가 더 버거워졌다.
으르-.
아니, 근데 천마 이 새끼 빠져가지고.
너무 오래 아픈 거 아닌가?
장군이는 천마에게 도토리나무를 양보했다.
크게 견심을 쓴 행동이다.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명당이니까.
도토리나무 주위에는 벌레가 꼬이지 않아 개가 편하게 쉴 수 있고, 나뭇잎이 커서 그늘도 엄청나게 크거든.
양보는 했지만······.
그늘이 넓어서 장군이도 천마 머리맡에 앉아 열기를 삭였다. 헤헷-.
월-.
장군이 대장은 천마에게 실망했다.
폭탄인지 마약인지 탐지했다던 녀석이 겨우 이 정도 깡다구라니.
이 정도 더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맹견에게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란 말이다!
천마는 손앵앵이 구해온 소뼈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힘겹게 숨만 쉬었다.
그래서 장군이는 덜컥 겁이 났다.
나이 많은 천마가 죽을까 봐.
이건 비밀인데······.
근본 없는 녀석이라고 무시했지만, 사실 천마는 근본 있고 뼈대도 있는 녀석이다. 순수 혈통이라 수명이 짧다.
장군이나 홍시처럼 혈액 안에 혈통의 다양성이 분포하는 맹견과는 다른 종자라서 언제 훅- 갈지 모른다는 뜻이다.
히엑-.
그런데 천마는 죽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다고 했다.
아랫배가 아팠는데 손앵앵이 만져줘서 이제 괜찮다고.
지금은 그냥 덥고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야, 그럼 얼른 일어나서 물고기 좀 잡아주라.
내가 말이야, 더워서 그런지 사료가 당기지 않아서 그런다.
끄으이- 흐에엑-.
천마가 힘겹게 일어섰다.
월-.
야, 지금 안 잡아도 돼. 깜깜할 때 작업 치자.
낮에 물고기 잡다 걸리면 손왕왕이 개지랄한단 말이여.
끄이-.
천마가 말하길, 손왕왕이 왔다고 한다.
군견 출신이라 그런가, 처음 온 날부터 손왕왕이 대장이라고 교육했더니 천마는 아이를 철석같이 따른다.
지금도 앞다리 뒷다리를 호달달 떨며 아이에게 가잖아.
장군이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려 일어선 줄 알고 감동 받을 뻔했다.
쩝-.
가물치 먹고 싶다.
그래도 손왕왕이 왔으니 꼬리를 흔들어주도록 할까.
일어나기는 귀찮으니까 누운 채로.
응?
근데 아이 뒤에 저 하얀 옷 입은 오빠는 누구지?
박멍멍이라는 의사와 냄새가 비슷하다.
***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보건소를 지키던 유재운은 고등학생의 간곡한 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시골 사람들은 별의별 이유로 왕진을 요구한다.
닭이 울지 않는다, 암소 소변이 며칠 전부터 폭포수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타조알이 너무 작다, 등등.
다행이라면 유재운이 동물을 좋아해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일까. 부모의 권유로 다시 시험을 쳐 의대로 진로를 바꾸었지만, 수의학에도 전문지식이 충분한 의사였다.
주민들이 무조건 보건소를 찾는 건 아니다. 이들도 지성을 갖춘 인간인지라, 보건소에 부탁할 때는 수의사 박부로가 앓아눕거나 동물병원이 쉴 때다.
“죄송해요. 박부로 아저씨가 여행을 가셨대요. 어린 동생이 너무 걱정을 해서요.”
“응, 익숙해······.”
유재운의 대답은 예사로웠다. 어린 동생이 걱정한다는데 이 덩치 큰 오빠가 얼마나 마음이 쓰이겠냐고. 느닷없이 보건소를 찾는 주민들은 모두 간절함 때문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오는 거다.
그래도 우스운 건 사실이다. 이제 하다 하다 개를 진찰하러 오다니.
“어디 보자, 이놈인가?”
유재운은 그늘에서 꼬리를 흔드는 발바리에게 다가갔다.
“걔 말고 얘예요.”
“아, 그렇지. 셰퍼드라고 했지.”
“천마야, 이리 와.”
진혁이 부르자 천마가 평상이 있는 곳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진혁은 잠자코 지켜보았다.
의사가 동물을 진찰하는 모습을.
유재운은 청진기를 천마의 가슴에 대보기도 하고, 콧물을 닦은 후 얼마 만에 다시 흐르는지 경과도 지켜보았다. 박부로처럼 천마의 똥꼬에 하얀색 플라스틱 막대기를 폭- 찌르기도 했다.
진혁이 옆에 있으니 천마는 움찔거리면서도 얌전히 진료를 받았다.
체온을 재고, 혓바닥과 입천장을 관찰하고.
잘 모르는 진혁이 보기에도 유재운은 박부로보다 꼼꼼히 진찰했다.
진찰을 마친 유재운이 피식 웃었다. 금테 안경을 올려 쓰면서였다.
“감기 같은데?”
“예?”
세상에.
뭔 놈의 개가 한 여름에 감기에 걸려?
“개가 정말로 감기에 걸려요? 재채기나 기침 같은 건 안 하던데요.”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 수의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들이나 알아볼까······.”
확신한 듯, 유재운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몸살 같은 거라고나 할까?”
“몸살요?”
“여기 봐.”
유재운이 천마의 배 주변을 주물렀다.
천마는 흠칫 놀라긴 했으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늙은 개들은 보통 신부전증부터 시작해.”
“신부전증······.”
“생사의 기로라고나 할까? 늙은 개는 신부전증이 오면 천천히 죽어가는 거야. 개 신부전증은 아직 의학으로 고칠 수 없어. 수명을 좀 늘릴 수는 있겠지만. 고치려는 사람도 없지.”
유재운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네 얘기 들었을 땐 그런 증상이 아닐까 생각했지. 그런데 얘는 아주 건강해.”
유재운은 손을 옮겨 천마의 앞다리를 주물렀다.
끄이이-.
천마의 목구멍에서 앓는듯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애가 반응을 보이지? 앓는 소리 내잖아.”
“네. 그러네요.”
“이거 근육통이야.”
진혁의 눈이 놀라움에 크게 떠졌다.
‘아, 유진이가 머리랑 배만 만져줘서 그런가?’
그런데 개가 근육통을 얻나?
장군이는 몇 년을 함께 뛰어다녔어도 그런 거 몰랐는데.
진혁의 의구심을 이해한다는 듯, 유재운이 설명을 계속했다.
“이놈은 지나치게 무리한 거야. 놀이나 훈련을 오래 한 건 아니니? 셰퍼드라는 견종은 충성심이 강해서, 힘들어도 주인이 시키면 끝까지 하거든. 하루 종일 공 물어오기 놀이를 하고 다음 날 죽었다는 사례도 있어.”
“무슨 무리할 일이-.”
되물으려던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아!
장군이 이 새끼······.
땅 위를 달리는 것보다 헤엄치는 일이, 수면에서 헤엄치는 것보다 잠영이, 단순 잠영보다 물속에서 빨리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는 게 몇 배는 힘들다.
넓은 마당과 잔디밭을 둘러보며 놀랍다는 듯 휘- 소리를 낸 유재운이 진혁에게 시선을 주었다.
“개가 다섯 마리라더니 왜 두 마리밖에 안 보이니?”
“아, 세 마리는 동생이 운동시키러 갔나 봐요.”
“으흠. 그러니 건강할 수밖에. 더워도 움직이는 게 좋지.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친구는 괜찮을 거야. 해열제를 좀 줄 테니 먹여 봐. 깨끗하고 시원한 물로 자주 갈아주고.”
왕진 가방을 챙긴 유재운이 일어섰다.
“얘들 화장실이 어디니? 변이 안 보이는 걸 보니 따로 화장실로 쓰는 곳이 있나 본데?”
퇴비장의 개똥쓰까지 면밀하게 관찰한 유재운은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생충도 보이지 않고 모두 건강한 것 같다고. 다만 한 가지.
“이건가?”
“뭐가요?”
“이거 봐봐. 변이 묽어. 감기 걸려서 소화를 잘 못 시켜서 그런가 봐.”
아닐 걸요?
그거 날생선 먹은 장군이 똥쓰일 걸요?
의견을 대고 싶었지만, 진혁은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실은 본인만 알면 될 듯했다.
*
진혁은 냉큼 들어가 주스를 내왔다.
“이거 드시면서 기다려 주세요.”
“그래.”
텃밭으로 달려가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와 참외를 따고 수박도 꼭지가 돌아간 놈으로 한 통 끊었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마당가에서 잘 익은 복숭아도 몇 알 땄다. 시골 인심에, 멀리까지 찾아와준 고마운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은 없으니까.
“옥수수가 영글었으려나?”
옥수수도 실한 놈으로 몇 개 수확하니 목덜미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씻으면 그만인데 고마운 마음을 보일 수 있다면 이깟 땀이 대수인가.
김상호에게 부탁해 유재운을 보건소까지 태워다주도록 했다. 승용차로 이동하면 금방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잘 먹을게.”
과일과 옥수수가 든 개 사료 포대를 짊어진 유재운이 차에 오르기 전 멋쩍게 웃었다.
어느 농가를 방문하든 시골 의사로서 베푸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많으니 자연스레 나오는 반응이었다.
해열제 몇 알 값으로 치기에는 분명 후한 보상이기는 했다.
진혁은 도토리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마에게 해열제를 먹인 다음에, 거기서 늘어지게 자빠져 자는 장군이에게 볼 일이 있다.
‘인간으로 치면 회에 환장하는 경우인가?’
하여간 저새끼는 이상한쪽으로 비범한 개새끼다.
날로 먹으려 들면 탈이 난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야겠다.
*
해질 무렵.
감기는 병원에 가도 일주일, 안 가도 일주일.
해열제 덕분인지, 아니면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천마는 가뿐해진 몸으로 수로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수로변을 달리는 두 마리 짐승을 갸웃거리며 지켜본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다.
“일루 오라고 이 새꺄아아아-!”
마당을 빙빙 돌며 시작된 한 여름의 추격전은 수로변 트랙으로 무대가 바뀌었다.
빗자루를 검처럼 쥔 진혁, 털을 갑옷처럼 두른 장군이.
더위 따위 아랑곳없는 두 건각의 자존심이 걸린 달리기 시합이었다. 차라리 생사결이라는 말이 어울릴 터였다.
장군이 입장에서는 잡히면 뒈지고, 진혁 입장에서는 저놈을 잡기 위해 뛰느라 죽을 맛이니까.
“거기 안 서 이 새꺄아아아악-!”
깨왜왜왜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서도 장군이는 최대한 서럽게 울음을 빼며 트랙을 달렸다.
연수원 방향으로.
“거기 서 봐 이 새꺄! 얘기 좀 하자고오-!”
깨왜왜-! 깨왜왜왜왤-!
덥다! 말로 하자!
얘기하자며 빗자루는 왜 들었는데!
“어으씨-, 숏다리가 드럽게 빠르네!”
깨왜왜왜왤-! 애우애우애우-.
뽀미야 장군이 죽는다아아아-.
저 새끼가 날 쓸어버리려고 한다아아아-!
멍-.
날도 더운데 왜 저 지랄들이냐.
천마의 눈에는 힘이 남아도는 젊은 것들의 광기로 비쳤다.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