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점死點 (2) >
***
중학생 신민성, 노경호, 김요한.
두 명은 태양초등학교, 김요한은 어동초등학교 출신이었다. 이들이 6학년이던 작년에는 진혁이 보지 못한 아이들이어서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때 공주에 왔던 녀석들이 5학년이랑 4학년 친구들이라고 했었나?’
관심을 좀 둘 것을. 통성명도 없이 묻는 말에만 답했다. 그때는 나름 자상하게 대한다고 한 것인데, 되새겨보면 기계적인 처사였다. 몸에 밴 대인관계가 그처럼 건조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주간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들은 진혁이 홀로 훈련하는 모습을, 진혁은 아이들이 숨어서 훔쳐보는 모습을.
‘다 보인다, 이놈들아.’
이번에도 멀리서 정지한 후 손짓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달려오는 녀석들이 도대체 왜 숨어있는 건지. 그 모습이 마치 부를 때마다 혀를 빼물고 달려오는 장군이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빨리 안 뛰어와도 돼.”
이 형 무서운 사람 아냐 인마.
“저기 벤치에 봉투 보이지? 거기 초코 우유 있어. 하나씩 먹어.”
두 개는 안 돼. 하나는 내 거야.
*
벤치에 앉아 초코 우유를 마시는 녀석들을 보며 얼마 전을 떠올렸다.
연수에서 복귀한 이병세가 간곡히 부탁했다.
“지식이 머리에만 있는 사람허구, 몸에 밴 사람이 갈치는 거는 천지차이여. 이 선생님두 너헌티 배울 테니께 쫌만 도와주라. 이제는 예전허구 달러. 정식 육상부라 애덜 제대루 챙겨주야지. 아직 일학년이라 급헐 거는 웁는디 암체두 슬슬 준비는 허야 되니께이? 걍 버릇만 들여 주먼 뒤여. 운동허는 버릇.”
교사라는 사람이 저자세로 나오며 도움을 청하는데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인성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 손진혁 팀장이 팀원을 충원할 때 중점을 두고 검토한 덕목이 세 가지가 있었다.
인성, 감성, 지성.
절대 지표로써,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됨됨이다.
그저 관상쟁이처럼 눈빛을 보고, 평판을 듣고, 몇 마디 키워드를 던져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진혁이 세워둔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을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진혁이 갖추지 못한 덕목이었다. 어쩌면 진혁은 다른 이들로부터 제 결핍을 채우려 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사람 속에서 살고 싶어서.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라 해도 어쩌겠나.
믿을 사람이 자기 자신뿐이었는데.
제대로 뽑았던 것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옛 팀원들은 어질어서 남을 돕는 일에 몸을 빼지 않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서로 추천했으며,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나름의 가치판단 기준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비록 가치관은 달랐을지라도.
그들이 진혁에게 끼쳤던 영향을 발판삼아, 진혁은 다시 돌아와 천천히, 걸음마를 하듯 하나씩 익히는 중이다.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
죠세프 주베르가 한 말이다.
어떤 배경에서 나온 말인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무릇 명언이란 상황에 맞게 끌어다 쓰면 그만 아닌가.
이병세의 부탁도 외면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선배를 무서워하는 아이들과 거리를 좁힐 필요도 느꼈다. 그렇다면 아는 대로 가르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가르침으로써 저도 한 번 더 배울 수 있으니.
*
주먹으로 허벅지를 퉁퉁 두드리며, 책가방을 둔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리 모여 볼래?”
장마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우리의 기상청은 늘 국민의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 없다. 비는 오지 않았고 습도만 높았다.
바짝 마른 오징어를 밖에 두면 반건조 오징어로 회귀할 듯한 습도랄까.
진혁도 유서 깊은 구라청에 속아 영국 신사도 울고 갈 장우산을 들고 등교했다.
아이들이 모이길 기다리며, 우산으로 운동화 밑창을 툭툭 두드렸다.
넓어진 시야 덕분인지, 밝아진 성격 탓인지. 밑창 홈에 박혔던 모래알이 떨어져 나가는 별것 아닌 모양새도 재미있다.
“후아-. 칠월 되니까 엄청 습하다. 그치?”
“네에-.”
김요한이 티셔츠 깃을 펄럭이며 웃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었으나 자주 아이컨택을 하며 익숙해진 덕분인 듯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잠시 입안에서 혀를 굴린 진혁은 최대한 따뜻한 눈으로 후배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난 뛰어난 사람이 아니야.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지도 않아.”
그늘에 앉은 세 명의 중학생은 눈알만 데루룩 굴렸다. 다 마신 우유팩을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의 눈에는 이보다 뛰어난 선수가 없고 뛰어난 롤 모델이 없는데, 본인 입으로 아니라고 하니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세와 호흡. 그 정도 조언은 해줄 수 있어. 다른 운동은 스스로 해야 돼.”
선긋기로 보일 수 있으나 진혁으로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마다 신체가 다르기 마련인데 제 방식을 주입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닌가.
사고방식도 제각각이라 즐기는 방법 또한 다를 터였다.
“너희 눈에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 역시 완성된 사람은 아니야.”
진심으로 뱉은 말에, 다소 산만하던 아이들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학업을 게을리하지 마. 운동하느라 피곤해? 그럼 운동을 쉴지언정 공부를 거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쯥-. 그리 뱉고 나니 염병택과 조슬찬이 떠올라 입맛이 씁쓸했다. 진작에 챙길 것을.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르고, 언제 운동이 싫어져 그만둘지 모르는 일이야. 다른 길도 열어둬야지.”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던 과거의 이승훈과 신우성을 생각했다.
“자세히 설명해야 하니?”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아들었으면 됐어. 운동선수 머리 나쁘다는 소리, 인간이 글러 먹었다는 소리, 싸가지 없다는 소리. 많이 듣는 거 알지?”
“네.”
김요한이 진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 후배들이 그렇다는 말은 내 귀에 들리지 않게 해.”
노경호와 신민성이 슬쩍 웃었다.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지만, 나긋나긋 조리 있게 말하는 모습이 소문처럼 무서운 사람 같지는 않았다.
*
후배들을 데리고 씨름부 훈련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감독님, 교육장에서 미팅 좀 해도 될까요? 밖이 너무 더워서요.”
“어어, 그래라. 이제 슬슬 중학교 육상부도 발동 거는 거여?”
교육장에서 초코파이를 먹으며 만화책 슬램덩크를 보던 성부현이 사람 좋게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진혁은 아이들에게 의자를 가리킨 후 책상에 걸터앉았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자-,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하지.
후배들이 반듯하게 상체를 세웠다.
“너희는 운동을 왜 하는 거니? 운동이 즐거워? 대개는 힘들어하잖아.”
대답을 듣기 위해 한 명씩, 번갈아 시선을 던졌다.
“재미있어요. 남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민성이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냥 어려서부터 빠르다고, 시켜서 하긴 했는데 하다 보니까 시합 나갈 때 두근거리고 그러는 게 좋아요.”
이어진 김요한의 대답은 두 아이와 달랐다.
“힘들긴 한데요. 그런 거 있잖아요. 막- 하다 보면 숨이 끊어질 것처럼 가슴도 아프고, 심장이 갈비뼈 뚫고 나올 것처럼 아프고요. 그런데 거기서 죽을 똥 살 똥 힘내면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는 거요. 그거 너무 짜릿해요.”
김요한은 3000미터 장거리 선수였다.
이 자식 변태인가?
아니, 이게 아니고.
‘그럴 때가 있나?’
진혁은 속으로만 의문을 표했다.
뱃속에 든 것을 게워낼 정도로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여도 그 지경에 다다르진 못한 것 같은데.
“중장거리나 마라톤 뛰다 보면 그럴 때가 자주 오거든요. 다른 애들은 단거리라 시합 때는 그 머여- 금방 끝나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요. 근데 단거리 애들두 훈련 때는 자주 느낄 거예요. 아, 그 머라고 허더라? 박재승 선생님이 들구 댕기는 종이에 써 있었는데, 영어였는디······.”
김요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Dead point.’
진혁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말을 곱씹었다.
중학교 체육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다.
“숨이 꼴딱꼴딱 하는데, 그 순간만 넘기면 되는데 박재승 선생님이 그만허라구 해서 승질날 때두 있었어요.”
연구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김요한이란 선수든, 그가 말한 dead point든.
“좋아. 운동하는 게 즐겁다고 하니까 일단 합격. 이제 너희가 질문할 차례야.”
손진혁 팀장의 면접 방식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자세보다 질문하는 자세와 콘텐츠에 더 비중을 두어 판단하는.
긴장 풀린 아이들이 서로 질세라 손을 들었다.
***
손유진은 동반자가 많다.
누나의 왼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정원이, 오른쪽 어깨를 점한 행운이, 그 뒤를 따르는 발바리 장군이와 대형견들.
늘 씩씩한 손유진이지만 오늘은 더욱 힘차게 걸었다.
토요일이라 기분이 좋은 이유도 있지만, 몸을 크게 움직이면 기분도 더 좋아지는 거라고 장진남 삼촌이 알려줬거든.
“김춘삼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떼떼오-.”
누나를 따라 소 키우는 아저씨를 향해 인사한 정원이가 잼잼- 손을 놀렸다.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것까지 손유진을 똑 닮았다.
“으이-? 우리 유진이 더운디 어린애 데꾸 어딜 그렇게 쏘댕겨싸? 근디 아저씨는 김춘식이여-.”
소똥을 치우고 우사에 물을 뿌리던 사내가 땀을 훔치며 웃었다.
“아아? 김춘식 아저씨예요?”
아, 헷갈렸다.
쌍둥이도 아닌데 이 아저씨들은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
까만 얼굴,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예리한 손유진도 이름을 빈번히 틀렸다.
옷이라도 다르게 입으면 좋을 텐데 늘 체크 남방에 가슴장화 차림이다.
“오늘은 워째 장군이랑 그 머여- 세빠또가 안 보인다잉?”
“천마는 힘이 없어요. 장군이가 천마 옆에 있어요.”
“그 튼튼한 개가 왜 힘이 웁디야? 털이 많어서 그른가? 후덥지근허이 개덜이 힘든 계절이기는 허지이-.”
헥헥헥-.
김춘식 몰래 소 사료를 깔짝대던 홍시와 광마가 여기 좀 보라는 듯 혀를 길게 빼물었다.
작년보다는 덜하다지만 7월은 습하고 더워 사람도, 짐승도 힘든 계절이다. 괴롭히는 것이 땡볕뿐이라면 그늘을 찾으면 그만인데, 높은 습도 탓에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저씨, 소뼈 있어요? 저 돈 있어요오-.”
손유진은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기 위해 낑낑거렸다.
틈틈이 모은 불그스름한 지폐를 다섯 장이나 챙겨왔다. 5천 원이면 여덟 살 아이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소뻬? 뻬는 머덜라구?”
“천마가 소뼈 좋아해요.”
김춘식은 코끝을 비볐다.
이 어린 녀석이 개친구 주겠다고 귀한 소뼈를 구하러 왔다는 거 아닌가.
“근디 소뻬는 정육점서 찾으야지이-. 가만있어 보자······. 냉동창고에 꽁쳐둔 게 있을라나? 이이, 저그 춘삼이헌티 물어보자. 춘삼아!”
목을 길게 뺀 김춘식이 우사 입구에 등장한 동생을 불렀다.
“나 춘섭이여!”
“하이고-, 헷갈리라-. 이눔이구 저눔이구 똑같이 생겨가꾸 아주-.”
김춘식은 삼형제 중 맏이, 김춘섭은 막내였다.
*
더운 날 어린 동생까지 데리고 먼 거리를 걸었지만 소뼈를 공짜로 득템한 손유진은 기뻤다. 의기양양, 개선장군의 포스를 뽐내며 집으로 향했다. 한 손에는 동생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새끼줄로 묶은 소뼈를 들고.
“정원아, 이거 주면 천마가 좋아하겠지?”
“이거. 떰마. 도아-.”
정원이도 소뼈를 가리키며 옹알거리는 걸 보니 손유진과 생각이 같은 듯했다.
‘천마가 이거 받고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요.’
손유진은 천마가 왜 골골대는지 알지 못한다.
오빠에게 듣기로, 천마는 장군이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할아버지라는 말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날이 덥고 나이가 많다지만 그 씩씩한 녀석이 시름시름 앓는 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손유진이 틈틈이 살폈지만 특별히 아픈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빠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는데, 오빠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때마다 손유진은 덜컥 겁이 난다.
- “오빠가 학교 끝나면 수의사 아저씨한테 연락해볼게. 늙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콧물을 과다하게 흘리며 축 늘어졌는데, 달리 병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속상하다.
동네 어른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노인들도 저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다고 했다.
‘늙는 건 막을 수 없는데.’
더위와 걱정에 심신이 지쳐, 손유진의 눈동자가 구슬프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