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운 (7) >
부화기 관찰을 마친 유진이는 새알이 올려진 수건 똬리를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오빠가 새알을 만질 때는 순순히 두었으면서도, 저는 겁이 나서 손을 대지 못하는 모습도 우습다.
‘그게 유진이지.’
닭이 품지 않는 달걀은 냉큼 주워오면서도 암탉이 품는 계란에는 손도 대지 않는 동생이다. 작년에는 부화를 도우려 알껍데기를 쪼던 암탉이 영문도 모른 채 유진이에게 쫓겨났다. 유진이로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공격하는 것으로 여긴 것.
그때 깨어난 병아리들은 유진이를 어미처럼 따르다가 지금은 큰 닭이 되었다. 이제는 다 커서 다른 닭 틈에 섞여 있으니 그 병아리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구분이 안 되지만, 병아리가 사람을 어미처럼 따르는 건 신기한 광경이었다.
‘몇 마리는 먹었을지도 모르고······.’
유명선 회장이 왔을 때도 몇 마리 잡았지. 엄나무 껍질을 넣고 가마솥에 푹 끓였더니 육질도 부드럽고 맛이 아주 훌륭했다.
유진이는 창고에서 나타난 오빠가 손에 든 것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아빠가 낙지 잡을 때 쓰던 스티로폼 박스였다.
“하얀 상자는 왜요오?”
“부화기를 이 안에 넣을 거야.”
합판을 사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체 보온이 되겠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별도 단열재가 필수다.
“그거 하면 따뜻해요?”
“그렇지 않을까? 장군이네 집에도 스티로폼 깔아주니까 따뜻하잖아.”
“흐음-, 장군이네는 집안에 깔았는데요? 그 하얀 게 부화기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나치게 예리하군.
그래도 진혁은 할 말이 있다.
“내부에 스티로폼 넣었다가 혹시라도 전등이 너무 뜨거우면 녹을까 봐. 타이머가 고장 날 수도 있으니까······.”
진혁은 어물거리며 동생의 눈치를 살폈다.
흐음-. 유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쥐었다. 오빠 의견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표정이다.
“그래요.”
휴우-. 무사히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너무 작지 않아요?”
“딱 맞을걸?”
사이즈를 확인해서 만들었으니 들어갈 거다.
안 들어가면 다시 만들지 뭐.
뽀복-삐비비-.
욱여 넣으니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부화기가 들어갔다.
“오빠, 그렇게 넣으면 문은 어떻게 열어요?”
와씨-, 유진이 없으면 어쩔 뻔했냐.
문짝이 스티로폼 상자 벽면을 향하도록 들어가 버렸다.
“다, 다시 하면 돼.”
뽀보보- 삐비-.
아이스박스가 깨지지 않도록 천천히 꺼낸 후, 개방된 방향으로 문짝이 위치하도록 다시 집어넣었다.
후읍-. 입술을 꽉 깨물고, 숨을 참은 채.
“와아-! 딱 맞아요!”
함께 숨죽여 지켜보던 유진이가 찹찹- 박수를 보냈다.
“휴-.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드냐.”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는 일보다 부화기를 넣는 게 더 힘들었다.
역시 힘을 주는 것보다는 빼는 게 더 힘든 법일까.
아이스박스 뒤쪽에 구멍을 뚫어 백열등 소켓에 달린 전선이 빠져나오도록 했다.
“전선 보이니?”
“네에-. 지네처럼 땅굴에서 나오고 있어요.”
땅에 머리가 닿을 듯 숙인 유진이가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주시했다. 덕분에 모든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 됐다.”
“만세에-!”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신나냐, 폴짝폴짝 뛰는 동생을 보는 진혁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번졌다.
까치발 서서 만세를 부르는 동생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자, 하이파이브-!”
“예에-!”
짝-!
폴짝 뛰어오른 유진이가 손뼉을 맞부딪쳤다.
이제 모듈만 연결하면 된다.
***
세상이 깜깜해졌을 때 문석일이 돌아왔다.
“일부러 멀리까지 가서 사왔다. 험-.”
“정말 감사합니다. 급하게 필요한데 읍내에는 이런 거 파는 곳이 없어서요.”
“그렇지. 거기 업자가 그러는데, 기계도 양계장용 대형 부화기 말고는 국내에서 구경할 수가 없대. 외국에는 교육용으로 소형 부화기가 있다던데.”
고개를 끄덕이는 진혁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시골에서 함께 지낼 때는 평온한 얼굴이지만 서울에 다녀오면 다소 어둡던 문석일인데, 지금은 기분 좋게 웃고 있지 않나.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아니 뭐-. 늘 똑같다.”
문석일은 금세 표정을 고쳤다.
분실한 것으로 알았던 칼이 콘솔박스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할 필요까지는 없을 테니.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칼을 되찾은 까닭도 있지만, 긴장 속에 살며 벼려진 감각 탓에 잠도 깊이 못 자던 성격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둔해졌으니.
‘칼이 품에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도 그렇고.’
그게 좋을 일인지는 몰라도, 뜻밖의 이벤트가 문석일에게는 이상하게도 소속감 같은 것으로 작용했다.
이제 칼을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될 듯했다.
버릇처럼 품을 더듬어 칼이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는데, 그 과정도 없이 임무에 나섰다는 건.
‘불안증이 사라진 거겠지.’
선글라스 너머 혼자 빙긋 웃는 문석일의 눈동자를 보며 진혁은 묘한 동질감과 함께 위로를 받았다. 염병택에게 금메달을 걸어줄 때 본 눈동자와 닮았다. 친구의 눈동자에 비친 진혁의 눈이 저렇게 웃고 있었다.
*
평상에 불을 밝히고, 구경꾼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 진혁의 2차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게 낸 구멍에 온도 센서를 삽입하고, 실리콘으로 틈을 마감했다.
퇴근한 아빠와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도 관심을 보였다.
“부화기 만드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기술 책에 나와요.”
손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고등학교 기술 교과서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며.
“근데 진혁아 이건 무슨 알이니?”
“만지면 안 돼요!”
유진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 깜짝이야. 알았어어-.”
“아빠, 이거 뱁새래요. 오빠가 알려줬어요.”
유진이가 있어서 진혁은 말을 아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동생이다.
“나도 뱁새를 직접 본 적은 없는데 어떻게 생겼지?”
“갈대밭이나 싸리나무 숲에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참새 닮았는데 주둥이가 짧고 꽁지가 길어요.”
시골 사람인 엄마가 자세히 설명했다.
“아하-. 저수지에서 본 것 같네요. 엄청 작은 애들이었어요. 그래서 알도 이렇게 작구나.”
아빠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지만, 현실과 매치되는 지식은 많지 않았다. 자료사진 없는 백과사전 같은 사람이랄까?
봄에 토마토 순을 잡는 것도 이론은 알고 있지만 손이 헤매는 통에 매해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다 됐다-. 삼십칠도 정도면 되려나?”
모듈을 연결하고, 톱니바퀴처럼 생긴 다이얼을 돌려 온도를 설정했다.
이제 설정한 온도에 도달하면, 스위치가 내려가며 백열등으로 향하는 전기를 차단할 것이다.
“오오-, 삼십칠도. 그렇지 그 정도가 좋겠네.”
“정온동물? 항온동물? 그런 동물 맞지?”
호응하는 아빠와 엄마를 보며 진혁의 광대가 하릴없이 솟아올랐다. 체격만 다를 뿐 또 다른 손유진을 보는 듯해서.
평소에도 아기 정원이 재롱을 보느라 밤이면 모여서 박수를 치는 가족이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호들갑 떠는 모습이 이제 낯설 것도 없지만, 이렇게 쪼그려 앉아 머리를 맞대니 심장이 간질거렸다. 이 작은 알 하나가 뭐라고.
‘행운의 알이 맞나 봐.’
행복을 가져다주는 알.
너는 내가 반드시 살린다!
“오빠! 불은 제가 켤래요!”
“그래. 집안에 들어가서 켜보자.”
조심스레 부화기를 든 진혁 뒤로, 나머지 가족이 줄줄이 따랐다.
한 사람만 빼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진혁이 뒤돌아보았을 때, 아빠는 유진이 품에 안긴 알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흠-, 그렇구나. 참새를 닮았다고······?”
아-, 아빠.
침은 왜 삼키는데요······.
***
완성한 부화기를 다용도실에 둘까, 유진이 방에 둘까 고민하다가 어항 옆에 두기로 했다. 가장 발길이 자주 닿는 곳이었고 신경 쓰기도 좋을 듯했기에.
장군이와 부하견들이 마당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밖에 두기에는 어떤 위협이 도사리는지 모른다. 밤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게 시골이다.
“집안에 두는 건 이해하겠는데, 사람 손 안 닿는 곳에다 두어야 하는 거 아니니?”
아빠가 제법 똑똑한 소리를 했으나 진혁도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스테핑 모터 모듈을 깜빡했어요.”
“스텝 뭐, 그거 뭐, 모듈은 삼배수-는 건축이고 그건 뭐······.”
손광연은 눈만 껌뻑였다.
이 자식이 날이 갈수록 공돌이 용어를 쓰는데 좀처럼 알아듣기가 힘든 탓이었다.
“알을 굴려줘야 할 것 같은데 그 생각을 못했어요.”
알을 품는 암탉을 가만히 관찰한 사람들이라면 알 거다. 암탉이 앞발이나 부리로 알을 골고루 굴리지 않나. 뱁새가 알을 어떻게 품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다른 새들도 닭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다.
한데 부화기를 만들 때는 알 굴리기를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다.
타이머를 연결한 스테핑 모터를 부화기에 장착했다면 알 굴리기도 자동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이제 늦어버렸다. 방치 기간이 길어지면 새알이 곯아버릴 테니까.
그래서 수동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손으로 굴려줘야겠어요.”
“누가요? 언제 굴려요?”
깨지기라도 할까, 차마 알을 만지지 못하던 유진이는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을 지었다.
“누가 굴리든. 아침저녁으로 굴려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가족의 눈이 반짝였다.
손광연과 한유영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는 유진이 때문에 저 작고 예쁜 알을 만져보지 못해 아쉽던 차였다. 잘 사네, 못 사네 해도 신기한 물건을 보면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호기심 강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진혁은 알을 이리저리 만지고 구경해도 인심 좋게 가만히 있던 녀석이 엄마와 아빠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니 이런 차별대우가 또 있을까.
“그거 어, 엄마가 할게. 반 바퀴 굴리면 되는 거야?”
“저녁엔 내가 퇴근하고 굴리면 되겠다.”
“저도 학교 다녀와서 굴릴래요오-.”
가족이 많으니 자원자도 넘쳐났다.
부모님과 누나가 서로 질세라 손을 들자, 뭐 좋은 일 있냐는 듯 정원이도 팔을 높이 들었다.
“애아빠 바부우-.”
왜들 이래 진짜.
진혁이 빠른 중재에 나섰다.
“가위바위보로 정해요. 공정하게.”
*
거실에 때아닌 긴장이 흘렀다.
주먹을 굳게 쥔 엄마와 아빠, 유진이 때문에. 정원이는 정말 뭘 알고 그러는지 손을 뻗어 잼잼을 반복했다.
고수들이 벌이는 건곤일척의 혈투가 이럴까.
묘한 긴장을 느낀 진혁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도 조심스레 삼켰다.
숨 쉬는 자가 없으니 공기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듯했고, 거실을 지배하는 것은 고요한 투기뿐이었다.
아빠의 구레나룻에 땀이 한 방울 흐르는 순간, 유진이의 우렁찬 외침이 길었던 침묵을 깼다.
“안 내면 진 거!”
이를 신호로 두 어른도 덩달아 주먹을 흔들었다.
어버버- 흣챠흣챠-.
“가위바위보스보스- 개미똥꾸멍멍이가- 노래를한다람쥐가-.”
“에헤이-, 유진아-.”
“유진아, 제대로-.”
한 마디씩 하려 들 때, 유진이의 눈이 번뜩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지롱.
“보오-!”
뭐지?
엄마와 아빠는 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여전히 굳게 쥐어진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활짝 펼쳐진 딸의 손을 보며 사태를 깨달았다.
아뿔싸! 소녀 고수의 노림수에 말려 허를 찔렸구나.
역시 고수들의 결투, 승부는 단 1초식만에 결정되었다.
“오예! 내가 이겼다! 만세에-!”
“애아빠 바부아아아악-!”
앉은 채로 방방 뛰며 정원이가 누나의 승리를 함께 축하했다.
페어한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마지못해 스포츠맨십을 보이며 박수를 쳤고.
‘참나. 알 굴리는 게 뭐라고. 하여간 우리 식구들은 다들 미친 거 같어.’
이들의 호기심을 알 턱 없는 진혁은 멍한 눈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렇게.
첫날 잠들기 전에는 유진이가 알을 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뭐, 부모님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내기가 아니었다.
유진이가 구조한 알이고 이름도 붙였으니까.
“행운아, 잘 자요-. 내일 보자.”
달칵-.
알을 뒤집은 유진이는 부화기 문을 닫아 걸쇠를 걸고, 열리지 않는지 꾹꾹 눌러 확인도 거쳤다.
각자 방으로 흩어지고 모든 불이 꺼지며, 어항 조명등만 남아 은은하게 거실을 밝혔다.
그렇게 긴 하루의 여정이 끝나는······ 듯했지만.
행운이는 편히 쉴 수 없었다.
벽걸이 시계의 긴 바늘이 채 반 바퀴를 돌기 전.
진혁이 2층 제 방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다른 가족들이 도둑고양이처럼 거실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잘 되고 있나?”
“어머? 불이 꺼졌는데요? 고장 난 거 아닐까요?”
“에이-, 우리 아들이 만들었는데 설마요. 더워져서 꺼졌나 봐요. 여기 온도계에 보이네요. 삼십칠도.”
“아하-.”
“감촉이 어떤가? 도자기랑 비슷할까요? 한 번 만져본다고 큰일 나지는 않겠죠?”
“내일 출근 전에 굴리기로 하셨으니까 참으세요.”
속닥속닥-.
손광연과 한유영이 잠옷 차림으로 부화기 근처를 기웃거릴 때, 2층 계단에서 퉁퉁- 스르륵- 소리가 들렸다.
“에헤헤-. 행운이 옆에서 자야지.”
아찌곰을 질질 끌고 내려온 유진이였다.
“애아빠 바부우-.”
만세 자세인지 할퀴려는 자세인지 두 팔을 번쩍 들고 아장아장 걸어온 손정원까지. 큰아들을 제외한 네 가족이 거실에 잠자리를 펼쳤다.
“하하하-. 우리 딸까지 오랜만에 넷이서 같이 자자-.”
“애부우-.”
계단참에 웅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혁은 소리 없는 한숨을 뱉었다. 유진이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와 본 건데 가족들이 도둑처럼 부화기 앞을 서성거리잖아.
‘애들도 아니고······.’
도대체 새알 하나가 뭐라고.
그래도 베개까지 챙겨 나왔는데 목적지까지 가도록 할까.
진혁은 어두운 계단을 살금살금 걸어 내려갔다.
행복이 누워있는, 세상 가장 포근한 곳을 향해 걷는 진혁의 입꼬리가 수줍게 올라갔다.
어릴 때처럼 엄마 품을 독차지하지는 못하겠지만, 가족의 온기보다 숙면에 좋은 건 없다.
‘행운의 알이 맞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자는 건 집을 올린 후 처음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