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209화 (209/338)

< 행운 (6) >

***

여러 업무를 두루 살핀 후, 문석일은 개인적인 용무로 청계천을 방문했다.

‘여기 어디에도 오파상이 있을 텐데.’

대개 공구를 취급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무역항을 다니며 특수 주문품을 대리 구매하는 업자들도 있었다. 이들을 오퍼상이라 불렀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거래 조건을 조정하는 업자라는 뜻과는 다른 의미로 통했다. 이들은 돈만 주면 방문이 금지된 나라에도 입김을 넣어 물건을 구해오곤 했는데, 희귀 생물이나 독약, 총포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진혁이 부탁한 일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홍기준이 지시한 작전을 마무리한 문석일은 의정부와 동두천, 남대문, 동대문, 이태원을 다 뒤졌지만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청계천이다.

‘그 칼이 내 손에 맞는데.’

유고 연방에서 제작된 칼인데,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정식 수입이 되지 않으니 오퍼상이 부르는 게 값이다.

홍기준의 지시로 엊그제 송파구 일대의 범죄조직을 손보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다. 사용하지도 않고 품에 지니기만 했는데 말이다.

문석일에게는 부적 같은 물건이다.

없으면 불안하고 지니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하자면 행운의 주구誅求랄까?

‘운도 드럽게 없지.’

문석일까지 나설 필요 없다고 정상태가 말렸는데 좀이 쑤셔서 나섰다가 부적만 잃어버렸다. 친구 말을 들을걸······.

아니면 상경하지 말고 그냥 유진이랑 삘기나 뽑고, 못자리하는 조일헌이나 거드는 편이 나을 뻔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꼬맹이와 놀아주기 싫어 자리를 비운 삼촌처럼, 농사일이 싫어 놀러 나온 동생처럼 괜스레 미안해졌다.

드르르-.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주변을 살필 때, 뒷주머니에 꽂힌 보안 전화기가 떨었다.

‘유진인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언제 오느냐고 전화해서 묻는 녀석이 있다는 건, 소속감이라는 말로써 형언하기 부족한 뿌듯함을 안긴다. 그 사람이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면 더더욱.

토요일인데 왜 안 오냐고 물을 꼬맹이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여보세요.”

- 저 진혁인데요.

“어어-! 금방 내려갈 거야.”

묻지도 않은 말에 서둘러 답하고는 어이없이 웃었다.

눈치를 주지도 않는 녀석인데 괜히 허둥대는 자신이 우스울 수밖에.

- 아직 서울이시면 청계천 좀 들러주실 수 있으세요?

“처, 청계처-언?”

문석일의 눈동자가 얍삽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다행히 이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고가를 오르느라 힘내는 자동차 엔진 소음만 들렸다.

- 힘드시면 어쩔 수 없고요.

“아니야. 좀 멀긴 해도 시간 내봐야지. 그런데 청계천은 왜?”

- 부화기 모듈 좀 제작해서 등기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빠를수록 좋아요.

얘는 또 뭔 짓을 하기에 부화기를 만들려는 걸까?

공룡알이라도 주웠나?

손진혁이라면, 그 동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김춘삼 선생은 축사 증축하려고 야산을 파다가 조선 시대 장군 무덤을 발견했다지. 거기에서 나온 유물 중 장군도가 아주 비싼 물건이라고 들었다.

- 온도 센서가 달리고, 전등 온 오프 스위치 연동하는 모듈이면 돼요. 전선은 십 센티 이상 빼주면 좋고요.

“온도계는?”

- 그건 체크용이니까 집에 있는 거 쓰면 될 거 같아요.

“알았다. 그것부터 만들어서 내려갈게.”

- 일 남으신 거 아니에요?

“이제 일 없다. 오늘 내려갈 거야.”

- 감사합니다.

짜식.

감사할 줄도 알고 사람 다 됐네.

청계천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점수도 따고 하는 거지.

***

달-칵.

통화를 마친 진혁은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내렸다. 곤히 자는 동생이 깰세라,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짓이 알을 품는 암탉처럼 부드럽다.

‘흐음-. 무슨 비디오 있다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던데.’

행운권 어쩌고 하는 소음도 민감한 청각에 감지되었다.

서울 간 김에 신상열 만나서 대정 돌아가는 거 점검하랬더니 이 삼촌은 어딜 돌아다니는 거여어?

*

정원이는 재미있는 아기다.

근처에서 어른들이 큰소리로 대화해도 잠에서 깨지 않고, 유진이가 리코더를 삑삑- 불어도 자장가로 여기는지 자면서도 빙긋 웃는다.

그런데 곤히 자는 것 같아 이불을 덮어주고 마당에 나서면 귀신같이 알고 눈을 뜬다. 그 모습이 마치 조용하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과 비슷했다.

유진이와 함께 마당에서 부화기를 만들려고 나온 것인데 막냇동생이 깨버렸다.

탕탕탕-.

“응아아-. 우나아아-. 음마아아-. 애아빠 바부우우우-.”

지금도 혼자 집안에 남겨진 정원이가 거실 창을 두드리잖아.

누나처럼 순해서 울지 않으니 기특할 따름이다.

“오빠, 정원이 깼나 봐요!”

물 묻힌 손수건으로 검마의 눈곱을 닦던 유진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저는 바쁘니 오빠더러 가보라며 미루는 거다.

바빠 보이기는 한다. 검마 말고도 다른 개들이 차례를 기다리듯 옆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짜식들, 개들끼리 서로 눈깔 좀 핥아주면 안 되나.

“읏챠-. 엉아가 간다.”

쭈그리고 앉아 톱질을 하던 진혁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엄마는 직접 만든 반찬을 가득 챙겨 읍내에 나갔으니 동생들을 챙기는 건 오롯이 진혁의 몫이다. 큰아들을 믿기에 엄마도 마음 편히 외출하신 터였다.

“아이고-, 울애기 벌써 깨면 어떡해요오-.”

“애아빠 바부우-.”

“아하-, 조용해서 깬 거야?”

옹알이도 자주 듣다 보면 해석이 되는 걸까, 분명 진혁은 그런 의미로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원이를 보니 헛짚지는 않은 모양이다.

“울 애기, 깬 김에 밖에 나가서 놀까?”

정원이는 달리 대답을 하지도, 도리도리를 하지도 않았다.

침묵은 긍정.

정원이에게 겉옷을 입히고, 유모차에 태웠다.

이렇게 유모차에 태우면 홍시가 다가와 정원이를 향해 꼬리를 들이민다.

정원이는 홍시 꼬리를 잡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 많이 커서 개꼬리를 입에 넣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는 듯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진혁은 톱과 합판을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부화기 하나 만드는 일에 설계도 따위는 필요 없다.

애초에 구조가 복잡하지 않았고, 혼자서 하는 작업인데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굳이 그릴 필요는 없으니까.

“오빠, 부화기를 만들면 거기서 파랑새가 나와요?”

“애부우? 애아빠 바부우-?”

“아마 가능할 거야.”

7mm 두께의 베니어합판에 줄을 긋고, 줄을 따라 못으로 홈을 냈다. 홈을 따라 칼을 긋기를 수차례, 드디어 부화기 벽체가 준비되었다.

“오빠는 그냥 손으로 꺾어도 되지 않아요?”

“응아-. 애아빠 바부우?”

“그래도 칼로 작업해야 깔끔해.”

문짝으로 사용할 벽체 상단에 다시 칼질을 했다.

“거긴 왜 네모난 구멍 만들어요?”

“애부우?”

“여기에 유리를 댈 거야.”

“아하! 창문이구나요! 안에 훔쳐보라고요.”

웬일로 누나 말을 따라 하지 않기에 확인해 보니 정원이는 그새 잠이 들어 있었다. 두툼하고 폭신한 홍시 꼬리를 꽉 쥔 채.

‘정원이가 다른 아기들보다 늦는 편이랬나?’

영유아 건강검진 차 병원을 다녀온 엄마에게 들은 얘기다.

옹알이를 하는 정원이를 보며 의사가 말하기를, 신체 발달 지수는 뛰어난 편인데 언어 습득이 다른 아기들에 비해 늦은 편이라고.

아마 더 아기였을 때 아파서 그랬던 게 아닐까, 유진이와 비밀스럽게 의견을 교환했으나 엄마가 내놓은 의견은 달랐다.

- “말할 필요를 아직 모르는 거야. 맘마라는 말만 해도 밥 주고, 응가하고 기저귀 뜯으면 갈아주고 씻겨주잖아. 팔 벌리면 안아주고, 하품하면 자장자장 해주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잖아. 아기라는 생명은 그래. 편케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 필요가 없어서 아기 짓을 오래 하는 거예요. 저러다 어느 순간에 빵-하고 말문이 트여.”

그럴 듯하게 들렸다.

엄마는 보육원에 봉사활동 갔다가 보고 들은 것을 들려주기도 했다.

보육원의 아기들은 생후 100일도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젖병을 쥐고 우유를 먹는다는 이야기에, 진혁은 놀라는 한편으로 가슴이 아팠다.

겨우 100일인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배가 고프면 더 크게 울고, 말도 빨리 배운다고.

아기에 비해 돌봐주는 사람이 적은 환경에서 관심받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생존을 위해 그렇게 하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니까 의사 표현 수단을 빨리 습득하는 거라고.

-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보다 빠르다고 우쭐하지도 않을 거고, 느리다고 주눅 들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진혁이도 너무 걱정 말고 친구들이랑 재미나게 지내요.”

돌봐줄 사람 많고, 아껴주는 가족과 함께 사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아닐 터였다.

‘정원이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거야. 그래서 아기로 오래 머물려는 거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건 모두 해주는 가족이 있으니까.

언제 봐도 어른스러운 엄마 말을 받들어, 진지한 고민은 그쯤 하기로 했다. 저렇게 천사처럼 자는 아기가 말 좀 느린 게 대수냐.

“오빠?”

유진이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오빠의 어깨를 두드렸다.

“응? 으응? 왜?”

“훔쳐보는 창문이냐구요-.”

유진이는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한 모양이었다.

“아, 훔쳐본다기보다······ 모니터링이지.”

진혁은 벌떡 일어나 집안으로 향했다.

잠든 아기에게 얇은 담요라도 덮어줄 생각이다.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유진이가 쪼르르 쫓으며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모니터링? 뭐지요?”

“추적, 관찰하면서 보완할 점이 없는지 체크하고 또······.”

아, 얘는 진짜 쉴 틈을 안 주네.

*

호기심 많은 동생에게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진혁의 손은 쉬지 않았다.

각목을 잘라 네 귀퉁이 모서리에 댈 기둥을 마련했다.

뚝딱뚝딱-.

흠칫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망치 소리에도 아기는 깨지 않았다.

그래도 동생이 언제 깰지 모르니 진혁은 작업에 속도를 올렸다.

벽체 조립을 마치고 오빠가 정육면체를 들어 보이자, 유진이가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오와아-! 큰 주사위예요.”

“비슷하게 생겼지? 이제 여기에 유리를 대고-.”

글루 건을 이용해 유진이 손바닥보다 작은 유리를 문짝에 댔다.

이제 문짝은 경첩을 이용해 몸체와 연결하면 된다.

“좀 삐뚤어졌나?”

“오빠, 여기가 떠요.”

“아이고 예리한 내 동생.”

문짝이 처져 상단에 틈이 생겼다.

“역시 협동하는 게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수월하네.”

“협동, 수월······.”

“힘을 합치면 쉽다는 뜻이야.”

입을 헤- 벌린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체육 시간에 줄다리기를 했는데 학급 친구들 여럿이 당기니 박재승 선생님도 질질 끌려 오더라.

“그건 무예요오?”

오빠 손에 들린 까맣고 둥그런 물체를 보며 유진이가 눈을 깜빡였다.

“이거? 백열등 소켓.”

“어두울까 봐서요?”

“백열등이 부화기 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거야.”

“아! 홍시 태어날 때처럼!”

“그렇지.”

유진이는 기억력이 좋은 데다 이해력까지 좋아 거듭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합판 뒷면 상단에 뚫은 구멍에 소켓을 끼우고 틈이 생기지 않도록 마감처리를 했다. 온도 센서를 끼울 구멍은 모듈이 도착한 후에 뚫으면 될 테고······.

“음. 완벽해.”

작고 아담한 부화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진혁은 준비한 석쇠를 작업용 가위로 잘랐다.

유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랑새 구워 먹을려고요? 아, 안되는데에-. 츄릅-.”

“걱정 마.”

야, 그 조그만 알을 누가 먹냐. 먹을 것도 없겠다. 그런데 침은 왜 흘리는 거니.

“그냥 나무판 바닥에 두면 알이 구를까 봐 그래.”

자른 석쇠를 부화기 내부에 수평으로 삽입하는 거다.

벽체에 구멍 여러개를 뚫어 철사로 석쇠를 고정하는 작업을 마치고, 납작한 그릇도 넣었다.

“파랑새 화장실이에요?”

“으하하-.”

예리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유진이와 대화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에 물을 넣을 거야. 건조하지 않도록. 음, 습도 조절용이랄까?”

“아하-. 가습기구나요.”

역시 내 동생. 똑똑하기로는 비교할 사람이 없다.

진혁의 얼굴에서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 애기 지켜보고 있어. 창고에서 뭐 좀 찾아서 금방 올게.”

“녜-, 에헤헤-.”

어차피 유진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쪼그려 앉아 부화기를 구경하는 모습이,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를 보던 유치원생 손유진 그대로였다.

‘그때 깨어난 병아리들이 유진이를 엄마로 알고 한참 쫓아다녔지.’

장군이가 막아서서 으르렁거리지 않았다면, 병아리들은 유진이를 따라 스쿨버스에도 올랐을 거다.

“하-, 근데 이게 어디 갔지? 귀신이 고칼로리여어-.”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두어도 막상 쓰려고 하면 보이지 않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옳지, 찾았다!

낑낑대며 뒷걸음으로 창고를 나서는데, 멀리서 유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아-! 언제 오지요오-?”

“가, 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