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91화 (191/338)

< 느림보 >

***

과거의 진혁은 중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외우다시피 읽었었다.

소설부터 교양서적까지.

설화라고 해야 할까,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진혁의 동네보다 바닷가로 더 깊이 들어간 지역으로 기억한다.

‘이원면이었나? 옛날 지명이 이북면이었나?’

아주 옛날에 손 씨 효자가 살았는데, 부친의 병환이 깊었는데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듣지 않았다. 의원이 있는 큰 마을까지 업고 나갈 도리가 없어 하루는 사정사정하여 의원을 모셔왔다.

의원이 말하길, “변에서 쓴맛이 나면 더 살 것이며 단맛이 난다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했는데, 아버지의 변을 확인한 효자는 단맛이 난다며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훅훅-. 푹푹-.

물 빠진 바다에서 삽질을 하며 왜 그 이야기가 떠올랐는지는 몰라도, 진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병원도 많고 곧 의료원도 생길 테니 나는 그렇게 안 해도 돼.’

그 효자처럼은 못해도 겁쟁이 아빠를 위해 말미잘은 잡을 수 있지!

말미잘을 잡아 용기의 물약을 만드는 거다!

“하이고오-, 허리야.”

역시 노동과 운동은 몸의 반응이 달랐다.

건강을 위해 돈을 들여 운동하는 젊은이를 보며 돈 버리지 말고 일을 하라는 노인네들의 말이 틀렸음이 초인의 몸에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아마 상태창이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

‘1 골드를 들인 운동으로 근육통을 획득하였습니다. 1골드를 추가로 사용하여 근육통을 근육으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려/됐어)’

운동과 노동은 사용하는 근육이 다른만큼 논리의 흐름도 다르다.

‘노동의 대가로 1골드와 골병을 획득하고 치료비로 3 골드를 소모하였습니다.’

결국 2골드를 소비하게 된다는 결과만 똑같다.

“휴우 잠깐 숨 좀 돌리고-.”

엉뚱한 상상으로 요통을 견디던 진혁은 결국 허리를 폈다.

누가 동생 바보 아니랄까 봐, 갯벌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동생부터 찾았다.

갯벌이 아무리 넓다고 한들 동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니까.

“미자야아아-.”

유진이는 맨발로 갯벌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지난 일요일엔 해질녘까지 유진이와 바다 구경만 하다가 돌아갔더랬다.

물수제비도 하고, 동생의 바지를 걷어 올려 물장구도 치게 해줬다.

한껏 기대를 품고 왔는데 가득 들어찬 바닷물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유진이를 달랠 필요가 있었으니까.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주 놀지 못하는 동생인데,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진혁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행복해하는 동생을 보며 당연한 보람도 느꼈고.

헤헤헥-.

오늘은 장군이와 홍시도 따라왔다.

장군이는 영악한 녀석이라서 지난번에는 물이 빠지지 않은 걸 알고 동행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물이 안 빠지는 날이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이놈아-.”

까드득-.

야속한 장군이는 게를 잡아 씹을 뿐이었다. 그래도 신통한 점은 뭔가를 잡으면 반드시 진혁의 옆에 와서 먹는다는 거였다. 안전한 곳이라는 뜻이겠지.

주둥이와 수염, 배털까지 온통 펄이 묻었는데도 장군이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개라서 개의치 않는 건가.

깽!

게에게 또 코를 물렸다.

“으하하-! 집게발부터 먹으라고- 이놈아.”

게 맛을 모르는 홍시는 유진이를 쫓아다니며 땅만 팠다.

아휴-, 저 털 긴 녀석들 목욕시킬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오빠아-! 여기 말미잘이는 진짜 커요오-.”

“응, 갈게.”

말미잘은 신기한 생물이다.

갯벌에서도 살고, 모래땅에서도 살고, 빡빡한 바위 틈에서도 산다.

터를 가리지 않는 생명력 덕분에 보양에도 좋은 게 아닐까?

그래도 ‘말미잘을 먹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까하하-.”

유진이는 발견하는 말미잘마다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즐거워했다. 손가락을 대면 촉수가 찰싹 달라붙고, 몸체는 급격히 수축하며 손가락을 조이는데 그 느낌이 재미있다고.

“똥꼬처럼 생겼어요오-.”

“크큭-, 그러게. 말미잘은 입이 곧 똥꼬래. 거기로 먹고 싸고 다 하는 거야.”

“오오-?”

유진이는 고개를 돌려 제 엉덩이쪽을 보았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아, 유진아.

분명 똥꼬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상상을 하는 중이겠지.

엉덩이 살랑거리지 마!

아이들만큼 방귀, 똥, 똥꼬에 환장하는 생명체는 없을 거다.

유진이는 정원이가 방귀를 뀔 때마다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동생 똥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빠! 말미잘이 찾기 너무 쉬워요오-.”

“오-, 우리 유진이가 비법을 터득한 거야?”

“네!”

유진이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미잘이는 물 고인 곳에만 있어요!”

“오오?”

진혁은 이제까지 말미잘을 캔 곳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말미잘이 있는 곳은 초소형 운석이라도 맞은 듯 약간 내려앉아 있었다. 거기에 바닷물이 고였고.

사실은 물이 고이지 않은 곳에도 존재하지만, 굳이 유진이의 말이 틀렸음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유진이 덕분에 말미잘 많이 캐겠네.”

“히이-.”

말미잘을 캐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냥 적당한 깊이로 삽이나 호미를 넣어 올리면 된다.

구부정하게 숙인 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삽질을 하는 자체가 고될 뿐.

“아이쿠-, 끊어졌다.”

“아쿠-, 아프겠어요. 미자야 미안해요오-.”

“아하하-, 말미잘이라서 이름이 미자야?”

“얘는 미숙이에요. 쟤는 미경이.”

그래도 미경이는 좀 아니지 않냐? 그리 중얼거린 진혁은 미경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삽을 깊이 넣어 뿌리까지 뽑아 올렸다.

“하이고오-, 허리야. 좀 쉬었다 하자.”

“호오-.”

뻐근한 허리를 쉬려하면 유진이가 아픈 곳을 다독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짚어내는데, 스스로도 어디가 뻐근한지 모르던 진혁은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눈에는 보이는 거야?”

“아픈 곳은 심장이 뛰어요.”

뭐, 물을 때마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환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아요오-. 말하면 나쁜 아저씨가 잡아간다고 했잖아요오-.”

누누이 잔소리를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과하지 않다.

돌연변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누가 눈독을 들이기라도 한다면 평화가 깨질 테니. 진혁이 힘을 자제하는 데에도 마찬가지 염려가 배어 있었다.

저는 어찌어찌 몸을 뺀다 해도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가족들은 그렇지 못하니까.

아무튼, 유진이 덕분에 휴식도 마음껏 취할 수 없다.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갯벌과 모래톱을 한눈에 담는 것으로 잠깐의 휴식은 끝이다. 비린내 버무려진 눅눅한 공기로 폐도 헹궜다.

흐으음-하아-. 구린내 섞인 갯벌 냄새를 맡으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흡족한 것이, 천생 촌놈이다.

“얼마나 잡았나 볼까?”

“가득 채워야 해요오-.”

“가득?”

대바구니가 이미 절반 가까이 찼는데?

유진이는 미숙이, 미자를 멸종시킬 셈인가? 미경이까지?

“사람이 많잖아요.”

유진이의 눈빛은 단호했다.

“미안. 오빠가 생각이 짧았네.”

SSS에 미경이네, 조일헌까지 챙기려면 바구니를 가득 채워도 모자랄 터였다.

천길룡 할아버지도 빼놓을 수 없지.

“저 어른들은 바닥에 앉아서 뭐 하는 거예요오? 오리걸음 해요오-.”

“바지락 양식하는 곳이야. 조개 캐는 날인가 봐.”

“아-, 조개애-. 바지락이-.”

유진이는 조만간 조일헌도 ‘조일헌이-’ 라고 부르게 될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받침 들어간 글자 뒤에 ‘-이’를 붙이는데, 유치원에서 뭔가 배운 모양이다. 아니면 장군이를 부르던 영향이려나.

유진이가 가리킨 곳에는 선캡과 수건을 두른 어른들이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모래와 작은 돌, 펄이 적당히 섞인 곳에 바지락을 양식하는데, 워낙 넓은 지역에서 양식을 하니 폭염이 덮치지 않는 한 수확 시기는 계절의 구애를 크게 받지 않았다.

“비 많이 올 때 오빠랑 저기서 조개 캤던 생각나요.”

“응, 그랬지. 그래서 금방 집에 갔었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었을 거다.

어촌계에서는 마을 주민을 위해 양식장을 가끔 개방했는데, 하필 장마가 시작될 때라 갑자기 퍼붓기 시작한 비에 유진이를 들쳐메고 대피했던 기억이 난다.

“칼국수 맛있었는데-.”

“유진이 배고파?”

“아니요오?”

고프면 이상한 거지.

아침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다음에 조개 캐다가 또 칼국수 해먹자. 라면에도 넣어 먹고.”

“히이-.”

유진이는 욕심이 없다.

그저 배불리 먹고, 깨끗하게 씻고, 포근하게 잠들 수 있다면 만족하는 아이였다. 인형은 아찌곰 하나면 충분했고.

‘부족한 게 없으니 욕심이 없는 게 당연한 건가?’

그건 진혁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올 때마다 늘 결핍을 떠올린다.

현생의 진혁은 남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졌다.

재물뿐 아니라, 따로 살기는 하지만 형과 누나들도 있다.

‘이제 내 유일한 결핍이라면 인간성이겠지.’

인간은 아직도 어렵다.

그래서 여전히 유진이가 더 어른처럼 느껴진다.

굳이 덧씌울 필요 없이, 하얀 도화지에 처음부터 인간의 흔적을 써나가는 아이. 그래서 오류 없이 세상을 순리대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영혼.

진혁은 세포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이 너무 짙어 아무리 새로 써도 덮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유진이와 진혁의 차이는 컸다. 총명한 아이와, 성격 고약하고 괴팍한 신념을 가진 노인의 간극만큼.

“우와아-. 무거워요. 안 들려요오-.”

어느새 가득 찬 대바구니를 들어본 유진이가 혀를 내둘렀다.

더 채울 곳도 없으니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점심 전에 채워서 다행이네.”

진혁은 다시 한번 삽질의 흔적을 살폈다.

“휘이-, 많이도 팠네.”

말미잘을 캔 후 다시 복구했어도 완벽히 가려지지 않은 수 많은 미자, 미숙이, 미경이가 살던 흔적이 남았다.

헤헷, 유진이 몰래 남겨둔 미나는 잘 살겠지.

미나 행복해라!

***

마당 수돗가에 느닷없이 말미잘 가공공장이 차려졌다.

진혁의 작업에 한유영과 장진남, 김인랑이 합세했다.

“가위로 이렇게 반을 갈라요.”

한유영도 아들의 시범을 보며 따라 했다. 먹어 본 일은 있었지만 요리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곽향림에게 배우기는 했지만 함께 교육을 받은 진혁의 시범을 따라하는 게 더 쉬웠다.

“속은 걷어내는 게 좋아요. 뻘이랑 모래가 많아서요. 대충 걷어내고 나머지는 소금으로 빨면 빠져요.”

외설스럽기로는 맛조개 알맹이에 버금갈 몸체였지만 누구 하나 시시덕대는 이 없이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다. 한유영이 있는 곳에서 말미잘 몸통이 어쩌구 할 만큼 얼간이는 없었으니까.

사각사각- 슥슥-.

한동안 가위질하는 소리만 들렸다.

“근데오. 이게 무슨 맛이에오?”

“저도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신 이후로 못 먹어봐서 기억은 안 나요.”

한유영이라고 장진남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기억이 안 난다는데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엄마는 죄다 기억이 안 나신대.’

청문회 나가시면 장관 쌉가능.

엄마의 관대한 객관화는, 진혁의 관점에서 점점 나쁜 기억력 탓으로 변질되어갔다.

어른들이 분주히 손을 놀리는 동안 진혁은 손질하지 않은 두 주먹 분량의 말미잘을 따로 빼 천일염으로 세척했다. 이렇게 해야 불순물이 빠진다고.

이제 생선 건조망에 말리는 거다.

“저 그거 알아요. 말려서 구워 먹을 거죠?”

홍시를 목욕시키던 유진이가 물었다.

“응. 역시 똑똑하네. 우리 유진이.”

근데 이걸 어디에 꿰어야 하지?

고추밭 말뚝은 너무 굵고, 쇠꼬챙이는 위생적으로 꺼려지고.

‘천천히 생각하자.’

석쇠에 구운 다음 젓가락에 꽂아 줘도 유진이는 좋아할 거야.

손질이 끝난 말미잘을 모아 천일염을 왕창 뿌렸다.

이제 다리를 쩌억 벌리고 허리를 숙여 대형 채반에 담긴 말미잘을 빠는 거다.

촥촥촥- 쫙쫙쫙-.

“깨끗하네. 그 정도면 된 거 같아.”

“네.”

말미잘과 원수진 듯 세척하는 진혁을 한유영이 말렸다.

양이 많았기에 마당에 걸린 솥에서 조리하기로 결정했다.

김인랑이 불을 지피고, 장진남은 세척한 솥을 다시 걸었다.

“웃쌰-.”

“햐-. 역시 장 선배님! 힘이 좋으시니 솥을 번쩍번쩍 드시네요.”

“내 힘이 좋은 게 아니에오. 인랑이가 약한 거애오.”

“예······.”

긴 나무 주걱 두 개를 쌍칼처럼 든 장진남이 요리를 하겠다며 나섰다.

“요리는 하던 사람이 해야 더 맛있어오.”

그렇다는데 맡겨두는 게 좋겠지.

군말 없이 물러선 진혁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장진남이 못 미더운 건 아니다.

‘과연 저 이상한 걸 먹을 수 있을까.’

한 번 자리 잡은 의심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손바닥을 펴 솥 온도를 체크한 장진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솥에 들기름을 둘렀다.

삭삭삭-.

들기름이 고루 퍼지도록 주걱을 몇 번 휘젓고는 말미잘을 들이부었다.

치이이- 촤아아-.

치명적인 백색 소음. 그리고 급격히 치솟으며 효과를 극대화하는 운무.

칼춤을 닮은 주걱쇼가 장진남의 두손에서 한바탕 펼쳐졌다.

집에 왔을 때는 대바구니 하나 분량이었던 말미잘은, 반으로 가르고 세척까지 하니 양이 더 불어난 듯 보였다.

그러나 곤봉 대신 주걱을 잡은 골리앗 장진남 앞에서는 다윗보다 하찮은 요리 재료일 뿐이었다.

취취취-.

“불이 너무 센 것 같네오.”

“넵! 빼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김인랑이 장작 몇 개를 꺼냈다.

주말 근무라 황가윤을 만나러 가지 못했는데도 김인랑은 뭐가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프로란 저런 걸까, 장진남은 요리할 때는 입을 거의 열지 않았다. 침이라도 들어갈까 봐 그런 거겠지. 멋대로 해석한 진혁은 역시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그런데 물은 안 붓나요?”

“나도 진혁이가 알려준 대로 하는 거애오. 말미잘에서 물이 엄청 나온다고 해오.”

“아하! 벌써 쪼그라들었네요.”

과연, 물은 넣지도 않았는데 국물이 흥건하고 통통하던 말미잘은 눈에 띄게 작아져 있었다.

김인랑은 잠시 두리번거렸다.

한유영과 손유진은 수돗가에서 장군이를 목욕시키는 중이었다. 홍시는 얌전해서 유진이 혼자서도 가능한데, 장군이는 지랄 맞아서 누가 꽉 붙들어야 한다.

두 모녀가 멀리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 김인랑이 장진남에게 몸을 기울여 속닥였다.

“그······ 물 빼고 나서 쪼그라드는 것까지 비슷하네요.”

“으허허허허허허허-!”

무슨 뜻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장진남은 쭈그려 앉아 배를 잡았다.

할 말 못 할 말 가리는 융통성 덕분에 참고 있었지만, 그러잖아도 길쭉하고 퉁퉁한 생김새 때문에 남자답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삼국지 장비가 앞치마를 두르고 웃는다면 저런 모습이겠지.

제 음담 유머가 만족스러운 김인랑도 장진남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웃었다.

그들은 손진혁이 보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졸린애는 어차피 둔해서 못 알아들어.

‘뭐가 웃긴 거지?’

가까이에 있었고, 귀가 밝아 모두 들었지만. 대화에 주어가 빠진 터라 진혁은 저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뭘 빼면 뭐가 쪼그라드는데요?

돈을 빼서 은행 잔고가 쪼그라들었나?

거, 같이 좀 웃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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