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겁쟁이 (7) >
***
홍기준은 세인전자에서 진행한 웹 기반 소프트웨어 공모를 통해 검색 엔진을 탑재한 사이트 구축을 완료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온갖 괴짜와 천재들이 나타났다고.
그러나.
“서비스 좀 하지.”
인터넷망 보급이 더딘 탓에 본격 포털 사이트 서비스는 시기상조라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할 정보 수집도 마쳤고, 입력할 인력 또한 충분하다면서 말이다.
“두더집이랑 우리 집 회선은 쓸만한데.”
제 사정만 고려한 이기적이고 합당하지 않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늘어놓는 푸념이었다.
“그냥 하면 안 되냐고요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 걱정, 저 걱정.”
구시렁구시렁-.
듣는 이도 없는데 진혁은 흙집 창고를 뒤지며 툴툴거렸다.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다면 말미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텐데. 하여간 좋다가도 싫은 홍기준이다. 널리 인간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지식을 인간들 꼴 보기 싫다고 적용을 미루다니.
저는 정정당당이라는 구호 아래 미지의 힘을 사용하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홍기준에게는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진혁이었다.
그러나 힘은 힘이고, 지식은 지식 아닌가.
복잡한 세상에서 모든 현상과 사물을 단순화해서 등치 시킬 순 없는 거라고 똑똑한 유진이가 그러더라.
홍기준은 진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다. 진혁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의 입으로 얘기해주지 않아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니까.
“으휴-. 옛날부터 성향이 나랑 정반대. 완전 정반대.”
말미잘이야 그냥 잡으면 그만인데 요리법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 촉수 괴물을 먹었다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모름지기 아는 게 힘 아니던가.
그것도 대충 알아서는 안 되고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요리법은 곽향림이 알려준다지만 생김새가 영 못마땅하잖아.
“휴우우-. 내가 또 흥분했네.”
말미잘 하나 때문에 가족의 은인이랄 수 있는 홍기준을 뒷담화 한 꼴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뭐 어떠냐.
“장군아, 가자-.”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쓰고, 농부의 상징 회색 체크 무늬 남방을 걸쳐 완벽한 농부 룩을 완성했다.
이제 어깨에 멘 대바구니에 호미 한 개, 삽 하나를 들고 출발이다.
“장군아-. 가자고.”
월! 워월!
개껌을 갉아먹던 장군이는 네 다리를 발딱 세우고 짖을 뿐, 진혁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산 개껌이라 그런지 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바다 갈 건데 같이 안 가?”
월! 워워월!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짖는 톤으로 보아 화난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말하는 듯한데 진혁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인 건 마찬가지였다.
“오빠아-. 어디가요오? 설기 잡으러 가요오? 설기 튀김 맛있어요. 게 잡으러 가요오? 게 쪄먹으면 좋아요오-.”
얼씨구? 유진이 언제 왔지?
진혁이 어릴 때 입던 스웨터를 걸친 유진이가 거지꼴을 하고 나타났다. 유진이 먼저 김상호와 함께 귀가한 걸 보면 아마 아빠는 양강욱과 산책을 더 하시는 모양이다.
“에구-, 이 녀석아 이쁜 공주님이 꼴이 이게 뭐야아-.”
진혁은 무릎을 땅에 대고 유진이 옷에 붙은 검불 따위를 떨어냈다.
유진이는 쉬는 날이면 날이 밝기 무섭게 홍시를 달고 동네를 순시하는데, 여기저기 어찌나 싸돌아다니는지 아침마다 엄마가 공주님을 만들어줘도 무소용이다.
언젠가는 뒷산에서 다 찌그러진 깡통을 들고 왔는데 완벽한 거지 룩이었다.
“꼴이 왜요오-?”
“아냐. 예뻐.”
크큭-.
거지꼴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예쁘다 해주는 수밖에.
그래도 건강하고 씩씩한 동생이라 추레한 모습에도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유진이는 결핍된 영양소도 없는지 다른 아이들처럼 콧물도 흘리지 않았다.
진혁은 창고로 돌아가 지게를 꺼내왔다.
오빠와 함께라면 군대도 따라간다고 고집부릴 녀석인데 데려가야지.
유진이에게도 밀짚모자를 씌우고 지게에 태워 출발.
“고기를 잡으로 바다로 갈까요오-. 고기를 잡으로 산으로 갈까요오-.”
목청 좋은 녀석이 하이톤으로 노래를 부르니 진혁은 머리 뚜껑이 들썩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동생의 즐거움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 유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진혁에게도 행복이니까.
그래도 발음은 제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유진아, ‘잡으로’ 아니고 ‘잡으러’가 맞지요?”
“아, 그래요? 일부로 그런 건 아니에요오-.”
“‘일부로’ 아니고 ‘일부러-’.”
“고기럴 잡으러 바다러 갈까아나-. 고기럴 잡으러 산으러 갈까아나.”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한참 놀다가 왔는데도 유진이는 지치지 않는다.
“이 병에 가득히 넣어가지고호-서어- 얏냐냐냐냐냐냐냐 온다냐-.”
월워워워어어얼-.
새고자리*(지게 뼈대 윗부분)를 잡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에 온 동네 개들이 화답했다.
낮시간을 이렇게 활기차기 보내니 밤에 잘 자는 거겠지.
“오빠아-, 말미잘이는 잡으면 뭐해요오?”
“먹는대.”
“우와-! 말미잘이는 맛있겠어요오-.”
유진이는 못 먹는 음식이 뭘까.
조그만 녀석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보며 군침을 흘린다. 아기 때부터 장군이를 가족으로 여기며 자란 게 천만다행이다.
수로에 둥둥 뜬 오리를 보면서는 늙은이처럼 반응했다.
“크으으-. 진흙 발라 구워먹으면 맛있겠다. 그쵸오-.”
하늘 높이 뜬 솔개를 보면서는 이상한 지식을 자랑했다.
“동물의 왕국에서 봤는데 저런 새는 맹금류라고 하는데요, 쪼롱이 아저씨가 맹금류는 바짝 익혀 먹어야 한대요오-.”
맹금류를 꼭 먹어야만 하는 거니?
조일헌은 도대체 동네 애들을 얼마나 버려 놓은 거냐.
봄에는 지푸라기 가득 깔린 마늘밭을 뛰어다니는 노루를 보며 까닭 없는 헛소리를 했었다.
- “노루는 노루스름한 맛이 난대요오-. 맛있겠죠?”
역시나 의심할 사람은 조일헌뿐이다.
동네 애들이 헛소리를 하며 다닌다더니, 알고 보면 조일헌이 그렇게 물을 들인 게 아닐까.
그 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품평도 내놓았다.
- “햄버거보다 오골계가 맛있어요오-.”
- “껌보다 칡뿌리가 맛있는데-.”
- “조개는 국수에 든 것보다 찜에 든 게 맛있는 거예요오-.”
“아! 말미잘이는 어떤 맛일까-.”
이젠 하다 하다 생김새도 모르는 말미잘을 보며 맛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오빠는 말미잘이 먹어봤어요?”
“아니. 오빠는 안 먹을 거야.”
“왜요오?”
무서워.
촉수 괴물.
지게를 진 진혁의 어깨가 한 차례 떨렸다.
“그건 겁쟁이들이나 먹는 거래.”
“흐음-. 용기가 막 솟고 힘도 생기고 알통도 생기는 건가 봐요! 그래서 오빠는 안 먹어도 되나 봐요오-.”
역시 똑똑한 내 동생.
뉘 집 딸이 이렇게 똘망할꼬.
투타타타타타타-.
수로를 벗어나 버스 길을 따라 목적지까지 절반쯤 갔을 때, 도로를 꽉 채우는 트랙터가 나타났다.
진혁은 지게에 탄 유진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길에서 벗어났다. 사각지대에 있다가 트랙터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퉁탕탕탕탕-.
엔진 소리가 커지더니 진혁의 옆에서 트랙터가 멈춰섰다.
“여어-! 지넥이 성이랑 유진이 아녀!”
“쪼롱이 아저씨다! 우리 말미잘이 잡으러 가요오!”
퉁탕탕탕탕-.
“뭐어-!”
“말미잘이 잡으러 간다고오-!”
뚱탕탕타타-.
“뭐어어-!”
“말미자아-알!”
빼액-!
어휴, 트랙터 소음과 앞뒤에서 지르는 고함이 겹쳐 진혁의 고막만 고생이다. 그래도 진혁은 동생의 발언 기회를 빼앗지 않기 위해 잠자코 서 있었다.
시골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하이테크놀로지 커뮤니케이션, 유진이도 시골 사람이니 경험할 필요가 있다.
투르릉-.
답답했는지 인상을 찌푸린 조일헌이 시동을 껐다.
이미 높아진 볼륨에 익숙해진 유진이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말미잘이 잡으러 간다고오-!”
“이이-? 아, 그려 이맘때 먹으먼 맛있지.”
초록색 농약 모자를 벗은 조일헌이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하루의 피로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지금이 좋을 때예요?”
“아녀. 말미잘은 암때나 먹을 수 있어. 그늠이 아주 바다이서 나는 산삼이여어-.”
오오-. 진혁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산삼씩이나? 그렇게 좋은 거라고?
그런데 바다의 산삼은 해삼 아니었나?
“그렇게 몸에 좋아요?”
“말혀 뭐 혀? 말미잘은 다 잡어먹구 살어. 바다에서 나는 건 죄다 그늠이 먹구 크는 겨.”
“아저씨, 아저씨! 말미잘이가 꽃게도 먹어요오?”
오빠와 마찬가지로 눈이 동그래진 유진이가 물었다.
“꽃게가 다 뭐여어-? 거 머여, 우리 동네에 많이 보이는 상괭이두 죽어 봐라, 누가 먹나. 하여간 죽은 넘덜은 물살 따라 이리저리 댕기다가 말미잘 촉수에 닿으먼 쪽 빨리는 겨어-.”
아, 그래서 말미잘이 몸에 좋은 걸까?
진혁은 오늘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지식 +1.’
가만히 떠올려 보면, 아빠를 따라 바다에 갔을 때 봤던 말미잘은 뭔가를 하나씩 품고 있었다.
게, 물고기, 불가사리 등등.
‘그렇게 빨아먹는 거구나.’
바위틈에, 모래밭에, 뻘밭에 박혀 바다를 청소하는 거였어.
“몸이 좋은 것두 좋은 거지먼서두 그런 맛이 또 웁써어-.”
“그렇게 맛있어요?”
참지 못한 진혁이 물었다.
“야아아-, 그거는 어디 뭐랑 비교할 수가 웁는 맛이여어-. 먹어보기 전이는 물러. 이 성이 젊을 때 전국 안 댕긴 디가 웁구 안 먹어 본 게 웁는 사람여어-. 맛쟁이덜 환장헌다는 중국이서두 한참 살었지. 그랬어두 그런 맛은 웁지이-.”
유니크하다는 뜻이렷다?
조일헌의 표현이 어찌나 풍부했던지, 그리고 표정은 얼마나 절실했던지. 촉수 괴물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던 진혁마저도 호기심이 동했다.
설마 꼼장어 맛은 아니겠지?
“그거 요리 쉬워요?”
엄마가 곽향림에게 배운다고 하셨지만 척척박사 조일헌이니까 다른 방법도 알지 않을까.
“기양- 망댕이맨치루 가을바람이 말렸다가 꼬챙이루 꿰서 불이다 궈먹기만 해두 뒤여-. 그 머여, 맛 알지? 그거마냥.”
아, 맛조개처럼 말려서 구워 먹어도 된다. 머릿속에 메모.
“살짝 데쳐서 고기마냥 마늘이랑 고추 느가꾸 쌈싸서두 먹구잉? 그래두 볶음이 최고여어-. 거기다 밥 비벼 먹으먼 아주 기양 끝내 줘어-. 뭐 탕인지 매운탕인지루 먹는 디두 있다는디 좋은 재료이다가는 물 타먼 안 되는겨어-. 술이다 물 탈 거먼 뭐더러 마신다니?”
“저는 술 안 마시는데요오-?”
“아이구, 그렇지. 유진이는 콜라 마시지. 콜라이다 물 타는 생각허먼 뒤여-.”
“아아-.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에요오-.”
물어보길 잘했다.
조일헌은 정말 척척박사라는 말이 아깝지가 않다.
“오빠, 오빠!”
유진이가 새고자리를 탕탕- 두드렸다.
“응? 왜?”
“꼬치구이 맛있겠어요오-.”
역시 아이들의 로망은 꼬치구이겠지. 멧돼지 갈빗대를 잡고 고기를 뜯은 이후 유진이는 꼬치와 갈빗대에 집착했다. 그만큼 뇌리에 콕 박히는 맛과 운치였다는 뜻이겠지.
감정 풍부한 조일헌의 설명을 들은 진혁도 그 맛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더 지체할 필요가 있을까.
“가자!”
“출바알-!”
“많이 잡어 오너-!”
트르릉-! 퉁탕탕탕-.
성큼성큼 걷는 진혁을 뒤로하고, 조일헌도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기다리는 진혁이네 집을 향해 출바알-!
퉁탕탕탕탕-.
100미터쯤 운행했을까.
끼이익-!
중요한 게 생각난 사람처럼 급정차한 조일헌이 뒤를 돌아보았다.
“허이구-, 뭔 놈의 걸음이 축지법이 따루 웁디야아-. 천 으르신맨치루 빨러어-.”
남매는 이미 언덕을 오른 후였다.
언덕에 가려 진혁은 보이지 않고 지게 위에서 목청껏 노래 부르는 손유진만 보였다.
“꼬기럴! 짭으러! 싼으러어우- 갈까효오오오-!”
투타타탕-.
“지넥아아아아아-! 유진아아아아아-!”
퉁타타타타탕-.
“이뼝에! 까득히! 넣어가지꼬오-써허어어- 얏냐냐냐냐냐냐냐-.”
노래를 부르는 건지, 비명을 지르는 건지.
엔진 굉음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 목청이었다.
아이답지 않게 긴 호흡은 어떻고. 유진이 복식 호흡하니?
“헛걸음일 텐디······.”
조일헌의 목소리는 끝내 진혁의 귀에 닿지 못했다.
오늘 물 안 빠지는디······. 저눔이 웬일루 정신머리 내버리구 물때두 안 챙긴다냐.
혹시 원망이라도 들을까 싶어 조일헌은 속력을 올렸다.
진혁과 반대 방향으로.
부탕타타타타탕-!
지넥이는 그렇다 쳐도 손유진은 화나면 무섭다.
헛걸음한 걸 알면 조일헌에게 사자후를 날리고도 남을 녀석이다.
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