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85화 (185/338)

< 겁쟁이 (2) >

*

손광연의 표정은 밝았다.

손광연은 대가 세서 귀신 따위 겁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옛날 사람이어서 어린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라도 있을까 초상집에 데려가길 꺼렸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안 와서 썰렁할 거다, 혹시 사채업자가 찾아오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아내가 안쓰러웠는데, 마침 큰아들이 제 발로 함께 가겠다니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역시 우리 아들. 엄마 심경을 헤아리고 보듬는구나.’

이래서 큰아들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라고 손광연은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콧바람 쐬실 분은 같이 갑시다. 봉투는 내가 하죠.”

나름의 정해진 의전이야 어떻든, 장례식의 의미는 망자가 아닌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아내의 성장기를 지켜주며 가슴에 지문처럼 남은 언니를 위로하는 일에 조문객이 많은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아내를 위한 결정이며 제안이었다.

양강욱 다음으로 손광연의 의중을 잘 헤아리는 문석일이 나섰다.

“모두 간다. 환복 하는 데 10분 주겠다. 양 팀장이 없으니 지휘는 명현우가 맡아라.”

선글라스를 쓰고 쪼그려 앉아 개털을 빗기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삭도 훈련대장의 위엄이 느껴졌다.

SSS가 군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갖추고 재집결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터질듯한 근육을 검은색 슈트로 가리고 나온 장진남을 발견한 문석일이 선글라스 너머로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장 선배도 가십니까?”

“사모님께 입은 은혜가 있는데 내심 같이 가자고 해주시길 바랬어오.”

참으로 오랜만인 가주 일가의 외출.

비번으로 자리를 비운 요원과 당직 요원을 제외하고 모두 따라나서니 SSS만 여덟 명이었다.

임시 지휘관을 맡았지만 작은 도시의 장례식장에서 명현우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장 선배 너무 많이 먹지 마세요. 어제도 소 한 마리는 드시는 거 같던데.”

“먹는 걸로 너무 그러지 말아오. 장례식장에서는 많이 먹어야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는 거래오.”

“체하시기라도 하면 주 의무관이 싫어할까 봐 그럽니다.”

더워지기 시작했던 올해 초여름, 조개를 구워 먹은 장진남이 배탈이 났을 때였다. 덩치가 커도 너무 커서 수액이 다른 이들보다 세 배는 들어간다며 주신영 의무관이 한숨을 쉬었더랬다.

“신영이는 원래 나만 미워해오. 내가 신영이 바로 윗기수였거든오? 괴롭힌 적도 없는데 나만 보면 이를 갈고 그래오.”

조미료가 적당히 들어가서 참 맛있네오. 명현우가 잔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장진남은 육개장을 퍼먹는 일에 집중했다. 커다란 덩치가 입가를 붉게 물들인 모습이 썩 볼만했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 명현우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위협이 될 만큼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너무 없어 한산했다.

‘일요일이고 사람이 가장 많아야 할 둘째 날인데 너무 적적하네.’

손광연의 가족과 SSS를 제외하면 몇 명의 중년 남자만 자리를 지키고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손광연 일행 도착 후 희미하게 밝아진 유족의 얼굴을 보며, 명현우는 SSS 요원 모두에게 참석을 지시한 문석일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쟤는 좀 이상한데?’

진혁을 발견한 명현우의 두툼한 목이 모로 꺾였다.

평소 눈을 반만 뜨고 다녀 요원들 사이에서는 ‘졸린애’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진혁인데. 커다랗게 뜬 눈으로 눈동자만 천천히 굴리고 있지 않은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턱을 당기고 목을 움츠린 모습.

마치 겁먹은 강아지 같았다.

***

장례식장에 발을 들였으나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혁은 조문 행렬의 말석을 차지하고 먼발치를 서성였다. 형의 얼굴을 매만지며 즐거워하는 정원이를 안은 채였다.

“응아-, 응아-. 엄마 바뿌우-.”

형 얼굴을 찌그러뜨리는 놀이도 질렸는지 엄마에게 가자고 보채는 정원이를 어르며, 그저 지켜보았다.

아빠를 비롯해 검은색 비즈니스 슈트를 착용한 SSS 요원들이 근엄하게 선 모습, 상주 역할을 하는 김인랑이 진혁의 가족과 동료들을 반기는 광경.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랑이가 고생이 많다.”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했다. 밤을 샜는지 부숭부숭한 얼굴의 김인랑이 철부지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코-, 우리 이쁜 유진이도 왔네?”

“삼촌, 여기 고기 맛있어요오-?”

유진이도 아빠와 삼촌들을 따라 영정 앞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오-. 영정에 대고 작게 인사하는 유진이를 본 황가윤과 황가영이 입술을 꾹 닫았다. 뜻밖의 복병을 만나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유진이를 주시하며 반짝이는 눈, 울었는지 주위가 약간 부어 있었다.

아마도 입관식 때 울었겠지.

다들 그렇다고 하더라. 아무리 밉고 보기 싫었던 사람도 그 순간에는 모든 걸 용서한다고. 끝내 하지 못한 말, 토해내지 못한 원망, 사무친 원한이 눈물로 쏟아져 나온다고.

울고 웃는 모습. 누구에게나 평범한 모습으로 비칠 터였다.

저게 인간이겠지. 멀리서 지켜보던 진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러 왔어-. 어린애들까지 데리고······.”

“언니 보고 싶어서 왔지.”

김응녀와 황가윤, 황가영을 차례로 안아 다독이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어떤 그늘도 찾을 수 없었다. 입가에 미소마저 띤 채 대화를 나누는 엄마와 김응녀는 살가운 자매 그 자체였다.

김응녀 모녀를 살피며, 진혁은 저도 모르게 안력을 돋우었다.

‘인상이······ 너무 다르다.’

황가영은 가끔 멀리서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가족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낯익은 얼굴이었으나 눈빛도, 낯빛도 진혁이 기억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약간의 피로감 외에는 여느 평범한 이웃과 다르지 않은 얼굴.

아니, 더 나아가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A whole new world.’

2년 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이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있을까. 비록 노래를 떠올리며 대하는 감상은 창작자가 의도한 것과 다를지라도.

과거로 돌아온 것과 더불어, 이 또한 경이로운 마법을 구경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선생님들 식사부터 하셔요.”

김응녀의 안내로 SSS 요원들이 좌식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여전히 현역 군인으로 보일 정도로 반듯한 SSS 요원들의 몸가짐이 장례식장에 엄숙함을 더했다.

범인이 흉내 내지 못할 무게감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소주잔을 비우던 사내들이 눈동자를 굴렸다. 언제 욕설 섞인 대화를 나눴냐는 듯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장내를 관찰하며, 복도로 눈을 돌려 딴청을 피우며. 진혁은 괜스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서성였다.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갸웃거리는 명현우와 눈이 마주쳐도 개의치 않았다. 정원이 달래기와 김응녀 세 모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왔으니까 나 하나쯤 들어가지 않아도 모르겠지······.

“얘가 우리 큰아들-. 어? 진혁이 거기서 뭐하니?”

아, 티나는구나.

“이리 와서 인사드려. 엄마가 얘기했던 이모야.”

빛나는 엄마의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호감과 호기심이 함께 어린 김응녀 모녀의 눈빛도 진혁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이러니하다.

겁내던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다니.

초면의 재회.

진혁에게는 중대한 순간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저를 질시하던 과거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이상한 세계의 손징역에게 빙의한 듯한 괴리감도 들었다.

정원이를 안은 채 조심조심 다가갔다.

유진이처럼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 진혁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어쩜, 훤칠하기도 하네. 와줘서 고마워.”

상중이었기에 말을 아꼈지만 진혁의 손을 당겨 쓰다듬는 김응녀의 눈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아······.’

미처 떠오르지 않던 기억이 마법처럼 살아났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캠퍼스에 찾아온 김응녀의 마지막 모습.

김응녀는 진혁의 손을 잡고, 뺨을 쓰다듬었다.

뭐라고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음성은 남지 않았다.

당연히 직접 겪은 일인데도 말이다.

- “■■ ■■■■ ■■■. ■■ ■■■■ ■■■.”

다만 그날의 느낌은 바람처럼 뺨을 스쳤다.

후련함, 서러움, 아쉬움, 측은함 그리고 외면.

진혁은 그저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게 서서 김응녀의 시선을 외면했던 것 같다.

낡은 사진첩을 헤집듯 기억을 뒤져봐도 김응녀에 대한 증오나 원망은 파편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월에 풍화되었거나, 아예 실재하지 않았거나.

‘미안해요.’

진혁은 김응녀의 손등을 다독이며 영문 모를 사과를 보냈다.

김인랑의 옆에 선 황가윤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눈이 마주치자 황가윤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 사람이 그 본드쟁이 날라리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둥글게 웃는 눈이 나 착한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황가영과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미처 펴지 못한 검지로 진혁을 가리키는 열아홉 단발머리 여고생의 입꼬리가 어설피 올라갔다.

“······ 알아요.”

매일 아침 운동장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학생. 3년간 같은 학교, 다른 건물에 공존했으니 진혁을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일 터였다. 손진혁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 소리를 들어야 정상이니까.

용기를 내어 황영모의 영정을 보았다.

비록 사진으로만 존재했지만, 진혁의 기억과 유일하게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조금은 다르네.’

영정 속 황영모의 두 눈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에도 멀쩡했던 눈이, 현생에는 사시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제와서 궁금할 것도, 딱할 것도 없었다. 뭔가 사고가 있었겠거니 생각할 뿐.

형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정원이를 엄마에게 안겼다.

“응아-, 우응아!”

“제가 아직 인사를 못했어요.”

그래도 망자 앞인데 예는 갖추도록 할까.

망자가 아닌 유족을 향한 상례다.

조문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 이미 죽은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일이 대수인가. 몇 번이고 고민을 거듭하다 기자를 피해 장례식장을 찾은 겁쟁이 손진혁은, 그렇게 케케묵은 원수에 대한 묵례를 합리화했다.

「고인에 대한 예는 헌화와 묵념으로 부탁드립니다.」

차마 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영정 앞에서 눈을 감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다시 태어나거든 착하게 사시오.’

이것으로 우리 악연은 없는 셈 칩시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우리 엄마 괴롭히려 들면 그땐 두 번 죽을 줄 알아.

황영모에게 닿지 않을 경고와, 어디엔가 존재할 절대자를 향한 발원을 함께 남겼다.

***

손진혁은 늘 헛헛함에 시달렸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셨다.

어쩌면 텅 비고 허했던 가슴을 대식의 습관으로 채우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건 돌아온 후에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할 텐데 식사해요.”

“네······.”

그런데 어쩐일인지 지금은 황가윤이 다가와 음식을 권할 정도로 손을 대지 않았다. 맛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배가 안 고프다. 아니, 고픈데 먹고 싶지 않은 건가? 안 먹어도 배부른 건가?’

이게 무슨 소리야······.

과거로 돌아와 잠시도 쉬지 않고 학교까지 질주했던 날만큼이나 신기했다.

진혁을 아는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봤지만, 소식가 손진혁은 유진이를 위해 편육을 집어줄 때만 젓가락을 들었다. 한쪽 팔로는 여전히 정원이를 안은 채였다.

옆에 다가온 황가영이 진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진혁과 눈이 마주치자, 겁먹은 아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저······ 애기 안아봐도 돼요?”

그 또래 여학생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진혁에게는 오히려 새로웠다.

정원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혁은 아기가 황가영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몸을 틀었다.

“오부우-.”

정원이는 황가영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제법 우람해졌으나 첫돌이 지나고도 100일 조금 넘었으니 정원이는 여전히 옹알이를 하는 아기였다. 순둥이였지만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도 황가영을 보며 방긋 웃었다.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듯이. 그 모습이 겁쟁이 형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진혁은 더 고민 없이 아기를 넘겼다.

“너무 예뻐요······.”

정원이를 안고 눈을 빛내는 황가영을 보며 진혁이 용기를 냈다.

“정원아, 누나야. 누나라고 해봐.”

“우우운나-.”

집에서도 유진이를 보면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비죽 내미는 정원이다. 새로 생긴 누나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어마나? 누나? 누나?”

황가영은 아기에게 엄마 소리를 들은 초보 엄마처럼 감격한 모습이었다.

그 애틋한 호들갑을 지켜보던 황가윤도 옆에 꿇어앉아 누나 대열에 합류했다.

“애기야, 나도 누나야.”

“애부우-.”

찹찹-.

“아야야-.”

그러나 황가윤은 누나로 인정받지 못했다.

헛소리를 용서하지 않는 정원이의 단호한 손에 입을 구타당하지 않았나.

“언니는 아니래-.”

“그러게? 이상하네. 애기야, 얘랑 나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 나도 누나야아-.”

“애빼뿌우우-!”

찹찹-!

“아야야야-.”

“언니는 늙어서 안 된대-. 아하하!”

유족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 세상이라면, 아기가 있는 곳 어디든 웃음꽃이 피고 화해의 바람이 분다. 그곳이 전쟁터든, 장례식장이든.

‘데려오길 잘했네.’

진혁은 해맑게 웃는 두 자매를 보며 저도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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