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들 (8) >
***
“별짓 다하네 진짜.”
집으로 향하며 연신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마 불상사를 막았기에 망정이지, 장군이가 없었다면 웃음 대신 욕설을 뱉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장군이가 최고야.’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이 가볍다.
진혁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장군이, 유진이와 더불어 산책을 다닌다. 지금 왜 그게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다리 아플까 봐 지게에 태우고 다니는 날도 많았다. 장작과 낙엽을 장만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지고 다녔기에 지게가 편했다.
‘어릴 때 아빠가 그렇게 태워주셨지.’
추억.
이제는 또래뿐 아니라 시골 어른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도구가 되어버린 지게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오빠의 마음을 아는지 지게에 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유진이를 보며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지게만 지고 다니는 건 아니다.
가을에 볏가마도 메어 봤고, 봄에는 모판도 날라 봤다.
무더운 여름에는 넓적한 칡이파리가 잔뜩 붙은 칡덩굴도 산더미처럼 짊어다 염소와 토끼에게 먹인다.
‘그런데 개 도둑 메어 보기는 처음이네.’
개 도둑 하나 들쳐메었을 뿐인데 어릴 때의 추억부터 동생과의 일상까지, 별생각이 다 떠오른다. 항상 눈앞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똑똑히 걷던 사람이었는데, 전에 없던 의식의 흐름이 기이했다.
개 도둑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맥박이 다소 빠른 편이었지만 호흡이 안정적이었고, 자극 반응도 정상이었기에 별도의 응급처치 없이 들쳐메고 집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늦은 밤, 제집 마당에 많은 남자가 서성이는 모습이 반가웠다. 적어도 저들은 불청객도, 도둑도 아니니까.
집을 구경하는 사람, 까치발로 서서 나뭇가지를 당겨 과일을 따먹는 남자, 누렁이와 검마를 쓰다듬으며 쭈쭈쭈 거리는 사람 등. 출동한 경찰이었다.
“곧 여기 책임자가 올 테니 경관들께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당직 SSS 요원 김상호가 경찰을 응대 중이었다. 최근 발령받은 젊은 요원인데,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진혁이 따로 연락을 취해두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저기 오네요. 이제 저 사람과 얘기하시면 됩니다.”
경찰은 요원의 손짓을 따라 진혁을 발견하고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고치고는 경례를 올려붙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
“이 사람부터 받아주세요. 개 도둑이에요.”
어어-, 소리를 낸 경찰 두 명이 급히 마군천을 넘겨받았다.
경찰 상부에 연이 있는 인물일지 모르니 대놓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지는 못했으나, 진혁을 곁눈질하는 그들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사지가 풀린 마군천의 꼴이 무슨 큰 사고라도 당해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으니.
“갑자기 기절했어요. 안 때렸어요.”
“아, 예······.”
특별한 외상이나 혈흔이 보이지 않아 경찰로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입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나는 거품이 흐르는 것 외에는 병증도 없고.
“어떻게 된 거냐면요-.”
한숨 돌린 진혁이 상황을 설명했다.
다시금 홍기준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요원 덕분에 잠깐 지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마 홍기준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금세 떠났을 것이다. 마을에 수상한 움직임은커녕 잔치로 떠들썩한 집을 지나왔을 테고, 막상 도착한 진혁의 집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한 명은 저기 보이는 이층집 마당에 있어요. 수송책은 여기서 삼 킬로미터 정도 나가다 보면 보건소 뒤편 공터에 있구요. 오 톤 트럭이 있을 텐데, 거기 다른 삼촌이 잡아두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잠시만요. 자네들 먼저 보건소로 출발해!”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진혁의 설명을 듣던 중 다른 경찰에게 지시했다.
“트럭이 많이 부서졌을 거예요. 변상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전해주세요.”
어찌됐든 재물 손괴다.
개 도둑을 감금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누가 봐도 과한 처사였다.
진혁은 분풀이를 위한 제 행동에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아빠 돈으로.
“네. 참고하겠습니다.”
어차피 고소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나설 필요 없는 사안.
책임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른 경찰에게 손짓했다.
“자네 둘은 저 집에 가서-.”
“거긴 제가 가야 해요.”
“예? 왜죠?”
진혁은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책임자에게 앞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 말만 듣거든요.”
“누가요? 개 도둑이요?”
*
진혁은 경찰을 이끌고 좁은 밭둑길을 따라 최미경 청소년의 집으로 이동했다.
백문百門이 불여일견不如一犬.
날랜 도둑을 잡는 데는 대포 백 문보다 개 한 마리가 훨씬 낫다는 뜻으로, 이 말은 한서漢書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지 않는다.
“장군아, 워워-. 홍시, 천마, 광마도 그만해.”
그런데 똑똑하고 용맹한 개가 한 마리가 아닌 네 마리라면.
“저저저-, 저 좀 잡아가세요!”
도둑은 차라리 경찰을 택하게 된다.
진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공석두는 뒤편의 경찰을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진혁의 명령에 따라 네 마리 개가 재빨리 공석두에게서 떨어져 얌전히 앉았다. 재빠르고 절도 넘치는 동작이 잘 훈련받은 군인도 흉내 내기 힘들 듯했다.
지켜보던 경찰도 혀를 내둘렀다.
공석두에게서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장군이 패거리에 많이도 시달린 모양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동태의 그것처럼 퀭했는데, 무서운 기숙사 사감 눈치에 졸음을 쫓던 과거 고등학교 친구들의 눈을 보는 듯 딱했다.
그렇다고 용서할 마음도 없고, 현행범으로 잡혔으니 진혁 마음대로 용서할 수도 없다. 법치국가 아닌가.
경찰이 공석두에게 수갑을 채우고 미란다 원칙을 읊는 사이, 진혁은 걸음을 옮겼다.
마당을 벗어나 도로로 이동 후 팔을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여기 좀 봐주세요.”
경찰 하나가 진혁에게 다가갔다.
“이 길 따라 이 백 미터쯤 올라가시면 오토바이 두 대 있어요. 이 사람들이 타고 온 거예요. 중요한 증거물이 될 거 같아서요.”
“아, 예. 감사합니다. 일을 많이 줄여주셨네요.”
줄인 게 아니라 다 해줬지. 따라온 SSS 요원 김상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경찰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승을 부리는 개 절도단을 잡았으니.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에서 골머리를 앓았거든요. 이 지역이 원체 넓은 데다, 경찰서도 없어서 출동한 후에는 이미 늦거든요.”
“근데 이 사람들은 왜 개를 훔치는 건가요? 개가 비싸요?”
경찰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물었다.
“올여름이 보통 더웠습니까? 식당에 파는 거죠. 수급이 어려우니까 식당에서 값을 잘 쳐주고, 다 큰 개를 훔치면 먹이고 키우는 돈도 안 들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진혁은 머리가 띵하고 욕지기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나쁜 놈들. 다른 일도 많은데 왜······.”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진혁의 한숨 섞인 푸념에 경찰이 끼어들었다.
“빠삭한 거죠. 개를 어디에 팔면 되는지, 훔친 개는 누구에게 팔아야 탈이 없는지.”
“아······.”
그렇구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
인간답지 못한 추악한 행동을 굳이 분석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바쁜 진혁은 얼간이 호사가들처럼 쓸데없이 생각과 말을 얹어 피로도를 높이기를 꺼렸다.
아무튼.
그저 돈벌이를 위한 도둑질이라고 생각했는데, 몸담은 세상의 지식을 도둑질에 활용하는 거였어. 그렇게 생명을 해치고 제 배를 채웠겠지.
잠시 이마를 짚어 뭔가를 생각한 진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 추궁해서 어디에 팔아넘겼는지 확인하면 다른 패거리도 잡을 수 있겠네요?”
“예. 그동안 꼬리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이놈들을 잡았으니 뿌리 뽑을 수 있을 겁니다.”
친절하게 구는 경찰을 보며 진혁은 다시금 홍기준의 대단함을 실감했다.
경찰은 보통 이런 경우 ‘알아서 하겠다’고 대답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들의 평소 태도를 지적하는 건 아니다. 대외비나 보안이라는 것도 있으니 경찰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었다.
“김우돈이 알아요. 걔가 머리가 좋아요.”
둘의 대화를 듣던 공석두가 얼간이처럼 입을 빠끔거렸다.
경찰이 홱 돌아섰다.
“김우돈? 그게 누구야?”
“도매하는 놈인데 마당발이에요.”
경찰이 눈을 빛냈다.
“자세히 말하면 내가 책임지고 너는 잘 봐달라고 위에 얘기해준다.”
“김우돈이 누구냐면, 선생질하다가 짤리고 개장수하는 놈인데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여기저기에-.”
아-. 진혁이 나지막이 탄성을 내었다.
김우돈의 낯이 왜 익었는지 생각났으니까.
‘씨름부 코치.’
이름은 몰랐지만 얼굴을 떠올려 보니 분명 그 사람이었다.
배가 고파 찾아갔던 진혁을 몸이 작고 깡다구가 없어 보인다며 거절했던, 전생의 그 씨름부 코치.
“이봐. 쓸데없는 줄거리는 빼고 수사에 도움이 될 내용을 내놓는 게 좋지 않겠어?”
“아, 더 들어봐요. 나, 나는 순리적으로다 말을 못하니까.”
수첩을 든 경찰을 앞에 두고 공석두가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동안, 진혁은 허리에 손을 얹고 서성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왜 씨름부 코치가 낯설었는지, 괴팍하던 이병세가 어쩌다 인간미 넘치는 선생이 되었는지 감이 잡혔다.
‘홍기준 아저씨였구나.’
진혁의 체육계 진출을 계기로 홍기준이 교육계에 힘을 썼을 거라는 추리가 가능했다. 그렇게 폭력과 욕설을 일삼는 지도자들을 물갈이한 게 아닐까. 진혁을 위해서.
- “넌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 “내가 도와주마. 넌 하고 싶은 거 하며 행복하게 살아.”
- “어릴 땐 그렇게 살아도 돼. 어른이 되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잖니?”
홍기준은 오래전부터 진혁을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미안함도 함께였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어디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진실을 간직한 자가 느끼는 고독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진혁은 늦게나마 홍기준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걸리는 말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그러지 못한다······.’
얼마나 굴리려고 그러시나?
입은 은혜가 있기에 지금도 열심히 돕고 있지만 월급쟁이 생활 하고픈 마음은 없는데.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진혁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에 가서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고.”
“마군천 그 새끼 나쁜 새끼예요. 혼자 살겠다고 사라졌어요.”
“사라지긴 뭘 사라져? 먼저 차에 타고 있다.”
“정말요?”
“경찰이 거짓말하는 거 봤어?”
“예.”
스읍-.
경찰이 째려본 후에야 공석두가 입을 다물었다.
진혁은 요원에게 다가갔다.
김상호는 마당을 향해 기울어진 굵은 은행나무를 보며 허어-, 감탄 중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는 없겠죠?”
“응, 아무래도.”
김상호가 진혁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고생했다는 의미겠지.
“너 오기 전에 얘기를 나눠봤는데, 전국에서 저런 놈들 때문에 많이 시끄러운 모양이야.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이지.”
이제 알려지겠구나.
그렇다면 홍기준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언론에 나가지 않도록 부탁해야겠다.
뭐, 도와줄 테니 재미나게 살라며?
***
무아의 경지에 오른 눈동자가 서재 너머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잔잔히 가을이 내려앉은 오전의 정원, 마음에 평화를 선물하는 바흐의 선율과 진한 커피 내음.
“크으-.”
“아빠, 커피 마실 때 할아버지처럼 굴지 마.”
책을 보던 홍수정이 홍기준을 타박했다.
‘얘는 좀 나가서 놀지 왜 내 서재에서 이래라 저래라······.’
그래도 딸이 최고다.
모처럼 아빠 쉬는 날이라고 빠져있는 운동도 거르고 함께 머물러 주지 않나.
홍수정이 눈을 빛냈다.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의 결과를 궁금해하던 유명선의 눈과 닮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진혁 오빠 오늘 아홉 시 뉴스에 나오는 거야?”
“아마······.”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홍기준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잘 나올 거야.”
진혁은 여전히 홍기준에게 뭔가 말하기를 어려워했다.
그래서 문석일을 통해 넌지시 부탁을 했겠지.
- “사건이 조용히 묻혔으면 하더군요.”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전국 시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던 조직적 절도 행각.
빗발치는 민원에 경찰 수뇌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홍기준이 크게 터뜨리라고 요구하지 않았어도 떠들썩한 공치사를 좋아하는 경찰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훔친 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들인, 장물 고매죄를 적용할 식당 업주를 색출해야 하고, 단순 거래를 넘어 범죄에 가담해 그 죄가 큰 공범도 식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때까지 보도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통책이 입을 열지 않고 거래 내역이 담긴 장부도 없으니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옛날부터 사위는 도둑이라 했다.
내 딸을 훔쳐갈 놈인데 이제 조용히 살 생각은 말아라.
미래의 도둑을 위해 현재의 도둑과 거래하는 것쯤이야 장사꾼에게 뭐가 어려울까.
전화기를 들었다.
“수정아, 아빠 통화 좀 할게.”
“그런 거 허락받지 마.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해. 편하게.”
까불이 딸의 너스레에 소리없이 웃던 홍기준이 표정을 고쳤다.
통화연결음이 울리기 무섭게 받아든 상대방 때문에.
“아, 청장님? 쉬시는 날 자꾸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 어허허! 그런 말씀 서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