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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82화 (182/338)

< 도둑들 (7) >

***

트럭 엔진룸을 가격하자, 짐칸에 성처럼 쌓인 닭장이 크게 흔들렸다.

그저 주먹을 질렀을 뿐인데 강판이 움푹 파였고 차체 밑으로는 냉각수가 주루룩 떨어지기 시작했다.

끼이잉- 끼잉-.

적재함에서 애처로운 쇳소리가 들렸다.

변고가 생겼음을 깨달은 수십 마리 개가 일제히 내는 앓는 소리였다.

“꺼내줄게. 잠깐 기다려.”

먼저 할 일이 있다. 개들을 향해 중얼거린 진혁은 운전석을 노려보며 문짝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어 운전자를 꺼낼 생각은 아니다.

흡!

꽈앙-! 꽈자작-.

체중과 감정을 모두 실은 펀치에 운전석 문짝이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이번에는 조수석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콰앙-!

조수석 도어도 똑같이 무료로 개조해주었다.

달칵달칵-.

문이 열리는지 적당히 힘을 주어 확인했으나 형체를 잃은 문짝은 아무리 장사라도 열기 힘들 듯 보였다. 진혁 자신 외에는 말이다.

“어디 가지 마.”

운전석을 노려보며 그리 말을 뱉은 진혁은 곧장 짐칸으로 이동했다.

바람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짐칸에 뛰어올라 마구잡이로 닭장을 열었다.

“꺼내줄게. 물지 마.”

겁에 질렸음을 증명하듯 뒷다리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녀석들은 진혁의 손을 핥았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감사 표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도, 집도 모르는 수많은 개들. 녀석들 하나하나 쓰다듬어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축하했다.

‘이렇게 보니 우리 장군이처럼 마음이 가네.’

몇 마리인지 세어 보지는 않았으나 30마리가 족히 넘는 듯했다.

“가. 가아-. 집으로 가. 집으로!”

역시 사람 손을 탄 녀석들이었다. 거푸 뒤를 돌아보면서도 갈 길을 찾아 어둠을 헤치는 모습을 보면 말을 알아듣는 듯하지 않은가.

웡! 컹컹!

되찾은 자유 덕분인지 목청에도 힘이 넘쳤다.

반면, 떠밀어도 끝까지 남아 진혁의 곁을 맴돌고, 신발을 핥는 녀석도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걸 보면 떠돌이 개는 아닌 듯한데 왜 이러는 걸까.

‘아, 어쩌면······.’

진혁은 다시 운전석으로 이동했다.

운전자는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있을 뿐, 달리 도주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왜 이래?’

탕탕-.

주먹으로 운전석 문을 두드리자 퍼뜩 정신을 차린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한 얼굴에 잠시 갸웃댄 진혁이 목에 힘을 주었다.

“이 개들 어디서 가져왔어?”

“······몇 마리 빼고는 다 이 동네 애들······ 입니다.”

“몇 마리 빼고? 그 몇 마리는 어디서 왔지?”

“재동리······.”

“이런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꽈아아앙-!

일격이면 충분했다.

5톤 마이티 트럭 차체가 장난감 자동차처럼 요동쳤다.

분노한 진혁의 일격에 적재함 사이드 도어가 크게 변형되고, 짐칸에 실린 빈 닭장이 우르르 떨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훔친 거냐!”

몇 마리나 죽였느냐 물으려다 급히 바꾸었다.

입에 담는 것 자체로 이 자를 죽이고 싶어질 것 같았으니.

“차에서 내리면 지옥을 보게 될 거야.”

으득, 이를 깨물었다.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라. 운전석의 사내를 향한 분명한 경고였다.

어차피 이 자의 도주는 불가능하다.

진혁은 뒤편의 조력자를 돌아보았다.

“감시 좀 해주세요.”

“음. 알고 있었니?”

굵은 은행나무 뒤에서 문석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트 안 켜셨어도 엔진 소리는 들렸거든요.”

“그래. 가 봐.”

주머니에 손을 꽂은 문석일이 손짓했다.

그러면서도 잠시 갸웃댔다.

자전거로 질주할 때면 바람 소리가 청력을 방해하는 탓에 조용한 가솔린 엔진 소음을 파악하기 어려울 텐데. 하긴, 저놈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자전거에 오른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왜애애애앵-. 퍽-!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바퀴의 회전수를 감당하지 못한 자전거용 발전기 라이트가 터져버렸다.

개의치 않고 달렸다. 어둠에 적응한 후였기에 시야는 충분했으니.

이 밤이 가기 전에 할 일이 많을 듯했다.

지나쳐 온 순찰차를 바로 따라잡아야 현장 인계도 수월할 테고.

‘장군이가 경찰들한테도 침을 흘리는 건 아니겠지?’

장군이 밥도 챙겨주어야 한다.

***

문석일은 운전석의 사내를 구경하듯 기웃거렸다.

핸들을 쥐고 기도를 하는 건지, 잠이 든 건지 모를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똑똑-. 차창을 두드렸다.

“나오고 싶어?”

자세를 고치지 않은 사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정신적 충격이 큰 듯했다.

“흐음-.”

상쾌한 가을 공기에 불쾌한 냄새가 섞였다. 아마도 차에 밴 여러 짐승의 체취겠지. 진혁이 리모델링 하고 떠난 차량을 감상했다.

‘이걸 어떻게 한 거지?’

차체 정면과 문짝에 각각 하나씩의 주먹 자국.

주먹만큼만 파인 것도 아니고 운석이 떨어진 듯 처참하게 구겨졌다. 마치 크레이터처럼 화려하게 변형된 강판.

‘나도 해볼까?’

그리 생각한 문석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의 문석일이 아니다. 마음이 편해지니 엉뚱한 상상을 하고 주위를 살피는 여유까지 생기지 않았나.

최미경으로부터 손진혁이 갑자기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뒤를 쫓았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 조용히 뒤를 밟았다. 손진혁을 달리기나 자전거로 쫓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

보건소 뒤편 공터까지 쫓아와 진혁이 벌인 일을 목격한 다음에야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다.

‘볼수록 신기해.’

캔처럼 찌그러진 운전석 문짝을 훑으며 혀를 내둘렀다.

외제 트럭에 비해 강성이 떨어지는 강판이라지만 인간의 주먹으로 찌그러뜨리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애초에 인간의 격을 뛰어넘는 이상한 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잊고 사는 날이 많았다.

‘평소에는 티를 안 내니까 다들 몸 좋은 운동선수로만 알고 사는 거지.’

문석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김인랑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혁과 대화하다가 저도 모르게 꿀밤을 먹였다던가.

‘희한한 재주야.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서 제 존재를 지우는 능력이 있어.’

공작원으로 훈련받을 때 가장 중요하게 교육받은 내용이다.

눈에 띄는 행동 없이 주위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역량. 진혁은 의도하지 않고도 비범함을 숨기는 재주가 있었다. 물론, 그냥 보기에도 비범하지만 그 이상의 능력을 의미하는 거다.

‘하여간 재밌는 놈이야.’

문석일은 자신에게 이런 괴력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곤 했다.

프로 복서로 나서 세계 챔피언이 되어 떼돈을 벌 수도 있고, 은행 금고를 통째 훔칠 수도 있지 않을까? 부잣집 도련님들이 모이는 불법 격투장에서 지존 대접을 받을 수도 있겠지. 나아가 마음에 안 드는 놈은 모조리 목을 돌렸을 거다. 어릴 때 뒷골목에서 저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간 놈까지.

‘악하게 태어나는 인간은 그게 정상이지.’

문석일은 성악설을 믿는다.

하나 진혁은 달랐다.

완력이라는 담백한 말로써 설명하기 어려운, 광포한 근력을 그저 일상을 지키는 데에만 사용한다. 자전거를 고치고, 퇴비를 연구한다며 개똥을 모으고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 낙엽을 모아온다. 동생들과 마실을 다니고, 주말에는 텃밭에서 풀을 뽑는다.

힘이 없어도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이었다.

미처 소비하지 못한 힘이 엉뚱한 일에 쓰일까 걱정되어 운동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받았다. 뭐, 그렇게 해도 힘이 남아도는 것 같지만.

쩝-.

하여간 이해 못할 놈이다.

저를 해하려 들었던 자신은 너그러이 살려두면서 알지도 못하는 개를 구하기 위해 차를 캔처럼 찌그러뜨려 임시 감옥을 만들다니.

“아, 근데 언제까지 감시하라는 말을 안 하고 갔네?”

아까 지나쳐간 순찰차라도 보내주겠지?

운전석에 있는 놈 끄집어내서 스파링이나 할까?

덩치도 좋아서 힘 좀 쓸 것 같다.

덜컥-.

‘안 되겠네.’

그저 궁금해 열어본 것처럼 손잡이를 당겨 봤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는데 몇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른 동네에서 납치된 개들이 얌전히 앉아 문석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달빛에 반사된 눈동자에 서린 푸른 안광이 은근히 께름칙했다.

황야의 스산한 밤, 늑대 떼에 포위된 떠돌이가 느낄 법한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가아-. 저리 가아-. 가, 가까이 오지 마.”

헤헤헥-.

가라는 말을 개코로 들었는지 개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 오지 말라고오-. 야잇-. 침 묻히지 마아-.”

오늘 잔칫집 간다고 물광 낸 구두란 말이야······.

개들은 문석일도 은인으로 여기는 듯했다.

***

마군천은 타고난 얍삽함 덕분에 개에게 쫓기지 않고 몸을 피했다.

지능이 낮고 주위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얕은꾀는 알아줬다. 말 그대로 꾀가 얕아 뻔히 보이는 뻘짓이었지만.

달아나려던 공석두가 도베르만에게 바짓단을 물려 엎어지는 순간, 마군천은 눈에 보이는 창턱을 밟고 올라 몸을 피했다. 그 후 벽돌 틈을 딛고, 우수관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후, 저놈이 개들 주인인가?’

한마디 명령에 저 무서운 개들이 물러서고, 개들의 대장인 듯한 발바리가 반가워하는 걸 보니 그런 듯했다.

공석두를 구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대형견 한 마리는 어찌어찌 때려눕힌다 해도 다른 두 마리가 달려들 게 아닌가. 다행이라면 놈들이 공석두를 찢어발기지 않는다는 거랄까.

개들은 공석두를 조롱하듯 주위를 빙빙 돌았고, 어떤 녀석은 올라타고 방방 뛰었다. 공석두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귀 가까이에서 이를 딱딱거리는 것이, 지능이 높은 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지고 노는 것 같네, 시벌.’

개들의 주인이 사라진 후, 마군천은 조용히 집안으로 진입했다.

옥상에서 옥외계단을 타고 내려가 2층 내부로, 2층에서 실내 계단을 타고 1층으로.

그리고 지금은 최미경의 집 주방에서 밥을 먹는다.

찹찹찹-.

생사의 기로에서 탈출하자 긴장이 풀리며 극도의 허기가 몰려왔다.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고는 해도 밥을 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몸을 숨기고 돈 될 만한 물건을 찾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한데 집안에 있는 물건은 죄다 큼직해서 들고 갈 만한 물건이 없었다.

찹찹찹-.

무슨 씨름대회 천하장사 어쩌고 써진 트로피와 금송아지가 진열장에서 빛나는데 분명 도금이겠지. 저런 건 체육사에서 돈만 주면 살 수 있고, 훔친다 해도 어디 팔지도 못한다. 누가 사겠냐고.

여기저기 뒤지고 싶지만 그럴 시간도 없고, 바깥의 개들이 소음에 반응할지도 모를 일이다.

찹찹찹-.

‘더럽게 맛있네, 시벌.’

밥솥은 비어있고, 냉장고에는 반찬뿐이어서 포기하려 했는데 식탁 위의 납작한 전골 냄비가 눈에 띄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지역 토속 음식인 듯했다.

‘게국지? 께꾹지?’

그런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런 음식 아닐까. 머리 나쁜 마군천은 그리 추측할 뿐이었다.

냄비 안에는 꽃게와 우거지, 고등어, 백김치 비슷한 음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대체로 꽃게 된장찌개와 비슷한 맛이었다.

밥까지 푸짐하게 말아져 있어 숟가락만 있으면 한끼 뚝딱이었다. 그런 음식이 5인분은 되는 듯했다.

볼수록, 먹을수록 묘한 음식이다. 석박지까지 들어있어 반찬도 필요 없었다.

박박박-.

사형수가 즐기는 최후의 만찬이 이에 비할까.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냄비 가득 있던 음식을 깨끗하게 긁어먹었다.

“어후-, 살겠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슬슬 도망쳐야지.

커튼을 젖혀 마당을 내다보니 공석두는 하나님을 찾으며 우는 것 같았고, 발바리는 마치 그를 달래주려는 듯 연신 핥아댔다. 나쁜 개는 아닌가 봐.

셰퍼드는 공석두의 허벅지를 꾹꾹 눌렀고, 도베르만은 이제 오른발이 아닌 왼발을 핥았다. 리트리버는 얌전히 앉아 그 모든 광경을 구경했다.

유난히 깨끗해진 공석두의 오른쪽 발바닥이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뒷문으로 조용히 나가면 되겠다.’

공석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선 내가 살아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마군천은 백부의 심장을 겨냥한 조조의 심정으로 공석두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영웅이 된 듯, 고양감마저 느껴지는 비교였다.

신발을 벗고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벗어났다.

안전하다고 느껴질 무렵 신발을 신고 오토바이까지 달렸다.

헥헥헥-.

“씨벌! 이제 살-.”

“여어-, 개 도둑 왔냐?”

“어우, 씨벌 놀래라!”

마군천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퀴벌레처럼 발을 분주히 놀려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앉았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 없는 밤, 숲 그림자만 고요히 터를 지킬 뿐.

“뭐, 뭐야! 귀신이냐!”

그때 숲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검고 키가 큰.

그 형체가 천천히 다가오며, 꿈결같은 음성으로 마군천의 고막을 간질였다.

“기다렸다. 어서 가자.”

소름 끼치는 기시감에 마군천의 눈알이 터질 듯 요동쳤다.

저런 말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전설의 고향.

앉은 채 얼어붙은 마군천의 몸이 옆으로 스스륵 넘어갔다.

*

“얼라리요?”

진혁은 땀이 식어 끈적거리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귀찮게 됐다.

경찰에 인계해야 하는데 순찰차는 모두 진혁의 집에 모여 있다.

아마도 홍기준 아저씨가 불러준 주소로 출동한 거겠지.

“저기요오-. 아저씨? 괜찮으세요? 정신 차려 보세요.”

어깨를 툭툭 두드렸으나 눈을 까뒤집고 실신한 개 도둑은 깨어나지 않았다.

“하-, 이거 어쩌지?”

도주한 놈을 먼저 잡아 경찰에 넘길 생각이었는데 맛탱이가 가버렸어.

유진이에게 응급구조교육을 하며 강조했던 내용이 있다.

요구조자를 차별하지 말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이 없다 해도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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