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들 (6) >
***
바람처럼 달려 장군이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다.
의심되는 건 단 하나, 개 도둑뿐이었다.
‘아, 다행이다!’
장군이는 별일 없는 듯했다.
진혁을 발견하고는 혀를 빼물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곤경에 처한 개로 보기 어려웠다.
후우우-.
길게 숨을 빼니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의 변화가 신기했으나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히익끼잉-.
진혁이 도착하자 늑대울음을 멈춘 장군이가 애처롭게 낑낑거렸기에.
‘역시 도둑놈들이었어.’
장군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빙빙 도는 곳에 두 대의 검은색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최태양과 칡뿌리를 캐기 위해, 유진이와 밤을 줍기 위해 뒷산으로 진입하던 길목이다.
‘이런 벼락 맞을 새끼들이······.’
진혁은 이를 아득 깨물었다.
히이이- 끄이이-.
비맞고 병든 개처럼 쇳소리를 내는 여섯 개의 생명이 진혁에게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다. 옴짝달싹도 못할 만큼 좁아터진 닭장에 갇힌 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 다가갔는지도 모르게 철제 닭장에 다섯 손가락을 걸었다.
콰드득-!
그대로 찢어내는 거다.
육성찬네 메리, 누구네 도꾸, 도사견 짬푸,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세 녀석.
안전한 곳에 맡기라고 그렇게 당부를 해도 무시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대처를 별일 없으리라는 방심이며 자만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가구가 다붓하지 않은 산촌散村, 개를 끌고 이웃을 찾자면 그 또한 하나의 지루한 여정인 까닭이다. 차라리 찾아와 맡긴 사람의 정성을 특별하게 여길 일이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일만은 아니었다.
“가. 집으로 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던데 짖기만 하다가 잡혀온 건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 “개 피를 많이 묻힌 사람은 개헌티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여어-. 도사견? 야, 개장수 앞이서는 걍 고깃덩어리고 괭이 앞의 쥐새끼여-.”
그 냄새를 맡은 개는 저항은커녕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친다고.
허세를 패시브로 장착했을지언정 척척박사 조일헌은 다방면에 해박한 사람이다. 깊이 있는 전문지식은 아니더라도 잡학다식한 그의 수다는 일상생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덕분에 이 무서운 개들이 어떻게 잡혀 오게 된 것인지 상황을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으니.
‘도사견까지 훔치는 놈들이라니.’
꽁지가 빠져라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대형견을 보는 진혁의 심경은 뿌듯함보다 분개였다. 이제는 어둠 저편으로 희미해져 가는, 김응녀 가족에게 남은 앙금보다 더 선명한 분노.
보안 전화기를 꺼냈다.
뒷배라는 걸 싫어하지만 이럴 땐 사용해도 될 것이다.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일이 아니니 아저씨도 이해해주시겠지.
뚜루룩-, 채 한 번의 신호가 울리기 전이었다.
마치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수화기 너머로 홍기준이 등장했다.
- 음, 진혁아.
언제 들어도 따뜻한 음성이다.
‘햐, 목소리 들었다고 이렇게 반가울 일인가.’
영혼 각인 효과겠으나 홍기준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
머리가 뜨거웠던 탓일까, 진혁은 두서없이 상황설명을 늘어놓았다.
- 죄송은 무슨. 우리 진혁이 부탁이면 들어줘야지. 기다려 봐. 내가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아니, 아니에요. 그냥 저기 그 머야-.”
어버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으니 사고회로가 정지된 기분. 몸은 갈수록 커가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정신머리는 예전 같지가 않다. 냉매 빠진 에어컨처럼 더운 바람만 풍기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개 도둑 잡는 일에 경찰청장은 도가 지나치다.
“가장 빨리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셔서 전화 드렸어요. 일일이에 신고하면 이 시골까지 언제 올지도 모르고요.”
SSS가 나설 일이 아니다. 진혁은 그리 판단했다.
외부에 노출되어서도 곤란한 인력일뿐더러, 상주하는 인원은 현재 잔치를 즐기고 있다. 당장 진혁만 해도 갈비탕을 먹다가 나온 게 아쉬운데 그들의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힘 좋은 SSS 요원이 제압 과정에서 도둑에게 불필요한 부상이라도 입힌다면 골치 아파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경찰에 넘기는 게 가장 확실해.’
상대가 단순 절도범이라면 후환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 그편이 가장 인간적인 처리법일 터였다. 이는 어쩌면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진혁의 바람이 반영된 판단일 것이다.
‘이제 이놈들을 어떻게 잡아둬야 하나.’
두근두근-.
황영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도, 1km 남짓을 전력으로 질주해도 멀쩡했던 심장이 너무나 빨리 뛰었다. 홍기준이라는 믿음직한 뒷배에게 느끼는 위안과 별개로, 개 도둑들에 대한 노여움이 그만큼 컸다.
잠시 생각하며 뜸을 들인 사이, 전화기 너머에서 다른 통화를 마친 홍기준이 진혁을 다독였다.
- 위험하면 나서지 말고 기다려. 금방 갈 거야.
“감사합니다.”
- 아니다. 고맙다.
홍기준은 늘 이런 식이다.
통화가 끝날 때마다 고맙다는 말로 맺곤 하는데, 도대체 뭐가 고마운지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꽈드득-.
통화를 마치고는 닭장을 모두 우그러뜨렸다.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 혈압을 잠재울 수 있을 듯했다. 물어내라고 하면 몇 푼 주지 뭐. 우리 아빠 돈 많다.
철제 닭장을 모조리 찢어 공처럼 구겼어도 손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철망을 뭉쳐 몇 개의 공을 만들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장군아?”
그런데 장군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통화할 때도 장군이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 이놈 시끼가 그새 어딜 간 거야?”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는다.
장군이니까.
그제야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이놈 보게? 이제 보니 지 친구들 구해 달라고 날 부른 거였어?’
살다 살다 개에게 이용당할 줄이야.
*
이 순간 장군이가 무사하다는 사실보다 큰 안도는 없었다.
마음에는 강 같은 평화, 위장에는 폭포수 같은 소화액.
‘허기지네.’
갈비탕 두 그릇과 돼지갈비찜 두 접시가 완전 연소 되는 데에는 전력 질주 한 번이면 족했다.
떨어진 연료는 다시 보충하면 되고, 그러자면 어서 일을 마무리 짓고 잔칫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역시 논리적이다.
워우우우-.
진혁은 장군이의 하울링을 쫓아 분주히 발을 놀렸다.
으르르-. 크르르-.
이제 위협음만으로도 어떤 개인지 분간하는 경지에 올랐다. 저토록 살벌하게 으르렁거리는 녀석은 광마뿐이다. 정말 순하고 애교 많은 녀석임에도 땅강아지나 굼벵이를 보며 이를 드러낼 땐 정말 미친개 같았다. 으르렁거리는 것에 반해 하는 짓은 딴판이지만.
‘누굴 잡아두고 있구나.’
역시나, 소리를 따라 최미경의 집에 닿자 마당 한복판에 복지부동인 거수자를 발견했다. 어둠에 어울리는 완벽한 위장복이었으나 시멘트로 허옇게 포장된 마당에서는 너무나 잘 보였다. 벗겨진 신발과 양말 덕분에 발바닥도 눈부셨고.
어쩌면 발바닥이 깨끗한 건 광마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으르르-.
광마 저 녀석은 뭔가를 핥을 때면 저렇게 전투 사운드를 내더라.
“그만.”
오른쪽 발바닥을 핥던 광마가 진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리를 벌렸다.
홍시는 개 도둑의 머리맡에 앉아 도주로를 점하고 있었고.
‘장군이는 왜 등에 타고 있는 거니?’
오랫동안 함께 살며 제법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장군이는 정말 이상한 개다.
헤헤헥-. 제압한 사람의 목덜미를 연신 핥아대는데 분비액이 과도했다.
장군이의 충성스러운 부하 천마는 앞발로 개 도둑 등짝을 꾹꾹 누르는데, 흡사 견락마사지라도 해주는 듯한 모양새였다. 평소에도 홍시의 등에 꾹꾹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녀석답다. 아, 지가 고양이냐고.
“내려와. 멧돼지 아니야.”
헤헤헥-.
그래도 진혁의 말을 잘 따라서 다행이다.
진혁은 늘 개들에게 주의를 주었더랬다.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고.
고개를 들어 진혁을 발견한 공석두가 다급히 외쳤다.
“저, 저기요! 저는 그냥 지나가는-.”
“쉬잇-.”
공석두의 머리맡에 쪼그려앉은 진혁이 검지를 입에 댔다. 홍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하면서였다.
아무리 20세기라 해도 그렇지, 어디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지나가는 나그네 드립을 치려고 하시나.
“내가 지금 기분이 엄청 안 좋으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해.”
으르릉-.
공석두의 귀에는 또 다른 으르렁거림이었다.
개를 이렇게 잘 부리는 사람이라 개의 언어로 말하는 건 아닐까? 순간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누가 더 있지? 어디 있어?”
공석두가 눈을 굴렸다.
“눈 굴리지 말고.”
“보, 보보-.”
공석두가 말을 더듬었다.
“말 더듬지 말고.”
“보건소 뒤에-.”
잉?
오토바이가 두 대라서 공범을 물은 것인데 보건소가 어쨌다고 이러는 거냐.
보건소는 여기서 3km 넘게 떨어져 있다.
“아저씨,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면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지금 밥 먹다 와서 기분 안 좋다고!
“지지지지, 진짜로요! 한 명은 거기서 기다려요!”
“오토바이 타고 온 사람은?”
“저야 모르죠. 여기 엎어져 있는데 다리 달린 놈이 어디로 튀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멍청해 보이는 공석두의 얼굴도 신뢰도를 높였다. 개에게 포위되어 두꺼비처럼 엎드린 상황에 잔머리 굴릴 엄두는 내지 못할 듯했다.
“장군아. 이 사람 어디 못 가게 잡고 있어.”
헤헤헥-.
다시 공석두의 등 위에 폴짝 올라탄 장군이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저, 저기-.”
“반항하면 먹어 버려.”
“히익-!”
진혁의 서슬 퍼런 엄포에, 공석두가 뺨을 시멘트 바닥에 바짝 붙였다.
‘뻥인데. 진짜 바봉가?’
그저 약자의 입장이 되어 겪어보라는 뜻이다.
피식자의 무력감을, 약자의 공포를.
‘네놈들이 개에게 했던 대로 당해봐라.’
집으로 향하던 진혁은 잠시 멈칫, 뒤를 돌아보았다.
헤에에헥-.
장군이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안광을 흘리며 공석두의 목덜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과도하게 흘린 침이 공석두의 목덜미에 뚝뚝 떨어졌다.
그때마다 공석두가 목을 움츠렸다.
‘음······.’
에이, 설마.
장군이는 그렇게 분별력 없는 개가 아니야.
월-.
장군이가 낮고 굵직하게 명령을 내렸다.
광마는 공석두의 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핥기 시작했고.
천마는 안마를 재개했다.
“으흐흐흐흑-. 하나님 아버지-.”
공석두의 흐느낌 섞인 기도는 아무런 응답을 얻지 못했다.
***
마을 어귀 보건소 근처 공터.
유통업자 김우돈은 5톤 트럭 운전석에 앉아 초조한 심정으로 동업자들을 기다렸다.
공석두와, 마군천.
실력도 좋고, 오랜 친구 사이라 손발도 잘 맞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초짜들은 기동성이 떨어지는 차량을 이용하거나 아무 옷이나 입는데 공석두와 마군천은 검은 옷을 유니폼처럼 챙겨입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진입한 농가에서 잠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다가 잠잠해지면, 여지없이 무거운 개를 들고 나타났다.
김우돈은 기록적 폭염이 기승을 떨친 덕에 올해 돈을 좀 만졌다.
성견이 없어 팔지 못할 지경이었으니까.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택한 방법이 민가의 개를 훔치는 것이었다. 마군천이 제안했다.
“왜 안 와······?”
매수자가 기다리는 천안까지 가려면 국도를 따라 세 시간을 달려야 한다.
최근 들어 도로 사정이 나아졌다지만 거치는 길은 어두운 2차선 시골 도로가 대부분이다.
오토바이에 실린 닭장을 채워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걸리지 않는 이들인데 두 시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야밤에 개가 가득 실린 대형 트럭을 몰아 촌구석으로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발끝을 세워 다리를 달달 떨었다.
부우우우-.
“응? 뭔 소리여?”
부우우우-. 바가각-.
엔진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곧이어 노면 마찰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빨간 불빛을 본 김우돈은 급히 머리를 숙였다.
쿵-.
“으앗-, 씨.”
급히 머리를 숙이다가 핸들에 이마를 찧었다.
격통이 올라오는 곳을 부비며 조심스레 눈을 굴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이 깡촌에 뭔 순찰차가 저리 많다냐.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악마의 혓바닥 같은 붉은빛 경광등이 고요하게 야음을 깨우며 질주했다.
공석두와 마군천이 작업을 하러 간 마을로.
“이런 십-.”
김우돈은 망했음을 직감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스피드.
급히 차키를 더듬었다.
잘 꽂아둔 열쇠가 어디 도망칠 리 없는데 왜 급할 땐 안 잡히는 걸까.
크리리릭-. 키리리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멀쩡하던 스타트모터가 말썽이다.
“하 씨- 돌겠네, 진짜. 어?”
푸념을 뱉고 재시도하려던 김우돈이 전방을 보고는 얼어붙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했으니.
아니나 다를까, 운전석 정면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꽈과앙-!
드드드등-.
“으아악-!”
김우돈은 재차 이마를 찧었다.
굉음에 이은 엄청난 진동.
고속주행하다 전봇대를 들이받은 듯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