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들 >
늘 고민했다.
뭘 해야 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진혁은 유진이와 어울리는 시간이 쌓이며 비로소 오빠의 역할을 깨달았다.
우선은, 유진이가 할머니가 되어도 예쁘다는 말을 해줄 오빠가 될 생각이다.
그저 예쁘다, 예쁘다만 해주는 게 전부는 아니다.
‘돈도 중요해.’
음료를 준비하듯 필요한 걸 제공하고, 배를 만들어주겠다 약속한 것처럼 갖고 싶어 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구해주는 것도 분명 동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오빠랑 맨날 맨날 노니까 너무 좋아요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유진이가 좋아하는 게 없었다.
운동선수 오빠를 둔 이유로 늘 진혁과만 어울려야 했던 최미경 청소년의 아쉬움을 유진이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미경 언니네 검마 보러 가요오.”
“그래.”
유진이와 머물며 동심을 다시 알아가는 기분이 진혁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동생과 지낼 때야말로 진정 새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새살이 돋아 흉터를 밀어내는 듯한 정서였다.
*
“다 왔다아-! 검마야아-!”
오빠가 선물한 자전거를 팽개치고 달려갈 정도로 유진이는 강아지를 좋아했다.
‘내 동생 마음을 훔쳐간 도둑놈.’
요즘 유진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강아지가 부러워 시샘하게 되지만 두발로 걷는 진혁이 참기로 했다.
강아지가 오빠보다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최미경 청소년네 누렁이는 올여름 다른 동네 진돗개와 짝을 맺었는데, 최장환은 종견의 권리를 주장하며 수캉아지를 얻어왔다.
진돗개라기에 누렁이와 닮은 암컷일 거라 생각했는데, 강아지가 입은 털옷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 예쁘다아-.”
“햐-, 진짜 귀엽다.”
끼잉끼잉-.
누렁이 아들 까미가 유진이의 볼을 핥으며 꼬리를 뱅뱅 돌렸다.
털이 대체로 검고 눈두덩 부위가 반점처럼 흰색 털이 있는 블랙탄이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한 경험이 있는 진혁에게도 신기하고 예쁜 강아지인데 유진이 눈에는 오죽했을까.
“검마 훔쳐가고 싶어요.”
와, 유진이 정말 많이 컸구나.
그런 표현도 할 줄 알다니. 그 정도로 예쁘다는 뜻이겠지.
“유진아, 도둑질은 나쁜 짓이지요?”
“맞아요. 나쁜 짓이에요.”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쉬운 눈빛이었다.
홍시가 강아지였을 때 몰래 집안에 들여와서는 끌어안고 자던 동생이다. 진혁은 유진이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름은 제대로 불러주면 좋겠는데.
“유진아, 검마가 아니라 까미래.”
“제가 붙인 이름은 검마예요. 천마, 광마, 검마.”
검은색이라 검마라고 붙인 거겠지?
본래의 이름 외에 애칭을 불러 애정을 표할 순 있는 거니까. 진혁은 더 고집하지 않았다. 럭키와 맥스도 진혁이 천마와 광마로 바꿔버리지 않았던가. 천마에 광마까지 있는데 검마도 있을 수 있지.
‘그럴 거면 탄마도 괜찮은데.’
까미를 품에 안은 유진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동네는 개 도둑 안 오면 좋겠어요오-.”
“개 도둑?”
“네, 마을회관에서 그랬어요. 요즘 개 도둑이 극성이래요오! 멍멍이들은 개 도둑한테는 짖지도 못하고 그냥 끌려간대요.”
저녁 달리기를 하다가 그런 방송을 들은 것도 같다.
낮에 동네를 염탐하고는 밤에 검은 옷차림으로 다시 나타나 개를 작은 철망에 가둬 훔쳐간다고.
“오두바이로 그렇게 훔친대요. 오두바이는 막, 음음- 차보다 빠르고 좁은 길도 다니니까요. 오두바이에 철창을 네 개씩 싣고 다니면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유진이였지만, 오빠 눈에는 그저 똘망하고 귀엽게 비쳤다.
내 동생이지만 어쩜 이리도 똑똑할까, 진혁이 흐뭇하다 못해 행복한 눈빛으로 동생을 볼 때였다.
뿌다다다다-.
검은색 125cc급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유진이가 까미를 급히 숨겼고, 진혁은 덩달아 유진이를 등 뒤로 숨겼다.
‘검은 옷!’
철망으로 만든 상자도 네 개가 실려 있었다.
‘닭장수인가?’
뒤에 실린 것은 실제로 닭장수들이 사용하는 철망으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빠다다다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진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능숙한 솜씨로 방향을 틀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간 것이다.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
붙잡아 묻고 싶었지만 동생만 남겨두고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렇게 능란한 레이서가 모는 모터사이클보다 빨리 달릴 재주도 없고.
개 도둑이라면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다음을 기약하고 미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진아, 이제 가서 씻자.”
“네에-. 검마야, 잘 있어-.”
집으로 가면서도 진혁은 오토바이가 사라진 곳을 거듭 돌아보았다.
‘역시 찝찝해.’
집집마다 개가 있고 진혁의 집에는 네 마리나 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
별다른 소동 없이 평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았다.
어쩌면 당연한 평화였다.
마을 안팎으로 수상한 사람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SSS가 자진해서 순찰을 돌았고, 농번기에 접어든 들녘의 낮은 농부와 기계로 북적였으니. 그런 곳에서 대놓고 도둑질을 할 분들이 계실까.
문제는 밤인데, 마을회관에서 개를 안마당에 들이고 대문을 잠그라는 안내 방송을 지속하며 주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운 덕분인지 도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두바이는 돌아다녀요. 제가 어제도 봤어요오-.”
거수자 보고를 하면서도 유진이는 오빠의 과학실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혁은 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정성껏 작업에 임했다.
뽀골뽀골뽀골-.
세숫대야에서 쉴새 없이 기포가 올라왔다.
자전거 튜브를 담그고 꾹꾹 누르던 중 드디어 구멍난 곳을 찾은 거다.
“헤에-, 찾았다-.”
“헤헤-, 찾았다아-.”
쪼그려 앉아 구경하던 오빠 껌딱지 손유진이 진혁의 말을 따라했다.
지켜보던 문석일도 덩달아 미소지었다.
행동과 표정까지 어딘가 미묘하게 닮은 남매, 체격 차이는 확연하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 노는 모습처럼 흐뭇하다.
자전거포에 가지고 가서 수리하는 게 어떠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동네에 가게라고는 달랑 두 개 있는 구멍가게가 전부였고, 자전거포는 읍내에 나가야 구경할 수 있으니.
어차피 진혁에게는 1학년 때부터 해온 일이다.
구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펑크가 났을 때 진혁은 척척박사 조일헌에게 자전거 관리법부터 수리방법까지 자세히 배워두었다.
“오빠, 오빠. 이제 빵꾸 때우는 거예요오-?”
“응, 그래야지.”
등교할 때 앞바퀴 탄력이 어제와 다르기에 체중이 불었나 생각했는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결국 바람이 모두 빠져버렸다. 진혁은 1km 정도를 자전거를 끌고 귀가해야 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토요일 하교 후 자전거를 손볼 계획이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주유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들어온 경고등이 반가운 기분이랄까. 차를 소유해 보지 않아 그 기분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재밌어 보여요오-.”
“응, 재미있어.”
고된 주행을 증명하듯 타이어는 닳고 경화되었으나, 철사나 못이 박힌 자국도 없이 깨끗한데 내부 튜브에 펑크가 나는 건 아무리 겪어도 신기하다. 찢어지거나 터진 것도 아니어서 찾으려면 매번 이렇게 세숫대야와 물 등, 컨트리 과학실험 도구를 투입해야 했다. 맨눈으로는 아무리 시력이 좋은 진혁도 찾는 게 여의치 않았으니까.
“마른걸레-.”
“네에-.”
오빠 곁에서 조수를 맡은 유진이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튜브에 묻은 물기를 슥슥 닦아내는데 걸레가 자꾸 걸린다. 예전에 때운 곳이 그만큼 많았다.
물기를 닦아내고 미리 준비한 폐튜브를 가위로 오렸다.
사각사각- 타원형으로 오려지는 튜브를 보는 유진이의 입이 동그랗게 말렸다.
유진이는 오빠가 뭘 할 때마다 유심히 지켜보며, 그렇게 홀로 감탄하곤 했다.
“본드-.”
“네에-.”
“냄새 맡으면 안 좋으니까 조금 떨어지는 게 좋을 거야.”
“네!”
빡빡하게 닫힌 원통형 강력 본드 통 뚜껑에 일자 드라이버를 걸어 서서히 젖혔다.
뽁-. 뚜껑이 열리며 휘발성 강한 냄새가 발달한 진혁의 후각을 괴롭혔다.
절로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냄새다. 어떤 덜떨어진 청소년들은 문방구에서 파는 본드가 아니라 이 강력 본드를 불다가 완전히 맛탱이가 가기도 했다지.
멀찍이 떨어진 유진이는 두손을 포개 코와 입을 막았다. 숨은 어디로 쉬려고 그러니? 눈이 워낙 커서 눈으로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자면서 방귀를 뿡뿡거리는 걸 보면 직장으로 호흡하는 게 아닌가 의심될 때도 있는 동생이다.
‘직장으로 호흡하는 생물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뭐였더라?
그게 손유진이라는 생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이제 본드를 떠서 튜브 조각에 바를 차례다. 유진이가 먹은 아이스바 막대기를 버리지 않고 이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킁킁-. 이거 서주아이스네. 우리 유진이가 우유 맛을 좋아하지. 진혁의 개코가 아이스크림 이름을 진단해냈다.
“정말 엿 같아요오-.”
“으응?”
뜻밖의 과격한 언사에 반개했던 진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드요. 엿처럼 늘어져요.”
“아. 그렇지. 엿 같지.”
오해할 뻔했다.
사는 게 엿같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어린아이 입에 오를 법한 말도 아니었고, 자전거 튜브 때울 때 쓸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진혁에게 이건 재밌는 작업이니까.
‘헤헤-, 내 자전거.’
두 번째 태어나서야 처음 가져본 자전거다. 당연히 타 본 것도 처음이다.
진혁은 2회차 열네 살이 되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거다.
그래서 걱정이다.
“저 여덟 살 되면 두발 자장구 타는 거 오빠가 가르쳐 주세요오-.”
“으음-. 그래야지.”
흐으응-. 콧바람이 나온다.
진혁은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 몰랐다.
‘넘어지기 전에 세게 밟으니까 앞으로 가던데.’
그저 운동신경과 힘으로 자전거를 윽박질러 길들였을 뿐이다. 텍사스 카우보이가 들소를 길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뭐, 자전거가 뿔로 들이받고 덤비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스릴 넘치는 과정이었다는 의미다.
잘 펴 바른 본드가 마르도록 입김을 후-후우- 불었다.
말랑한 상태로 붙이면 이 녀석이 달팽이처럼 움직일 수 있으니 차라리 굳기 시작할 때 붙이는 편이 낫다.
오빠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고 눈이 가운데로 몰리는 모습에 유진이가 뭔가 느낀 듯했다.
“라면 먹고 싶어요.”
“흐크큭-.”
오빠의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고 뭔가를 연상하는 이 동생을 어쩌면 좋을까.
시험 기간 새벽에 공부하는 오빠 방에 와서는 아빠가 엄마에게 찹찹- 인공호흡을 하는 소리 때문에 깼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아니, 그······ 설왕설래하는 상호작용이 인공호흡으로 보일 수가 있나?
‘어질어질했지.’
그 후로 유진이는 2층에 마련된 방으로 침소를 옮기게 되었다.
아침에 오빠 방에서 눈을 뜨는 건 여전하지만.
라면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진혁도 뜬금없이 라면 생각이 간절해졌다.
운동하며, 건강을 관리하며 인스턴트를 멀리하는 삶을 살았기에 잊고 지내던 음식이다.
“우리 오빠는 라면 싫어해요오-.”
“싫어하지는 않아.”
가물었던 여름의 끝을 알리는 소나기가 퍼붓던 날, 진혁은 라면을 끓였다가 한 젓가락밖에 먹지 못했다. 코는 반가워하는데 혀는 그러지 않았는지 자극이 심한 탓이었다. 전생에 가장 좋아했던 소고기 맛 라면이었는데도 말이다.
“오빠 체질이 변해서 그런 거야.”
“엄마는 몸에 안 좋다고 라면 안 줘요.”
“오빠가 나중에 끓여줄게.”
“히이-.”
정말 좋을 때는 이렇게 말도 못하고 배시시 웃기만 하더라.
진혁은 가만히 머리를 디밀어 유진이의 이마에 비볐다. 바보처럼 웃어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생명체에게.
“울 애기 다리 저리겠다.”
“괜찮아요.”
이제 힘드러워요 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고, 괜찮다요 라고도 하지 않지만 진혁에게는 여전히 아기였다. 아마 성인이 되고, 그보다 늙고, 진혁이 죽을 때가 되어도 그 마음은 변치 않을 듯했다.
‘함께 낳은 아기니까.’
다른 부모들도 그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늙어도 자식을 아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
구멍난 곳에 튜브 조각이 잘 붙었으니 이제 공기를 약간 주입해 확인할 차례다.
“다 됐어요오-?”
“응. 잘 붙었네. 그래도 확인해봐야 해. 거기 펌프 좀 주세요-.”
“제가 할래요!”
유진이는 재빨리 펌프를 잡았다. 호기심 강한 아이들이란 이렇게 참견하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거겠지. 진혁은 굳이 동생을 만류하지 않고 공기주입구에 호스를 연결했다.
“잇챠 잇챠-! 으잇-!”
푸쉬-, 푸쉬-, 푸-쉬이-.
한 번, 두 번, 세에- 번.
“하이고-, 힘들어요.”
“그 정도면 됐어.”
자전거 펌프라지만 아이가 연속으로 사용하기에는 무겁고 힘도 많이 필요하다. 어른도 쉴 새 없이 펌프질을 하면 어깨와 허리에 통증을 호소했다.
다시 튜브를 세숫대야에 담그고 꾹꾹 눌렀다.
아무리 옛날 자전거라지만 하루 만에 바람이 모조리 빠진 게 수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뽀골- 뽀골-.
구멍이 하나 더 있었다.
헤휴-.
옆에 있던 장군이가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이 뭘 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네.
얼마 전 문석일도 말했던 바지만, 장군이가 쳐다보며 한숨을 쉬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