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하지 않는 것 (3) >
***
풍덩-!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불의의 사고란 늘 그렇듯 예기치 않게, 대비할 시간 없이 발생하는 법이니.
밧줄을 당기기 위해 좁은 뱃전에 모인 꼬맹이 중 하나가 균형을 잃고 탁한 바다에 빠진 순간, 손유진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공포와 맞닥뜨렸다.
목덜미부터 귀까지, 턱부터 뺨을 거쳐 이마까지 저릿한 기분.
‘어쩌지, 어쩌지?’
오빠에게 수영을 배웠다.
접영까지 익혔지만 그저 안전한 수영장에서 즐기는 목적으로만 사용하라는 오빠의 당부가 있었다.
- “사람이 물에 빠지면 사람은 생존본능 때문에 막무가내로 잡아당겨. 수영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 심해. 그래서 구하려는 사람도 위험해질 수 있어. 유진이는 힘이 약해서 누굴 구하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누가 물에 빠지면, 물에 들어가지 말고 밧줄이나 허리띠 같은 걸 길게 묶어서 던지는 거야. 알았지?”
배라고 부르기 민망한 김호진네 조각배에는 밧줄이 없었다.
유치원복에는 허리띠도 없다.
김호진이 몸을 숙여 팔을 뻗었지만 허우적거리는 이동호에게 닿지 않았다. 몸을 더 기울이면 김호진도 빠질 것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아아-, 오빠. 오빠-.’
곤란에 처하면 가장 힘센 이를 찾는 것은 본능일까.
서울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오빠를 애타게 찾았지만 허공에서 오빠가 나타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간절한 나머지 소변이 마려울 지경.
그러나 금세 눈물을 떨굴 듯하면서도 손유진은 침착하게 오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움직이기 전에 주위에 도움을 먼저 청하는 거야.”
누가 있을까,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이 구석진 갯마을에.
황급히 두리번거리는데 믿음직한 존재가 이쪽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치 손유진의 명령만을 기다리듯이.
“장군-.”
황망한 심사에 지친 체력까지 겹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손유진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자신이 힘을 내야 할 때임을.
이동호는 물에 빠졌고, 김호진은 이동호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
흐읍-.
숨을 들이쉬는데 그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절로 아랫배가 뜨거워지며, 알 수 없는 힘이 금세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장군아아아!”
끼야아아아아-.
친구들이 듣기에는 그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외침.
보이지 않는 기파는 물살을 가르고 숲을 흔들었고, 이어 언덕을 타고 올랐다.
그 짧은 순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오빠가 멧돼지와 싸운 날이었을 거다. 낮잠에서 깨어 오빠가 보이지 않을 때 이렇게 오빠를 부르며 울었다.
촤촤촤- 첨벙-!
짧은 다리로 물살을 가른 장군이가 기다렸다는 듯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을 그렇게나 싫어하는 장군이인데, 손유진이 부르니 부하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나선 것이다.
으르르-. 크르르-.
용감한 대장을 따라 홍시도, 천마와 광마도 뛰어들었다.
“장군아! 빨리!”
시계가 없어 이동호가 물에 빠져 허우적댄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구조는 그보다 짧은 시간에 이뤄졌는데도 역시나 길게 느껴졌다.
시야가 좁아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김호진! 밧줄 당겨!”
단호한 손유진의 말에, 김호진이 밧줄을 당겼다.
함께 뭍으로 나가야 추가조치를 취할 수 있다. 어른을 부르든, 들쳐업고 마을로 가든.
생각이 정리되자 시력이 돌아오는 듯했다.
손유진은 함께 밧줄을 당기며 이동호의 상태를 살폈다.
이동호는 가만히 누워 개들이 이끄는 대로 뭍으로 이동했다. 홍시가 이동호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밀어 올린 채 헤엄쳤고, 천마와 광마는 이동호의 몸이 기울지 않도록 좌우 어깨를 받쳤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손유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개들을 믿는 것 외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월월!
그런데 장군이는 왜 이동호 위에 올라탄 거니······.
배에 탄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는 전방을 향해 짖는데, 아무래도 명령을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닐까.
‘아, 큰일이다. 오빠 없어서 힘이 별로 없는데.’
전국 대회를 앞두고 훈련하는 오빠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정원이와 지내다 보니 힘을 비축하지 못했다. 그 검은 힘으로 이동호를 살릴 수 있는 건지도 불확실하다.
초조함이 지나쳐 아래턱이 간질거렸다.
손유진은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이를 꽉 깨물었다.
흐억-흐억-!
힘겹게 줄을 당겨 뭍에 닿았을 때, 먼저 배에서 내린 김호진이 숨을 헐떡였다.
“으어어-, 죽겄다아-.”
“야! 김호진! 까불지 마!”
입이 방정이라고 했는데 이런 순간에 왜 죽는다는 말을 하냐!
빼액- 지르는 호통에, 헐떡이던 김호진이 얼어붙었다.
눈치 부족한 꼬맹이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늘 웃고 상냥한 손유진 대장인데 말투도 변하고 갑자기 무서워졌잖여. 아, 근디 힘들어 죽겄다고 한 게 뭔 죽을죄라고 그렇게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본다냐.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김호진을 외면한 손유진은 다음 할 일을 궁리했다.
‘뭘 하랬더라?’
아, 오빠가 가르쳐 줄 때 딴짓하지 말걸.
놀라고 무서워서 가슴이 빨리 뛰는데 반해 머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답답했다.
-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반드시 누군가를 콕 짚어 지명해야 돼. ‘거기 노란 옷 입은 여학생, 일일구에 전화해 주세요!’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요청하면 서로 미루느라 머뭇거릴 수 있거든. ”
다행히 불특정 다수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여기 없다.
“김호진! 어른 불러!”
“이? 이이?”
“어른!”
어버버-.
허둥대면서도 김호진은 집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이미 손유진에게 한 번 혼났던 터라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오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랬지요?’
오빠와 함께 어울리며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은 대체로 즐거웠지만, 양치하라거나 씻으라는 잔소리를 할 때는 빠른 발로 도망을 다녔더랬다. 뭐, 오빠가 훨씬 빨라서 늘 잡혔지만.
잡을 때마다 오빠가 간지럼을 태우는 것도 재미있어서 손유진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복하던 일상이다.
안전교육이라는 걸 할 때도 손유진은 꾸벅꾸벅 졸다가 오빠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무튼, 제대로 듣지 못해 거듭 후회가 된다.
- “유진아, 잘 봐. 여기, 이렇게 단단한 곳이 흉강이라고 하는 갈비뼈 중앙이야. 이걸 씨피알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는 심폐소생술이라고 해. 갈비뼈가 눌릴 정도로 체중을 실어 누르는 거야. 일 초에 두 번 정도 눌리도록······.”
여전히 경황이 없었지만, 오빠가 시범 보였던 심폐소생술이 영상처럼 망막에 흘렀다. 손유진도 오빠에게 잘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아찌곰을 상대로 실습을 했더랬다.
그래서 아찌곰 옆구리가 또 터졌었지.
아, 이게 아니고. 손유진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으로 턱을 올리고-.”
검지와 중지를 모아 이동호의 턱이 들리도록 했다.
오빠는 이를 두고 기도 확보라고 했는데, 손유진은 기도라는 게 교회에서만 확보하는 게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제 므야므야를-.”
체중을 실어 강하게 누르면 된다.
“아이고, 힘드네요. 우리 친구, 뭐해요······?”
“가만히 있어!”
손유진은 한 번 더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하려던 일에 집중했다.
친구들보다 크고 무거운 손유진이지만 체중을 싣기 위해서는 일어서서 허리를 굽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후읍-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고는 오빠가 알려준 처치요령을 다시금 되새기며 몸에 힘을 주었다.
“일 초에 두 번! 서른 번 실시! 후압!”
“아악! 아파요! 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이동호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고즈넉했던 시골 바닷가에 울린 초음파가 물가의 주인 없는 숲을 흔들었다.
응?
손유진의 큰 눈망울이 요동쳤다.
마침 천길룡을 만나 곧장 되돌아온 김호진이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허, 참-. 혀를 차면서였다.
“그려어-. 이동호 아프다는디 손유진이 참어라. 살다 보먼 물에 빠질 수두 있구, 애덜은 그러먼서 크는 거지. 그, 머여. 그거 머-. 그게 뭐 그렇게 맞을 짓했다구 그런다니······.”
손유진이 큰 눈을 세 번 깜빡였다.
“이동호 살아났네?”
우리 친구, 내가 언제 죽었었나요? 이동호의 얼굴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반듯하게 누워있던 이동호는 고개만 까딱 들어 손유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황당한 친구는 일곱 살 평생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암만 봐두 너무허네이-. 애를 깔어뭉개구서는······.”
짱돌루 찍지만 않었지 자세는 아주 딱이여어-. 김호진은 손유진이 또 소리를 지를까 봐 말끝을 흐리며 천길룡의 뒤로 숨었다.
“아아-?”
이동호와 김호진을 번갈아보는 손유진의 고개가 장군이처럼 모로 꺾였다.
멍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미처 기억해내지 못한 교육내용이 떠올랐다.
- “익수자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해.”
경황이 없어 눈앞이 캄캄하고 시야가 좁아 살피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랬던 것도 같고.
- “호흡과 맥박이 없는 사람에게만 하는 거야. 겉보기에 의식이 없어도 확인을 해야 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이렇게 ‘여보세요? 정신 차려 보세요. 괜찮으세요?’”
분명 오빠는 아찌곰을 작게 흔들며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나도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녀석 정신을 확인한담? 손유진은 여전히 눈만 깜빡일 뿐, 눈꺼풀 외의 신체는 정지상태를 유지했다.
- “‘저는 응급구조교육을 받은 손유진입니다! 도와드릴까요?’ 하고 또박또박 동의를 구해야 해. 대답이 없으면 그때 실시하는 거야. 알겠지?”
의식 확인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까지, 내 나이가 일곱인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아, 이제라도 생각나는 걸 보니 기억은 하는 건가?
쩝-.
마침내 정지상태를 벗어난 손유진이 모자를 벗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민망한 나머지 코를 움찔거리면서였다.
다소 시무룩한 손유진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을까, 김호진이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말을 꺼냈다.
“거-, 애가 힘들어서 쭘 누워 있겄다는디이······.”
아주 걍 애를 잡네. 끝내 손유진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김호진이었다.
***
“창림이 너 이놈, 또 흰소리만 해보아라. 이 늙은이 퇴마주가 차사놈에게도 먹히는지 시험할 게여.”
사아아-.
돋보이는 대나무 하나가 굵직하게 떨었다.
“염병헌다. 네 놈이 천년 전에 살았든 뒈졌든 여기선 잡귀 나부랭이니라-.”
클클클-.
기분 좋게 혀를 차는 노인네 웃음소리가 융단처럼 언덕을 덮었다.
“살은 무슨 놈의 살. 어린애 고함에 놀라 영옥靈玉이 깨지는 살이면 그건 이미 살이 아닌 게여-. 클클클-.”
사아아-.
창림이라는 차사는 억울했지만 더 대거리하지 못했다.
차사의 자존심을 걸고 내세운 주장인데 증거랄 수 있는 살귀가 손유진의 외침에 산산히 흩어져버리지 않았나. 영옥이 깨졌으니, 이는 완전한 소멸을 뜻했다.
“아이 목소리가 잡귀를 부르기는 하지.”
웃음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아기 잃은 엄마 귀신, 아기 도둑 귀신.
울음소리에 홀리는 호랑이 귀신, 수탉 귀신.
온갖 잡귀가 꼬인다.
아기 울음이 길어지면 집안에 액이 닥친다는 말은 거기서 나왔다고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미의 간절함도 애틋함을 넘어 무지와 초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겹친 감정이라고. 늦은 밤, 아기가 울 때면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인적 없는 집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뒷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은 옛날 엄마라면 대부분이 해봤으리라.
“그건 다 아이 나름, 집안 나름이니라. 무조건이라는 건 없는 벱여-.”
사아-.
창림이 대나무를 한 번 흔들어 동의를 표했다.
차사는 기본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 반론을 대고 싶었으나 천길룡의 말이 옳은 까닭이었다. 양기를 타고 난 사람에게는 잡귀가 꼬이기는커녕 달아나니까.
그뿐 아니다.
저 늙은이가 언제 변심해 대나무를 베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어서 조심할 필요도 있었다. 천길룡에게 하대하고 짓까불던 척명이라는 이름의 후배 차사는 지난가을 망둥어 낚싯대가 되어버렸다.
어찌나 신통한지 물에 담그기만 하면 잡아내는 명기가 되었다고. 고기가 잡히면 방정맞게 떠는 초릿대 하며, 활처럼 휘어지는 몸체 하며. 손맛도 훌륭해 천길룡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었다. 형에게 물려받아 애지중지하던 명아주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낚싯대를 죽장처럼 사용 중이다.
“액운도 운. 아무리 더러운 액운이라 해도 말이다, 운이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벱이다. 뭘 지니고 있었는지, 누구와 있는지, 일월영측의 때도 중요한 게지. 허나, 뭐니 뭐니 해도 타고난 재주가 제일이다.”
운보다 중요한 게 영민함이다. 냉정하게 셈하고 대처하는 능력 말이다.
천길룡이 알기로, 손유진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대범함과 침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똑똑한 것이야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고.
게다가 영특한 개가 네 마리나 붙어 있었다.
“죽고 싶어도 못 죽지······.”
***
볕과 더운 바람에 금세 마른 옷에서 소금을 떨어내며 이동호가 울상을 지었다.
“어떡하지? 옷이 더러워졌어.”
경악할 사건의 당사자인 이동호는 아기 티를 벗은 듯, 더이상 유치원 선생님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정함을 버리고 호통을 치던 손유진처럼 말이다.
“일요일인디 손유진이 원복 입구 오라구 해서 그려. 이동호 가방두 젖었네.”
“유치원생은 원복을 입고. 어-,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손유진이 허망한 눈으로 얼버무렸다.
노란 옷을 입어야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고, 길을 잃어도 어른들이 찾기 쉽다고 했다. 그래서 손유진은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원복이나 노란 옷을 입으라고 강제했다. 안전을 위해.
“그래도 가방 때문에 살았어. 그게 물에 떴어.”
이동호는 짠물을 삼키는 와중에도 위에서 저를 끌어올리는 물체가 있음을 알아챘다.
어깨에 멘 유치원 가방이 겨드랑이를 잡은 채 부력재 역할을 하며 이동호가 가라앉지 않도록 버틴 것이다. 이동호는 끈을 잡고 머리를 올려 어렵사리 숨길을 틔울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버틸 때 홍시가 물속에서 이동호를 받쳐 올렸고.
“우리 집에 가면 세탁기도 있고 짤순이도 있어. 집에서 목욕도 하면 돼. 가자.”
천지가 뒤집어지는 충격에 놀란 것도 잠시, 꼬맹이들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까불거리며 시시덕대며 김호진의 집으로 이동했다.
“김호진, 내일 보자.”
“이이-, 들어가-.”
김호진의 집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고 손유진의 집으로 향하며, 이동호는 언제 놀랐냐는 듯 깔깔거렸다.
“헤헤헤-. 그래도 손유진 덕분에 살았어.”
이동호는 앞으로도 어딜 가든 유치원복과 가방을 메고 다니겠다 다짐했다.
“장난감도 멀쩡하다. 형들한테 자랑-.”
“야, 잠깐!”
네 마리 개의 호위를 받으며 버스 길을 걷던 손유진이 이동호의 말을 막았다.
“왜?”
“어······?”
손유진은 서서히 눈을 가늘게 뜨며 거북이처럼 머리를 앞으로 뺐다.
해를 정면으로 받으며 당당히 걸어오는 거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저를 마중 나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하고는 눈을 왕방울만 하게 만들었다.
“오빠······.”
입술을 한 번 달싹였다.
간절함보다 진한 여운이 묻어나왔다.
“오빠! 우리 오빠다! 우리 오빠다아아아아-! 오빠아아아-!”
웃으며 바람처럼 달리는 손유진의 뒤로, 미처 떨구지 못한 눈물이 휘날렸다.
“우아아아-! 오빠아아아-.”
무릎을 땅에 댄 거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팔을 활짝 벌렸다.
흔한 남매가 재회하는 소란의 한복판에서, 그 순간만큼은 장군이도 손유진을 추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