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60화 (160/338)

< 곽란의 서머 캠프 (8) >

진혁은 잘 익은 고기를 식혀 장군이와 홍시에게도 대접했다. 대장 뒤에서 꼬리를 흔드는 천마와 광마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른 장작 위에 올려주니 흙이 묻지 않아 좋았다.

“장군이두 많이 먹어이-?”

으르르-.

조슬찬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때, 장군이는 진혁의 친구들을 눈 아래로 보는 게 확실했다. 참으로 한결같은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할까.

“흠, 흠!”

언제 왔는지 야간 근무를 맡은 SSS 요원들도 장군이 뒤에서 어슬렁거렸다.

늦은 밤 삼겹살 굽는 냄새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나. 저들도 식욕 왕성한 청춘들이고, 일반인에 비해 근육량이 많아 에너지 대사 또한 활발할 것이다.

고기를 우물거리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넓혔다. 어차피 솥뚜껑은 넓고 고기는 많다.

“장군아, 잠깐 지나갈게-.”

으르르-.

SSS 요원이 다정하게 양해를 구했으나, 장군이는 꿋꿋하게 위치를 사수했다. 장군이는 그들마저 발아래로 여기는 듯했다. 장군이를 유교견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확고한 서열의식은 일말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 무슨 날이야?”

바람을 쐬던 중이었는지 손에 책을 든 민용락도 뒤에서 기웃거렸다.

민용락은 여름에도 밤엔 시원해 좋다며 휴가 때도 두더집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여자친구와 가족이 서울에서 다녀갔다.

모기가 덤비고 나방이 날아들어도, 아닌 밤에 벌어진 삼겹살 파티는 발 디딜 곳 없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덕분에 진혁은 고기와 음료수를 가지러 흙집과 집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와, 늦은 시간이라 다행이다.’

태양 형에 미경이까지 왔다면 닭 존슨 주니어 육 세 몇 마리 잡아야 했을지도 몰라.

“오빠, 무한다요오-?”

몸에 밴 불 냄새와 고기 냄새 때문이었을까,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때 유진이가 반쯤 감긴 눈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유진이 고기 먹을래?”

“우웅-. 고기는 맛있다요.”

언제 퀭했냐는 듯, 유진이가 눈에 초점을 잡았다.

‘무서운 녀석.’

안방이 조용한 걸 확인한 진혁은 냉장고 깊이 잠자던 묵은지를 꺼냈다.

이제 고춧가루와 양념을 깨끗이 씻어 잘게 찢는 거다.

엄마는 유진이가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주시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김치를 좋아하게 되고, 묵은지가 소화를 돕는다고 했다.

아삭아삭-.

‘우움-! 역시 씻은 묵은지!’

물론, 묵은지로 고기를 싸 먹어본 진혁도 그 맛에 환장을 했다.

고기와 찬밥, 묵은지까지 챙긴 진혁은 유진이를 안아 들었다.

“가자-.”

“출바알-!”

“쉿-! 어른들이랑 애기 자니까 조용히 해야지?”

“네. 출발-.”

아기였던 유진이를 이렇게 안고 다니며 도란도란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었다. 진혁의 사소한 기쁨은 동생이 유치원에 들어간 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유진이 고기 먹으면 치카도 하고, 오글오글도 하고 세수도 하고-.”

“알았다요오-.”

뭐, 유진이는 즐겁지 않은 모양이지만.

“오오-?”

고기 파티가 벌어진 곳에 이르자, 오빠 품에 안겨 행복한 기대감에 젖은 손유진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유진이의 미소는 민용락이 가져온 콜라를 발견하고는 절정에 달했다.

“근데 인랑이 삼촌이가 안 보인다요?”

“아, 그······.”

그 삼촌?

요즘 밤마다 바쁘다던데.

읍내에 나가서 뭘 하고 오는지 부스스한 머리로 이슬 맞고 다니더라.

자세히 보면 옷매무새도 좀 흐트러져서 오는 것 같고.

“뭘 좀······ 하나 봐.”

애들은 가라.

***

황가윤은 김인랑의 차 조수석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던 중 아버지 황영모를 목격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오랜만에 들어오는 아버지라 한들, 자기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황영모의 멱살을 잡고 함께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운 아버지지만 비척거리며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달가울리 없었다.

“기다려 봐. 사람 불렀으니까 금방 올 거야.”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김인랑은 사시나무처럼 떠는 황가윤의 손을 잡은 채 운전석을 굳게 지켰다. 두려움에 떠는 황가윤을 진정시키며 곁을 지키려는 의도 외에도, 절대 나서지 말라는 문석일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 누가 죽어 나가도 너는 절대 나서지 마라. 아가씨 옆에 있어. 그게 네 자리야.

한두 해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수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문석일과 김인랑은 말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해석할 사이가 아니었다.

김인랑은 순진한 마음보의 소유자였으나, 그의 머리는 마치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말로 들었다.

‘옳지 않아.’

황가윤에게는 부모의 가게이며, 어릴 때부터 자라온 터전이다.

자랑스럽지는 않아도 부끄러운 곳은 아니라며, 황가윤은 김인랑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희생을 강조했다.

김인랑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황가윤의 감정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냥 두라고?’

저 건물에 황가윤의 가족이 잠들어 있다.

쇠파이프를 들고, 허리춤과 품에 한 뼘이 넘는 칼을 숨긴 사내들이 황영모를 개 끌 듯 끌고 들어갔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아니, 이미 일은 벌어졌다. 충격적인 모습을 황가윤이 목격했고, 다른 가족도 이미 목도했을 것이다.

지금도 비명과 고함이 난잡하게 섞여 들리지 않는가.

‘아아아-, 어쩌면 좋을까······.’

석일이형은 자세히 설명해주는 법이 없다. 작전에서 문석일의 명확한 지시는 시간과 체력을 절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또 하나의 무기였다. 김인랑은 늘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였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았기에 문석일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적을 제거하고 요인을 구출하는 작전이 아닌 데다, 김인랑과 직접 감정이 얽힌 여인이 지켜보는 현장 아닌가. 당장 나서야 한다는 본능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복종심 사이에서 김인랑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되겠다. 금방 다녀올게.”

덜컥-.

차문을 열고 나설 때였다.

“옵옵오빠, 조심-.”

“걱정 말고 기다려.”

불안에 떠는 황가윤을 달래고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김인랑의 몸이 거대한 압력에 굴복하며 다시 시트에 구겨졌다.

“어떤 씨-.”

험악한 말이 나오려던 찰나, 손길의 주인공을 발견한 김인랑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형!”

읍내에 사는 문석일의 입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잡초가 물려 있었다.

투-.

풀떼기를 뱉은 문석일이 씨익 웃었다.

“형 올 때까지 기다리랬잖아, 인마.”

문석일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등 뒤를 병풍처럼 받치고 섰던 거대한 그림자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다방 건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긴가오?”

친근하면서도 요상한 말투가 문석일의 어깨를 타고 넘었다.

“인랑이는 제수씨 보살펴오.”

대부분의 상가에 불이 꺼지고 간판 조명등도 띄엄띄엄 켜진 시간, 장진남이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주머니에 손을 꽂은 문석일이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따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인랑의 눈에 안도가 어렸다.

“괜찮을까요? 엄마랑 가영이랑······.”

“응, 걱정 마.”

여전히 창백한 황가윤이 김인랑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저 호리호리한 회사원 오빠로 알고 있었는데, 알면 알수록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등과 가슴, 허벅지의 흉터라든가······.

“근데 저분들은 누구예요?”

“친한 형들이야.”

형들이라는 사람들도 수상하다.

아버지를 끌고 들어간 건달보다 더 건달 같다.

“형들도 회사원이세요?”

“으응-.”

분명히 회사원이다. 세인 시큐리티 서비스에 소속된.

김인랑이 어물어물 대답하려던 찰나.

콰차앙-! 꾸웅-. 싸라라락-.

2층 창문이 폭발하듯 터지며 커다란 물체와 유리 파편이 떨어졌다.

김인랑은 재빨리 황가윤의 눈을 가렸다.

***

장진남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다.

얼핏, 문석일을 힐난하는 듯 들리기도 했다.

“흥신소도 아닌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거애오?”

“부회장님 지십니다. 장 선배는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회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앞서 계단을 오르며 뭔가 덧붙이려던 장진남이 입을 다물었다. 민용락은 사는 세계가 다르니 논외로 하고, 문석일은 의무담당과 더불어 두더집에서 장진남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다.

늦은 밤, 함께 산책을 하다가 보안 전화기로 통화하는 문석일을 따라왔을 뿐이다. 한유영과 관계된 사람이라고 하여 보스 일가를 위한 뒤치다꺼리쯤이라 생각했다. 고추장과 된장, 간장 따위와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이니 한유영에게 어느 정도 채무감은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한유영이 위험하면 도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지,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어둠을 헤칠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부회장 지시라면 말이 다르다.

장진남은 어디까지나 SSS를 위해 일하는, 홍기준의 직원이었으니까.

말투와 직업 때문에 자칫 내유외강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삶의 기조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실룩이는 장진남의 큰볼기근을 구경하며 계단을 오르던 문석일은 소리 없이 웃었다.

‘부회장님이 진혁이를 위해 일하라고 했으니까 부회장님 지시 맞잖소.’

덜컹-.

장진남이 온통 검게 코팅된 2층 유리문을 밀었으나 잠겨 있었다.

이럴 땐 급히 들이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안심시키는 방법을 써야 한다.

장진남이 두툼한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퉁퉁-.

“안에 계세오-?”

장진남의 말투도 상대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한 듯했다. 이내 걸쇠가 풀리고 문이 한 뼘쯤 열리며 틈으로 한 사내가 얼굴을 드러냈다.

“영업 끝났는디, 돌아가쇼-.”

사내는 그대로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진남이 손과 발로 문을 받친 탓이었다.

“좀 들어갈게오. 힘 빼오. 그러다 어깨 다쳐오.”

“어어-?”

사내는 문과 함께 가벼이 밀려났다.

*

홀은 비교적 말끔했다.

세 명의 사내가 점거한 테이블과 소파를 제외하면 말이다.

김응녀와 황가영은 끌어안고 구석에서 한숨을 쉬었는데, 초췌했으나 놀라지 않은 얼굴을 볼 때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문석일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뺨에 흉터가 있는 이는 소파 등받이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렸고, 나머지 둘은 건들건들 문석일과 장진남의 배후로 돌아갔다.

흉터가 문석일을 향해 턱짓했다.

“니들은 뭔디-.”

문석일이 미간을 좁히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대화할 마음 따위 없으니 닥치라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멈춰 신호였다.

“말 길게 안 한다. 피똥 싸기 싫으면 묻는 말에만 답해.”

“이쒹-!”

문석일의 뒤를 잡은 사내가 쇠파이프를 휘두르려 할 때였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가온 장진남이 남자를 잡아 던져 버렸다.

남자는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창밖으로 부웅 날았다.

“우아악-!”

콰차앙-!

장진남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대화 중에 끼어드는 건 비신사적이네오. 폭력도 바람직하지 않아오.”

사람을 집어던지는 건 신사적이고 비폭력적이냐?

흉터의 남자는 그리 묻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으며 소파 등받이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고, 공손한 동작으로 바닥에 두 발을 붙였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였다.

***

음주가 가능한 사람은 민용락뿐이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 물이라며 혼자 열 병이나 비운 민용락은 한껏 들뜬 소리를 냈다.

“와하하!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다! 그쵸, 형님?”

“으응. 맛있네요.”

편히 먹고 있었으나, 원칙상 근무 중이라 맥주에는 입도 대지 않은 SSS 요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신난 민용락이 춤추듯 어깨를 들썩였다.

“진혁아, 고기 더 없을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에-.”

“더 가져올게요.”

물을 저렇게 마셨다면 배불러서 더 못 먹을 텐데.

역시, 물과 맥주는 다르지. 진혁은 입맛을 다시며 집으로 향했다.

해동되어 있던 고기를 모두 내왔다.

뭐, 먹는 걸로 화내는 엄마는 아니니까 이해하시겠지.

입술이 번들거리도록 삼겹살을 흡입하는 친구들과 유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고기 파티였다.

‘이게 어울리는 재미구나. 너무 즐거워.’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으며, 배부른 파티였다.

***

이른 새벽,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을 찾은 한유영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어머나, 조리장님?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 심한 거예요?”

장진남의 우락부락한 팔에 하얀 거즈가 앙증맞게 붙어 있었다.

“별거 아니에오. 빨간약 발랐어오.”

“더울 때 움직이시면 덧나요. 아침은 저 혼자 준비해도 되니까 오늘은 쉬세요.”

“아이- 그게 아니-.”

“가서 쉬세요. 어서-.”

한유영이 등을 떠밀자 장진남은 어쩔 수 없이 밀려나야 했다.

힘 때문이 아니라 접촉 때문에 부끄러워서.

정말이지 타인이 제 몸에 손을 대면 기겁하는 남자였다.

장진남을 내쫓은 한유영은 냉장고에 붙은 식단표를 확인 후 냉장실을 개방했다.

“고기는 아침이나 점심에 먹는 게 더 좋다고 했으니까-, 응?”

고기를 열 근이나 넣어둔 칸이 텅 비어 있었다.

깜빡하고 냉동실에 그대로 뒀나?

덜컹-.

냉동실에도 없었다.

다시 냉장칸을 열었지만, 없던 고기가 다시 생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장군이 애들 주려고 구해온 고기까지 없어졌네?”

맛이 갔다며 식육점에서 버리려던 걸 5kg이나 얻어온 고기였다.

햐, 돼지고기 11kg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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