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란의 서머 캠프 (7) >
최미경 할머니의 영을 본 후였을 거다.
가끔 진혁은 평범한 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소리를 낼까 궁금해했다. 아이답고, 인간다운 호기심이었으나 영안이 없는 평범한 인간의 눈에 귀신이 보이는 일은 없었다.
퉁- 퉁-. 스르르-.
‘무서운데?’
궁금하다고 했지만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퉁- 투웅-.
드디어 소리가 가까워졌다.
“오빠, 잔다요?”
아, 유진이였구나.
퉁-퉁-. 스르르-.
유진이 손에 귀를 잡힌 아찌곰이 계단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끌려오고 있었다.
오빠가 거실에 자리를 잡자 유진이가 아찌곰의 귀를 잡고 따라온 거다. 진혁의 정성 어린 집도로 배불뚝이 인형이 된 탓에, 아직 팔이 짧은 유진이는 아찌곰을 안는 것을 버거워했다. 솜 말고도 뭘 더 넣었는지 불어난 체중도 상당했고.
“오빠 방에 갔는데 슬찬이 오빠 코골더라요.”
“응, 오늘은 거실에서 자려고. 오빠랑 코자자 울 애기.”
“네에-. 에헤헤-. 잇챠!”
“윽-!”
유진이가 진혁의 배 위에 폭- 엎어졌다.
종종 취하는 숙면 자세였으나, 갈수록 체중이 증가하는 탓에 진혁은 사타구니를 오므려야 했다. 아이들이 다이빙할 때는 특히 무릎이 위협적이니까.
‘위험했어.’
유진이의 다이빙 니킥에 맞은 아빠가 고통에 몸부림치던 모습을 봤더랬다. 간접체험 만으로도 충분한 학습이었다. 그런 건 직접 겪을 필요 없다.
“애부우-?”
오늘 무슨 날이냐? 형과 누나의 목소리에 반응한 정원이가 불 꺼진 거실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애부우-.”
“정원이도 형이랑 잘까? 이리와 울애기.”
진혁이 이불을 들추자, 아기는 엉금엉금 기어 텐트처럼 만들어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삼 남매가 연출하는 그림에 진혁이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뽀와옹-.
이게 무슨 소리냐. 이불도 들썩인 것 같은데?
누운 채 고개만 들어 고민하던 찰나, 행동으로 사태를 보여주는 아기가 있었다.
“어우부부부- 음맘마! 빼빠빠!”
필사적으로 기어 이불을 탈출한 손정원은,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안방으로 가버렸다.
걸음마에 재미를 붙인 요즘인데 기어가다니, 찰나의 순간에 보인 놀라운 생존본능이었다. 역시 위급 상황에서는 취향보다 특기를 살리는 것이 유리한 모양이다.
“에헤헤-. 한 번 더?”
뽀아앙-.
아, 유진아. 뭐가 한 번 더냐.
오리알을 많이도 먹더라니, 이건 차라리 가스공장 아닌가.
동생을 던지고 도망칠 수도 없고, 밑에 깔린 진혁은 가만히 목젖을 닫았다.
아이들은 방귀를 뀌어도, 똥을 싸도 칭찬해야 하는 법이다.
진혁은 사랑스러운 동생을 위해 비강을 닫고 입으로만 웃었다.
“아항항······.”
“으헤헤헤-, 한 번 더?”
누가 한국 어린이 아니랄까 봐, 유진이가 삼세번의 기조를 고집했다.
아무래도 오빠를 보내버리려는 게 아닐까.
생사의 경계선에 코를 걸친 진혁의 육감이 극도로 강화되었다. 본래 발달한 감각에 전자신호총 훈련의 효과까지 가세했으니, 과장하자면 모기 날갯짓 소리까지 들리는 경지였다.
유진이가 아랫배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지고,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시야가 확대되며 주위 모든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옳거니!’
진혁은 재빨리 아찌곰을 잡아 인형의 코 부분으로 가스 배출구를 막았다.
뽀와-쉬시시이이-.
“에헤헤-! 막으니까 똥꼬 뜨겁다요.”
그래, 뜨거워서 무척이나 좋겠구나. 그래도 차가운 것보다는 낫겠지.
아하하-.
여전히 귀여운 유진이였기에 애써 웃었지만 진혁의 코는 웃을 수 없었다.
‘차라리 똥을 싸렴.’
진혁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건 마치 유진이의 이상한 주문으로 잠에 빠지던 느낌과 비슷했다.
옆에 널브러진 아찌곰도 누렇게 뜬 것처럼 보이는 것이, 질식한 나머지 사경을 헤매는듯했다. 장렬히 전사했을지언정, 아찌곰의 남산만 한 배는 포개진 남매보다 높이 솟아 영웅의 위풍당당한 기개를 자랑했다.
의식이 끊이 가늘어지는 와중, 진혁은 아찌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너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
잘 자라, 전우여.
***
뿡- 뿡- 푸쉬-푸쉬-.
훈련과 더위에 지친 친구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진혁은 수로변을 거닐었다. 진혁이 걷는 속도에 맞추려는 의도인지 거푸 터보직분사를 가동하는 염병택과 함께.
“어제는 아빠가 안 계셔서 오늘 통화했거든?”
염병택의 손이 엉덩이 어디쯤에서 파리 쫓는 시늉을 했다.
영양가 없는 친구의 말을 충실히 들으면서도 진혁은 저만의 사고에 매립되어 있었다.
마음에 둔 일이 휙휙 처리되면 좋으련만,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인생은 그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보내기 딱 맞춤한 시점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화장실 문고리를 당겼는데 이미 누군가 안에 있거나, 숙제를 마치고 컴퓨터 게임 좀 하려는데 유진이가 이미 차지했다거나.
“그 아저씨 얼굴 안 보고 산 지 1년 넘었대. 조합 모임에도 안 나온다는 거야.”
업무를 볼 때도 그렇지 않던가.
자료를 취합해 보고서의 한 장을 마무리했는데 다음 장을 위한 자료는 감감무소식에, 상사는 다른 프로젝트를 들이민다.
‘이 참에 정리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단순히 사람의 오류로 치부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시간이 비협조적인 탓은 아닐까.
저마다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이는 이들을, 그저 같은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류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맙다, 병택아. 그래도 알아봐 줘서.”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해. 나는 들어가서 책 좀 볼게.”
책은 무슨.
낮잠 자며 방귀나 뀌겠지.
수시로 개방되는 염병택의 괄약근 때문에 오전 운동 때도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덕분에 진혁은 후각을 절반쯤 상실한 상태다.
땡볕을 피해 곰짐에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잔디밭 느티나무 그늘에 주저앉았다.
‘기다려야 하나.’
이미 문석일이 알아보겠다고 나섰으나 진혁이 만류했다.
사인을 뒷조사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공연히 열람할 수 있는 정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진혁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그만큼 예민하다는 뜻이다. 적발과 별개로 양심과 윤리의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지양해야 할 행동이었다.
전생에도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책임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당당한 구성원으로 서고 싶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사박-.
건조한 마찰음이 들리자 진혁의 귀가 고양이처럼 쫑긋거렸다. 후방 5시 방향에서 잔디를 뭉개며 다가오는 체중 80kg의 남자가 감지되었다.
“찾았다, 박대순.”
발소리의 주인이 인사 대신 용건을 밝혔으니, 정상태의 전갈을 받은 문석일이었다.
여러 장해 요소로 인해 사건의 종결을 보지 못한 채 다른 사건을 접하기도 하지만, 잊고 있던 사건이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잠깐 걸을까요?”
진혁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어어- 하는 사이, 문석일은 더워서 싫다는 말도 못 하고 진혁을 따랐다.
함께 수로변 트랙을 걸으며, 문석일이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상태가 등기로 보내왔다. 창원에 있더라.”
문석일이 건네는 사진을 받아 살피는 진혁의 눈빛이 뙤약볕보다 뜨거웠다.
사진 속 박대순은 행색이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눈이 움푹 들어가고 폐병 걸린 사람처럼 비쩍 상해 있었다. 농사로 단련된 몸은 어디 갔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식구는 잘 지내는 거 같던가요?”
“음. 상태 말로는 그렇다더라. 그래도 처자식은 끔찍이 생각하니 챙겨갔겠지.”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이다.
사람 많은 대도시로 갔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뿐이었겠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요.”
문석일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있을 홍기준에게 한 말이었다.
“건의해 보마. 그런데-.”
문석일이 잠시 입술을 굳게 닫았다. 뭔가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있니?”
“불쌍하잖아요.”
문석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목숨을 동정받은 기억이 있었기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진혁이 선처를 베풀지 않았다면 그날, 네 명 모두 피똥을 지리고 어딘가에 묻혔을지 모를 일이었다.
“돌아와서 농사라도 짓고 살지······.”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박대순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죄책감 때문에 평생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니까.
“재정이랑 재구였나.”
“그래, 맞다.”
박대순의 딸과 아들 이름이다.
박재정은 진혁과 동갑내기였고 어동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다. 말 수 적고 얌전한 아이였다. 박재구는 두 살 터울 남동생인데, 어릴 때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의젓했다.
“착한 애들인데. 에휴-.”
부모님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을 향한 원망과 동정 사이에서 진혁은 거듭 혼란스러웠다.
“처자식은 잘 지내는 모양이더라. 그 사람들, 지금 그대로 두는 것도 너그러운 일일 거다.”
문석일이 진혁의 어깨를 짚어 다독였다. 이토록 착해 빠진 녀석이 어떻게 그런 살수를 익혔을까 생각하며.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석일에게 박대순의 사진을 돌려주었다.
“대정 쪽은 포기한 모양새야.”
“네······.”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대정은 지금 증거인멸이 중요한 게 아니다.
50년 넘는 역사와 축재가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마당에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나 있을까. 대정은 세인에 의해 조금씩 분해되어 흡수당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당연히 홍기준의 고도화된 공작이 있을 테고.
“고생하셨어요.”
“그래.”
“가볍게 두 바퀴만 같이 뛸까요?”
“뭣-.”
타다닥-.
진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나갔다.
수로변 두 바퀴면 10킬로미터다.
‘이기적인 시끼.’
이 날씨에 한 번만 더 가벼웠다가는 항문 풀려 죽겠네.
언제는 착해 빠졌다더니, 속으로 욕을 삼키며 문석일이 꿩 새끼처럼 다다다- 쫓아갔다.
‘그런데 그 얘기는 안 해도 되겠지?’
박대순을 일찌감치 대피시킨 사람이 부회장님이라는 사실 말이다. 홍기준이 넌지시 힌트를 흘렸기에 문석일은 눈치 채고 있었다.
‘아니, 저놈이라면 알고 있겠지.’
잡념을 떨친 문석일이 속도를 올렸다
“진혁아-! 나는 구두 신어서-.”
“그럼 벗어요. 맨발로 뛰는 게 건강에 좋대요. 힘드시면 안 뛰셔도 돼요.”
저런 개새······. 그러면서도 구두를 휙휙 벗어 던지는 문석일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는 장군이 대타인가?
잔디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장군이보다 서열이 낮은 듯한 느낌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아오씨-, 발바닥 뜨거워.’
***
꼬르륵-.
늦은 밤이었다. 수학 참고서를 보던 조슬찬이 배를 부여잡았다.
하루 종일 한유영이 해준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위장이 더 확대된 데다, 훈련에 적응하고 근육량이 증가하며 에너지 대사마저 활발해진 탓이었다. 고성능 터보 엔진 장착 후 더 많은 연료를 갈구하는 자동차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꼬르르륵-.
둔해서 몰랐는데, 처음에는 친구 염병택의 배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조슬이 너 또 허기지냐?”
“이이, 그러네이-.”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염병택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어릴 때부터 거지라는 놀림을 당하던 조슬찬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친구니까.
“냉장고에 과일이라도 먹어.”
“고기 먹구 싶다.”
에휴-, 염병택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과일보다는 고기가 더 좋지.
문밖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밖에 있을 건 냉장고뿐인데, 박상기 짐승도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야간 사냥을 나왔구나.
서로 말이 필요 없는 절친, 조슬찬과 염병택의 눈이 마주쳤다.
‘나가자.’
‘그려.’
***
진혁은 원기가 왕성한 친구들을 배불리 먹일 생각으로, 임무를 하나씩 부여한 다음 흙집 마당으로 보냈다.
“슬찬이는 마른 장작, 병택이는 텃밭에서 상추랑 고추 따서 씻고, 상기는 밥솥 통째로 꺼내서 가져가.”
진혁은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챙기기로 했다.
‘네 근이면 되려나?’
아니야, 인당 두 근은 먹어야 배가 차지.
다행히 고기는 넉넉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적당히 해동도 되어 있었다. 여름에는 조심해야 한다며 냉동 보관하던 엄마인데 좀 의외다.
주방에서 부스럭대자, 아찌곰에 매달려 혼자 거실에서 잠자던 유진이가 뒤척였다.
‘잘 자라, 우리 애기.’
진혁은 동생의 엉덩이를 다독인 후 고기와 마늘, 쌈장 등을 챙겨 흙집으로 이동했다.
구멍 세 개가 뚫린 시멘트 벽돌 두 개를 받치고 그 위에 깨끗이 닦은 솥뚜껑을 올렸다.
솔가리로 불을 지피고 장작을 넣어 화력을 키웠다.
손바닥으로 솥뚜껑의 온도를 체크하기를 몇 번.
마침내 삼겹살이 올라갔다.
치이이이이-.
“크으으으으-.”
“흐어어어어-!”
“······진정한 음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여섯 살 굶주린 짐승들이 구성진 환호성을 내질렀다.
조금 더 배가 고팠더라면 팬티라도 벗어 던질 기세였다.
식육점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삼겹살이었기에 별도로 자를 필요도 없었다. 맨손으로 고기를 나르는 진혁의 손이 분주히 일한 덕분에, 솥뚜껑은 금세 고기로 가득 찼다.
젓가락을 쥔 친구들이 연신 침을 삼키며 고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흉흉하게 번뜩이면서도 애절한 눈빛은 차라리 건기에 굶주린 하이에나의 그것이었다.
“돼지고기는 잘 익혀서-.”
진혁이 뭐라 할 새도 없이 고기가 사라져갔다.
기름장에 대충 푹 찍어 먹는 염병택, 상추와 쑥갓, 깻잎까지 포갠 다음 쌈장, 마늘, 고추, 김치와 밥을 싸 입이 터져라 쑤셔 넣는 조슬찬, 고추장에만 찍어 먹는 박상기. 서로 다른 성격만큼이나 취향은 다양했지만 고기를 대하는 태도는 질세라 각별했다.
“으허어어-.”
“어어어-.”
“······ 허!”
뭐, 맛있다는 소리 같았다.
조카들 챙기는 삼촌 마음이 이런 걸까, 진혁은 가슴이 찡하도록 흐뭇했다.
헤헤헥-.
익숙한 개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명색이 개코인데 이런 잔치를 놓칠 리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