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란의 서머 캠프 (3) >
***
왕복 10킬로미터 코스.
평지 도로는 4킬로미터, 등산로 초입부터 정상까지는 1킬로미터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진혁과 삼촌들에게는 매일 하던 운동이고, 친구들이 강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계획한 훈련이었기에 대충 할 수 없었다.
‘함께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야.’
유쾌하지 않은 짐작이었다.
내년에는 네 명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힘들겠지만 목표를 세운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앞서 산을 오르면서도 진혁은 귀를 쫑긋 세워 친구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세 친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번갈아 개떼의 표적을 자청하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나는 축구의 미래. ······ 체력은······ 아아, 나 지금 어지러운가.”
“히엑-, 쫌만-, 히엑,- 할머니-, 효도-.”
“박양 누나-, 헥헥! 샤워할 시간-! 흐악흐악-.”
중얼거리기라도 하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심각해지는 순간을 조심해야 하는데, 친구들의 안색은 평소 운동할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체열이 올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대견한 진혁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두 번째 당근이다.
“후우우-. 왕복 한 시간에 끊자. 나는 거의 매일 50분에 끊는 코스야.”
그 순간 진혁은 보았다.
까불거리면서도 진혁에게는 험한 소리 한 번 않던 친구들이 눈으로 욕을 하는 모습을.
특히, 염병택의 눈이 이글거렸다.
“자-, 힘들 내라. 운동 마치면 맛있는 아침밥이 기다린다.”
염병택은 등 뒤에서 독려하는 삼촌들도 미웠다.
방귀라도 뀌어 골탕 먹이고 싶은데 너무 지친 나머지 힘 조절에 실패하면 험한 꼴을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참기로 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선두에서 달리듯 산을 오르던 진혁이 다시 멈췄다.
한 번 더 친구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한 달 동안 매일 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개······.”
“손진혁 너 이······씹······.”
“······한 달······ 여자친구는 언제 만나지······.”
이상하다. 이 친구들에게는 동기 부여 발언이 잘 먹히지 않는 듯했다.
진혁은 생각했다.
‘아, 나는 어쩌면······.’
운동에 미쳐 살아서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를 못한 게 아니었을까.
합리적이고 온당한 판단이었다.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 않던 손진혁도 드디어 자기객관화라는 스킬을 현실적으로 가다듬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는 자산이 될 터였다.
*
멀리 집이 보인다.
“흐엑! 흐엑! 다와따아-!”
“흐억-, 흐벅! 최 양 누나, 다리- 잘 빠져- 흐억-!”
“내 여자 친구는 아직 잘 시간······.”
꼴등은 아침밥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일까, 아이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진혁의 집은 기본적으로 높은 지대에 위치했지만,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는 내리막이었다.
친구들은 넘어지고 구르며 아침밥을 향한 집념을 보였다.
“어이구구! 할머니 슬찬이 굴러유-!”
“흐엑! 시박! 강 양 누나! ! 흐억!”
“나는······ 호모 에렉투스······.”
아이들이 쏟아지듯 마당에 널브러졌다.
싸리비로 마당을 쓸던 문석일이 아이들을 맞았다.
“일등은 박상기, 이등 염병택, 삼등 조슬찬······, 진혁이가 꼴찌?”
축구를 전문적으로 했던 박상기의 지구력은 쓸만했다.
오랫동안 육상을 해온 염병택의 근성도 인정할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손진혁이 꼴등이라니?
“꼴등은 헌창 삼촌인데요?”
마지막으로 마당에 발을 들인 강헌창이 꺼벙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렸다.
“어엇-, 내가?”
내가 꼴등이라니······.
그건 미처 생각 못했다.
힘든 기색도 없이 툭 내뱉은 진혁은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을 틀어 호스로 온몸에 뿌렸다.
얼음장 같은 지하수가 정수리에 꽂히니 감전된 듯 온몸이 짜릿했다.
“흐아아-, 좋다. 진짜 좋다. 여름엔 이 맛이지.”
“나두, 나두!”
얼굴이 시뻘겋게 익은 조슬찬에게도 물을 뿌려주고 염병택에게도 은혜로운 물줄기를 선사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몸서리를 치면서도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으어어-! 그려! 이 맛이여!”
“으아아-! 살겠다!”
박상기는 기다리기 싫었는지 물을 받아둔 빨간 통에 상체를 심었다. 말은 느려도 행동 하나는 빠른 녀석이었다. 저리 실행력이 좋으니 여자친구도 있는 거겠지. 진혁은 박상기에게 연애의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박상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축구가 좋아.’
뽀골뽀골-.
보충수업 빼준다는 말에 넘어가 합숙 훈련 제안을 수락한 것이 박상기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튈 수도 없고.
차라리 군대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
꼴등이라고 밥을 굶기는 일은 없었다.
강헌창을 비롯한 괴수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을 놀리자, 가마솥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으어어-! 너무 맛있다!”
“삼촌 많이 먹어라요.”
대접에 도라지무침과 각종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민용락의 숟가락 위에 유진이가 불고기를 올렸다. 민용락은 한 달간 저를 태우고 다녀야 하는 사람인데, 잘 먹어야 하지 않겠나. 관대한 유진이는 좋아하는 불고기쯤 몇 번이든 올려줄 수 있다.
소식하던 진혁은 밥상에 부족한 게 없는지 살피는 엄마를 조심스레 불렀다.
“엄마, 고사리랑 숙주나물은-.”
“재료가 없어. 콩나물무침 먹어.”
“네······.”
한유영의 미간이 단호한 무늬를 그렸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해야 할 아들을 위해 엄마로서 당연한 조치였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아들이 참아.’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해도, 사소한 소문에 귀가 팔랑거리는 것이 인간이었다.
진혁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4월과 5월에 온 산을 뒤지며 꺾은 고사리가 몇 자루인데 맛도 못 보게 하신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고사리와 숙주나물이 먹고 싶어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의 명이니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우걱우걱-.
모두 말없이 고봉밥을 세 그릇씩 게눈 감추듯 했다.
“어떻게, 먹을만하니?”
학교 음악 선생님보다 어여쁜 진혁의 엄마가 묻자 아이들이 일제히 호응했다.
“아아아-! 엄니, 너무 맛있슈! 지 평생에 이런 밥은 첨이유!”
“여기서 살고 싶어요! 누나들 못 봐도 좋아요!”
“축구부 식단보다 훌륭합니다, 어머님.”
아이들의 반응에 한유영이 눈이 사라질 정도로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아무렴, 엄마의 마음이란 대개 그렇지 않던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최고의 손님이다.
“바닷가로 가면서 천천히 소화시키자.”
일정표를 보며 툭 던진 진혁의 말에, 배를 두드리며 후식으로 참외를 먹던 아이들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진혁이는 우덜을 공작원으루 키울라구 그러는 거 아닐까?”
조슬찬이 염병택과 박상기를 향해 중얼거렸다.
듣지 못한 척, 진혁이 모래를 채운 더플백을 친구들에게 하나씩 메도록 했다.
‘······타당하다.’
20kg이 넘는 더플백을 메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박상기가 조슬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이 사뭇 비장했으나 조슬찬은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행복혀.’
분명 아침 훈련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죽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달리기는 매일 하는 것이었고, 오랫동안 해온 만큼 금세 회복이 되었으니.
조슬찬이 느끼는 감정은 도피의 충동이 아닌 충실하겠다는 각오였다.
합숙 훈련이라는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 오래 머무는 경험 또한 해보지 못했었다. 비록 손진혁과 염병택에 밀려 100미터와 200미터에 출전은 불발되었으나, 합숙 훈련 자체가 즐거운 추억으로 남으리라는 기대가 싹텄다.
“장 양 누나, 오늘도 배달 갔으려나······.”
아침식사와 함께 영혼까지 씹어 삼킨 듯한 애늙은이 염병택은 멀리 갯벌을 보며 현실을 직시했다.
“아직 하루도 안 지났어. 아니다, 한나절도 안 지났네.”
중학생답지 않은 예리한 분석이었다.
네이비색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김인랑이 조용히 신호를 냈다.
“출발.”
그렇게 2차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
맴- 맴-.
커진 매미소리만큼 느티나무 그늘도 영역을 넓혀 갔다.
민용락과 유진이가 느티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여느 때였다면 평상에 앉았을 텐데, 아직 어린 정원이가 떨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민용락은 갯벌 훈련 참관에서 열외되었다.
아침에 폭풍 페달질을 한 까닭에 도저히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이었다.
“유진아, 이게 피라미드야.”
대신, 집에 남아 유진이와 놀아주기로 했다.
“피라미 맛있지요?”
“애부우-?”
“아니, 피라미드. 색칠하고 얘기해. 삼촌은 일하고 있을게.”
“해본다요. 정원아, 크레파스 먹으면 안 되지요?”
“우우우-.”
유진이가 정원이를 챙기며 황토색 크레파스만으로 칠을 하는 동안, 민용락은 진혁에게 전달할 기록을 정리했다.
‘대진중학교, 충양체육중학교 정도인가?’
유세라가 수집해 보내온 자료인데, 민용락이 중점적으로 보는 기록지에는 ‘4⨯100mR’ 이라는 종목명이 적혀 있었다.
“45초.”
“무가요?”
“애부우-.”
민용락이 중얼거리자 유진이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으응, 도에서 잘 뛰는 오빠들 네 명이 사백 미터 이어달리기를 하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린대.”
“빠른 거다요?”
“그렇지. 전국대회 선수들은 더 빠르고.”
“우리 오빠보다 빠르다요?”
“알 수 없지. 이어달리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민용락은 평소에도 진혁의 기록 측정을 돕곤 했다.
종합경기장과 유사한 컨디션의 수로변 우레탄 트랙에서 손진혁이 100m를 달리면 11초 3 정도 기록이 나왔다.
‘무시무시했지.’
진혁이 달릴 때의 자세와 속도, 지축을 울리는 소리를 떠올린 민용락은 진저리를 쳤다. 동작은 동물의 세계에서 본 치타처럼 날렵했고, 지면을 박찰 때 들리는 소리는 들소처럼 육중했다.
SSS 요원 중 가장 날렵하고 빠른 유태화가 겨우 12초를 끊었으니, 일반인인 민용락의 눈에 얼마나 빠르게 보이는지는 두 말이 필요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전력 질주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는 거였다.
그건 그렇고.
민용락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계주 기록은 네 주자의 100m 기록을 합산한 것보다 짧게 나온다. 물론, 배턴 터치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가장 잘 뛰는 녀석의 기록의 네 배보다 구십팔 퍼센트 정도의 기록이니까······.”
“욕하지 마라요.”
“응. 미안해.”
한 마디 할 때마다 끼어드는 유진이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민용락은 다리를 달달 떨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가장 빠른 선수와 비교하면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 기록까지 고려하면······.”
겨우 2퍼센트가 아니라 대폭 감소된다고 볼 수 있었다.
진혁이 전달한 태양중학교 선수들의 기록을 살폈다. 비록 모래땅에서 측정한 기록이지만 시뮬레이션 자료로는 충분할 터였다.
“이건 뭐······, 비벼보기도 힘들겠는데?”
“난 비빔국수 맵다요.”
“응, 유진이는 안 매운 국수 먹어야지.”
“응가할 때 똥꼬도 매웠다요.”
“그래······. 삼촌도 맵더라.”
어디까지 했더라?
아, 맞다.
민용락은 태양중학교 선수들의 기록을 합산했다.
진혁의 기록을 합산해 릴레이 기록을 시뮬레이션 하자면 전국대회 결승전 수준의 기록이었으나, 다른 주자들과의 격차가 심해 민용락이 세운 가설에 있는 그대로 대입할 수가 없었다.
“아-, 예선 통과도 어렵겠는데?”
“어렵고 힘드러워도 끝내 이겨내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 엣헴- 이다요.”
“그래, 천 어르신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구나······.”
민용락은 유진이의 말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대꾸하며,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했다.
종알종알 떠들긴 해도 유진이 목소리가 매미 소리보다 몇백 배는 듣기 좋기도 했고.
“애부우-.”
누나 옆을 좋아하는 정원이가 흙을 먹지 않도록 챙기기도 해야 한다.
분명 특별파견된 회사원인데.
‘보모 노릇을 하고 있어.’
한데 이상하게도······.
할 만했다.
***
“······소화는 잘 되는 거 같다. 그으윽-. 할 만해.”
박상기는 의외로 훈련에 긍정적이었다.
자기들만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진혁도 함께 참여하는 훈련이었기에, 다른 친구들도 구부정하게 숙이고 걸으면서도 달리 투덜대지는 않았다.
“병택이랑 슬찬이는 할 만하니?”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염병택은 뭔가 불만스럽지만 뭐가 불만인지 모르는, 이상한 벽에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도 합숙 훈련은 처음이었다.
“이이-. 나는 할 만혀. 걍 재밌어.”
지도교사 없이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떠들며 운동하는 합숙 훈련.
몸은 힘들어도 조슬찬의 마음은 즐거웠다.
“두 시간 정도 약한 강도로 운동하고, 점심 먹고 휴식 시간이야. 휴식 후에는 스프린트 훈련, 그다음에는 자세교정과 회복 훈련······.”
친구들보다 무거운 더플백을 멘 진혁이 함께 걸으며 일정을 공유했다.
모르는 것은 두려운 것이니, 이 고비를 넘기고 또 어떤 공포가 도사리는지 알 수 없다면 나약한 인간은 언제 정신 줄을 놓아버릴지 모른다. 심할 경우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공유한 것이었는데.
“진혁아, 우덜이 평소에 너한티 잘못한 게 있으면 차라리 때리는 게 어떻간?”
“진혁아, 나 잠깐 다방에 좀 다녀오면 안 될까? 뭘 두고 온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일정을 알려줬는데도 친구들은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왜들 이러지? 계획 수정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