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어른 (3) >
매정하게 대하겠다 다짐했으나······.
겁먹은 듯 뾰로롱 변하는 홍수정의 눈동자에 진혁의 얼음 갑옷은 무장해제당하고 말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손진혁 팀장 앞에서 목을 움츠리던 홍수정 전무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홍수정이 놀란 얼굴로 주춤 물러서자 진혁의 심란한 감정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어······. 수정이, 왜 그러니?”
홍수정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앞으로 모아 쥔 옷자락을 비비듯 매만졌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도 있는 듯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진혁은 이런 모습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이 과거의 홍수정은 아니었다.
‘고백할 때 취하는 자세 아닌감?’
고등학생 시절, 같은 사립학교에 진학했던 여자아이가 고백한 일이 있었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과 함께였다. 찰나를 영원처럼 고민한 진혁은 그때 당연히 거절했었고. 븅신.
수줍음 많았던 그 여학생은 눈이 시뻘게져서 도망치듯 자리를 박찼었다.
친구 중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나, 들었다면 X신이라고 욕할 것이 뻔한 짓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손진혁은 서울 사나이 손광연의 아들이다.
이럴 땐 부끄럽지 않도록 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기본지식 정도는 탑재한 사나이로 성장해 있었다. 살다 보면 적당히 눈치껏 깨닫는 지혜도 있기 마련이고, 강제로 앉혀 놓고 과외를 한 손광연의 영향도 받은 터였다.
게다가 이 녀석은 걸핏하면 고백을 하고 결혼 확약을 얻어내던 바로 그 꼬맹이 아니던가. 오빠가 모처럼 소꿉놀이에 응해주마.
“크흠-! 수정아 편하게 말해도 돼. 오빠는 수정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옼-.”
“엄마가 다음주에 비디오 찍어달래요.”
“-케이.”
엉뚱한 걸 수락해버렸다.
그런데 다음주에 뭐가 있지? 고백을 선제적으로 수락하려던 진혁 사나이의 얼굴이 더위에 지친 셰퍼드 천마처럼 멍청하게 변했다.
“수혁이 돌잔치 하잖아요. 그런 건 원래 가족이 찍는 거라고 저한테 부탁하래요.”
“그······”
뭐······.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거냐?
돌잔치 행사 업체에서 그런 것도 해줄 텐데. 말문이 막힌 진혁의 입이 도베르만 광마의 주둥이처럼 튀어나왔다.
홍수혁은 외삼촌도 둘이나 있고 나이 많은 사촌들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진혁이란 말인가.
“오늘 열심히 잘 찍더라고, 우리도 찍어달래요.”
멍청한 표정을 짓는 진혁의 눈을 피하며 홍수정이 또박또박 말했다. 행동은 부끄럼쟁이인데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하는 걸 보면 역시 서울 여자들은 무섭다.
어차피 가족과 함께 홍수혁의 돌잔치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기대에 찬 눈으로 홍수정을 보았다.
“······알았어. 다른 건?”
그러나 홍수정은 말없이 허리 숙여 인사 후 유진이를 향해 달려갔다.
“유진아아아-!”
“언니이이이-!”
이산가족 상봉했냐.
훌쩍 커진 꼬맹이와 크고 있는 꼬맹이가 부둥켜안은 모습이 그루밍하는 홍시와 장군이를 연상케 했다.
진혁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해맑은 모습이었다.
“언니, 우리 곰짐 가자요.”
“그래.”
홍수정과 유진이는 팔짱을 끼고 덩실덩실 깨금발로 뛰어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다분히 흥겹고 신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이 변해서 그런가? 쟤도 너무 변했는데?’
유진이와 어울리며 보이는 면모도 개구쟁이라기보다는 의젓한 언니였다.
진혁을 대하는 것만 어려워했다면 서운할 뻔했는데, 홍수정은 손광연과 한유영 앞에서도 어른스럽게 굴었다. 그래서 찝찝한 와중에도 진혁은 서운함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초딩 멱살 잡고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며 따질 순 없는 거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존재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똥꼬발랄 꽐라가 유교걸이 된 듯한 모습이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했다.
하긴, 나도 변했지. 행주로 상을 닦으며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쉽네.’
꽐라 홍수정 되게 사랑스러웠는데.
위스키 두 잔에 취해 업어달라고 앵알거리던 모습이 떠오르며 눈두덩에 열기가 올랐다.
쩝-. 이제 그 모습은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에 강하게 입맛을 다시고는 잔디밭을 거의 다 가로지른 아이들을 보았다.
‘근데 쟤가 저렇게 컸나?’
전생의 꼬꼬마와 비슷해 보였다.
최미경 유부녀에게 들은 말이 있다. 초등학생 때 키가 큰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 만나 보니 키가 그대로였다던가? 실제로 그런 친구가 많다고.
설마 홍수정은 초등생 때의 키가······.
그렇다면 2년 동안 조금 더 크고 말겠구나.
맙소사!
다 컸네, 다 컸어.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고, 제 나이 열 살 때 이미 두어 살 위 형들보다 컸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진혁이었다.
***
돌잔치 참석을 위해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없다.
동네와 회사 하객들은 일찌감치 돌아갔고, 서울에서 방문한 귀빈들만이 조금 더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수행하는 SSS 요원들이 거리를 두고 따르는 가운데, 유명선은 천길룡의 안내를 빙자한 동네 역사 교육을 받으며 동네를 살폈다. 한 손으로는 진혁의 손을 꼭 쥔 채였기에 진혁은 홍기준이나 홍수정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달 밝은 밤에 저 앞바다를 내려다보면 말이오, 바다를 가로지르는 이무기가 보였다오. 헤엄치는 모습이 아주 싱싱하고 힘이 넘쳤지.”
“호오-, 이무기라는 놈이 실제로 존재했단 말입니까?”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호응하는 유명선을 보며 진혁은 웃음을 참았다. 그 얼굴에서 응가를 하며 힘을 주는 돌배기 홍수혁의 모습이 보인 탓이다.
“이무기인지 장무기인지는 모르나 통나무보다 굵은 놈이 바다 위를 헤엄친다면 이무기 아니겠소? 이렇게, 이렇게 말이오.”
천길룡이 재연을 위해 팔로 웨이브를 타며 뱀이 헤엄치는 모습을 묘사했다.
다행히 유명선은 천길룡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듯했다.
“허어, 더위를 잊을 만큼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여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제법 아니겠소? 촌일수록 그런 이야기가 많은 법이지. 허나 귀신이나 도깨비보다 사람이 무서운 법 아니겠소?”
“맞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네 귀신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재미가 있지요. 사람이 벌인 무서운 이야기는 슬프고 화만 납니다.”
껄껄껄-.
천길룡이 얼굴이 한껏 찡그려지도록 흡족하게 웃었다. 제 이야기가 재미있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 열혈 구독자를 얻었으니 이보다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요즘 동네 아해들은 도무지 옛날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오. 여기 지넥이라는 놈은 담력이 좋아 이런 얘기 따위 해준들 무서워하지도 않을 테고 말이오. 허고 얘기 좀 들려주려 가끔 찾아오면 노다지 뜀박질이나 한다오.”
진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무서워서 도망치는 건데.
최미경 청소년에게 들은 이무기 이야기가 생각나, 혼자 잘 때면 아직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는 진혁이었다.
무서운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거늘, 어찌 된 게 잊기는커녕 이불 속에서 이무기가 노려보는 듯 섬뜩할 때도 있었다. 발달한 육감의 영향인가 생각했으나 실제로 이무기가 존재할 리 없으니 차라리 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설득력 있었다.
“허허허, 좀 들어드리지 그랬니?”
진혁을 보며 웃은 유명선이 천길룡을 보았다.
“서운하고 적적하셨겠습니다.”
“그나마 지넥이 동생 유진이라는 녀석이 내 말벗이 되어 주고 있어서 적적함은 덜었다오.”
“다행입니다.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라지면 아쉽겠습니다. 책이라도 내시면 좋을 텐데요.”
“허이구, 책은 무슨. 내려오시면 내 언제든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리리다. 글로 옮기면 카네기 처세술보다 많이 나올 게요.”
껄껄껄-.
천길룡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리 대답하는 유명선의 눈이 반짝였다.
멀리 바닷물이 반짝이는 곳에 세인 인재개발원 공사 현장이 보였다.
리조트나 펜션 건설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매몰차게 거절하는 손광연이 유일하게 허락한 시설이 인재개발원이라고 했다. 그 배경에 진혁의 설득이 있었다는 말을 딸 유세라에게 들었다.
천길룡의 이야기는 입안의 침이 마르고 닳도록 계속되었다.
이리도 몰입하며 맞장구를 잘 쳐주는 상대를 만났는데 기회를 놓치면 이야기꾼이 아니지.
“저어-기 마을 어귀에 사는 조일헌이라는 놈 아비로 조무생이라는 놈이 있었는데, 젊을 적에 나무를 하다가 뒤엣것이 급하지 않았겠소? 아무 데서나 궁뎅이 까고 쌌지. 산중에 변소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말이야. 아니, 그런데 이 멍청한 놈이 하필이면 옻나무 이파리로 밑을 닦은 게요.”
“아이고! 옻이 오르면 큰일 날 텐데요.”
짝-!
유명선이 박수까지 치며 맞장구를 쳤고, 진혁도 귀를 쫑긋 세웠다.
동군영에 옻이 올랐을까? 직장까지 퉁퉁 부었을까? 결과가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천길룡은 시계도 없는 손목을 들어 올리며 눈꺼풀을 좁혔다.
“아이고, 시간이 벌써······. 어험, 오늘은 많이 했으니 다음 이야기는 추석 때 만나서 하도록 할까? 허어, 날씨 한번 덥다.”
천길룡은 삿갓으로 부채를 부치며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아이, 저저-. 선배님-.”
천길룡의 뒤를 졸졸 따르며 다음 이야기를 조르는 유명선의 모습에 진혁은 궁금한 것도 잊고 소리죽여 웃었다.
SSS 요원들도 처음 보는 회장의 모습에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음을 참았다.
“허험, 그 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글쎄 추석 때 오면 해준다니까 그러네.”
천길룡은 유명선을 뿌리치고 저만치 가버렸다.
아무리 대기업 총수라지만 천길룡 앞에서는 어른 앞의 아이일 뿐이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얼쑤-.”
요즘 성당에 다니며 배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길룡은 순식간에 안 마을 방향으로 사라졌다.
아쉬운 입맛을 다신 유명선이 진혁의 손을 두 손으로 포개 잡았다. 모처럼 격식을 내려놓고 실컷 마신 막걸리의 효력이 온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진혁아.”
“예, 할아버지.”
“부탁이 있다.”
진혁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옻나무 이파리로 밑을 닦은 조무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달라는 거겠지.
‘저도 궁금해 죽겠네요.’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천길룡 할아버지에게 다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100원 준다고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뇌물이 통할 사람도 아니었다.
“수혁이 돌잔치 때 알려드릴게요.”
진혁은 일단 자신있게 대답했다. 안 되면 되게 하면 그만 아닌가.
평소의 그답지 않은 임기응변도 떠올랐다.
‘여차하면 지어내지 뭐.’
유명선은 흐뭇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기준이처럼 말귀가 밝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신뢰 가득 담긴 유명선의 눈빛을 보며 진혁은 아차 싶었다.
‘큰일났다.’
제 글짓기 실력을 잊고 있던 자의 낭패감이었다.
*
서울 손님들까지 모두 떠나자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가 되었다.
잠이 많은 정원이와 손님들 응대하느라 지친 부모님은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가 쉬기로 했다.
‘유진이가 어디 갔지?’
장군이는 개집 2층에서 앞발에 턱을 괸 자세로 엎드렸고, 홍시와 천마, 광마 세 마리 대형견은 모두 1층에 들어가 개난로를 가동했다.
“아이고, 후끈후끈하네. 이놈들아, 덥지도 않니?”
그나저나 개친구들이 집에 있다면 유진이는 근처에 있다는 소리인데, 통 보이질 않았다.
진혁은 마당을 돌아다니며 유진이를 불렀다.
“유진이 어딨니?”
“헥헥-. 여깄다요오-.”
어디?
진혁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달된 감각을 오롯이 동생을 위해 사용하는 오빠였기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느티나무가 없는 잔디밭의 경계, 굵은 벚나무 세 그루가 다붓하게 모여 자란 그늘에서 유진이가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풍성한 벚꽃을 보기 위해 옆으로 퍼지는 가지를 치지 않았더니 처진 이파리에 가린 유진이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진이 운동하니?”
“아니다요오-. 버찌 딴다요.”
“아직 버찌가 있어?”
그리 물었으나 아직 있긴 한 모양, 유진이는 손과 입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버찌는 제철일 때는 쓴맛이 강하지만 무더위가 시작될 때는 단맛이 강해지는 열매였다. 유진이도 좋아하고, 장군이도 버찌를 좋아했다. 장군이가 싼 벚나무가 퇴비장에서 싹을 틔우면, 진혁은 수로변 트랙을 따라 묘목을 옮겨 심었다.
‘퇴비장에서 싹터서 그런지 엄청 실해.’
6월 말 한창이었던 버찌는 유진이와 장군이가 따먹고, 아빠가 술을 담근다며 따가고, 엄마가 청을 만든다며 나무를 털었다.
제철이 지났으니 높은 곳에 달린 과실은 장맛비에 떨어져 거의 달린 게 없을 터였다. 멀리서 보면 그저 빈틈없이 이파리가 우거진 나무로 보였다.
“유진아, 이제 버찌 없나 봐.”
“아니다요오-. 저기랑 저기 있다요오-.”
벚꽃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을 때면 벚나무 이파리는 크고 풍성해져서 도무지 열매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유진이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다.
진혁은 동생을 달래기 위해 팔이 닿는 곳에 있던 버찌 열매 두어 개를 따서 손에 쥐여주었다.
“이제 없나 봐.”
“몸을 낮추어야 그 과실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사람이나 나무나 다르지 않음이라. 엣헴- 이다요.”
얘가 뭐라는 거야.
“천 영감 해비지가 말했다요. 유진이는 몸을 낮춰서 벚나무 열매가 보인다요. 이케요.”
똥 싸듯 쪼그려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유진이를 보며, 진혁은 뜻하지 않은 감동을 얻었다.
‘나를 낮추라. 상대의 열매가 보일 것이다.’
뜬금없는 가르침이었으나 이 계절에 어울리고, 진혁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다.
육상부 친구들의 장점을 보기 위해 몸을 낮추기보다는 제 기대치를 낮출 생각이나 하지 않았던가.
홍수정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얘기하던 손징역 오빠였는데, 오늘은 그저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진혁은 벚나무 밑에 반듯이 누워 발을 붙이고, 깍지 낀 손을 배 위에 올렸다.
재미있어 보였는지 유진이도 오빠 옆에 나란히 누웠다. 길이는 짧았으나 품만큼은 오빠보다 훨씬 크고 속 깊은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진혁이 흐뭇하게 웃었다.
“우와-. 누우니까 엄청 많다요.”
“그러게. 정말 많다.”
반투명한 연둣빛 녹음에 가려진 새까만 열매가 아롱아롱했다.
빽빽한 이파리 틈새를 파고든 오후의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그래, 보석이었다. 열매도, 이 순간도.
“유진이가 오빠보다 어른이다.”
“그럼 누나라고 불러라요.”
아, 유진아.
어허허허허-. 에히히히히-.
얼핏 삼촌과 조카로 보이는 오누이가 벚나무 그늘에 누워 키득거렸다. 그건 마치 유진이가 태어나던 날의 손광연과 손진혁을 닮은 행복한 웃음이 남매에 의해 재연된 듯한 정경이었다.
오누이의 얼굴에 드리운 연둣빛 그림자와 함께, 여름이 평화롭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