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상과 구상 사이 (3) >
재빨리 표정을 고친 문석일은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을 개고생으로 이끈 당사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지나치게 기뻐했다. 물론, 제삼자가 보기에는 겨우 입꼬리나 비틀어 올린 수준이었지만.
“팔다리는 자를 수 있어도 목은 그렇지 않아.”
문석일은 평양의 보안을 설명하며 옹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만큼 단단하고 삼엄한 경비에 둘러싸인 인물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에스 애들 백 명을 완전무장에 폭탄 둘러 투입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성공 여부를 떠나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100명으로 성공을 점치다니, 그만큼 SSS에 대한 문석일의 자부심과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요원들이라고.
‘역시 돈이 좋아. 문스킬 삼촌이 칭찬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니.’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날랜 자들이니 생환을 바라지 않고 단기간에 몰아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고공 강습을 펼치기도 전에 1/4 이상의 인원이 고사총에 희생될 테고, 절반의 절반은 낙하 중 산화하겠지만. 물론 이 또한 가정이다.
“또 모르지. 얼마 전에 세인에서 쏘아 올린 로켓 때문에 열 받아서 김일성이가 뒷목이라도 잡았는지.”
문석일은 그답지 않게 길게 말하며 우스개를 얹었다.
방심했던 진혁의 치아가 저도 모르게 드러났다.
그래서 며칠 빨리 죽은 건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도 월드컵 때 사망했던 것 같기는 한데, 조금 이른 감은 있었다.
그 화두는 거기까지였다.
정세를 아는 진혁도, 문석일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격변이라 칭할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건물 신축 건 보고 올려주세요.”
“그래.”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이미 부회장님께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게 좋겠지. 문석일은 굳이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문석일이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대도 관계없다. 민용락을 통하면 될 일이지만 SSS와 삭도와 관련된 사안이니 문석일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진혁은 삭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밀리에 뭔가를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분주하게 오가는 어선과 해경 경비정 사이에서 홀로 고요한 섬. 과거에 어떤 시설이었는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현재도 정부 묵인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해경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로켓 발사장이 여기서 가깝죠?”
“배로 20분 거리야. 남서쪽이지.”
문석일이 어딘가 가리켰으나 보이는 것은 해무뿐이었다.
그래도 그 방향이 정확할 것이다. 나침반이 필요 없는 사람이니.
그가 가리킨 곳에서 며칠 전 위성 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대기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1톤급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발사체로,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 사업이었다.
3천억 원이 투입되고 세인우주항공을 비롯한 4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제작에 참여했다고. 순전히 러시아의 기술을 흡수해 진행시킨 홍기준의 역작이라 할 만했다. 러시아에 뭘 내주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나 홍기준이 손해 볼 장사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도대체 시간을 얼마나 단축한 거야?’
오늘을 위해 필요 인력을 미리 확보해두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터였다. 그런 고급 인력들이 하루아침에 땅에서 솟지는 않을 테니까. 진혁조차도 홍기준의 준비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홍기준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엔지니어 스카우트에 열을 올렸다.
그런 준비성이라면 진혁의 구상을 실현하는 것도 절대 꿈은 아니리라.
“연구소를 지어서 뭘 만드는 거니?”
“당장 만드는 건 아니에요. 말 그대로 연구를 하는 곳이 필요해서요.”
“그래도 궁금하구나.”
문석일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휴대전화는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테스트 중이었고, 라디오 통신 무인비행기도 국가의 허가만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거기에는 카메라든, 폭탄이든 장착이 가능하다고. 자동차로 진입이 어려운 곳에 보급품 전달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듯 눈부시게 발전한 상황에서 뭘 더 개발할 수 있을까.
“헛소리로 들릴 거예요. 미래 기술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지.”
“우선은 위성을 많이 쏘아 올려야 해요.”
아직 시험발사일 뿐이다.
사업을 본격 운영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시험발사를 더 거쳐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무인자동차 같은 거니?”
문석일은 언젠가 홍기준에게 들었던 기술을 떠올렸다. 위성통신으로 신호를 송수신 어쩌고, 자동차가 혼자 블루스를 땡긴다던가.
그러나 진혁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무나 생각하는 거잖아요. 무인 전투기니 무인항법장치니 하는 거요.”
진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과묵한 문석일에게 못할 이야기는 없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로봇.”
마침내 진혁의 입이 열렸을 때, 문석일은 소리 없는 한숨을 뱉었다.
체격이 크네, 힘이 좋네 해도 애는 애구나. 로봇이라니. 태권V나 마징가 같은 걸까? 문석일의 뇌리에 주먹이 로켓처럼 발사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영상이 그려졌다. 그건 공상과학이 아니라 망상 같은데. 아무리 재벌 후원자가 뒤에 있다지만 너무 나간 것 같았다.
“위험한 곳에 사람을 대신해서 투입되는 거예요. 기계는 죽어도 고치면 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잖아요. 위성에 이동통신 기지국까지 활용해서 위치 오차를 최소화하고, 로봇 조종은 안전한 곳에서 사람이 하고요.”
간단히 설명하며 진혁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마치 꿈꾸던 미래가 눈앞에 펼쳐진 사람의 감동을 담은 눈빛과 같았다.
띄엄띄엄 알아들은 문석일이 눈을 꿈뻑였다.
“조종술이 좋아야겠구나.”
“그럴 필요 없어요. 몸만 잘 쓰면 돼요. 관절과 근육에 센서를 붙여서 사람이 움직이면 로봇이 따라 움직이는 거예요. 서로 실시간 원거리 통신으로 연결된 상태로요. 어때요?”
진정 공상을 펼치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진혁을 외면한 문석일은 멋쩍게 뺨을 긁었다.
무슨 말인지는 아는데 그게 과연 실현 가능한 기술일까. 오토매틱 자동차에도 엄청나게 편리하다며 환호하는 세상인데.
문석일은 천생 무인이다. 호승심에서 발한 무력의 향상을 꾀하기나 했지, 지식에의 탐구는 게을리한 탓에 문석일은 진혁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를 느꼈다.
“오래 걸리겠죠. 오래······.”
문석일의 마음을 읽은 듯, 진혁이 늙은이처럼 뇌까렸다.
더위 탓인지, 심경이 답답해서인지 여운처럼 한숨이 섞였다.
“그래도 일찍 준비하면 좀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투의 끝은 끝내 개운하지 못했다.
그리 말하는 진혁의 눈은 바다에 가득한 해무를 담고 있었다. 미래란 그렇듯 안개와 같아서, 헤치고 나가지 않는 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바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살았던 날에도 구현되지 않은 기술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다. 거대 자본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했고, 국가에서도 돈이 있다고 선뜻 주도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기술이 선행될 문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지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소방관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보다 사망수당이 더 싸게 먹힌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을 테고.
‘귀하지 않은 목숨이 어딨나.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딨나.’
영웅이니 뭐니 포장을 하는 것도 그 순간뿐, 남겨진 가족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한다. 나아가 가장을 잃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지 않던가.
홀로 남겨진 자의 슬픔은 겪어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과거에도 진혁은 저 혼자 비극의 주인공인 것처럼 주저앉거나 세상을 저주하지 않았다. 장성한 후에는 내색하지는 않았어도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어쩌면 후천적인 것보다 선천적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인성 때문일 것이다.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위험한 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 개발은 반드시 해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그 또한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하려는 거창한 의도는 아니다. 슬픔이나 분노 따위에 공감하며 감정을 소모하던 스스로를 위로하고, 정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진혁이 문석일을 돌아보았다.
“꼭.”
다소 꺼벙한 표정의 문석일이 진혁을 마주보았다.
“전해주세요.”
홍기준 아저씨한테.
인재를 찾는 눈이 밝은 홍기준이니 지구를 뒤져서라도 찾아낼 터였다. 마땅한 인재가 없다면 환경을 만들어 육성해서라도 데려올 거라 믿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가 지닌 영향력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세인그룹은 벌써 젊고 유능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홍기준도 여력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진혁에게는 있었다.
문석일이 제대로 전하지 못하면 민용락을 통해도 될 터였다.
‘내가 인맥도 없고 정보도 없으니 나머지는 아저씨에게 맡기는 게 맞아.’
입을 굳게 다문 문석일은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이 녀석이라면 자신이 홍기준과 특별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위축될 이유는 없었다.
“오래 걸리는 일은 홍기준 아저씨한테 맡기고 우리는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요.”
“바로 할 수 있는 일?”
뜻밖의 소리에 문석일이 눈을 끔뻑였다.
“교관이 필요해요.”
합숙 훈련을 하자면 일정대로 지도할 가이드가 필요했다.
문석일에게 빨간 모자를 씌우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선글라스는 남아도는 사람이니 모자만 사주면 되겠지.
“머리 오십육이죠?”
삭도 정상을 등지고 내려가던 진혁이 뒤돌아 물었다. 프리사이즈를 사면 될 테지만 예의상 묻는 거다.
“어.”
눈썰미 좋네. 가파르고 미끄러운 탓에 나뭇가지를 잡고 내려가며 문석일이 중얼거렸다.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의 적막이 아스팔트 도로보다 길었다.
문석일이라는 사람은 애초 누군가 묻기 전에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건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둘이 나누는 대화는 공식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게 허튼소리라 해도.
“폭탄 구할 수 있어요?”
“무슨 폭탄?”
창밖을 보던 진혁이 낮은 음성으로 묻는 말에 문석일도 전면을 주시한 채 되물었다.
“철골 콘크리트 구조물 부술 폭탄요.”
“구체적이면 좋겠구나.”
콘크리트를 부어 완성하는 구조물에 철골이 들어가지 않는 게 있을까. 고의로 부실공사나 날림공사를 한 게 아니라면 예외는 없었다. 그건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는 상식이었다.
“한강 다리 교각을 무너뜨릴 정도면 충분해요.”
“······.”
문석일의 콧구멍으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전성 검사 공작이 뜻대로 안 돼서 그런 거니?”
“네. 맞아요.”
진혁의 부탁으로 해운선사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서울과 목포, 군산을 오가며 온갖 사람을 만나고 다닌 문석일이다. 특기를 살린 일이고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말 못 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고.
보안 전화기를 구해달라기에 구해줬더니 진혁은 공항에 장난전화를 걸었다고 이실직고했다. 뉴스에 나오는 폭파 협박범이 손진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이놈의 사춘기가 너무 과격하게 온 게 아닌가 싶었다. 막말로 하늘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한데 하다 하다 이제는 한강 다리를 부수란다.
사전 공작이 있었다. 건설사의 부실공사와 감리 당담 공무원의 부실감사를 꼬집을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안전성 문제를 부각해 재공사를 유도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석일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공사에 책임자도, 담당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투명한 한계였다.
그런 상황에서 누굴 협박한단 말인가.
‘최소 건교부 장관.’
지난 행적을 복기한 문석일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뛰어난 공작원이라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저승사자가 꼬장이라도 부리는 걸까?
‘그놈의 저승사자만 아니면 대놓고 묻겠는데.’
목숨을 담보로 계약한 함구의 제약이 너무 강력했다.
한참 고민하려니 진혁이 물었다.
“못 구하세요?”
다분히 실망스러운 어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