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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38화 (138/338)

< 엉터리 손 코치 (3) >

아무리 무책임하고 성적에 관심 없는 교사라 해도, 그리고 형식적인 육상부라고 해도. 교사들이 기초는 잡아줬을 거라 생각했다. 지나가다 한마디 툭 던져도 아이들은 빠르게 받아들이는 법이니까. 그런데 조슬찬과 염병택은 초등학교 때와 비교해서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키가 커지고 다리가 굵어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어쩌면 영원히 고칠 수 없어서 그냥 둔 건 아닐까.

‘그래도 조금만 더 해보자.’

친구들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그때 포기해도 될 일이었다.

진혁은 아직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답답했다. 집에 있는 캠코더로 찍어서 저속 재생하며 분석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시간이 너무 걸릴 테고.

‘스마트폰만 있어도 간단할 텐데.’

20세기에는 아직 그런 게 없다.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이 아닌 축구나 농구를 하고, 발랑 까진 학생들은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본드를 부는 세상이다.

‘짜식들 공부라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조슬찬과 염병택의 태양고등학교 진학은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친구들의 담임 교사에게 조심스레 확인한 의견이었다. 대회 입상 실적이라도 있다면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학업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운동에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 혼자 잘 풀리고 잘사는 게 뭐가 재밌냐.’

***

유진이는 팔다리가 길어 태가 제법 좋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라서 도시에 살았다면 홍수정처럼 발레를 시켰을 거라고 엄마는 늘 아쉬워했다. 깡촌에 거주하는 탓에 읍내에도 없는 발레나 무용 학원에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방과후 수업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집에 있는 강사들은 모두 주특기가 격투기다. 가장 마일드한 장진남마저도 유진이에게 비교적 여성스러운 스포츠를 가르쳐주겠다며 영춘권을 가르치는 형편이었다.

결국 오빠가 나섰다.

“음-파-, 음-파-. 이케요?”

“그렇지. 음- 할 때는 입을 닫고 코로 숨을 뱉는 거야. 파- 할 때는 고개를 이렇게 오빠처럼 옆으로 돌리고 입으로 숨을 들이쉬고.”

진혁은 최선을 다해 유진이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사는 곳 어디든 눈을 돌리면 물이 보인다.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한 물에 빠질 일은 없지만 사고라는 게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것 아니던가. 더운 여름날 수로에 뛰어든 홍시를 구하겠다며 저도 모르게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 작년의 일이다. 홍시는 그저 더위를 식히려던 건데.

그런 것만 보더라도 사고는 사람의 의도하에 발생하지만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물만 보면 좋아서 방방 뛰는 존재가 아이들인데 안전한 물놀이를 위해 수영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수영장 저편에서는 최미경 청소년이 여전히 발발거리고 있었는데, 예전보다 많이 발전한 모습이었다.

‘조금씩은 앞으로 가네······.’

가라앉기 바빴던 6개월 전과 비교하면 최미경 청소년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괄목상대의 화신이었다.

접영을 배우는 경지인 최장환과 김순복에 비하면 자유형도 익히지 못한 최미경은 돌고래 앞의 해파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혁이 보기에는 최미경의 두려움이 문제였다.

최미경 청소년은 여덟 살 때 둠벙이라고 불리는 웅덩이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마 진혁과 우렁이를 줍다가 그랬을 거다. 둠벙은 무논 구석에 마련된 웅덩이였기에 넓지 않았고, 제 키보다 조금 깊은 수준이어서 조금만 움직이면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어린아이 아닌가.

당시 최미경보다 작았던 진혁은 꼴딱거리는 친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끄집어냈었다. 풀뿌리를 움켜쥐고, 몸은 웅덩이에 담근 채. 따지고 보면 생명의 은인이다. 하나 진혁은 그때의 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미경이 경기를 일으키며 무서워했으니까.

아무튼 진혁의 눈에는 최미경이 달리 보였다.

‘역시 내 친구야. 용감하잖아.’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수영장에 입수한 자체만으로도 최미경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 반해 유진이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기 때부터 실컷 물놀이를 하도록 대야에,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곁을 함께 지킨 덕분이리라. 유진이는 아기 때도 물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물놀이를 했었다.

“유진아, 물은 무서운 거야.”

“아닌다요? 안 무섭다요.”

“음, 그러니까. 오빠 말은······.”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괜히 겁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 말을 고민하는데 유진이가 또박또박 말했다.

“무서워하면 발전할 수 없다고 진남이 아지찌가 그랬다오.”

유진이는 말투마저 장진남을 닮아가고 있었다.

유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장진남이 아닌 민용락이었다면 하루 종일 군것질을 했을 테고, 양강욱이었다면 ‘나는 동오 땅 손상향이다!’ 이랬으려나.

“진남이 아지찌, 어릴 때 불량식품한테 맞아서 사람이 무섭다 했다요. 그래서 안 무서우려고 운동했다 했다요.”

진혁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장진남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두려움의 실체를 정확히 진단했다는 거 아닌가. 끝내는 극복하고 UDT 대원으로 군 복무까지 마쳤다.

다행이었다.

유진이 곁에 좋은 스승들이 있다는 안도가 따랐다.

“오빠는 뭐가 무섭나오?”

뜻밖의 질문이었다.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한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유진이도 어느덧 타인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글쎄······.”

미간이 오므라들었다.

잠시 턱을 쥐고 고민해야 할 만큼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가 뭘 두려워하지?’

세상에 무관심했다.

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 만큼 만물과 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대개의 남자들이 바라마지 않는다는 미인이나 멋들어진 자동차에도 돌을 보는 것보다 못한 시선을 주곤 했으니.

“내가 안다요. 오빠 무서운 거.”

“호오-. 그래? 오빠가 뭘 무서워하지?”

나도 모르는 걸 안다니, 역시 내 동생은 천재인가?

진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빠, 돈가스 무섭다요.”

컥-.

삼키던 침이 사레들러 진혁의 기도를 막았다.

조그만 녀석이 쓸데없이 예리하단 말이야.

하나 돈가스가 무서울 리 없는 진혁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웃었다.

“유진아, 오빠는 돈가스 좋아해. 안 무서워.”

“왜요?”

유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씨.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

*

수영장 모서리에 손을 얹고 음파음파를 연습하는 유진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두렵다.’

누군가를 잃을까 봐.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문석일과 SSS도, 함께 새로운 추억을 쌓는 친구들도.

아프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진작부터 마음속에 움튼 꿈일 것이나, 애써 구체화하지 않았으니 새삼스럽게 떠올랐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그들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긴 날숨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다.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차오르는 사람을 떠올리며.

‘오늘은 수정이한테 전화해야겠다.’

늘 걸려오는 전화만 받고 먼저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초딩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리 고민할 때 유진이가 오빠를 불렀다.

“오빠, 시계 지나갔다요.”

“어, 벌써?”

유진이는 오빠만큼이나 운동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10분 동안 음파를 연습하면 풀장에 둥둥 뜨게 해준다고 약속했더니 쉬지 않고 기어이 해냈다. 기본기가 중요하기에 아직 전신 입수를 허락하지 않았던 터였다. 발차기는 장진남과 명현우가 잘 가르쳤으니 이제 진도를 빼도 될 것 같았다. 기본기가 중요하다지만 재미가 없으면 아이들은 쉽게 흥미를 잃게 되니까.

드디어.

손유진이 수영장 벽에 의지하지 않고 물로 들어갔다.

“꺄아아아아-! 신났다아아아-!”

돌고래 초음파가 곰짐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에 멀리서 발발거리던 최미경이 놀라 가라앉았다.

오빠 손을 잡고 입수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다른 코치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는 오빠 아닌가.

“유진아, 목에 힘 빼고. 고개를 더 떨궈야 해. 그렇게 뻣뻣이 들고 있으면 가라앉아.”

“안 된다요오-! 그럼 물먹는다요오-!”

막상 물에 들어오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유진이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대답했다.

흡사 오빠에게 대드는 모습처럼 보였다.

“음파음파 배웠잖아.”

“해본다요-.”

진혁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자상하게 말했다.

천천히, 한 단계씩 자연스럽게 뛰어넘도록 진행해야 한다.

윽박지르거나 소리치면 유진이는 겁을 먹고 포기할지도 모르니까.

“파-!”

뽀골뽀골-.

물을 좀 먹긴 했지만 유진이는 겁먹지 않고 배운 대로 곧잘 해냈다.

“파-!”

뽀골뽀골-, 꼴깍꼴깍-.

물을 조금 많이 먹긴 했지만······.

“이제 킥판 잡고, 음파 하면서 발차기하는 거야.”

“네에-, 켁켁-.”

물을 좀 먹긴 했지만······.

뭐, 물 안 먹으면 수영 못 배운다.

유진이가 마시는 물에 비례해 수영 실력도 늘겠지.

***

전화기를 든 손이 괜히 떨렸다.

유명선 회장에게 안부를 묻거나 홍기준 부회장에게 업무상 목적으로 전화를 거는 등, 다른 용건으로 서울에 전화를 걸었던 일은 있었지만 홍수정과 통화하기 위해 수화기를 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떨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그래요? 수정이 일찍 자네요?”

- 왱알앵알-.

“네······.”

진혁으로서는 큰맘 먹고 전화를 건 것인데, 아기와 놀다가 같이 퍼질러잔다는 유세라의 말이 돌아왔다.

- 진혁이 대회 나가지?

“네. 백 미터랑 이백 미터 종목만요.”

- 다른 종목도 나가고 싶으면 얘기해. 규정이야 바꾸면 그만이야.

“아니에요. 그냥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누가 유세라 아니랄까 봐 대회 규정을 바꾼다는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육상경기에서 복수 종목 출전이 특혜나 흉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수 보호를 위해, 전문성 제고를 위해 다수 종목 출전을 지양하라는 권고가 있었던 게 작년의 일이다. 그러니까, 유세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규정을 뜯어고친다고 호언장담하며 여러 종목에 출전하라고 꼬드기는 중이었다.

“단거리만 하려고요.”

단거리가 만만해서가 아니었다.

진혁은 단거리가 가장 약했다.

누가 들으면 기만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진혁은 어느 순간부터 힘을 폭발적으로 내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열세 살, 첫 대회에 나갔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호흡도, 근육의 힘도 충분한데 심장이 간질간질하며 터질 듯, 터질 듯 끝내 에너지가 터져 나오지 않는 느낌.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 간질간질 야릇한 느낌이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건 마치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재채기나 변비와 비교할 만했다.

1킬로미터를 전력 질주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으니 400미터나 중장거리도 자신 있었지만, 진혁은 100 미터와 200 미터에 제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육상의 꽃 아닌가.

멀리뛰기도 그렇다.

매일 재미 삼아 연습을 하다 보니 8미터에 육박하는 기록을 보였다. 물론, 곰짐이라는 실내 경기장에서 실시한 연습기록이니 신뢰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쉽게 보기 힘든 기록이었다. 유세라가 준 자료에 의하면 중등부 최고기록이 7.2 미터 정도였다.

유세라는 길게 묻지도 않았고, 진혁에게 다른 종목을 권하지도 않았다. 자신도 이미 단거리에 집중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 그래. 이번 시합 때 민용락 대리 동행할 거야.

“네?”

- 매니저 있어야지. 내 선수인데.

아직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내 선수란다.

아니, 그렇다고 쳐도 중학교 육상대회에 무슨 매니저란 말인가.

게다가 민용락은······.

‘아!’

진혁은 얼마 전 갱신된 민용락의 명함을 받았더랬다.

세인스포츠재단. 흰색과 연분홍색이 대각선상에서 그러데이션으로 만나는 분홍분홍한 명함이었다. 콕 집어 말하자면 홍수정스러운 명함이랄까.

민용락에 의하면 세인그룹 전략실과 SI재단 겸직이라고 했으나, 홍기준과 유세라의 의도를 알 듯했다.

‘내 전담이라는 뜻이겠지.’

잠시 숨소리만 들리자 유세라가 채근했다.

- 알겠니?

“네······.”

- 대답이 왜 그렇지?

“큭! 넵!”

집요한 것이 마치 홍수정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적당히 끊으려는데 유세라의 목소리가 고막을 잡고 늘어졌다.

- 어려운 건 없고?

“가르치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아차 싶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지 누굴 가르치려 드느냐는 말이 돌아올 까 봐. 대개 어른들은 그러지 않던가.

- 눈높이를 낮춰야지. 훌륭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야. 네 실력을 기준으로 두면 성에 찰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철부지 유세라답지 않게 제법 어른스러운 대답이었다.

끄응- 하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참고자료를 뒤적이는 모양이었다.

- 친구들 때문에 그러는 거지?

“네. 맞아요.”

- 이론처럼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친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대. 그럴 땐 한 가지에 집중하래. 둘 중 하나만 해도 실력으로 나타난다고. 장점을 강화하는 건 유일한 선수로 만드는 길이고, 어디 보자······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점을 고쳐서 팀을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 라고 여기 엠아이티 공대 논문에 있어.

MIT에서 그런 연구 논문도 발행하나?

아무튼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던 대로 단점 보완에 집중해야겠어요.”

- 그렇지, 그렇지. 역시 똑똑하네.

몇 달 남지 않은 대회, 반응 속도를 위한 집중력 향상과 컨디션 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함에도, 두 엉터리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진혁은 내심 감탄했다.

한때는 철부지 어른이라고 생각한 사람인데, 역시 어른은 어른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라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싹텄다.

- 그래, 눈높이를 너무 높이면 세상이 재미가 없어요. 이 어머님 같은 미인만 보다 보면 세상의 어떤 여자가 이뻐 보이겠-.

뚝-.

존경심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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