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내지 못한 계절 (4) >
***
피아가 명확히 식별된다 한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찾아가 숨통을 끊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그런 행동을 한다면 진혁이 혐오하는 악인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박우정은 쉽게 죽어서도 안 되었다.
‘편하게 죽으면 곤란하지.’
박우정이 더러운 수를 쓰는 것이 손광연에 대해 착각을 하는 것이든, 다른 속내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든, 그런 궁금증은 이제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나를 죽이려는 강도의 목적이 돈일까, 아니면 시계일까 궁금해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다만 방법이 고민일 뿐이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일단 몇 년은 더 살게 해주마.’
세인을 움직여 일단 혈압부터 확 올려줄게.
진혁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형 품에 안겨 잠투정을 하던 정원이가 낌새채고 얌전해질 정도로 부적절한 눈빛이었다.
***
겨울방학이 되었지만 홍기준의 가족은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것이 작년 추석 이후였으니 벌써 1년이 넘었다.
홍기준은 그룹을 성공적으로 장악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한 상태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통신과 우주항공 산업을 위해 러시아와 활발히 교류 중이라고 했다. 상업용 정지 궤도 위성과 저궤도 위성을 동시에 개발 중이라는 첩보 아닌 첩보도 입수했다. 수심이 깊지 않은 서해안에 위치한 무인도 중 하나를 간척해 로켓 발사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들었다.
물론, 기밀 엄수를 조건으로 민용락을 통해 은밀히 전해온 정보였다.
유세라는 의외로 육아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딸을 키울 때보다 배로 힘든데도 즐겁다고 했다. 확실히 이상한 여자였다.
꼬맹이 홍수정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려대던 전화기도 침묵을 지켰다. 홍수정은 집에서 홍기준 다음으로 바쁘다고 했다. 뭐, 이것저것 하는 데다 동생 교육으로 바쁘다나? 돌도 안 된 아기에게 뭘 가르친다는 건지는 몰라도 엄마를 닮아 이상한 아이였다.
진혁이 홍수정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넓은 손 씨네 거실에 고요가 감돌았다. 소리라고는 툭툭- 거실 창을 때리는 굵은 눈처럼 손정원이 옹알이하는 소리가 전부였다.
반대로 집 밖은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은 눈을 좋아한다. 개들과 어울려 눈밭을 뒹구는 유진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까하하-. 홍시도 이제 잘 구른다요-.”
진혁은 경호원처럼 주위를 서성였다.
푹신한 잔디밭 위에 눈이 많이 쌓여 다칠 염려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지는 않았는데, 키 작은 장군이 때문이었다.
“장군이 어딨니?”
헤헥-! 월!
눈에 파묻혀 보이질 않으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세상에, 살다 살다 개를 경호하게 될 줄이야.
“오빠가 엄청 큰 눈사람 만들어줄게.”
진혁도 눈을 좋아했다.
만지면 차갑기만 한데 왜 좋아하는지 본인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빛나는 순백이 주는 정갈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미성년자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반기지 않았으나, 동생과 놀 때만큼은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함께 놀 사람이 있어서 좋다.’
진혁에게 혼자 눈사람 만들기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성인 남자가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하는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 물론, 도전해 본 적도 없었다.
아이가 눈을 뭉치고 굴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굳이 체면 차릴 이유 없어서 편하다. 진혁에게는 눈덩이를 굴리는 일조차 실재의 증명이었다.
오빠가 뭉친 눈덩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유진이는 묵직하게 잘 뭉쳐진 눈덩이를 위에서 공처럼 끌어안았다.
워낙 단단하게 뭉쳐져서 유진이가 올라가도 부서지지 않았다.
“오빠, 눈 집 만들자요.”
“눈 집?”
“네. 테레비에서 봤다요. 거기서 잠도 자고 감자도 구워 먹자요.”
날이 갈수록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유진이였으나 마다할 오빠가 아니었다.
어디 보자······.
‘이글루를 어떻게 만들더라?’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인지라 구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시간은 없다. 일단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유진이가 시무룩해지지 않을 테니. 머뭇거리면 발 시린 아이처럼 두 발을 종종거리며 보채는 녀석이었다.
어차피 온천지에 눈이니 재료는 넉넉했다.
그런데 손으로 만들다가는 어느 세월에 완성할지 알 수 없다. 들어가서 잠도 자고 감자도 구워 먹자는데 너무 작게 만들면 안 될 것 아닌가.
‘그래. 벽돌을 찍자.’
작은 벽돌 말고 큰 벽돌로.
진혁은 즉시 창고를 뒤져 과일상자를 찾아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상자에 넉가래로 눈을 퍼담았다.
그리 담으면 유진이가 손으로, 발로 꾹꾹 눌렀다.
‘역시 똑똑한 내 동생.’
오빠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잖아.
모든 아이들이 그 정도 통찰력은 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오빠의 착각이었다.
기온은 낮았으나 날이 맑았다. 태양의 복사열을 받은 눈이 뭉치기 좋을 정도의 점성을 유지한 덕분에, 눈 벽돌은 쉬이 부서지지 않고 모양을 유지했다.
“잘 잡고 있어.”
“네-.”
끈을 잡은 유진이를 원심으로 삼아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는 선을 따라 눈 벽돌을 배치하고 시범을 보였다.
“오빠가 여기에 두면 유진이가 손으로 다듬는 거야. 이렇게-.”
“네, 에헤헤-.”
진혁이 직접 시공하는 편이 낫겠으나 동생도 즐기길 바랐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계절 아닌가.
언젠가 유진이가 훌쩍 커진 후에도 오늘을 추억하며 오빠를 애틋하게 생각해 주리라.
유진이는 오빠가 가르쳐준 대로 조막만 한 손으로 벽돌을 다듬었다. 어린 녀석인데도 손이 야물었다. 직육면체에 가까운 벽돌을 사선으로 다듬어 틈이 생기지 않도록 내는 모양이 제법이었다.
“하이고-, 힘드럽다요.”
“추우면 집에 들어가. 오빠가 잘 만들어줄게.”
“으응으응-.”
유진이는 고집불통답게 고개를 저었다.
아예 눈밭에 퍼질러 앉아 두 다리를 쭉 뻗었다. 홍수정이 입던 스키 바지는 방한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개가 네 마리나 유진이를 에워싸고 있으니 보온 효과도 기대할 만하겠지. 그래도 오래 있으면 추울 텐데.
진혁이 속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우와, 오빠 잘한다요.”
꼬맹이 칭찬이 뭐라고 이리 기분 좋을까.
귀에 입이 걸린 진혁은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푹푹 퍼서 상자에 담고, 꾹꾹 밟는다.
상자를 뒤집어 벽돌을 만들고, 적당히 기울기가 생기도록 각목으로 모양을 냈다.
드디어 원형 벽이 안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상부의 벽돌은 가볍게 만들었지만 무게 때문에 무너질까 걱정이 되었다. 몇 번이고 이음새가 확실히 붙었는지 힘을 가해 확인했다.
“괜찮은데?”
“으응-, 괜찮다요.”
홍시는 유진이가 기댈 수 있도록 뒤에 버티고 앉았다. 장군이는 유진이의 다리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유진이는 좌우에 엎드린 천마와 광마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오빠의 건축 작업을 감상했다.
동네 집 짓는 아저씨들은 천천히 하던데, 이 오빠는 개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엄청엄청 빨리 움직인다요. 숨을 안 쉬는 사람 같다요.
“오빠, 안 힘드러워요?”
“응. 아직 괜찮아.”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오빠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 체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몇 시간의 작업 끝에 허기지고 눈이 뻑뻑했다. 반짝이는 동생의 눈을 보며 힘을 냈다.
진혁이 탈진하기 전에 이글루가 완성되었다.
거대하다 할 수는 없지만, 개 네 마리와 성인 네댓 명이 충분히 앉을 만한 이글루였다. 천장 높이가 진혁의 키와 비슷해서 사다리까지 동원한 대공사였다.
마무리 공사로 천장 중앙에 구멍을 내고, 밖을 볼 수 있도록 창문도 만들었다.
‘이렇게라도 힘을 써야지.’
진혁은 학생의 신분이며 가족의 구성원이다. 매일 돌아올 곳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전시 상황도 아니고, 고도화된 체제하에서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세계. 아무런 소속 없이 느닷없이 모험을 떠나는 그런 세상은 창작물 속에만 존재한다.
무력이 뛰어나다 해서 아무 곳에나 뛰쳐나가 마구잡이로 힘을 써선 안 되는 까닭이다. 세상이 평화로운데 왜 내 힘을 몰라주냐며 꼬장을 부릴 순 없는 일 아닌가.
‘그건 미친놈이지.’
해가 바뀌며 진혁이 느꼈던 언밸런스함에 대한 분석이었다.
위협 요소가 있다면 마땅히 응징에 나서겠으나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저녁 운동, 정원이 기저귀 갈기, 유진이랑 놀기, 장군이 벼룩 잡기 따위가 전부였다. 에너지가 넘치는 진혁으로서는 몸이 근질거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또래 중에는 가출하는 녀석들도 꽤 있다는데, 진혁도 홀몸이었다면 당장에라도 훌쩍 떠났을지 모른다.
한데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눈물이 핑 도는 가족이 있는데 굳이? 시시때때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진혁은 철부지가 아니었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여.’
장갑 낀 손으로 이글루 외벽 이음새를 꼼꼼히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곰짐에 있는 삼촌들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진혁과 대련을 꺼리는 사람들이지만, 진혁 역시 그들과 대련을 함에 실력이나 체력 향상에 도움을 받지 못했다. 수준 차이가 너무 컸다.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쓰는데도, 진혁에 비해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SSS 요원들은 진혁이 달아오르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차라리 쉴 새 없이 눈을 뭉치고 이글루를 만드는 게 나았다.
혼자 하는 일은 페이스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매일 운동을 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넘치는 힘을 분출할 곳이 없으니 홀로 삭이는 컨트롤하는 거다.
“와아아-! 신났다! 너무 멋지다요오!”
이글루 안에서 유진이가 방방 뛰었다.
장군이와 부하견들도 입구를 들락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유진아, 눈 집 마음에 들어?”
“네에-! 에헤헤-. 너무 좋다요!”
꺅꺄아아아악-!
난데없는 초음파였다.
장군이를 비롯한 개친구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이글루 밖으로 탈출했다.
진혁은 혹시라도 초음파 때문에 이글루가 무너질까, 동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보호했다.
‘애들 목청은 참 대단해.’
다행히도 개고생해서 만든 이글루가 붕괴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글루에서 한참을 놀던 유진이는 홍시에게 기댄 채 졸기 시작했다.
목청 외에도 정말 대단하다는 말 외엔 생각나지 않는 동생이다.
아무리 따뜻하게 챙겨 입었다고는 해도, 기온 자체는 영하인데 어떻게 졸 수가 있을까.
천마와 광마가 유진이에게 바짝 붙어 엎드렸다.
헤헤헷-.
이기적인 장군이는 저 혼자 살겠다고 홍시와 유진이 틈을 파고들었다.
동생을 안아 옮길까 생각했던 진혁은 엉금엉금 기어 이글루 밖으로 나갔다.
감자도 구워 먹고 싶다는 동생에게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
뜬금없이 나타난 커다란 이글루였다.
멀리서 지켜 보니 손진혁이 이글루 내부에 장작을 들였다.
‘저 자식이 불장난할 나이는 아니고.’
손진혁은 이유 없이 불을 지피는 친구가 아니다.
육성찬과 이해원은 여덟 살 초봄에 잡풀을 태우다 집을 홀라당 태울 뻔하기도 했지만, 손진혁은 어릴 때부터 조심성이 많았다.
그렇다면 뭔가 구워 먹으려는 거다. 망둥어일까, 고구마일까. 뭐가 됐든 맛있겠지. 숯불에는 뭘 구워도 맛있더라. 유치원 다닐 때 꼬챙이에 꿴 가래떡을 숯불에 구우며 장난치던 날이 떠올랐다. 최미경 청소년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피었다.
아무튼 이 최미경 청소년의 돼지 레이더를 피해 갈 수는 없지.
그래서 눈밭을 뚫고 방문했다.
“진혁아-.”
모닥불에서 숯을 끌어내던 진혁의 눈이 저절로 가늘어졌다.
이제 막 감자를 굽기 시작하려던 참인데 귀신같이 나타나지 않았나. 언제고 최미경의 집에 들러 망원경을 찾아내리라 다짐했다.
“어서 와.”
“왜 혼자 있어?”
떡 벌어진 입으로 이글루 내부를 둘러본 최미경이 물었다.
혼자 이런 짓을 할 녀석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었다.
“유진이 쉬하러 갔어.”
아, 그렇구나. 최미경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글루 안에 개라고는 장군이뿐이었다. 세 녀석은 유진이를 따라갔겠지.
“되게 아늑하고 따뜻하다.”
“이거 깔고 앉아라.”
진혁은 제가 깔고 앉았던 굵은 장작을 밀었다.
그래도 손님인데 두껍지도 않은 바지를 입고 바닥에 앉을까 걱정된 탓이다. 똥꼬 막히라고 저주를 걸긴 했지만 똥꼬에 동상이 걸리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시 봐도 신기하다.’
진혁은 최미경 청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자못 흐뭇했다.
가장 오래되고 친했던 친구. 얼굴 보는 기회가 잦아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달가웠다.
진혁의 눈빛이 부적절하게 비쳤을까, 최미경이 니트 재킷을 여미며 진혁을 흘겼다.
“언니 안녕하세여-.”
다행히 때맞춰 돌아온 유진이 때문에 오해의 순간은 금세 소거되었다.
“우와-, 우리 유진이 못 본 새 엄청 컸다.”
“그치요? 학생만큼 크다고 그랬다요.”
“누가?”
“어중이떠중이가 그랬다요.”
순간 이글루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말이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닐 텐데.
얕은 한숨을 뱉은 진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유진아. 오빠 학교 갔을 때 장군이랑만 논 거 맞아?”
“천 영감도 만나고, 쪼롱 아지찌도 만났다요.”
어쩐지 점점 말버릇이 늙수그레해지더라니.
유진이가 자랑하듯 덧붙였다.
“이동호도 만났다요.”
“이동호? 그게 누구야?”
“쩌어-기 산다요. 오빠가 쟈번에 붕어줬다요.”
붕어라면······.
아! 그 삼 형제 중 막내 이름이 동호인 모양이다.
“큰오빠가 이준호, 그담이 이범호, 친구가 이동호다요.”
유진이는 신이 나서 친구를 소개했다.
곧 함께 유치원에 가게 될 거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동호는 유진이보다 키가 작고 아직 이불에 오줌을 싼다는 불필요한 정보도 남발했다.
“그 멀리까지 누구하고 갔어? 다리 아팠겠다.”
사방이 논인 농촌에서 새겨야 할 문구가 있다.
「사물이 네 생각보다 멀리 있습니다.」
장애물이 없어 눈에 빤히 보이지만 걸어가자면 지루해서 욕이 나오기도 한다. 동호가 사는 곳은 진혁의 걸음으로도 10분은 걸어야 하는 곳, 유진이 걸음으로는 30분은 걸릴 터였다.
“홍시랑, 장군이랑, 천마랑, 광마랑, 진남이 아지찌랑 갔다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들이랑 갔으면 심심하지는 않았겠네. 장진남이 함께였으니 안전했을 테고.
유진이에게 친구가 많다니, 오빠로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불멍을 시전하려는데 장작이 부족했다.
친구가 깔고 앉은 걸 빼앗기는 미안하고, 추가로 가져오기로 했다.
진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진이가 최미경에게 관심을 보였다.
“언니, 춥겠다요.”
최미경이 쿡- 코웃음을 삼켰다.
말투가 의문형에서 확정형으로 바뀌니 늙은이 같잖아.
“언니는 안 추워.”
“내복 입었다요?”
똘망한 눈을 반짝이는 꼬맹이의 머리를 최미경이 쓰다듬었다.
“안 입어도 안 추운데? 우리 유진이도 언니 나이 되면 알 거야.”
왜 춥지 않은지 궁금했을까, 유진이의 손이 최미경의 허벅지를 지나 엉덩이를 조물락거렸다.
동시였다.
장작을 품에 안고 낑낑대며 진혁이 이글루로 들어온 것은.
헤헥-.
“옴마!”
최미경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진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손진혁, 너······.”
“뭐-.”
반쯤 감긴 눈으로 진혁이 턱을 추켜세웠다.
최미경이 늘 하던 시늉이다.
눈을 날카롭게 찢은 최미경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아주머니한테 이를 거야.”
“뭘?”
진혁이 고개를 갸웃댔다.
뭘 이르겠다는 거지? 무허가 건축물 건조? 방화?
여전히 냉랭한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최미경을 무시한 진혁이 뺨을 긁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러라, 일러라 일본 놈-. 대머리까진 일본 놈-.’
이글루 밖으로 다시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