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내지 못한 계절 (3) >
머리가 깨질세라, 신상열은 재빨리 사장실에서 튀어나왔다.
돈도 좋지만 저 더러운 성질머리 때문에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한들 죽어서야 무슨 소용일까.
‘니미뽕이다 이 새끼야. 문석일 처리하려고 붙였던 놈들도 병신이 돼서 발견됐는데 어떻게 끝내라는 소리냐.’
하여간 돈 많은 것들은 저게 문제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데, 안 되는 일도 많더라. 문석일부터 잡기 위해 거액을 풀었으나, 목표물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한 해결사들은 부정 탄 사람들처럼 옷자락을 털며 내뺐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며.
빌어먹을 상황이다.
당장에라도 더러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죽여서 입막음하려 들 테고. 진퇴양난이 딱 들어맞는 꼴 아닌가.
벽에 등을 기대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엄마 보고 싶다.’
마흔을 바라보는 남자의 처연한 심중이었다.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는데, 웬 여자가 거만한 눈빛으로 신상열을 일별 후 지나갔다.
여자의 뒤에 대고 신상열이 주먹감자를 날렸다.
‘이놈의 박가 집구석 인간들은 눈구멍이 죄다 마음에 안 들어.’
무슨 대화를 나누려나.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잠시간 잠자코 듣던 신상열은 안주머니를 더듬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
씩씩거리며 담배를 물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박우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나야.”
날카로운 눈매에 강한 턱선을 가진 여자, 박우정의 여동생 박사랑이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박우정이 물었다.
“웬일이냐?”
“신문 봤어?”
박우정은 대꾸 없이 박사랑을 쏘아보았다.
다 늙은 것이 이번에는 20대 모델과 바람이 났다던가. 바람은 무슨, 돈으로 꼬드긴 거지. 남자나 여자나 젊은 정기 탐내는 것도 가족력이라면 가족력이다.
박우정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박사랑이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광연이 잘 사나 봐.”
박우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침 그놈 때문에 열을 내던 중인데 심사가 고울 리 없다.
“잘 살아? 그래서 좋다 이거냐? 그 천박한 핏줄이 아직도 네 동생으로 보여?”
“왜? 천박해서 광연이도 어떻게 해보려고?”
“너······.”
박우정이 이를 악물고 박사랑을 노려봤다.
백영림이 모은 자료가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알 듯했다. 어차피 백영림이 수기 작성한 장부, 박우정으로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러나 공개될 경우 피곤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사정아.”
“이름 바꾼 게 언젠데 그따위로 불러!”
박사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피식 웃은 박우정이 박사랑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 표정이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다.
“박사랑 사장, 잘 생각해. 아버지 돌아가시면 우리 남매만 남는다.”
“당연히 얼마 못사시겠지. 이미 송장이라고 보는 게 맞잖아? 그래서, 광연이가 친자확인 거쳐서 재산이라도 노릴까 봐?”
“당연한 거 아니냐? 그 천한 것들이 돈 아니면 뭘 보고 아버지께 접근해 몸을 팔았겠냐고.”
그리 말하며 박우정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도 어쩜 이리 멍청할까.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친자확인 같은 소리하네.’
하긴, 내막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니 저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시뻘겋게 충혈된 박우정의 눈을 외면한 박사랑은 코로 한숨을 내보냈다.
오빠 박우정은 아버지 박운철을 닮아 성격은 불같고 표현에도 거침이 없다.
손속도 매서워서 저지른 일들은 입에 담기가 두려울 지경이고.
‘영림이 구워삶아 증거 빼돌리지 않았으면 나도 위험했겠지.’
박우정의 약점을 쥐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운을 뗀 것인데, 다행히 눈치는 있어서 알아들은 것 같았다. 적어도 저만은 섣불리 어찌하려 들지 않을 테지.
친하다 할 수는 없지만, 젊을 때는 가족 몰래 손광연을 만나곤 했던 박사랑이었다. 나이 차가 많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하나, 동생이라 생각하니 정이 갔다. 박운철을 닮지 않아 잘생긴 얼굴 보는 낙도 있었고.
시골 여자 쫓아다니는 거 반대하다가 연이 끊겼는데 저리도 잘 살아있구나. 그 여자는 집안이 망했으니 헤어졌겠지. 지금 생각해 봐도 투서를 넣은 건 백번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다.
박사랑은 조금이나마 남은 정으로 손광연만은 보호하고 싶었다.
“광여-.”
“아, 됐어. 두둔하려 들지마. 이제 어쩌지도 못한다. 조용히 저대로 살게 둬야지.”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하나는 포기, 하나는 안도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박우정은 미련이 남은 듯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러운 짓 하면 가만 안 둔다 이놈. 너도 조심해! 천박한 년놈들 편들지 말고!”
미간을 찡그린 박사랑이 고개를 저었다. 저 성질머리는 죽어도 고쳐지지 않겠지.
그래도 박우정의 말 중 한 가지는 인정했다.
‘천박한 건 맞지.’
개나 고양이도 친절하게 대해주면 기어오르지 않던가.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
그놈의 민주와 자유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타고난 토양이 다른데도 거리낌 없이 공정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 아닌가. 출발선이 다른데 어찌 동일선상에서 달리고 함께 골인을 꿈꾼단 말인가.
돈을 주고 머슴으로 부리는 직원들도 종종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피를 나눠 받은 것들은 더 할 거라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유학 중이던 박윤영이라는 어린애도 당돌한 성격 탓에 일찌감치 박우정의 심기를 건드렸지.
「대정전자 朴愚情 사장, 직원들과 소탈한 행보.」
제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신문을 들어 보이며 박우정이 짜증스럽게 이기죽거렸다.
“잡것들이 말야. 카메라 앞에서 쇼 좀 해줬다고 동급으로 알아요.”
“요즘은 세상 좋아져서 노조 만들겠다고 설치니 더 짜증이지.”
박사랑이 맞장구치자, 박우정이 탁자를 탕- 치며 호응했다.
“내 말이! 귀족이 노비와 겸상하는 게 말이나 되는······. 하아-.”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기가 차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었다.
“교섭이라니. 세상 말세다 말세야. 우리 아니었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살 수나 있었겠냐고! 부러우면 그저 부러워하며 콩고물이나 받아먹을 일이지, 어딜 감히 맞먹으려고······.”
쯧-.
끌끌 혀를 찬 박우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이 오빠한테는 웬일이냐? 고작 손광연이 얘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닐 테고.”
‘빌어먹을 새끼, 오빠는 얼어죽을.’
박사랑은 기침하는 척 고개를 돌려 입 모양으로 ‘씨발’이라고 삐죽거렸다.
그래도 애초 찾아온 이유는 밝혀야지. 곧 큰돈이 들어오게 생겼는데 숟가락이라도 얹으려면 꼴 보기 싫어도 면전에서 알리는 게 좋다.
“세인에서 연락 왔더라. 미래공원 때문에.”
“그건 왜?”
“팔래.”
헛- 한숨을 내쉰 박우정이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입을 쩌억 벌렸다.
경기도 일원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 현재 사업성이 빼어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 이용객이 매해 증가했고 부채도 없이 대정이 지분 100%를 쥐고 있는 사업체였다.
홍기준 이놈 미친 거 아닌가. 어엿한 사업체를 구멍가게에서 담배 사듯 팔라 말라 하고 있으니.
‘그놈 정도면 미래공원이 대정에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순환출자의 키를 쥐고 있는 사업체다. 물론, 언제든 변경하면 그만이지만 현재는 그렇다는 뜻이다. 대정이 뿌린 장학금이 얼만데 지배구조 바꾸는 게 뭐 어려울까.
아무튼 재계의 다른 경영자가 들었다면 홍기준이 대정에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우정의 판단은 달랐다.
‘멍청한 놈.’
재계와 언론에서는 연일 비범한 인물이라며 홍기준을 칭송하고 있지만, 그리 공격적으로 사업을 키우느라 재정 건전성이 형편없을 터. 세인을 예의주시하는 박우정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가라앉도록 돕는 것도 방법이다. 계속 돈을 쓰고 빚을 지도록 만드는 거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맞아 어중이떠중이가 사장병에 걸려 어깨에 힘주는 꼴을 많이도 봐왔다. 하나 그런 호황이 얼마나 갈까. 기술과 영업, 기초적인 사업 운영 능력도 없는 베짱이들이 은행 빚으로 쌓아 올린 사상누각 위에서 천하를 굽어보는 꼴이다.
본부 규모의 보좌진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박우정 사장은 독단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많았다. 그 결정이 매번 좋은 결과를 가져오니 부친 박운철도 일찌감치 경영을 맡겼다. 지금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누워 있는 거지만.
‘세인 먼저 보내면 손광연도 끈 떨어진 연이지.’
그리 만든 후 처리하면 깔끔하겠군.
장학생들을 시켜 난도질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직접 때리는 게 짜릿하지 않던가. 박우정은 무형의 타격감을 기대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내 박사랑에게 턱짓을 하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얼마 준대?”
비싸게 팔았다가 망한 후 헐값에 되찾으면 그만이다.
***
진혁은 녹음 테이프의 재생이 끝날 때까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접은 검지로 이마를 받치고 미간을 희미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 “광연이도 어떻게 해보려고?”
- “당연한 거 아니냐? 그 천한 것들이 돈 아니면 뭘 보고 아버지께 접근해 몸을 팔았겠냐고.”
- “귀족이 노비와 겸상하는 게 말이나 되냐?”
- “얼마 준대?”
재생이 끝나도 진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치를 살피던 문석일로 하여금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1분에 한 번 숨을 쉬는 개구리가 있다던데 얘가 그런 개구리 아닐까.
진혁의 가슴이 서서히 부풀더니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침내 눈을 떴다.
“확실하네요.”
“박우정이 시킨 게 확실하다니까?”
“아뇨, 그 말이 아니라, 대정 사람 회유하셨다는 말요.”
“어설픈 돈으로는 몸을 살 수 있고, 큰돈으로는 영혼을 살 수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무조건적인 협조를 구하는 방법은 따로 있고······.”
문석일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손진혁이라는 놈은 더 많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당장 뭘 하겠다는 소리는 없잖아요. 세인도 여기서 더 무리하면 위험할 텐데요.”
“저래도 속마음은 다를 가능성이 높은 족속들이야.”
진혁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박우정은 팔순 나이에 급사했다. 아마 20년도 더 지나고 발생할 일이겠지.
다혈질에 고혈압을 패시브로 달고 사는 사람의 뇌혈관이 그때까지 버틴 게 용한 노릇이었다.
복상사라고 했다.
참으로 이름 속뜻에 걸맞은 최후였다.
그런 자가 도청을 염두에 두고 복잡한 계략을 낸다?
영화 시나리오에 등장할 악역에나 어울리는 이야기다.
“지금은 홍기준 아저씨가 선수예요. 우리가 뛰어들 때가 아니에요.”
문석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태그 매치와 같지 않은가. 정장 입은 선수끼리는 양지에서, 무기를 든 선수들은 음지에서 교대로 맞붙는.
“교대 선수들은 컨디션 관리에 집중이나 하죠.”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순 없지.”
당연한 말이었다.
“부탁드릴게요.”
그리 말한 진혁의 눈이 고요하게 웃었다.
문석일이 한쪽 눈썹을 꿈틀 추켜올렸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더 신경 써서 지켜주세요.”
굳게 입을 닫은 문석일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무엇을 부탁하는지 뻔히 아는 까닭이다.
문석일이 방에서 나가고, 문밖에서 발소리가 사라졌다.
카세트 재생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몸을 날렸다.
‘후리하구먼!’
시원하고 부드러운 이불 위에 누워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얼마나 쾌적하고 좋은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계절이었다.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렸다.
미니 컴포넌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낙낙낙킹온 헤븐스 도어-.”
그러나 똑바로 뜬 눈은 음악과 어울리지 않게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귀 족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지옥을 보여줄게.’
차라리 지옥이 천국이라고 느껴질 만큼 두려운 현실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평범하게 살려 했거늘, 가족을 건드려? 중2를 도발해?
고등학교 졸업까지 4년, 복수를 구상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낙낙낙킹온 헤븐스 또오어-.”
띠리리리-리리리리-.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기타줄 튕기는 시늉도 했다.
덤벼라 세상아-!
***
지난해 담근 고추장이 벌써 바닥을 보였다.
예전엔 한번 담그면 2년 이상 먹었는데, 먹는 입이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려나. 사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맛이라며 장진남이 마구 퍼간 탓이었다. 한유영이 마구 퍼주기도 했고.
먹는 입이 늘었으니 제조량을 늘려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장진남은 노동력으로 갚기로 했다.
한유영과 장진남이 마당에서 찹쌀풀을 쑤고 고운 고춧가루를 준비했다.
“힘쓰는 건 제가 할게오. 사모님은 지시만 내려주세오.”
“그래도 같이 해야죠. 아줌마들은 직접 해야 마음이 놓여요.”
장진남이 슬며시 나오는 웃음을 가리려 코를 훔쳤다.
기업 보스의 부인인데도 거들먹거리는 법이 없다. 주위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닦달하는 법 없이 항상 느긋하다. 그래서 저보다 젊은데도 가끔 누나 소리가 튀어나온다.
한유영은 멀찍이서 노는 유진이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쪽으로 오면 안 돼-.”
“네-.”
두 해를 넘길 장을 담그는 날인데 개털이라도 날려 들어가면 곤란하다.
똑똑한 딸이 알아서 개들을 데리고 갔지만 수시로 단속해야 한다. 아이들은 잘 까먹으니까. 진혁의 나이 일곱 살 때 징검다리 놀이를 한다며 깬 장독대 뚜껑만 다섯 개였다.
“웬일로 진혁이가 방에서 노래만 부르내오?”
엄마가 뭘 할 때마다 돕던 녀석이 크게 음악을 틀고 노래나 부르고 있다니, 환절기를 맞아 회까닥했나?
“요즘 방에 틀어박힌 날이 많네요. 사춘기라 그런가 봐요.”
“사춘기오?”
장진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춘기가 저렇게 조용히 오던가? 저 정도면 정말 양반으로 보이는데.
보통 사춘기라 하면······.
장진남은 고개를 저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흑역사가 일시에 떠올라 쥐구멍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동네라서 그런가?’
매일 이웃집에 들러 과외선생 노릇을 하는 민용락도 최미경이 사춘기 학생답지 않게 의젓하다고 했다.
손진혁은 다른 방향으로 의젓하지만.
- “헤이 쥳- 돈 메킷 밷-”
창문이나 닫고 부르지.
저 노래 끝까지 따라부를 셈인가? 쟤도 나중에 철들면 이불 차겠지.
쿡 터져나오는 웃음에 장진남의 거구가 들썩였다.
***
진혁의 방에서 나온 문석일은 잠시 머물며 진혁의 부탁을 떠올렸다.
이 집 사람들의 가족애가 얼마나 끔찍한지 지켜보며 충분히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 하나만 생각해도 모자랄 나이에 한 맺힌 사람처럼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어차피 저런 애송이는 세상에 하나뿐이겠지만.
‘웃기는 놈이야.’
갑자기 조용해지며 다른 노래가 흘러나왔다.
닫힌 문 너머 진혁의 방에서 Beatles의 ‘Hey Jude’였다.
- “-투 메킷 베러-.”
음악보다 진혁의 목소리가 더 컸다.
잠시 머물며 노래를 감상하던 문석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곡을 듣더니, 요즘은 알아듣지 못할 꼬부랑 노래나 듣는다. 요즘 학생들 취향과 동떨어진 건 그렇다 치고, 고요한 호수 같던 취향이 파도치는 바다처럼 변했으니 늘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신기할 수밖에.
짜식, 남자라면 김완선 정도는 들어야지.
- “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헤이 쥬우으-.”
김완선 대신 쥬드를 찾는 진혁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계단을 딛던 문석일의 몸은 갑작스러운 괴성에 휘청였다.
- “쭈쭈레- 쭈레쭈레쭈레쭈레- 아우!”
와씨, 깜짝이야.
‘미쳐가지고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