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러 (4) >
***
장군이는 유교견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는데 주인아저씨가 그렇게 부르더라.
으르르-.
좌우간 유교견은 계급사회를 추구한다.
만견은 하늘 아래 평등하다는 불온한 사상을 배척함으로써 장군이 아래 모든 개가 하찮음을 실천한다.
월-!
장군이가 절도 있게 짖자, 세 마리의 개가 얌전히 앉았다.
한 녀석은 장군이 딸 홍시, 두 녀석은 며칠 전 새로 온 신입들이다.
셰퍼드와 도베르만이라고 하는데, 견종도 요상한 것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근본 없는 잡종들인 모양이다. 저 시커먼 놈 좀 보라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꼬리도 없잖어. 밥먹을 때 흔들 꼬리가 없는데 어찌 개라고 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 폭발물을 탐지하던 녀석, 서울 부잣집에서 경비견 일을 하던 녀석이라고 하는데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폭발물을 왜 탐지하고 집을 왜 지켜야 하는가. 자유로운 영혼 장군이로서는 불가해한 사고방식이었다.
으르르-.
어쨌거나 여왕견 장군이가 하찮은 아랫놈들 비즈니스에 관여할 바 아니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몰라도 이 동네에서 오줌 좀 뿌리려면 장군이가 짖는 대로 따라야 한다.
월!
알았냐고!
끼이이잉-.
알았다고 대답했다.
조직 생활을 하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제법 말귀가 밝다.
장군이는 이제까지 버티고 산 보람을 느꼈다.
홀로 생활하다가 딸을 얻고 부하도 여럿 생겼으니 앞으로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이가 학교 가면 많이 심심했거든. 손앵앵이라는 부하는 손왕왕처럼 활동력이 우수하지 않았단 말이지.
좋은 건 또 있다.
이깽깽이라는 아저씨네 도사견 짬프라는 녀석은 아직도 장군이에게 대가리를 뻣뻣이 들고 덤빈다. 물론 다이다이 뜨면 힘과 체급에서 장군이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붙어보지 않았기에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장군이는 흐뭇했다.
킁킁-. 이 녀석들과 함께라면 짬프도 조만간 대가리에 된장을 바르리라.
된장 바르면 가서 슬쩍 핥아주면 된다.
개 침만큼 약빨 잘 드는 게 없지.
그렇게 치료해주면 짬프는 여왕의 은혜에 감읍하며 꼬리를 내리리라.
헤헤헥-.
참으로 끝내주는 계획이다.
이제 신입들 OJT를 시킬 시간이다.
아무리 유교견이라지만 장군이는 친절한 개다.
화장실 위치부터 가르쳤다.
아무데나 싸면 손왕왕이라는 이 집 아이가 대구빡을 흔들기 때문이다.
퇴비장이라고 하는 곳인데, 어느 날 벽돌을 쌓고 낙엽을 모으기에 거기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잘했다며 망둥어를 두 마리나 줬다.
무릇 개란, 칭찬을 받으면 그 짓을 반복해야 하는 법이다.
이 녀석들도 퇴비장에 볼일을 보면 망둥어를 두 마리씩 얻겠지.
어디 보자, 그렇다면 한 마리씩만 삥뜯어도 장군이는 망둥어를······.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튼 아주 많이 먹을 수 있게 된다.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그런 것도 안다.
다음은 순찰 구역을 가르칠 차례다.
끼이잉-.
도베 머시기라는 놈이 물었다.
집을 지키지 않는다며 왜 순찰을 도냐고.
으르르- 월! 이런 멍청한 개자식! 영역은 지켜야 할 거 아니냐고!
장군이 영역이기 때문에 순찰을 도는 거지 충성심 그딴 거 아니라고!
근본 없는 녀석들은 이렇게나 가르치기가 어렵다.
주인아저씨 집에서 출발해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갔다가, 해가 하늘을 돌 듯 무덤처럼 생긴 집 근처를 살피는 거다. 출근도장 찍듯 영역표시도 해주는 게 좋다.
찍-. 어라, 안 나온다. 야, 누가 대신 좀 싸라.
한 바퀴 돌고 다시 주인집 마당에 도착하면 순찰이 끝나는데, 배 꺼질 때까지 하고 사료를 먹고, 또 배가 꺼질 때까지 무한 반복하면 된다.
끼이끼이-.
셰퍼드라는 놈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하여간 근본 없는 녀석들은 저렇게 끈기가 없다.
강철같은 근육은 절로 생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으르르-.
뽕알을 확 물어뜯어 버릴라.
“엄마아-!”
월!
조용! 주인집에서 소리가 들릴 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야 한다.
충성심 따위가 아니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으며 견문을 넓혀 깨달은 개가 되기 위한 행동이다.
네 마리의 개가 나란히 앉아 거실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
“왜애-?”
손유진이 법석을 떨자 욕실에 있던 한유영이 달려나왔다.
“엄마-! 엄마! 정원이 뒤집었어요!”
“유진아, 엄마 없을 때 아기를 엎어 놓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
“네. 에헤헤-.”
쟤는 누굴 닮아서 벌써 구라를 치는 걸까. 거짓말을 하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철석같이 믿는 진혁의 눈에는 동생이 신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엄마를 상대로 웃으면서 뻥을 치잖아.
피식 웃고는 읽던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없어. 없다.’
8월이 되었지만 신문 어디에도 여객기 추락사고 소식은 없었다.
테러 배후를 북한으로 의심한다는 기사와 북한을 비난하며 각성을 촉구하는 칼럼, 목포 공항 폐쇄가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추측성 보도가 전부였다.
‘핵확산금지조약이 여기서 왜 거론이 되는 거지?’
칼럼을 보며 진혁이 갸웃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칼럼 쓰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알 수가 없다.
상습 안개 지역이라 공항 안전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칼럼이 마음에 들었다. 공항 인근 야산의 존재가 짙은 안개 등의 악천후에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 정확한 지적이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공항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호소하는 기사가 끊이지 않았었는데, 공항 폐쇄가 장기화하며 이용객을 인터뷰한 기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모양이다.
‘잘 넘어간 모양이야.’
과거의 왜소했던 중학생 진혁은 신문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메마른 가슴에서 나올 눈물이 없었는지 눈물도,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타인의 슬픔에 조금이나마 공감은 할 수 있었으니.
여객기 추락사고로 부모와 오빠를 잃고 홀로 남겨진 소녀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아이를 동정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제 이야기 같아서, 홀로 남겨진 괴로움을 알기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당신도 이제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누군지 모를 타인을 향해 주제넘은 위로를 보냈다.
어쩌면 이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 혼자만 행복하게 살기 미안해서 다른 이에게도 일상을 찾아주고 싶었나 보다.
그들에게 혹시라도 동일한 전생이라는 게 있어 만져지지 않는 곳에 상처가 있다면, 진혁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치유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계속할 생각이다.
적어도 기억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활약의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로서.
과거의 진혁은 스스로를 엑스트라로 여겼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세상에 존재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살다가 고요히 사라지는, 묵묵하고 평범한 주변인. 다시 태어나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진혁 스스로는 주인공을 자처하기에는 매력 포인트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는 인간미 같은 것들이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성격도 시원시원하지 못하다.
시원하게 지르는 매력은 차라리 과거의 손진혁이 월등했다. 직설적이었고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천길룡 할아버지처럼 선문답하듯 답답한 화법을 구사하지 않나.
점차 젊어지고 어려지는 영혼이었지만, 영육의 괴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른 살 정도가 되면 괜찮아지려나.
신문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희미하게 웃었다.
‘당분간은 편히 잘 수 있겠다.’
뭐, 스마트워치가 있었다면 수면 점수 100점을 달성할 거라 생각될 정도로 늘 떡실신하는 진혁이지만, 마음이 그렇다는 뜻이다.
완독한 신문을 처음부터 다시 넘겼다.
특정 활자를 일부러 발췌하지 않았음에도 신문지면은 세인이라는 글자가 장악하고 있었다. 8월 7일부터 열리는 대전세계박람회 기사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세인전자가 반도체 공장 착공 포부로 반도체 첨단기술 제품 국산화와 어느 기업도 흉내 낼 수 없는 디램 개발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재계 단신에는 세인전자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공모, 세인쇼핑 여름상품 할인판매, 세인화장품의 일본 기술 제휴, 세인투자신탁 주식형 수익증권 개발 등을 다룬 조각 기사가 주를 이루었는데, 세인이 없었다면 신문에 어떤 내용이 실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지면을 넘겨 이미 확인했던 코딱지만 한 기사를 다시 읽는 진혁의 눈이 흐뭇하게 빛났다.
‘문스킬 삼촌이 일을 제대로 해주셨어.’
주말에 한하여 영세 여객선 업체의 운항 횟수를 늘린다는 기사, 정부 보조금 중단을 유보한다는 내용 등, 문석일이 일을 제대로 했기에 볼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유지하는 대신, 과적 등 위법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는 기사도 진혁을 흡족하게 했다.
문석일이 항해 승인자뿐 아니라 그 윗선의 관료와 정치인과도 대면을 한 결과였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아, 인터넷으로 보고 싶다.’
지금도 인터넷 연결은 가능하다. 미래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감히 인터넷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품질이지만.
그러나.
‘엄마한테 개 혼났지.’
인터넷에 연결하면 전화를 사용할 수가 없다. 전용회선이 아닌 전화선을 이용해서 생기는 문제였다. 가족이 잠든 밤 시간에 몇 번 인터넷에 연결했다가 전화 요금 때문에 또 혼났다.
진혁은 억울했다.
나직이 한숨을 쉴 때, 집중을 방해하는 소음이 잡혔다.
[아아-, 두내리 마을회관에서- 안내 말씀- 드립니다-.]
드디어 방송이 떴다. 물고기 잡으러 가는 날이다.
진혁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었다.
“오빠, 저도 가고 싶어요오-.”
“유진이는 밖에서 구경만 해야 돼. 알았지? 수로는 위험해요.”
“네!”
햇볕이 뜨겁다. 유진이에게 모자에 우산까지 씌워 옛 수로로 이동했다.
장군이와 홍시, 셰퍼드 천마, 도베르만 광마가 뒤를 졸졸 따랐다.
천마의 원래 이름은 맥스, 광마의 이름은 럭키였는데 이름이 어려워서 진혁이 마음대로 바꿨다. 홍시도 영어 이름인 타이슨을 붙이지 못했는데 새로 온 녀석들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영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똑똑한 녀석들이라 새 이름에 금세 적응했고 녀석들을 통제하는 SSS도 이름이 쉽다며 좋아했다.
“유진이 조심해. 오빠 손 꼭 잡아.”
“네.”
자동차가 지날 수 있을 만큼 다리가 넓지만 물이 들어찬 수로는 수심이 1미터가 넘는다. 아이가 빠지기라도 하면 위험할 수 있다.
열흘간 양수기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새 수로에 물이 많이도 찼다. 물이 깨끗해서 바닥의 풀과 자갈, 모래가 선명하게 보였다.
“오빠, 꼬기 없다요.”
“응. 물 채운지 얼마 안 돼서 그럴 거야. 곧 생기겠지.”
모처럼의 축제에 설렐 만하건만, 다리를 건너 옛 수로로 향하는 진혁은 일단 꽂힌 주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인터넷, 인터넷.’
2천 원이면 PC방에서 두 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온갖 서비스를 이용했고, 나중에는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컨텐츠를 이용하는 시대에 살았는데. 전화선 잠깐 썼다고 그렇게 혼낼 일인가 싶었다. 물론, 전화 요금이 엄청나게 나오기는 했다.
‘엄마는 나만 미워해.’
아기를 낳으시더니 큰아들은 뒷발로 툭 밀어둔 애물단지 취급하신다. 진혁이 받아들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좀 예민해지셨는지 늘 웃던 분이 인상을 쓰는 일도 잦아졌다. 시기상으로는 진혁도 만만치 않게 예민해야 할 때인데.
쩝, 강하게 입맛을 다셨다.
‘젖이 잘 안 나온다고 그러신 것 같기도 하고.’
유진이가 젖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마른 것 같았다고, 그래서 정원이를 낳고도 젖이 신통치 않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튼.
어차피 너무 느리고 볼 것도 없었기에 인터넷 접속을 잠깐 하고 말 생각이었다. 접속하는 방법도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배워서 호기심에 해봤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속 터지도록 느리고 볼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집중하게 되더라.
‘아아아-! 초고속 인터넷, LTE 언제 나오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진혁은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다들 나이 드는 걸 싫어한다던데, 진혁은 청춘에 별 미련이 없었다. 미래에나 지금이나 ‘그때가 좋을 때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어리다는 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니 불편하기도 했고, 자유롭지도 못했으니까. 아마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나이 들어 관절이 불편하고 몸이 무거워진 돼지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게 운동하라고요. 나는 40대에도 날아다녔어.’
내년에 세인텔레콤이 시범 케이스로 호빗벙커에 인터넷전용선을 설치한다는 말을 민용락에게 들었다. 초고속까지는 아니어도 전화회선을 잡아먹지 않고, 펜티엄급 데스크탑이 나올 테니 제법 쓸만할 것 같았다.
신문지를 넘기기 번거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혁이 갑자기 인터넷 타령을 하고 빨리 나이 먹기를 바라는 이유 말이다.
치유에의 갈망이었다.
물론 과거에 맡지 못했던 시대의 냄새를 맡고, 세월의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상실감의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미래에의 향수는 예고 없이 진혁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홍수정 전무였다. 진혁은 하루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시간을 되돌렸으니 아예 없는 일, 없는 사람이 된 건가.’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게 자신 있게 내세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힘든 하루 끝에 생각할 유일한 사람이었고, 생각 끝엔 늘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SNS에 올린 활짝 웃는 사진을 보며 덩달아 행복해졌더랬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으니.
왜 꼬맹이 홍수정을 특별히 생각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흉터처럼 남은 과거의 상흔 때문은 아니었을까. 곰곰 생각한 끝에 진혁은 그런 모양이라며, 애써 이상한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친구처럼 진혁의 외로움을 치유해주던, 그런 존재였으니.
‘내가 또 왜 이러냐. 별 생각을 다 하네.’
갈등하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의 세상에 마음 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한데 사람 마음이 그리 쉽던가. 순간의 바람에 휘청이는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에 매여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일 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살아있기에 사치로서의 사유도 가능한 것.
흙탕물을 더듬어 붕어를 잡아 올리면서도 진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등에 꽂히는 땡볕에 욕설을 뱉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 사방이 너무 시끄러웠다.
방학을 맞은 대학교 1학년 최태양과 양강욱은 물고기 잡이는 뒷전, 청 반바지만 입은 채 진흙탕에서 레슬링을 했다.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허리춤을 잡고 뒹구는데, 저러다 정분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다. 물 빠진 수로에 발을 들이지 않은 여인들은 그 둘의 대결을 보며 환호를 보냈다.
‘다들 단단히 미쳤어.’
도대체가 정상인이 손진혁 한 명뿐인 세상이다.
뻐근한 허리를 펴고 한숨을 쉬는데 손유진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빠! 저기, 저기다요!”
유진이가 가리킨 곳에서 수로 바닥이 밀크 초콜릿 시럽처럼 꿀렁거렸다.
진혁은 헛숨을 들이쉬었다.
‘가물치구나.’
1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정상태와 강헌창도, 김인랑과 다른 SSS도 섣불리 덤빌 생각을 못하고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무리 담력이 높다 해도 기괴한 생물을 대하는 자세는 모두가 비슷했다.
“야아-, 시벌거 너무 무서운디?”
“어어어-, 일헌이 성 저 밀지 말유- 넘어지유-.”
조일헌과 육성찬도 호들갑을 떨었다.
레슬링을 하던 최태양과 양강욱도 급히 휴전 후 양쪽으로 도망쳤다.
수로 안의 남자들은 얌전해졌고, 둑 위의 사람들만 신이 났다.
“쟤는 그냥 살려두는 게 어때오? 영물 아닐까오?”
온몸이 진흙범벅인 장진남의 말이었다.
그는 호수처럼 물을 남긴 수로 하류에 방생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때 조일헌이 외쳤다.
“저게 잉어보다 좋은 거여! 이빨 없는 할매두 저거 먹으먼 젖이 나온다니께에-.”
그 순간 진혁의 안광이 번뜩였다.
옳거니, 저 녀석이 엄마의 젖 가뭄을 해소해줄 놈이로구나.
‘무섭긴 하지만 내 동생을 굶길 순 없지.’
젖을 내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