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러 (2) >
***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건 인간만의 몫이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며 장군이도 사료에 적응했다. 신세대 개 홍시를 위해 주인아저씨가 사료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대장견이라 해도 따를 수밖에.
밥 주는 사람이 왕이니까.
물론, 간이 되지 않은 식재료도 별식으로 삶아준다. 장군이가 워낙 개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게 장에 도움이 된다고 수의사 박부로가 조언한 영향도 있었다.
까드득-, 까득-.
꼬맹이와 놀아주는 하루 일과를 마친 개모녀가 알사료를 씹어댔다.
“장군이 잘 자요-, 홍시도 잘 자요.”
옷도, 얼굴도 꼬질꼬질하고 머리는 산발한 손유진이 눈이 사라지도록 웃으며 마당 식구들에게 밤 인사를 했다.
왈-!
너도 잘 자개, 부하!
동방예의지견 장군이는 인사도 잘한다.
까득- 까드득-.
개사료라는 것도 제법 먹을만하다.
사료를 먹으니 뽀미 녀석이 생각난다.
으르르-.
그 새끼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털이 수북하고 길어서 여름에는 특히 더울 텐데.
우리 홍시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연못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거 개더워서 그런 거다.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그런 것도 안다.
장군이는 물을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물묻은 건 개밥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정도다.
그래서 홍시가 젖어 있으면 가까이 가지 않는다.
오늘은 젖은 상태로 가까이 오려 하기에 앞발로 코를 후려쳤다.
그때 홍시 코에 상처가 났는데 부하가 치료해줬다.
대단한 부하다.
내가 낸 상처라고 자수했는데 부하가 지 앞발에 침을 발라 장군이 앞발에 침을 묻혔다.
그건 화해와 용서의 뜻일 거다.
개들은 서로 핥으며 인화단결을 꾀하는데 인간들은 직접 핥는 법을 모르니 앞발을 이용한 거야.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이런 것도 안다.
헤헤헥-.
근데 낮에 보니 부하 동생이 아픈 거 같더라.
인간은 모르겠지만 개눈에는 보인다.
순한 녀석이라 울지 않아서 그렇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늘에서 아주머니가 안고 있을 때 가까이 가서 알게 됐다.
짖거나 아픈 곳을 앞발로 눌러서 알려줘야 하는데 아기 놀란다며 아주머니가 짖지 못하게 했다. 상처 난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도 핥는 건 봐주더라. 역시 너그러운 아주머니다.
그 아기, 오래 못 산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알려줄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
워우우우우-.
우우우우우-.
답답할 땐 이렇게 늑대 울음을 날려야 화병이 생기지 않는다.
장군이가 하울링을 하면 홍시가 따라하고 다른 동네 개들도 따라 한다.
따라쟁이들.
이렇게 울어도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니 더 답답하다. 이거 당신네 아기 아프다는 뜻이여! 우우우우-.
*
현관에 들어선 손유진은 신발을 얌전히 모아두고 욕실로 향했다.
한유영이 환하게 웃으며 딸을 반겼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까마귀 꼴로 나타나도, 넘어져서 다쳐도 시골 아이들은 그렇게 크는 거라며 나무라지 않는 엄마였다.
“우리 딸 재밌게 놀고 왔어? 조금만 기다려.”
“네, 에헤헤-.”
홍시와 더 놀고 싶지만 서둘러 집에 들어온 이유다. 아기 씻길 때 기다렸다가 욕실로 들어가면 엄마가 목욕을 시켜주신다. 이제 오빠는 유진이를 씻겨주려 하지 않는다. 바빠서 그렇다고 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운동도 하고 삼촌들, 아지찌들하고 대화하고 아빠와도 종이를 펼쳐놓고 오랫동안 회의라는 걸 한다.
‘오빠 변했다요.’
그렇다고 서운한 건 아니다. 오빠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까. 오빠가 없으면 집안이 안 돌아간다고 아빠가 그랬다.
유진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는 오빠의 말도 믿는다.
“엄마, 오늘도 일찍 코자요?”
“응. 그래야지. 엄마가 자야 아기도 자니까.”
유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이마에 뭔가 들어있는데, 아직은 괜찮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중이었다. 아마, 엄마나 다른 가족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인데 손유진의 눈에는 보였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요.’
엄마 얼굴이 슬프게 변할 거야. 엄마가 슬퍼하면 손유진도 슬프다. 동생 머릿속에 있는 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모과처럼 생긴 덩어리가 까맣고 빨갛게 자라고 있는데, 아직은 괜찮은지 동생이 울지도 않고 이마가 파랗게 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모과가 자라는 속도로 봤을 때 조만간 동생 머리를 아프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손유진은 오늘을 거사일로 정했다.
손유진은 짧은 손가락을 꼽으며 준비물을 떠올렸다.
‘정원이, 오빠 므야므야.’
므야므야 안에 들어있는 걸 심장이라고 하던가?
끄덕-.
동생과 오빠. 그 둘이면 준비는 충분하다.
동생을 살리려면 오빠의 심장이 필요하다.
오빠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빠는 살 만큼 살았고 동생은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잖아. 동생을 살리는 게 우선이야. 손유진은 그리 결론 내렸다.
위험하면 자기 목숨을 바쳐서 동생을 구하겠다는 거인이니까 오빠도 이해해 주겠지.
손유진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오므려 독수리처럼 만들었다.
욕실 조명을 받은 손톱이 날카롭게 빛났다. 무엇이든 꿰뚫을 듯한 강함이 느껴진다. 손유진의 눈동자도 무섭게 반짝였다.
*
저녁을 먹고 하품하는 오빠 손을 잡아 끌었다.
2층 오빠 방에 도착해 방방 뛰었다. 오빠는 손유진이 방방 뛸 때마다 귀엽다며 박수를 친다. 안심시키려면 이 방법뿐이다.
“오빠! 침대, 누워 보자요.”
“응? 그럴까?”
진혁은 동생이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가끔 솜뭉치 같은 손으로 오빠 어깨를 두드려 주는데 그게 은근히 시원하고 좋아서 기대하게 된다.
“이불도 덮을까?”
“아니요?”
유진이는 침대에 올라가 오빠의 가슴을 다독였다.
“자장-, 자장-.”
“오빠 아직 안 졸린데?”
“어린 송아지가 한집에 있어-.”
“으허허-, 그게 무슨 노래야?”
아, 이게 아닌가? 정원이는 이 노래 부르면 막 웃다가 자던데, 손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겠다. 오빠에게 뽀뽀하는 척하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곧바로 귀에 속삭였다.
“딴도그, 로르브 니므-.”
카아-.
오빠가 곯아떨어졌다.
이렇게 재우면 몇 시간 동안 깨지 않는다.
아기 때부터 손유진의 몸에 밴 기억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오빠가 확실히 잠든 것을 확인 후 독수리 발톱을 만들었다. 다른 손으로는 오빠 므야므야를 더듬어 맥동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았다.
‘여기다요.’
스으읍-, 숨을 깊이 들이쉬고 오빠의 므야므야를 조준했다.
합-!
“아크리츠 기므 에그-.”
뿌드득-, 말랑하고 보들한 아이의 팔에 핏줄과 힘줄이 돋았다.
“아야아-.”
팔이 뻐근하고 손가락이 뜨거웠지만 손유진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오빠에게 미안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운 오빠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고통 때문에 눈이 감겼지만 오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손유진은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떴다.
***
병실에서 함께 야식을 먹던 홍기준의 가족이 일제히 눈을 크게 떴다.
“볼륨 올려 봐!”
“리모코온!”
뉴스 속보에 걸린 자막에 놀란 부부가 리모컨을 찾아 허둥댔다.
홍수정은 입에 장어구이를 문 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격정적이어서야 어디 큰일 하겠나. 한숨을 내쉬고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 볼륨 버튼을 꾹꾹 눌렀다.
[잠시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금일 오후 신원미상의 남자로부터 폭탄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걸려온 목포 공항 현지 연결합니다. 김유덕 기자-.]
TV 화면이 세로로 분할되며 우측에 어두운 공항을 배경으로 젊은 여기자가 나타났다.
[네, 목포 공항에 나와 있는 김유덕입니다. ······ 출동한 군대와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색을 진행 중인 가운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든 여객기 이착륙을 금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공항이 폐쇄된 상태인데요, 지난 천구백칠십이 년 폐쇄되었다가 재개항한 지 불과 일 년 만에 테러의 대상이 된 데 대해 당국에서는-.]
조명에 반응한 각다귀들이 몰려들어도 기자는 꿋꿋하게 수첩을 보며 보도를 이어갔다.
[- 수사 관계자는 누구의 범행인지 비밀에 부친 가운데······. 민간인 출입통제를 위해 육군 제 삼십일 보병사단 병력이 넓게 진을 쳤구요, 경찰특공대와 폭발물 탐지견이 투입되어 전방위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먹던 음식이 걸린 사람처럼 홍기준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유세라가 홍기준의 팔을 툭툭 쳤다.
“오빠, 저거 뭐야?”
“나도 모르지······.”
멍한 표정으로 조용히 중얼거릴 뿐, 홍기준이라고 알 도리 없는 일이었다.
‘저런 일이 있었던가?’
실제 발생했던 사건이라 해도 양피지에 없을 내용이었다. 홍기준은 기록해 온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까닭이다.
그리고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해도 홍기준은 연도나 날짜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건 다른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사자도 아닌데 기억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컴퓨터도 아닌데 어찌 세세하게 기억할까.
그 외에도 이유는 더 있다.
‘300년.’
그림자와 단둘이 머물렀던 시간이다. 지구의 시간으로 300년쯤 된다고 그림자가 알려주었다.
기억이고 나발이고, 그 긴 세월 동안 미치지 않고 자아를 지킨 홍기준의 영혼이 대단하다 할 일이었다.
쩝-, 쓴 입맛을 다시는데 유세라가 호들갑을 떨었다.
“전쟁나면 어떡해? 우리 애기 어떡해? 응?”
“별일 없을 거야. 애들 장난전화겠지.”
호들갑 떠는 엄마를 보며 홍수정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 한심한 놈이 장난전화를 했나 봐, 중얼거리면서.
홍수정의 중얼거림을 들은 홍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장난이 아니면 어떤가.
저 일로 인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 정권과 접촉이 잦은 홍기준이다. 여담 비슷하게 남북 정세를 물어봤었다. 홍기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 정부 관계자는 남북이 각자도생하는 분위기로 합의를 봤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당연하게도, 전쟁 여력도 없거니와 확전 시 공멸이라는 명약관화한 결과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또 모르지, 정치권력 중 하나가 다른 수작을 부리기 위해 시선 돌리기 용 쇼를 벌이는 건지도. 그 정도는 상식 아니던가.
‘혹시 나 때문에 미래가 틀어진 건가?’
호르릅-, 영문 모르는 홍기준은 따뜻한 장국을 마시며 눈만 껌뻑였다.
정부 당국에 소식통이 있어서 안심하는 한편으로 염려도 되었다.
전쟁 나면 어쩌나? 계획이고 뭐고 다 물거품이 될 텐데.
***
진혁의 집에서는 여섯 살 손유진이 홀로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하이고오-, 힘드러워요.’
한번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동생의 병증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세 번 반복하니 모과처럼 생긴 빨갛고 검은 녀석이 차츰 줄어들었다.
저걸 완전히 없애야 해, 손유진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래서.
“잇차-, 잇차-.”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도둑고양이처럼 오빠 방 문을 열고, 합! 므야므야에 독수리 발톱을 꽂는 거다.
“아크리츠 기므 에그-.”
이렇게 하면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녀석이 손을 타고, 팔을 거슬러 오른다. TV에서 본 파란 바다를 닮은 색깔이 손유진의 심장에 새겨지는 거다.
오빠가 점점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눈 밑도 거무튀튀한 것이 환자처럼 아파 보이잖아.
미안해서 계속 눈물이 떨어졌다.
학교를 대신 가줄 수도 없고 어쩌나요.
정원이를 살리기 위해 오빠가 죽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잠을 자게 될 거라고 ‘두구 엘릴’이라는 아지찌가 알려줬다. 그 아지찌가 누군지는 모른다. 가끔 밤 중에 손유진에게 놀자며 불러댔는데, 꿈에서 목소리만 들어서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오빠에게 미안한 이유는 바로 학교 때문이다. 잠을 자느라 학교를 빠져야 할 테니까. 걸핏하면 학교에 가야 한다, 숙제를 해야 한다며 삼촌들을 따돌리는 오빠였기에 손유진의 걱정은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매립되어 있었다.
횟수를 반복할수록 오빠의 심장에서 힘을 많이 뽑을 수 있었다.
손유진의 심장이 점차 크고 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잇챠-, 잇챠-.”
충전이 완료되면 다시 계단을 내려가 안방으로 이동했다.
아기의 이마에 손을 얹고 치료를 하는 거다.
“라드로애브 개즈-, 달레흐 일브-.”
누가 깰세라, 조용조용 옹알거렸다.
무슨 뜻인지, 어느 세계의 말인지 손유진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저 영혼이 시키는 대로 뇌까렸다.
이렇게 하면 동생 머릿속의 까맣고 빨간 모과가 사라지고 동생이 건강해질 테니까.
- “정원이는 약하고 작은 아기니까 이제 유진이가 지켜주고 돌봐줘야 해.”
손유진은 오빠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날이 밝도록 열두 번에 걸쳐 2층을 오르내린 손유진이 손정원의 이마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만세-. 없어졌다요. 신났다-.’
손유진의 눈에만 보이던 모과는 사라졌고, 유난히 희던 아기의 안색은 복숭아처럼 발그스름한 빛을 띠었다.
해냈어요!
그대로 아기 옆에 스르르 무너졌다.
밤 사이 비쩍 마른 오빠가 걱정되어 가보고 싶지만,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
짹짹-. 딱닥닥닥닥-.
아침을 알리는 참새 소리,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진혁의 의식이 깨어났다.
‘긴 잠을 잔 것 같다.’
그건 마치 과거로 돌아온 날 깨어나던 감각과 비슷했다.
이상한 건 또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힘을 줘봤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도 뜰 수 없었다. 엄마를 부르고 싶었지만 입술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어-, 이걸 어쩌나. 까딱 잘못하면 학교에 늦게 생겼다.
나폴레옹이 그랬다.
네 사전에 지각이란 없다고.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 공기가 들어왔고, 심장이 뛰는 감각도 느껴졌다.
즉시 명상 호흡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