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특명特名 (6) >
***
진혁은 아직도 유진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 기억이라는 말로써 건조하게 기념하기에는 심장에 새겨진 감동이 너무나 짙고 선명했다. 허름하지만 아늑한 흙집에서 태어난 유진이는 마을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울었다. 그 신비로운 탄생을 함께한 경험은 세상 어떤 오빠도 쉽게 할 수 없으리라.
그 아기가 벌써 여섯 살이 되었다. 벽걸이 달력의 숫자를 읽고 파란색은 토요일이라 오빠가 학교에서 일찍 오는 날이어서, 빨간색은 일요일이라 오빠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며 좋아한다. 까만색이 지나가면 파란색이 돌아온다며 까만 날도 좋아하는, 싫어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집에 종종 놀러 오는 천길룡 할아버지에게 천자문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한자를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인식 중인지라 배웠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날 일’과 ‘달 월’ 정도는 구분했다.
차려, 선생님께 경례. 종례 인사를 마친 진혁은 책가방을 챙겼다.
“반장, 농구 안 해?”
농구 같은 소리 하네.
진혁처럼 키가 크고 싶다며 방과후 매일 농구를 하는 친구가 불렀지만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나섰다.
여름은 아직 초입인데, 서둘러 온 계절은 많이도 무더웠다.
진혁은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읍내에 하나뿐인 산부인과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엄마가 걱정되기도 했고, 상견례를 할 녀석도 있었으니까.
‘으아아아아! 애기! 애기!’
문석일을 통해 구한 손바닥만 한 보안 전화기가 없었다면 결과를 알지 못했을 터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몰래 숨어 전화를 걸다가 마지막 교시를 앞두고 소식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진혁과 유진이의 동생 손정원이 태어났다.
‘그냥 학교 빠질걸!’
유진이가 태어날 때는 엄마를 챙길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때가 맞지 않았다. 엄마가 출산 중이니 조퇴하겠다고 말했다가 ‘네가 낳느냐’는 지청구만 들었다. 뭐, 예상한 결과이기는 했다. 2학년 담임은 진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 추석 연휴가 지나고 유진이를 학교에 데려왔던 날 이병세로부터 갈굼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한 한유영은 이번만큼은 고집부리지 않고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한유영의 나이 서른넷이었다. 읍내가 확장되고 번화하며 각종 병원이 들어선 것도 선택을 거들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추월하며 골목과 도로를 질주한 끝에 금세 병원에 닿았다.
당연하게도, 병원에는 아빠와 유진이가 먼저 와 있었다.
“엄마는요?”
무더위 속에서 질주한 여파가 겹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진혁이 엄마를 찾았다.
손광연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문석일에게 듣기는 했으나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 아니던가. 유진이를 낳으실 때 사경을 헤매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한 진혁이다. 물밀듯 들이치는 안도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오빠 손을 잡아끄는 유진이 손에 이끌려 온돌식 1인실에 들어섰다.
과거, 세인바이오 설립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던 팀원이 출산했을 때였다.
진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산후조리원 방문이었다. 여기는 조리원이 아닌 병원이지만, 아무튼. 그땐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얼굴이 퉁퉁 부은 팀원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한 후에야 어렵사리 발을 들여놓았었다.
조금 부은 엄마 얼굴 위로 그 팀원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엄마의 미소가 훨씬 밝고 아름답지만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모두가 특별하고 고귀하니까.
“엄마······.”
“어서 와, 우리 큰아들.”
한유영은 여전한 미소로 다 큰 아들을 반겼다. 품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채.
큰아들. 그 말이 뭐라고 이렇게 사나이 가슴을 울릴까. 애써 웃는 진혁의 얼굴이 수줍음 타는 시골 아이로 변해 있었다.
“오빠, 애기, 애기-. 내 동생이에요.”
“그래, 유진아. 유진이 동생 정원이야.”
제 동생을 자랑하는 유진이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안방에서 갓 태어난 유진이를 봤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새 생명의 탄생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하, 짜식. 형이 왔는데 눈 좀 떠볼 것이지.’
엄마 품에 안겨 꼬물거리는 동생을 보며 진혁은 코를 한껏 찡그렸다. 어찌 된 게 돌아온 후 눈물만 많아졌다.
그나저나 열네 살 차이라니, 정말 조카뻘이다.
손광연과, 진혁, 유진. 세 손 씨가 아기를 보호하듯 나란히 앉았다. 아기와 산모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면서도, 누구도 섣불리 손을 뻗어 아기를 만지지 못했다. 너무 작고 어린 아기인 탓에 조심스러운 까닭이었다.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그런 행동까지 닮았다.
잠시 후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동생이 놀랠까 염려한 유진이가 벌떡 일어섰다. 병실 문을 열자, 과일바구니를 든 문석일이 서 있었다. 그 뒤에서는 양강욱이 곰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병실 내부를 기웃거렸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형수님, 고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고마워, 양 팀장도 고마워요.”
출산 당일이다. 힘들었을 산모를 위해 문석일과 양강욱은 간단히 인사 후 병실을 나섰다. 두 사람과 번갈아 악수를 나눈 손광연도 복도로 나갔다. 그래도 축하 손님이 왔으니 응대하는 게 예의 아니겠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아내를 쉬게 하려는 배려를 실었다.
진혁은 유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유진아, 정원이는 약하고 작은 아기니까 이제 유진이가 지켜주고 돌봐줘야 해.”
“오빠처럼요?”
손유진이 반짝이는 눈으로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신나서 웃는 동생과 달리 거인의 눈은 물기를 머금어 촉촉했다.
“그래. 오빠처럼······.”
오빠가 했던 것처럼 이제 유진이가 놀아주고, 보호해줄 차례야.
오빠는 학교에 가야 하니까.
***
한유영은 병원에 며칠 머물지 않고 퇴원했다.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갇혀 있자니 숨이 막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소고기미역국을 한 솥이나 끓여놨다며 김순복이 채근한 이유도 있었다.
- 좋은 집 놔두구 뭐 헌다구 거기 자빠졌어! 당장 집이 와!
“알았어요.”
쿡- 비강이 저릴 정도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를 내는 것처럼 볼 수 있지만, 한두 해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한유영이 김순복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유진이를 낳았을 때도 자주 들러 살피던 김순복인데,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겼으니 당연히 발 벗고 나섰으리라.
아기에게도 병원보다는 황토로 마감한 집이 나을 테고, 산모의 컨디션이 안 좋으면 흙집에서 찜질을 해도 될 터였다. 말투는 이상하지만 솜씨 좋은 장진남도 몸조리를 돕겠다며 벼르는 중이었기에 손광연과 한유영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진이는 오빠의 당부대로 동생 곁을 수호신처럼 지켰다.
“자장, 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우리 애기-.”
으애애-.
정원이는 자장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찡그린 얼굴로 꽃게처럼 사지를 활짝 벌려 버둥거렸다.
그렇다면 다른 메뉴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섯 살 유진이도 알 수 있었다.
“곰 세 마리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까르륵-.
아무래도 정원이는 유진이와 코드가 맞는 것 같았다.
딸의 이상한 노래를 들으며 한유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애들이 죄다 아빠 닮았나 봐.’
나는 저런 똘끼가 없는데. 딸의 노래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이며 생각했다.
***
며칠 후 서울에서 홍수정의 남동생이 세상에 태어났다.
중요한 일정을 수행 중이던 홍기준은 다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실려 갔다니 놀랄 수밖에.
비서실 직원들로 가장한 경호원들이 병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다소 어두운 표정, 눈동자에는 융중한 긴장이 서릿발처럼 박혔다. 홍기준은 뺨이 찌르르 울리는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병실에 들어섰다.
“고생했다. 진짜 고생했다 유세라야!”
“오파······.”
침대에 누운 유세라가 어렵게 입술을 달싹였다. 초점 없는 눈은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름임에도 건조하게 튼 입술과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이 산모의 상태를 짐작케 했다.
홍기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나 시간이 부족할 수 있는데 제 감정에만 몰입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책맞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짓누르며 조심스레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응, 그래.”
“······퍼.”
홍기준은 재빨리 귀를 가져다 댔다. 아내 입에서 바람 소리만 나오지 않나.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심경이 굳셀 수 없으나 중요한 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홍기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 듣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조크파르······.”
독일어인가?
눈을 질끈 감은 홍기준이 나직하나 또박또박 말했다.
“다시 말해 봐. 정신 잃지 말고.”
“족발 먹고 싶어-.”
아이 씨, 이 꼴통이 진짜.
벌떡 상체를 세운 홍기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유세라와 시선을 맞췄다. 화를 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유세라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한 방울 도로록- 떨어졌으니까.
“우우훅-, 아빠가 안 사줘······.”
유세라는 팔뚝으로 눈을 가리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족발, 족발 되뇌며.
‘그래서 운 거냐······.’
하긴, 아기 핑계로 먹고 싶은 건 다 먹었는데 출산하고 처우가 달라졌으니 서럽기는 하겠다. 하아아-. 산모 앞에서 할 짓이 아니지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버님은 어디 가셨는데?”
“크흠-. 수정이랑 신생아실.”
“그런데 족발 먹어도 되나?”
아내의 눈가에 묻은 물기를 엄지로 스윽 닦아낸 홍기준이 물었다.
유세라가 입을 길게 찢으며 씨익- 웃었다. 족발 사다 주려나 봐. 역시 내 남편이 최고야.
사악하지 않은 미소임에도 홍기준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마왕 같네.’
*
“별로 고생도 안 하셨어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순산하셨습니다. 병원에서 출산하시려고 참으신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쑴풍-.”
평소 운동을 한 덕분에 출산 직후임에도 체력이나 건강이 여느 장정보다 좋아 보인다는 의사의 설명에 홍기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쩝쩝-.
지금도 보라지. 돼지 다리뼈를 들고 무섭게 뜯고 있지 않나.
살아있는 돼지가 죽은 돼지를 먹는 모습이다.
김철민이 남대문까지 가서 사 온 족발이다. 첨가물을 넣지 않아 산모가 먹어도 좋을 거라나?
아기는 침대에 누워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었다. 가족 상견례를 위해 간호사가 이동식 침대를 이용해 데려왔는데, 신생아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량하고 똘망똘망했다.
아기 손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던 홍수정이 물었다.
“엄마, 근데 수혁이는 왜 이름이 수혁이야?”
“쩝쩝-, 진혁 오빠 닮으라고 비슷하게 지었대.”
홍수정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바본가? 왜 남의 집 아들을 닮으라는 거지?
역시 우리 엄마 아빠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뭔가 문제 제기를 하려 외할아버지 유명선을 올려다보았을 때 엄마가 부연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지으셨어. 좋은 이름이라고.”
유명선은 눈을 지그시 감고 웃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무채를 집어 딸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며, 입을 열면 늙은이다운 잔소리가 나올까 저어된다며 말을 아끼는 유명선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가족이다.
가늘게 뜬 눈으로 아기를 보며 홍수정이 또박또박 경고했다.
“수혁이 너, 누나 말씀 잘 들어야 돼. 이 누나는 너보다 아홉 살이나 많으세요오-.”
“아학학-! 수정아, 엄마 웃기면 안 돼. 아직 배 아프단 말야.”
한 손에 돼지뼈를 쥔 유세라가 다른 손으로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아들과 눈을 맞추던 홍기준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당분간 진혁이네 못 갈 텐데 우리 수혁이 동생이나 만들까······.”
뭣?
울컥한 유세라가 돼지뼈를 몽둥이처럼 들어 올렸다. 유명선이 보거나 말거나였다. 그래도 아빠를 생각해 욕설은 참았다.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욕을 눈으로 쏘아 보냈다.
저 새X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