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특명特名 (2) >
깐 바지락보다 조금 큰 굴이 거실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시장에서 사는 굴은 보통 회백색인데, 자그마한 단굴은 순백의 진주 같은 자태를 뽐냈다.
쪼릅-, 최미경이 싱그러운 내음 물씬 풍기는 굴을 냉큼 집어 입에 넣었다.
“흐으으으으응-!”
얼마나 맛있으면 저리 오두방정을 떨까.
최미경은 못난이 줄넘기하듯 팔다리를 사정없이 놀리며 방방 뛰었다.
지하에 누가 살았다면 층간 소음을 항의하러 올라왔을 것이다.
‘그래,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었지.’
소꿉친구를 보는 진혁의 입가에 오빠 미소가 걸렸다.
“와앙! 진짜 맛있다! 이거 다 엄마가 까신 거야?”
“성찬이네랑 재영이네 오매 것두 뺏어 왔지. 크크큭-.”
김순복이 재롱둥이 딸을 흘겨보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굳은살처럼 박힌 눈가 주름이 눈매를 따라 휘어졌다.
“엄마가 힘으로 뺏으신 겨?”
“아녀, 인석아. 이놈의 여편네들이 진혁 오매 입덧한다니께 얹어줬지. 진혁 오매가 야들허게 구는 게 노상 허는 짓인디. 둔이랑 바꿔서랑두 줄 여편네들이여어, 고년들이-.”
진혁을 보며 곰살궂게 웃은 김순복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네 엄마 복이니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다는 말이 김순복의 꽁무니를 따라 늘어졌다.
김순복은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고 바삐 움직였다. 진혁이 집에 와 있으니 어서 들려 보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심해서 깐다구 했는디두 굴뻑이 이렇게나 잔뜩 나온다.”
바삐 손을 놀려 굴껍떼기 부스러기를 골라내면서도 홀로 종알대는 버릇은 여전했다. 굴에 섞인 새끼 게를 골라내면서도 한마디 보탰다.
“이눔의 그이 새끼가 염병헌다구 굴껍닥 속이루 겨들어갔네이-.”
최미경도, 진혁도 김순복의 저런 습관이 낯설지 않았다.
김순복은 굴껍질 부스러기를 야무지게 일어내고 냉장고에서 갖은 채소를 꺼냈다.
“허이구, 나두 우리 미갱이 뱄을 때 단굴이 어찌나 땡기던지. 울 엄니가 메누리 멕인다구 허구한 날 바다 가서 까오셨지. 옛날이는 겨울이 지금보다 더 춰써-. 먹을 거랑 입을 거나 흡족했간? 죄다 부실해가꾸 우리 엄니가 고생허셨지-.”
시어머니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되어 가는데, 김순복은 아직도 문을 열고 이복수가 들어올 듯한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인천 딸네 갔다가 노인정에 들렀는데 약장수가 두루마리 화장지를 줬다며 딸 주지 않고 며느리 쓰라며 시골까지 가져온 어머니였다.
진혁과 최미경도 할머니 생각에 잠시 숙연해졌다.
슬쩍 코끝을 훔친 김순복이 칼을 들었다.
“진혁이 오매는 그런 시오매두 웁는디 내라두 챙기야지-.”
타다다다다-.
진혁도 혼자 오래 살며 제법 칼질이 능숙했지만, 역시 주부들의 칼질은 따를 재간이 없다. 정교하면서도 일정한 속도로 칼을 놀리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오래지 않아 채 썬 상추, 깻잎, 무, 배, 당근이 한데 모였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 차례다.
고추장, 설탕, 식초, 고춧가루······.
‘아앗! 너무 빠르다!’
재료를 눈여겨보던 진혁의 눈이 김순복의 손놀림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 김순복이 만드는 게 무엇인지, 어떤 맛인지 알기에 배워둘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다음에 직접 물어야겠다.
김순복이 각각 담은 재료를 봉투에 담아 질끈 묶었다.
굴국 끓여 먹으라며 여분의 굴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이게 느이 옴마가 젤 좋아허는 겨. 우리 진혁이 가졌을 때도 이 아줌마가 이거 해주먼 숨두 안 쉬구 먹던 거여. 집이 가서 다 섞은 다음이 깨깟한 물 부어서 먹거라이? 양파 좋아허먼 쫌 느서 먹구잉-?”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진혁도 아는 사실이었다.
유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할 때도 김순복이 해준 굴 물회 한 대접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짓던 엄마였으니.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없는 엄마는 아마도 김순복에게서 그 정을 느끼겠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허이구, 감사는 무신. 우덜은 가족이나 마찬가징겨어-. 가족끼리는 서로 특별대우 해주는 거여-.”
부족함 없이 사는 최미경네 집이지만, 언제고 도움이 필요하면 발 벗고 나서리라. 그리 다짐한 진혁은 넙죽 허리를 숙이고 집으로 향했다.
새콤 달콤 매콤한 굴 물회.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겨울 별미였다.
‘이거면 직빵이지!’
엄마의 입덧도 가라앉고 입맛도 찾으실 거다.
양념이 넉넉하니 아빠가 사 오신 굴로 물회를 만들어 SSS와 나누어 먹어도 좋겠다. 직업이 경호원이니 업무상 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니까.
진혁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양념장이 담긴 봉투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으으으으음- 스멜-.’
입안에 침이 마구 고였다.
엄마 혼자 다 드시려나?
쩝, 한 입 정도는 남겨주시겠지.
***
한 입만 먹고 남기기 전문가 유세라가 월간 레이디 잡지를 흔들었다.
펄럭이는 페이지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오빠! 나 이거 먹고 싶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좀처럼 볼 수 없던 애교를 부린다.
호칭부터 바뀐 것이 그 증거였다.
“뭐 사올까?”
“닭도리탕이랑 차슈 듬뿍 얹은 라멘, 파이타, 화덕 핏자, 하몽, 학센, 난자완스도 먹고 싶어!”
식성도 참으로 글로벌한 여자다. 한반도에서 출발해, 열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을 경유한 다음, 유럽을 들러 다시 아시아로 오지 않았나.
홍기준은 어쩔 수 없이 코트를 집어 들었다. 여왕의 특명을 받들자면 정성이 필요한 법인데 김기사 혼자 수행하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 나는-.”
“수정이는 엄마가 남긴 거 먹자.”
가뜩이나 잔뜩 포장해 오는데 남긴 음식 처리만 해도 곤란할 지경이다. 꾸역꾸역 먹다 보니 나날이 배가 나오는 홍기준이었다.
“히에엥-.”
홍수정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가 동생을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로 홍수정은 메뉴 선택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엄마 입맛이 고급이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홍기준은 눈에 띄게 키가 자란 딸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집을 나섰다.
‘건강하게만 낳아라, 유세라야.’
홍기준은 아내와 태아의 건강만을 빌었다.
21세기에는 30대 중후반 출산이 드문 일도 아니었으나, 93년도에는 흔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유세라의 모친도 지금 유세라의 나이에 출산을 한 후 세상을 떴으니 걱정되는 마음도 당연하리라.
“부회장님, 어디로 모실까요?”
“일단 경찰청 방향으로 갑시다.”
홍기준은 카폰을 집어 들었다.
미리 전화해두어야 도착에 맞춰 고루 살 수 있을 테니.
두루 주문 전화를 돌린 홍기준은 한 번 더 숫자패드를 눌렀다.
“민용락 씨, 준비는 잘 돼갑니까?”
현지에서는 호빗벙커라 불리는 경호동에 필요한 건 모두 갖춰져 있겠으나 개인적인 물품은 챙겨야 할 터였다. 진혁의 요구에 따라 조리원과 의무요원에 이어 사무관리직으로 민용락을 파견하기로 했다.
전생에 민용락은 진혁의 제안에 기꺼이 머리를 숙이고 그의 팀원으로 편입됐던 사람이다. 해외법인장까지 지냈으니 자존심을 내세울 만도 한데, 민용락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본부장인 홍수정 전무와의 면담에서 민용락이 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 “전무님도 함께 일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런 사람과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나 잡는 게 아닙니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패장이나 마찬가지인 제게 손을 내민 걸 보면 세상의 눈치도 안 보는 것 같구요. 눈치 안 보는 리더가 자기 사람은 잘 챙기는 법입니다.”
그도 오랜 기간 리더 역할을 수행했기에 내릴 수 있는 평가였다.
세인그룹의 모두가 가장 힘 있는 부서로만 인식하던 중이었으나, 민용락은 손진혁 팀장 개인의 역량을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 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홍기준은 가장 믿음직스럽고 젊은 사람을 진혁에게 붙여주기로 결심했다.
“당장 할 일은 많지 않을 겁니다. 편하게 해요, 편하게.”
- 넵!
이렇게 말해도 알아서 일거리를 찾을 사람이다. 홍기준은 민용락 외의 적임자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요. 내가 당부한 거 잊지 말고.”
- 넵!
수화기 너머에서 민용락이 씩씩하게 답했다.
통화를 마친 홍기준이 시트에 몸을 묻었다. 길게 한숨을 뽑아내면서였다.
‘벌써 5년이나 됐네.’
홍기준이 돌아온 것은 1988년 초, 겨울이었다.
코트 위를 더듬어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양피지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툭툭- 두드리니 안심이 되었다.
세계의 역사를 돌려보며 기록하기 위해 그림자에게 얻은 양피지다. 홍기준에게는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재산이었다.
‘이제 국내에서는 큰 효용이 없을 것 같지만.’
양피지에 기록해 온 역사는 단편적인 것뿐,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세상이었다. 그나마 경제와 무관한 분야에서는 큰 지각변동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랄까.
‘아직 쓸모는 있어.’
적어도 미래 경제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홍기준은 다시 카폰을 집어 들었다.
“김의원 님? 제안한 법안 협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 왱알앵알······.
후우우-,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홍기준의 눈에는 도대체가 세금 버러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들이었다.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경제나 민생 현안에 공을 들일 여유가 없다고 하는데, 지들이 취임하나?
곧 문민정부가 출범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었지만, 여전히 독재국가의 망령을 벗겨내지 못한 탓에 금배지들은 뒷돈 찔러주는 기업에 유리한 법안만 챙겼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지금도 뜬금없이 예산이 어쩌고, 입법활동비가 어쩌고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돈 좀 달라 이거지.
욕을 삼킨 홍기준이 양피지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나라를 확 뒤집어버릴 수도 없고.’
허물을 관망하지 못하는 얼음장 같은 홍기준의 성정이면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누구나 할 법한 망상이기도 했다.
순간의 망상으로 끝내야 했다.
홍기준으로서는 뒤집을 힘도 없거니와, 스스로 권력과 철저히 거리를 두기로 작정한 터였다.
‘자살행위야.’
권력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고, 대정이 심은 장학생들의 표적이 될 게 뻔했다. 하여, 지금도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는 중이다.
유명선의 후광이 없었다면 세인그룹도 제 뜻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열사 사장단과 이사회조차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판에 대정과의 전면전은 시기상조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해도 정치권과 사법부에 뿌리 깊은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대정을 대한민국의 누가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오죽하면 세인이 내는 세금이 대정의 세 배가 넘을까.’
장인 유명선이 걸어온 길이 깨끗한 만큼, 세인은 그 이름만이 세력의 전부였다. 아직 세상 사람들은 기업이 깨끗하다고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선한 의지가 모일 네트워크가 부재한 탓이었다. 기업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돈을 받은 권력과 광고비를 받는 언론 권력뿐이었다.
장인 유명선은 자본주의 환경에서 정직하게 사업한 죄라며 조소를 짓곤 했다.
그 외에도 홍기준 개인의 입장에서 정치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정치사마저 틀어진다면 그들을 이용하기 힘들어져.’
지금도 충분히 두개골이 뜨거운데 정치마저 건드린다면 더욱 머리가 아파질 것이다. 권력이 어쩌고, 전쟁이 어쩌고 할 필요 없이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이유였다.
‘당분간은 장인처럼 연꽃 행세를 해야지.’
정치권에 천천히 돈을 뿌리는 중이다. 특혜를 위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무대에서 싸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었다.
짜증스러운 심기를 다스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런 맹세라면 잘해보게, 늙은이.】
홍기준의 회귀는 자신을 위한 보상으로 주어진 삶이 아니었다.
개인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면 무리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사서 고생하지 않았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전 생에도 충분히 행복했고 오너의 자리에 올랐으니.
조심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아들이라고 했지.’
태아 성 감별 고지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나, 의사의 암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세라와 함께 세인의료재단 산하 종합병원에 방문했을 때, 산부인과 교수는 분명 이렇게 얘기했다.
- “아기가 정말 잘 생겼네요.”
이전의 삶에 없던 아들이다.
얼굴 모르는 아들이 궁금한 한편으로, 부족함 없이 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홍기준으로 하여금 몸을 사리게 만들었다.
‘짜식. 옛날에도 태어났더라면 수정이가 경영수업 받는다며 그 고생을 안 했을 텐데.’
홍기준을 태운 차가 드디어 서대문구 모처에 닿았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운 김철민이 룸미러를 보았다.
말이 필요 없는 눈빛 교환, 다녀오겠다는 신호였다.
“아니에요. 내가 다녀오죠.”
생각을 많이 한 탓에 머리가 아프던 차에 찬바람을 쐬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차에서 내린 홍기준이 코를 찡긋거렸다.
아직 겨울인데, 뜻밖의 포근한 공기에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제 가족만을 위해 뭔가를 하는 건 참 오래간만이다.
***
언제 눈보라가 쳤냐는 듯 언 땅이 녹기 시작했다.
눈이 녹으면, 녹빛을 품고 웅크렸던 생명이 활력을 뽐낸다.
혹한이 가셨으니 이제 내 세상이다! 그리 말하는 모양새가 제법 다부지다.
퍽-!
호미가 꽂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빠, 호미 잘하지요?”
헤헤헥-. 꼬이잉-.
유진이와 장군이, 홍시가 냉이를 캐는 진혁의 곁을 지켰다.
쪼그려앉은 자세가 형제처럼 닮았다.
- “와아아-, 날 풀렸다. 냉이 캐다 찌개도 끓이고, 데쳐서 무쳐 먹고, 국도 끓이면 맛있겠다, 그치?”
이 엄마가 진짜······.
아기 가진 사람이 왕이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중학생이 냉이나 캐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별처럼 반짝이는 엄마의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빠가 계셨다면, 서울에서 손님이 내려왔다면 함께 캤을 텐데. 방학은 학생에게나 허락된 휴가였고, 유세라의 상황을 알기에 바랄 수 없는 재회였다. 결국 한가한 진혁이 나서야 했다.
‘아이고- 힘드러워.’
핍박받는 고관절이 저리고 무릎이 시큰거렸다.
진혁은 자세를 바꿔 아예 네발로 기었다. 차라리 그편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았으니까.
“에헤헤-, 오빠 장군이 같지요?”
마냥 신난 유진이도 손과 무릎에 흙을 묻히며 오빠를 따라 기었다.
하루 종일 밭을 매는 농사꾼들은 대체 얼마나 큰 고통을 인내하는 걸까.
농부들을 향한 존경심이 새삼 고개를 들었다.
‘작년에는 수정이가 도와줬는데.’
뜬금없이 꼬맹이가 보고 싶어졌다.
껌딱지처럼 업무를 보조하던 그 서울 꼬맹이.
유진이는 아직 어려서 손이 야물지 못한 탓에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도움은커녕, 고생해서 캔 냉이를 홍시에게 먹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유진아, 홍시는 개라서 풀을-.”
-먹네?
홍시는 유진이와 완벽한 신뢰 관계가 형성된 듯했다.
평범한 개친구들이 선호하지 않는 풀임에도 홍시는 유진이가 건넨 것을 잇몸으로 열심히 씹어댔다.
그러나 씹기만 할 뿐이었다.
“왜 안 먹지요?”
“홍시는 이빨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실제로 삼키지는 않을 거야.”
“아, 그렇구나. 홍시 불쌍하지요?”
“왜?”
오빠의 물음에 유진이가 남동쪽 먼 곳을 가리켰다.
“이가 없어요. 저기 사는 할머니처럼 틀니 필요해지요?”
홍시는 할머니라서 이가 없는 게 아닌데.
유진이도 저러다 말겠지만 어린아이들의 사고방식은 정말 따라가기 힘들다. 진혁은 홍수정과 대화하며 충분히 경험한 덕분에 그나마 충격이 적은 편이랄까.
“홍시도 이빨 금방 생길 거야. 지금은 젖먹이라서 이빨이 필요없기도 하고.”
오빠의 설명을 이해한 것인지 유진이는 홍시의 입을 벌려 잇몸을 두루 살폈다. 그러다 강아지 턱 빠질라.
홍시의 입천장을 보던 유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홍시 입속이 상어 같지요?”
상어 같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아이들은 관찰력이 참 좋은데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한다.
땅에서 올라오는 눅진한 습기와 흙냄새가 기분 좋았다.
두 명의 사람과 두 마리의 개가 얼마나 땅을 기었을까.
반쯤 감긴 진혁의 눈을 더 가늘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진혁아아아-.”
저 양아치가 또 나타났다.
최미경 봄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