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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113화 (113/338)

< 계절을 밟고 (6) >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힘쓰던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우워어-!

그 순간만큼은 지구에 괴수 가족이 출몰한 듯했다.

감을 너무 많이 먹어 누렇게 뜬 얼굴로 화장실에서 힘을 주던 손광연도, 주방에서 뭔가를 조리하던 한유영도 괴성을 질렀다.

거실 바닥에 손과 발을 좁게 대고 엉덩이를 치켜든, 요상한 자세를 취하던 유진이도 아기 괴물처럼 까아악- 소리를 보탰다.

그렇게 온 가족이 호들갑을 떨며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장군이네 원목 개집 안에 백열등을 켜고, 푹신하게 짚을 깔고 그 위에 부드러운 담요를 올렸다.

“어머나! 강아지 나와요!”

등허리를 쓰다듬는 한유영의 손길에 도움을 받았을까, 낑낑대던 장군이는 성공적으로 출산을 마쳤다.

헤엑-.

가장 힘들었을 장군이는 애썼다며 쓰다듬는 엄마의 손을 핥았다.

“아이고, 우리 장군이 새끼 낳느라 고생했어.”

“배가 생각보다 안 부르다 했더니 한 마리네요.”

손광연은 더 나오는 강아지가 없는지 살폈다.

유진이는 강아지가 신기하면서도 귀여운지 어쩔 줄 몰라 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눈동자였다.

선량하고 순진한 사람들일수록 선한 감상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유진이도 그런 사람이었기에 진혁과 감동을 공유하고 싶어 오빠를 바라봤다.

“오빠, 장군이 애기 너무너무 이쁘지요?”

“응, 너무 이쁘다-.”

그래도 장군이가 개 중에서는 가장 예쁘지.

진혁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제 새끼가 새끼를 낳은 듯 코끝도 시큰거렸다.

한유영은 오금에 치마를 접어 넣고 쪼그려앉아 눈을 빛냈다.

“얘 아빠는 뽀미겠죠?”

“어헛-, 뽀미밖에 없죠.”

손광연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지랄맞은 장군이와 짝을 맺다니. 뽀미 그 녀석이야말로 장군감이 아닐까.

강아지 생김새로 아빠를 판단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이 여느 강아지와 비슷해 보였으니까.

대충 시기를 가늠해 뽀미를 의심할 뿐이었다.

“우리 장군이, 엄마 되느라 고생했어. 많이 먹어.”

한유영이 미역을 넣고 푹 삶은 닭을 으깨 장군이네 집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것을 겨울 냉기로 식히느라 이제야 주는 것이다.

“강아지 이름을 지어줘야 할 텐데요.”

“이름 잘 짓는 진혁이가 지어 볼래?”

“아······.”

아빠의 제안에 난처해졌다.

개 루이스, 닭 존슨 수준의 작명 센스를 가진 진혁에게 이름을 지으라니.

이름을 잘 짓는다는 건 아빠의 착각이다. 동생 이름과 회사 이름은 운과 때가 맞았을 뿐이었다.

차라리 유진이에게 시키셨으면 좋았을 것을.

뭐가 좋을까. 멋지고 쉬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어린 진혁을 목숨 바쳐 지켜주던 장군이가 낳은 강아지니까.

“올해 개봉한 영화가 뭐가 있었죠?”

“영화는 왜?”

“이름 짓기 어려울 때는 영화 주인공 이름으로 하면 좋대요.”

아들의 말에 손광연이 이마를 긁적였다.

갑자기 생각하려니 떠오르는 작품이 없었다. 아는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봐서. 방송대학교 수업에 태워준다는 핑계로 아내와 단둘이서 극장에 다녔더랬다.

“음-, 올해 장군의 아들 쓰리 개봉했지. 장군이 아들이니까 긴또깡 어때?”

“그건 너무 왜색이 짙잖아요.”

“그렇지? 김두한은 너무 사람 이름 같고.”

손광연은 쉽게 수긍했다.

손 씨 부자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했다.

강아지 이름 짓는 게 뭐라고 이리도 골머리를 썩인단 말인가.

“라스트 모히칸도 개봉했지. 주인공 이름이 호크아이였지 아마?”

진혁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만 갸웃댔다.

개눈에게 매의 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거부감 외에도,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글자나 세 글자가 어떨까 싶어요.”

아들의 의견에 동의한 손광연이 올해 개봉한 영화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뭐라도 하나 얻어걸리라는 심산이었다.

“보디가드, 에일리언 쓰리, 우뢰매 칠탄, 동방불패, 푸른 산호초 투, 소녀경, 뽕 쓰리······.”

진혁은 이마를 짚었다.

이 아빠가 또 선 넘네.

‘아, 모르겠다.’

그래도 두내리 대장견이 낳은 강아지인데 대충 지을 순 없는 일이다.

천재적인 두뇌가 순차연상을 시작했다.

주름지고 축 처진 강아지 얼굴을 보면 람보가 떠오른다.

람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람보를 생각하니 동일한 배우가 복싱 선수로 출연한 영화 록키가 떠올랐다.

오, 그렇다면 록키나 챔프도 괜찮겠다.

그런데 복싱하면 또 그 이름이 최고지.

그래서.

“타이슨이 어떨까요?”

“에헤이-!”

“하지마아-!”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야유를 보냈다.

핵이빨이 되라는 좋은 이름인데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히잉, 그래도 긴또깡보다는 나은데.

‘쳇, 타이슨이 어때서.’

진혁은 제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타이슨 이빨이 얼마나 강한데요!

그때 유진이가 가족의 주목을 끌었다.

“우리 장군이 홍시 좋아하지요? 홍시야-. 엄마 쭈쭈 맛있지요?”

“홍시?”

가족이 한목소리로 되뇌며 유진이를 돌아보았다.

고사리손 유진이가 어미 젖을 빠는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제 새끼를 만지면 어미들은 공격성을 띄게 마련이거늘, 장군이는 유진이가 강아지를 만져도 경계하지 않았다.

헤헤헥-!

그리고 무엇보다 새끼 이름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홍시······. 괜찮네요.”

“응. 이름 예쁘다.”

토속적이면서도 장군이를 연상시키는 이름에 진혁도, 한유영도 미소지었다.

손광연도 아들과 아내를 한데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엑-.

출산에 힘들었던 장군이도 마음에 드는지 연신 홍시를 핥았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끔찍이 사랑스러워하는 심정이 묻어나왔다.

‘감동적이다.’

하얀 눈이 머리에 지붕을 만들도록, 네 가족은 개집 앞에 쪼그려앉아 장군이와 홍시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헤엑헤엑-.

손멍멍과 손왕왕, 저 무식한 인간들.

하마터면 내 새끼 이름이 긴또깡이나 타이슨이 될 뻔했어.

홍시는 암컷이었다.

***

눈이 많이 내렸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이니 진혁은 몸이 근질거려도 조깅을 하지 못했다. 산에 오르는 일도 포기해야 했다. 유명선 회장이 선물한 체육관이 있어 다행이었다.

‘음. 다들 열심이구먼.’

가장 먼저 SSS 요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신술 대련을 하는 사람들,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주민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사람들까지.

최미경 청소년도 겨울방학을 이용해 수영을 배우겠다며 부모님과 함께 수면에서 발발거리고 있었다. 쟤 아무래도 물 너무 먹는 거 같은데. 꼴딱거리는 꼴이 곧 가라앉게 생겼다.

문석일은 양강욱과 합을 맞춰 수련 중이었다.

‘절권도 같기도 하고.’

크라브 마가처럼 보이기도 하는 근접 무술이었다.

문석일이 시범을 보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 양강욱이 따라 하는 식이었는데,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이 합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든든하네.’

진혁은 문석일에게 SSS 요원들의 실력 향상을 주문해두었다.

이미 빼어난 전사들이었으나 언제 어디서든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인원이 적은 탓에 정예화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정상태는 박대순을 추적하느라 부재중이었다. 주소지를 자주 변경한 것도 모자라 최종 신고된 주소지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김인랑은 뉴서울다방을 감시하기 위해 읍내에 나갔다. 호떡과 국화빵이 먹고 싶다는 한유영의 부탁도 들어줄 겸.

홍기준의 재력 덕분에 손발처럼 움직이는 사람을 얻으니 진혁은 일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트랙을 달리기 시작하자, 강헌창이 따라붙었다. 실제로 따라붙지는 못했지만 누군가 함께 달린 덕분에 진혁은 지루하지 않게 하루 목표 운동량을 채웠다.

강헌창이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몇 바퀴 뛴 거니?”

“사십 바퀴요.”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10 킬로미터는 뛰어야 몸에 피가 도는 진혁이었다.

징그러운 놈. 강헌창이 거친 숨 사이로 말을 토해냈다.

*

샤워를 하고 집으로 가는데 엄마가 찬바람을 맞으며 마당을 헤매고 있었다.

아빠가 계셨다면 집 밖에 나서지 못하게 했을 텐데, 출타 중이라 말릴 사람이 없었나 보다.

“엄마! 추운데 왜 나오셨어요.”

“유진이가 안 보여.”

한유영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눈이 벌게져 있었다.

항상 품에 끌어안고 살던 딸이 보이지 않아 심란하고, 임신까지 한 상태라 심리가 더 불안정할 터였다.

“삼촌들 일하는데 놀러 간 거 아니에요?”

“다 찾아봤지.”

한유영이 고개를 저었고, 함께 있던 SSS 요원 유태화도 마찬가지였다.

덜컥 겁이 난 진혁이 목청을 키웠다.

“유진아아아-!”

강하게 부는 겨울바람을 뚫고 사자후가 퍼졌다.

“녜에에-.”

응?

한유영과 경호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소리 탓이었다.

그러나 진혁의 예민한 청각은 모기 소리 같은 유진이 목소리를 잡아냈다.

허리를 숙여 소리가 들린 장군이네 집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이고, 이놈아! 엄마 걱정하시는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에헤헤-, 홍시랑 놀지요?”

유진이는 개집에 들어가 홍시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인 듯 장군이도, 홍시도 편안해 보였다.

보석처럼 빛나는 홍시의 까만 눈동자가 유진이와 닮았다.

“세상에······.”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의 충혈된 눈이 걱정되었을까, 유진이는 조심스레 홍시를 내려두고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마지막에 홍시 냄새를 킁킁 맡는 걸 보니 강아지 배냇냄새에 중독된 게 분명했다.

“너무 혼내지 마세요. 시골 애들은 이러고 자라는 거죠.”

“에휴-, 그래.”

진혁도 장군이가 강아지일 때 마당에서 끌어안고 잔 날이 많았다. 유진이보다 나이가 많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동생의 행동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장군이 집을 다시 만들어야겠어요. 크게.”

“크게?”

“홍시는 장군이보다 더 클 거 같아서요.”

아무리 봐도 흔한 발바리 새끼가 아니었다.

축 처진 귀와 나날이 빵실빵실해지는 뒤태가 리트리버 강아지 그 자체였다.

*

차고에서 공사장에서 쓰던 각목과 합판, 인테리어에 사용하고 남은 원목 자재를 꺼냈다.

쓱쓱- 사포로 결을 부드럽게 다듬고 줄자로 치수를 대강 쟀다.

이제 톱으로 자르고 맞물리는 부위에 땅땅땅- 못질을 하면 된다.

일반인에게는 지루하고 고된 노동일 것이나, 스태미너가 남다른 진혁에게는 한나절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힘이 세지니 좋구먼!’

아무리 나무라도 커다란 개집을 지을 정도면 그 무게가 상당함에도 진혁에게는 멧돼지보다 가벼운 구조물이었다.

“너무 큰 거 아냐? 왜 지붕은 없어?”

홍시를 품에 안고 쪼그려앉아 구경하던 최미경 청소년이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최미경 청소년은 강아지가 너무 예쁘다며 매일같이 찾아와 유진이와 더불어 호들갑을 떤다.

“이 위에 장군이 집 올릴 거야.”

“아아? 이층집이야?”

금세 이해하다니 양아치가 제법 똑똑하네. 진혁의 중얼거림은 망치 소리에 묻혀 최미경 청소년의 귀에 닿지 못했다.

지붕 대신 상부에 가로대를 대고, 그 위에 장군이 집을 얹으니 근사한 2층짜리 개집이 완성되었다.

장군이가 올라가기 쉽도록 2층 입구에 길쭉한 널빤지도 대서 고정했다.

“아래층에는 도사견도 들어가겠다.”

최미경 청소년의 감탄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시가 클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유진이도 들어가 놀라는 뜻에서 크게 만든 거니까. 뭐, 아직 꼬물거리는 강아지니까 장군이가 챙기다가 부대끼면 서로 각방 쓰겠지.

‘내가 헛다리 짚은 거면 그것도 웃기겠는데?’

홍시도 장군이 정도까지만 성장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긴, 장군이도 강아지 때는 홍시와 닮았었다. 크다 말아서 그렇지.

그래도 아빠가 그랬다.

가족은 많을수록 좋고, 집은 클수록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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