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임자 (3) >
***
씨름부 훈련장.
밧줄에 올랐던 진혁이 천천히 내려왔다. 발을 걸지 않고 한 팔씩 되짚는데 자세히 보니 힘겨워서 느리게 하강하는 게 아니었다. 내려오면서도 체중을 버티는 팔 근육을 최대한 쥐어짜고 있었다. 쩍쩍 갈라진 등과 팔 근육, 그걸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떠오르는 태양을 받아 보석처럼 빛났다.
진혁에게는 일상이었으나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 인간 병기는 따로 있었네.’
조용히 구경하던 문석일이 볼이 팽팽해지도록 숨을 내쉬었다. 신장도 이미 자신보다 큰데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몸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저 나이 때 이 시간에 늦잠을 자다가 등을 때리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부렸던 것 같은데.
일찍 등교한 학생들이 선글라스 쓴 아저씨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문석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쓴다면 프로가 아니다.
밧줄에서 내려온 진혁이 문석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얼핏 푸른 안광을 받은 문석일이 저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취했다.
“다들 괜찮대요?”
“어, 깁스 좀 하고 입원 좀 하고 그런-거지. 이제 다 나았-다.”
차렷 자세로 대답을 하려니 말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오른손에 깁스를 했던 문석일이 가장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정상태와 김인랑은 한동안 밥을 씹지 못했고, 갈빗대가 여섯 개나 나간 강헌창은 몸속에 고인 피를 빼내는 수술을 거쳤다. 체내에 피가 고일 정도인데 뼈가 폐를 찌르지 않은 게 신기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알아보신 건요?”
어제저녁 문석일의 전화, 진혁은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처럼 받았다. 문석일도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씨름부 훈련장에서 보자’는 진혁의 메시지대로 학교로 온 것이었다.
“누가 시킨 일인지 알아냈다.”
“그리고요?”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문석일은 진혁의 깊은 눈빛이 예사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진짜 살아있는 호랑이가 사람으로 둔갑을 한 건 아닐까. 전에 봤던 저승사자도 사실 환영이 아니라 이 녀석 자체 아닐까. 유희를 즐기기 위해 인간 세상에 머무는 건 아닐까, 하는 감상이 들 정도였다.
진혁의 눈빛이 그리 무섭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진혁은 문석일 일행을 믿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고 믿을 만큼 진혁은 순진하지 않았다.
문석일도 그런 서로의 입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사형집행을 유예받은 사형수와 다름없었다.
“맡긴 일은 처리했다고 알렸다.”
진혁이 지침을 내린 대로였다.
그러나.
“확인하러 오지 않을까요?”
그럼 당신들도 위험해지겠지.
진혁의 메시지를 이해한 문석일이 말을 받았다.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쪽팔리게 진혁의 손에 넷이서 당하기는 했지만, 문석일과 동료들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몸값도 비쌌고, 맡은 일마다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거짓말인 게 알려지면 아저씨들이 위험해지겠네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우린 피하면 그만이다.”
누구처럼 가족을 볼모로 잡지도 않을 테고. 문석일이 뒷말을 삼켰다.
아무튼, 문석일이 잘하는 것이 몸을 숨기는 일 아니던가. 사주한 사람이 손을 쓰려 하면 숨으면 그만. 그리고 어차피 성공했다 해도 다른 해결사를 동원해 손을 쓸 것이 뻔했다. 더러운 일을 처리한 화장지를 재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미행도 붙였던 것일 테고.
“어차피 그런 일은 한 번 하면 오랫동안 죽어 지내야 해.”
그래서 비싸게 받는 거다.
뭉친 등 근육을 풀기 위해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이며 팔을 뻗은 진혁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울 아버지 사람 뽑아요.”
그 말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진혁은 사람이 필요하다. 문석일과 동료들 수준이면 부려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그들의 가족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인질로 묶었으니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을 거다. 그리고 위험한 적은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게 감시하기 좋다. 물론, 아빠와 상의해 봐야겠지만.
“제안 드린 거예요.”
그러나 문석일은 진혁의 눈빛을 달리 읽었다.
이건 제안이 아닌 명령이다.
“생각해 볼게.”
단전에서 용기를 끌어내 마지막 자존심을 살렸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무적인 대답이었다. 혹시나 해서 꺼낸 말인데 거절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 정도만 되어도 관계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공포는 줄 만큼 줬으니 이제 믿음을 주고 자비를 베풀 차례인가.’
진혁이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문석일이 받아서 펴 보니 자신들의 목숨값으로 적어낸 가족들의 주소와 연락처 따위가 있었다.
“따로 적어두거나 외우지는 않았어요.”
문석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물리적으로 얻어터진 건 둘째 치고, 어째 의료원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정신적으로도 이 애송이에게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입술을 깨문 채, 인사를 하듯 고개를 슬쩍 숙이고 돌아섰다.
그런 문석일의 발목을 진혁의 목소리가 잡았다.
“누가 시켰는지 아직 말 안 하셨는데요.”
이 양반이 목숨값 안 치르고 그냥 가려고 하네?
어차피 진혁은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이 사람도 제대로 아는지 실력을 확인할 차례다.
“아아······.”
문석일이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
가을은 깊어지고 겨울이 오려고 한다. 가을 내내 따가웠던 햇살도 가시고, 바람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한유영은 유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산책에 나섰다. 진혁의 집 마당에 서울 번호판을 단 고급 승용차가 주차됐다.
삭막할 수 있는 상황에 개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무릎 꿇은 네 명의 남자를 장군이가 놀리듯 빙빙 돌았다.
가끔 꽁무니 냄새를 맡으면서.
장군이의 개수작에 손광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얘기합시다.”
“용서해주시기 전까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퇴원한 김인랑, 정상태, 강헌창을 데리고 문석일이 손광연을 찾았다. 그들은 마당에서 진혁과 캐치볼을 하던 손광연 앞에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진혁이 인상을 썼다.
‘도대체 무릎은 왜 꿇는 거여어-?’
옛날 방식을 따르는 옛날 사람들이라 이건가.
훗날을 위해 아빠와의 상견례를 요구했지만, 저렇게 싹싹 빌며 사죄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유치해서 못봐주겠네. 진혁은 고개를 돌렸다.
“용서라뇨? 무슨 일인지 알아야 용서를 하죠.”
“대정전자 박우정 사장의 사주를 받았습니다.”
손광연의 얼굴이 냉랭하게 굳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해도 대정이라는 이름과 박우정이라는 이름을 흘려넘길 수 없었으니까.
고개를 푹 숙인 문석일이 내막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역추적 해보니 박운철의 장남 박우정이 있었습니다······.”
진혁에게 참교육을 받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는 쏙 뺐지만 최대한 확인한 대로 이실직고했다. 안타깝게도 문석일이 누굴 해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진혁으로서는 아쉬운 대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박우정에 대해서도, 문석일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손광연이 뒷짐을 지고 잠시 노을을 바라봤다.
‘나를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 취급을 한 이유가 뭐냐.’
박운철과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여배우와의 사이에 낳은 박윤영이라는 여자는 뉴욕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고 들었다.
그마저도 조용히 묻혀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었음에도 세간의 관심 밖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대정그룹 차원에서 언론을 입막음했을 테니 그 방음효과는 가히 완벽하다 할 수 있을 터. 박윤영 사후 박운철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것은 박 회장 본인만 알 일이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기는 했다.
“그래서······, 더러운 일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게······.”
문석일은 되묻는 손광연의 목소리에서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충격적인 사안이다. 그 누구라도 자신을 죽이라는 사주를 받은 자가 눈앞에 있다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 타당할 터였다. 그러나 문석일이 대면한 손광연은 대범한 면모를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렇게 차분할 수 있는 걸까? 공포는 쉽게 면역 되는 게 아닐 텐데?
손광연의 성격을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언제 차갑냐 굳었냐는 듯, 손광연의 얼굴은 예사로운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새로울 것도 없지.’
이렇게 누군가 찾아와 이실직고한 일은 분명 낯선 경험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미행과 감시 속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성년이 될 때까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대학도 장학생으로 들어가 기숙사에 틀어박혀 지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친구라고는 어릴 때 알고 지낸 유세라와 대학 친구 홍기준뿐이었다.
뒷짐진 채 서쪽 하늘에 걸친 노을을 보며 손광연이 대답을 재촉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마음이 바뀌었다면 굳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닙니까?”
“그래도 용서를 빌고 그런 위험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초연한 손광연의 모습에 문석일도 내심 당황했으나 침착하게 둘러댔다. 어쩌면 저 비범한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이렇게 냉정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알겠습니다. 일어들 나세요. 내가 용서하고 자시고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라고, 왜 그런 일을 의뢰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나요?”
손광연은 멀찍이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아들에게 눈길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진혁은 어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 척 야구공을 허공에 던졌다가 글러브로 잡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이 올라가는 높이가 비정상적으로 높았지만 그런 것에 놀랄 상황은 아니었다.
문석일이 일어서며 손광연의 물음에 답했다.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신상열의 뒤를 캐고 협박을 했지만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 정도나 되는 인물이 겨우 도마뱀 꼬리밖에 되지 않는다니, 확실히 거물에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교훈만 얻었다.
“그러셨구먼. 멀리서 오셨는데 저녁이나 들고 가요.”
“아, 저희는-.”
조심스럽게 사양하려는데 손광연의 묵직한 목소리가 사내들의 어깨를 눌렀다.
“들고 가요.”
“예.”
문석일과 남자들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목소리였다.
문석일은 손광연의 정체를 가만히 짐작해봤다.
‘이 사람도 냄새가 다르다.’
대정 핏줄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아니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다.
야, 이거······. 우리 밥 먹다 체하는 거 아니냐? 정상태가 중얼거렸다.
***
문석일과 동료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개울가를 거닐었다.
그들이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시골 정취를 감상할 때.
손광연은 아들과 더불어 감정의 티끌을 씻어냈다.
그동안은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만 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았던가.
진혁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발생한 사건의 인과와, 아빠가 왜 시골에서 사는지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빠가 어떻게 자랐는지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으니.
“아빠가 이제야 말해줘서 미안해. 서운하지?”
“아뇨. 서운할 게 뭐 있겠어요.”
“우리 진혁이가 의젓하고 속이 깊어서, 그래서 묻지 않았던 거지?”
평범한 아이였다면 명절마다 ‘우리는 왜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느냐.’ 물었을 게 뻔하다. 손광연은 자식으로부터 배려받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진혁은 구태여 파고들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 게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진혁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지 않은가. 진혁은 부모님이 계신다는 자체로 행복했고, 그 행복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진혁아.”
“네.”
말없이 글러브만 만지작거리는 진혁의 어깨를 손광연이 강하게 잡았다. 이전 생의 자신보다 젊은 아버지를 진혁의 깊은 눈동자가 쫓았다.
“아빠는 할아버지 얼굴을 사진으로만 봤다. 할머니도 일찍 돌아가셨어. 그래서 진혁이에게 아빠가 되고 싶었고, 엄마를 주고 싶었어.”
그리 말한 손광연이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인생 2회차 손진혁인데.
지금의 아빠보다 더 살았었고, 거기다 돌아와서 5년을 더 살았는데. 이상하게 아빠는 나보다 어른스럽다. 진혁은 그 사실이 감격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고맙다, 아들······.”
뭐가 고맙다는 말씀이실까.
내가 고마운데. 이미 아빠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자라고 어깨도 넓어진 진혁인데. 어린아이처럼 아빠의 가슴에 이마를 묻고 부볐다.
***
밥을 먹을 때는 유진이가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유진이는 모두에게 말을 걸었는데, 넷 중 가장 잘생기고 유일하게 피부가 흰 김인랑에게 유독 관심을 보였다.
“아지찌는 몇 살이나 먹었지요?”
“서, 서른셋······이요.”
유진이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러다 엄마에게 두 주먹을 내밀었다.
“와-! 엄마, 이것 좀 보지요? 많이 먹었지요? 유진이 손꾸락 없어졌지요?”
식사를 마친 문석일에게 진혁이 쪽지를 내밀었다.
“연락해둘 테니 찾아가 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떠나는 문석일의 차를 보며 진혁이 미간을 오므렸다.
언제 해봐도 사람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나 중간에 어정쩡하게 끼어 여러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억지로 관계를 맺지만 그 외양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애써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사업을 그럴듯한 보고서로 포장해 추진하는 듯 자괴감마저 들었다.
‘장군이랑 유진이 없었으면 엄청 서먹하고 비장했을 거야.’
아빠가 무슨 생각으로 밥을 먹자고 했는지는 몰라도, 새삼 동생의 존재가 고마웠다.
“아들. 그 사람들 기준이 아저씨한테 보낸 거니?”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은 손광연이 물었다.
“네.”
지체 없이 대답하는 아들을 보며 손광연이 눈을 빛냈다.
“그 사람들을 꼭 부리고 싶은 거니? 위험한 사람들이잖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진혁의 일상을 찾게 해줄 조력자라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