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 적임자 (2) >
그 옛날 친구들에게 들은 바 있었다.
미혼 삼촌이나 이모처럼 집에서 어정쩡한 위치의 사람이 아이들을 책임지는 거라나?
‘어딜 가든 내 역할은 보모로구나.’
진혁은 스스로 어정쩡한 위치임을 자각했다. 부모님과 나이 차가 크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소속이라는 게 있으니 얼마나 뿌듯한가. 뛰노는 꼬맹이들을 바라보는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뭐, 꼬맹이들끼리 잘 노니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진혁은 백화점이나 마트, 영화관처럼 붐비는 곳을 싫어하기도 했고.
나쁘지 않은 평화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 날이 손에 꼽는 것 같다.’
운동이든, 공부든. 항상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고통을 잊기 위해서.
그런데 돌아온 후로는 뭔가를 지키기 위해 바삐 살았다.
‘가만히 앉아서는 평화로울 수 없지.’
이대로 시간이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알고 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진혁이 쉬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암약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더욱 신경 쓸 일도 많아지고 바빠질 것이 뻔했다.
그래도 가끔이라도 이런 만족스러운 휴식을 갖기 위해서는 부릴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에 상무였던 홍수정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조언을 얻었더랬다.
그녀는 진혁을 어려워하는 사람답게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었다.
- “저기······, 모든 일을 직접 하시라고 팀장으로 모신 거 아니에요. 사람을 쓰실 줄 아셔야죠. 그게 리더라고 생각- 합니다. 사람마다 가진 강점을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리더의 첫걸음이라고 아빠가, 회장님이. 예.”
전투적으로 서류와 데이터를 파고들던 진혁이 고개를 들고 사람을 보게 만든 말이었다. 장수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을 하면서도 부하인 진혁에게 굽신거리던 꼬꼬마 상무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래, 수정아. 네 말이 맞다.’
진혁은 눈을 들어 홍수정과 뽀미가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런 원반을 프리스비라고 부르더라. 홍수정이 원반을 던지면 뽀미가 달려가 물어왔는데, 뽀미는 얼마나 능숙한지 프리스비가 땅에 닿기도 전에 받아낼 때도 있었다.
‘오-, 대단해.’
보고 있자니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된다.
TV에서나 보던 모습을 실제로 목격할 줄이야. 거리에서 연예인을 봤을 때처럼 신기했다.
“까하하-.”
유진이는 홍수정 옆에서 폴짝폴짝 뛰며 박수를 쳤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저도 해보겠다며 원반을 달라고 졸랐을 텐데, 유진이는 그런 것에 욕심이 없어 보였다.
헤헤헥-.
장군이도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숏다리여서 뽀미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안되어 보였는지 홍수정이 장군이에게 원반을 날렸다.
“당구니!”
깽-!
느닷없이 날아온 원반에 코를 맞은 장군이가 화들짝 놀랐다. 잔디밭 위에서 한 바퀴 구른 장군이는 냅다 달려 뽀미의 개집으로 들어가 숨었다.
‘에휴-, 저 겁쟁이.’
낯선 문물은 두내리 최강견 장군이마저도 숨게 만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뛰어다니는 장군이를 보며 진혁은 원반을 만들어 같이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달리기만 했는데, 개들은 저렇게 놀아주는 것도 좋아하는구나. 합판이나 박스를 동그랗게 오리면 되겠지. 페인트통 뚜껑이 동그래서 좋은데, 장군이가 맞으면 아프려나.
“유딘이가 해바-.”
“녜-, 에헤헤-.”
유진이가 두 손으로 공손히 프리스비를 넘겨받았다.
한참을 신나게 놀던 홍수정이 개처럼 혀를 쭉 빼물고 진혁에게 다가왔다.
“헥헥-, 오빠.”
“응?”
“나랑 겨런할 거지?”
뚜앵-. 진혁의 고막에서 냄비 뚜껑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직진녀 프러포즈인가.
이 꼬맹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처음도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울 건 없었다. 다만 이럴 때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지 진혁으로서는 어려운 문제였다.
에라 모르겠다, 이 상황만 넘기자 예스, 그러기에는 너무 성의가 없고. 앞날 따위 어찌 될지 모르니 단호하게 노를 외치자니 꼬맹이 마음이 다칠 것 같았다.
꼬맹이 질문에도 말 한마디 못해 안절부절못하는데 천재는 개뿔······.
“내가 둥요한 거 봐뜨니까. 오빠는 나랑 겨런해야 해.”
“중요한 거?”
“으흐흥, 그런 게 있더. 몰라두 대.”
중요한데 몰라도 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논리냐.
홍수정은 가늘게 뜬 눈으로 진혁을 보며 코웃음 치더니 휙 가버렸다.
뭐, 지 할 말만 하고 다시 유진이에게 달려가는 걸 보면 대답은 안 해도 되는 모양이다. 덕분에 피곤한 상황을 면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애들은 통 모르겠어.’
어차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진혁이지만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무슨 말이냐며 꼬맹이를 추궁하는 모습도 우스울 것 같아 뒤통수만 긁었다.
논둑에서 소변을 보며 아빠가 해준 말이 있다.
- “남자가 잡혀 사는 게 편해. 여자들이 더 똑똑하거든.”
옳고 그름을 떠나 잡혀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의 생에 걸쳐 자신에게 애착을 보이는 녀석인데, 다른 마음을 품는 건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진혁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훠우-! 잘한다, 내 동생!”
“에헤헤-.”
유진이는 원반이 아닌 몸을 날릴 때가 더 많았다. 프리스비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는지 원반을 날릴 때마다 잔디밭에 몸이 나동그라졌다.
‘시골집에는 잔디밭이 없지.’
던지기 놀이보다는 푹신한 잔디밭에 뒹구는 걸 더 재미있어하는 듯 보였다.
아이들은 잔디밭을 좋아하는구나, 집 근처에 잔디밭을 깔아야겠다. 필요한 행정 조치는 아빠가 알아서 하시겠지. 그리 궁리하는 진혁의 눈에 신기한 장면이 들어왔다.
갸웃대며 구경하던 뽀미가 유진이와 함께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까하하하-. 뽀미도 재밌지요?”
언제 봐도, 뭘 해도 귀여운 동생이다.
진혁은 곰돌이 같은 유진이의 재롱을 구경하며 박수를 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홍수정과 유진이는 드디어 방전됐는지 잔디밭에 널브러졌다.
장군이와 뽀미는 서로 주둥이를 핥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입에 꿀 발랐나.
진혁은 앞으로의 스케줄을 떠올리며 아랫배가 살살 아파 왔다.
‘다다음 주 화요일부터 중간고사지?’
시험 보는 건 재미있지만 준비하는 건 스트레스다.
***
작별은 늘 힘들다.
“언니, 저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오호호- 그래요, 여기서 나랑 살아요.”
한유영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은 낯선 엄마의 반응을 보며 역시 여자들은 도시를 선호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백화점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유진이만 아니면 정말 눌러앉으실지도 모르겠네.’
헤어짐을 가장 아쉬워하는 건 장군이였다.
장군이는 뽀미와 헤어지기 싫은지 주댕이를 핥으며 떨어질 줄 몰랐다.
“장군이는 여기서 살아. 우린 간다.”
손광연의 말이 떨어지자 장군이는 무거운 발을 놀려 차에 올랐다.
워얼-!
밖을 내다보며 뽀미에게 작별 인사를 날리는데 웬일인지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장군이는 슬퍼 보였다.
차에 오른 한유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백화점 이름이 큼직하게 박힌 쇼핑백을 끌어안은 채였다.
“기사를 둬야겠어요.”
“곧 생기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러잖아도 경호원 중 한유영을 전담할 적임자를 점찍어둔 손광연이 모처럼 서울 사나이 웃음을 지었다.
장군이까지 다섯 식구를 태운 차가 드디어 집을 향해 출발하자,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두 대의 세단이 뒤를 따랐다.
대로에 들어서기 무섭게 한 대가 손광연의 차 앞으로 끼어드는 솜씨가 능숙하다.
***
짧은 1박 2일의 서울여행을 마치고 집에 내려왔다.
물리적으로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진혁은 일주일 만에 집에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심력 소비가 컸던 탓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이 최고다. 혼자 살 때도 제 소유 오피스텔에 들어가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가. 그건 사람만이 느끼는 만족감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저 천둥벌거숭이 장군이도 도토리나무에 온몸을 부비며 애정표현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빠, 고생하셨어요.”
“응. 진혁이도 고생했다.”
장거리 운전을 한 아빠가 너무 지쳐 보였다.
거리로 100km가 약간 넘는 거리.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경기도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승용차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이런 장거리를 매일 왕복하는 화물차 기사들도 많다고 들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아빠에게 넌지시 말했다.
“5톤 기사들은 진짜 힘들겠어요.”
“그러게요. 그 사람들은 덜 막히는 새벽 시간대에 운행한다지만 장난이 아니네요.”
손광연의 농작지는 논과 밭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온갖 화훼부터 달래, 쪽파, 대파, 미나리 등, 4계절 시설재배를 통해 가락동과 양재동 일대에 매일 납품하는 작물만 열 가지가 넘었다.
땅 부자라고는 하지만 땅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는 돈이 돌지 않기에 상품작물 개발에 나서다 보니 일이 그렇게 커진 것이었다. 그 덕분에 늘 큰돈이 들어오고 진짜 부자 소리 듣고 사는 거지만.
아무튼, 그 작물을 싣고 매일 삽교천과 아산만 방조제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5톤 화물트럭 기사들이 스무 명이 넘었다.
“지입차주라고는 하지만 보탬이 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손광연은 착한 사람이었다. 물욕이 없었고 출세욕도 없었다. 욕심이라고는 한유영에 대한 애욕뿐이랄까.
그저 역량이 받쳐주고 그릇이 큰 사람이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번 것을 이웃에 베푸는 걸 좋아했다. 작물을 모두 팔지 않고 좋은 종자는 빼두었다가 이웃에 나누고, 소작지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그해 세를 받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엄연히 따지면 남남이고 거래처 사장인 자영업 화물차 기사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손광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진혁을 바라봤다. 똑똑한 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노골적인 의사표현이었다.
“화물차 아저씨들은 다 지입이예요?”
“그렇지. 다들 자기 차야. 화물회사에 소속된 기사들도 차는 자기 돈으로 사지.”
“아빠 땅에서 일은 많이 나와요?”
“매달 송장과 장부 정리해 보면 스무 명이 20일씩 일할 정도는 돼. 그래서 화물업체 외에 자영업 기사들에게도 일을 주는 거야.”
진혁이 호기심을 보이니 반가웠을까, 오랜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잊었는지 손광연이 평상에 걸터앉았다.
도토리나무 밑에서 흙목욕을 하는 장군이를 쓰다듬으며 진혁이 물었다.
“그 사람들 직접 고용하는 건 무리겠죠?”
“그렇지. 그 사람들한테 좋을 게 없어. 프리로 일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니까.”
어딘가에 소속되면 안정적인 수익은 생기지만 그 외 추가로 벌어들일 소득을 포기해야 한다. 자세히 파고들자면 현금 운임의 회계 누락 등 재미없고 머리 아픈 설명이 필요했다.
아끼는 아들에게 이 어려운 말들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런 아빠의 고민을 진혁이 단숨에 덜어냈다.
“프리로 일하는 아저씨들은 일도 돈되는 건으로 골라서 받을 수 있고, 신고하지 않는 소득도 많겠네요.”
“어, 어어-. 그렇지.”
뭔가 설명 과정이 많이 생략된 것 같았지만 핵심을 짚은 말이었기에 손광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소속되면 그 일도 줄고, 소득도 잡혀서 세금도 내야 하고, 회사에 속해서 좋은 건 의료보험 정도일 테고요.”
“어, 어. 맞아. 그렇지.”
의료보험이라고 해봤자 큰 혜택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화물공제조합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실제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결국 회사에 속한 화물 기사들이 노리는 것은 안정적인 일거리와 운임이었다. 경력이 길지 않아 인맥과 거래처가 부족한 기사들이 택하는 방법이었다.
“화물차를 고용주가 구매해서 운전기사를 고용하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경력이 쌓이고 돈이 모이면 언제든 독립하려 들 테고.”
현재로서는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나 방법은 찾기 나름이다.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방법은 찾으면 되는 거니까요. 경력 쌓은 후에 독립하겠다 하면 보내주면 되죠. 대신 그 직업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면 구직자들이 생길 거예요.”
“보수를 많이 주면 된다는 뜻이구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세제 혜택이나 회계 처리를 회사에서 해주니 그 맛에 길들면 독립하겠다는 사람도 줄겠죠.”
프리랜서로 일하며 겪는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주부터 서무까지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한다. 번거로운 일을 줄일 수 있으니 지금도 화물업체에 의탁하는 기사가 적지 않은 이유다. 물론, 안정적인 수주가 주된 이유지만.
어차피 세상이 변하면, 현금 수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계산서가 중요하니 현금만 요구하는 자영업 기사들과 거래를 줄일 수밖에 없고, 화물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화물차 기사들을 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는 일 아니겠나.
운송 직원 관련, 진혁이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분명했다.
“큰일 하려면 물류 네트워크는 기본이죠.”
피곤했으나 아들을 바라보는 손광연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서로 입장이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런 얘기는 내가 해준 거 같은데.’
요즘 중학교에서는 정말 많은 걸 가르치는구나. 역시, 우리 아들. 학원도 다니지 않고 과외도 받지 않는데 전교 1등을 하는 이유가 있었어.
손광연은 학력고사 전국 1등 학생들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학교 수업과 교과서에 충실했어요.’
예전엔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도 그렇게 했는데 한국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에 그쳤을 뿐, 전체 수석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그들을 믿기로 했다. 그 산증인이 눈앞에서 개털을 빗기고 있으니.
벼룩도 잡는다.
툭-. 어, 손톱으로 진드기도 터뜨렸어.
으이그-, 징그러운 장면에 손광연이 오만상을 썼다.
***
진혁은 틈날 때마다 아빠와의 회의 내용을 달력 뒤에 적고, 그렸다.
옛날엔 몰랐는데, 벽걸이 달력만큼 크고 튼튼한 종이가 없었다.
며칠간 두 남자의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대화는 계속됐다.
손광연은 마치 홍기준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중학생이 다룰 수 있는 지식이던가. 이게 과연 중학생이 갖출 수 있는 통찰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기업화.”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소작농을 두고, 용역으로 사람을 사서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돈을 버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인 영농과 부의 분배를 위해서는 기업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돌고 돌아 애초 세워둔 계획으로 돌아온 셈이다.
물론, 착한 기업이 되어야겠지만.
“수정이네 아빠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빈틈없이 준비할 수 있을 거야.”
“체계적으로 하는 것만큼 아이템도 중요할 텐데요.”
거기에 물류도 집어넣으면 화물차 기사들에 대한 복지나 부의 분배도 안배할 수 있지 않을까. 장거리 운전에 지친 아빠의 모습에서 시작된 화두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느덧 시작하지도 않은 사업의 다각화를 모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삼키던 음식이 걸린 사람처럼 손광연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는 벌써 세 그릇째 밥을 떠 넣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기준이 녀석 도움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아이템이라······.
아무래도 창고와 공장 부지 분양신청서를 추가로 제출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지역에도 냉장창고를 얻으려면 기준이한테 삥을 많이 뜯어야······.
“그건 그렇고, 진혁이도 이제 학교에 차 타고 다니는 게 어떠니?”
“저는 괜찮아요.”
경호원을 고르라는 뜻이겠지만 진혁에게는 불필요한 조치였다.
시골 중학생에게 경호원이라니, 불편할 게 뻔했다.
그리고 진혁은 점찍어 둔 사람이 있다.
“그래도-.”
따르르르릉-.
손광연이 뭔가 말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가 받을게요.”
진혁이 밥을 우물거리며 급히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 무릎 위에서 곤히 잠든 유진이가 깰까 봐, 그리고 자기가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도 들었기에.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진혁이 부모님을 완전히 등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문석일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