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 우연이 빚은 운명 (2) >
***
“저는 괜찮은 거 같은데요.”
낙지 사러 나왔다가 도시까지 실려 나왔다. 집에 가야 하는데,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진혁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진혁을 육영구가 달랬다.
“아자씨가 집이다 전화했으니께, 오실 껴. 쫌만 기다려이-?”
“네.”
반응 검사 후 심각하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육영구는 많이 진정된 모습이었다. 여전히 손은 덜덜 떨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진혁이 문제였다.
‘우우-, 병원 냄새.’
병원 냄새는 언제 맡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폭발 충격에도 멀쩡했던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답답했던 나머지 진혁은 나이롱환자답게 의료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모처럼 큰 병원에 오니 술병 난 홍수정을 업고 응급실을 찾았던 30대의 어느 날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아마 그녀가 상무, 진혁이 팀장이 되어 함께 축하주를 마신 날이었던 것 같은데.
‘내 등에 잔뜩 오바리를······.’
등짝이 축축하고 뜨끈해지는 느낌에 진혁은 떠올리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눈가의 붓기는 가라앉았고 광대 부근이 시퍼렇게 멍든 남자였다. 얼굴이 아니더라도 다부진 체격만으로 구분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 남자는 진혁이 자신을 보기 전부터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또 누굴 때려서 병원에 왔나’ 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날 만나러 온 거니?”
“아뇨. 친구가 다쳤어요. 여기 계신 줄 몰랐네요.”
문석일이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이죽거리려고 물은 건데 차분하고 정상적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나. 괜히 부끄러웠다.
키 큰 중학생이야 많다지만 체격까지 단단한 진혁을 조심스레 눈에 담으며 물었다.
“어쩌다가?”
“고폭탄이 터졌어요. 박격포탄.”
문석일이 놀란 눈을 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강원도 전방이 아니라 해도 불발탄이나 지뢰를 가지고 놀다가 목숨을 잃거나 손목, 발목을 잃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학생이라는 녀석이 고폭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고폭탄이 터졌다면 생명이 위험할 터.
“상심이 크겠구나.”
“고막만 조금 다쳤다고 하더라고요.”
문석일은 한 번 더 놀랐으나 사고 경위를 묻지는 않았다. 그런 대화를 할 만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닌 데다 자신이 알 필요 없는 일이었으니. 자세한 건 몰라도 폭발지점 가까운 곳에 있다가 엄폐물 덕에 크게 다치지 않은 모양이라고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추측하고 넘어갔다.
“친구분들은요?”
“한 명은 여기 있고, 두 명은 수원에 있다.”
이번에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헌창이었던가, 갈빗대가 부러진 사람이 아직 여기 있겠지.
진혁은 제 나름대로 묻고 싶은 게 있었으나 말을 삼켰다. 깁스에 쌓인 문석일의 오른손을 보며 치료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치료비는 지원해드릴 수 있어요.”
“그럴 거 없다.”
느릿느릿 고개를 가로젓는 문석일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심경이 복잡한 두 남자의 재회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엉엉-, 진혁아-.”
“우리 아들 어딨어!”
엄마는 시장통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벌게진 눈으로 울며 두리번거렸고, 아빠는 지나가던 의사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그때마다 애꿎은 의사의 머리가 차량용 흔들인형처럼 달랑거렸다. 정말이지 다큐멘터리에서 본 아메리칸 들소를 연상시키는 힘이다.
‘아무래도 성찬이네 아빠가 설명을 부실하게 한 모양이야.’
폭탄이 터져가꾸 진혁이가 의료원에 실려 왔슈, 얼른 와유. 보나 마나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겠지. 안 봐도 훤했다. 살아온 문화 자체가 그런 사람들이니까.
유진이는 최미경 청소년네 맡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생도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의사의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기에 진혁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부모님 오셨네요. 다음에 봬요.”
분명히 말했다. 다음에 보자고.
“그래.”
문석일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모으고 허벅지에 손을 붙였다. 내가 왜 이럴까 갸웃하며.
문석일의 눈동자가 진혁을 따라 스르륵 움직였다. 호들갑을 떨며 진혁의 몸을 살피는 손광연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보다 서너 살 많을까, 아들이 무사한 걸 알고는 아내를 안고 달래는 모습. 그저 평범한 사람 같은데. 힘은 좋아 보이네.
왜 저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을까.
‘누가 시켰는지 알아보기로 했지.’
진혁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계약으로 맺어진 운명이다.
돈보다 중한 문석일의 목숨을 담보로 맺은 계약.
- 【······ 지켜볼 것이다. 네 목숨은 내가 맡아두겠다.】
그 음성을 떠올리면 괜히 목을 움츠리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턱에 질끈 힘을 준 문석일이 지폐와 공중전화카드를 챙겨 진혁의 가족을 피해 병원 밖으로 나갔다.
***
어느 토요일 오후.
어려서 그런 것인지, 대처가 빨랐던 덕분인지 육성찬은 금세 완쾌되었다. 퇴원한 날 아버지 육영구와 함께 진혁의 집에 들렀는데, 진혁이 아니었다면 큰일 치를 뻔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육영구의 손에 든 아이스박스에는 싱싱한 낙지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이틀 동안 잡은 것을 하나도 팔지 않고 가져온 것이라 했다.
“성찬 아빠, 이러시면 안 돼요.”
손광연은 거푸 사양했다. 이 많은 낙지를 잡으려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아는 까닭이다.
“아뉴, 아뉴! 암만 귀해두 내새끼보담두 귀헌 건 웁는 규-. 지넥이넬랑은 앞으루 낙지 사 먹을 생각일랑 말유-. 내가 때마다 잡아줄 테니께. 막말루 유진이가 낙지 먹구 싶다구 안 했으믄 내가 이새끼를- 다시 뭇봤을 뀨-.”
그리 말하는 육영구의 입은 웃고 있었고, 눈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신이 난 유진이는 꾸물거리는 낙지를 높이 들고 장군이와 마당을 내달렸다.
“까하하-! 연이다아아아-.”
낙지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잡는 빨판을 보니 낭패감에 잠식당한 모양이었다.
눈물을 글썽이는 육영구와 달리, 육성찬은 또렷이 잘 들린다며 해맑게 웃었다.
육성찬의 상태를 이미 전해 들은 바였으나 진혁은 한번 더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김살 없는 천성을 지닌 녀석이라 그런 걸까, 트라우마도 없는지 육성찬은 유진이와 마당 가의 개복숭아 나무를 기웃거렸다.
“오빠! 저기요! 유진이는 키 짝아요.”
“이거, 이거? 이거 익은 겨? 아직 시퍼런디? 안 익은 거 먹으먼 클나-.”
“원래 파랗지요? 속은 익었지요?”
유진이와 더불어 쪼그려 앉아 앞니로 개복숭아를 갉아먹는 육성찬을 보며, 진혁은 설명하지 못하는 인과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새삼 생각했다.
‘유진이가 낙지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육성찬은 예정된 사고를 당했을까. 유진이가 보던 그림책에 문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진혁이 가지 않았다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슨 소용일까만 그래도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육성찬의 가족도 일상을 찾았고, 무엇보다 진혁에게도 큰 충격으로 남았을 일이 잘 지나갔으므로.
육 씨 부자가 돌아간 후, 마당에서 장군이 털을 빗기고 벼룩을 잡았다. 진드기도 제법 나왔다.
“너도 매일 샤워 좀 해라. 말 만한 아가씨가 벼룩이 뭐야.”
발바리에게 말 만하다는 표현은 좀 심했나?
개울도 가까운데 좀 씻지. 바닷물에 담그면 살균이 좀 되려나. 브라질리언 왁싱을 한 번 싸악- 하면 괜찮아질까? 진혁의 꽁달거리는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장군이와 있을 때면 확실히 말이 많아진다.
헤헤헥-.
딴청 피우는 걸 보니 장군이는 목욕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장군이 너도 서울 가려면 때 빼고 광내고 해야 해.”
학교에 다녀와서야 알게 된 온 가족 서울여행이었다. 수정이네 놀러 간다는데 그럼 하루 자고 와야 한다는 뜻 아닌가. 남의 집 불편한데.
‘흠. 아빠 혼자 다녀오실 줄 알았는데.’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설명만 들었다.
차가 생긴 후로 가족이 여기저기 드라이브도 다녔고, 짧게 여행도 다녔지만 서울에 함께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진혁이 조수석에, 엄마는 유진이와 장군이를 데리고 뒷좌석에 탔다.
“수정이네 외할아버지 뵈러 갈 거야.”
원래 이유나 목적을 먼저 설명하는 아빠였는데, 오늘은 차 안에서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엄마와 아빠가 정장을 차려입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래서였구나. 아무리 홍기준이 잘 나간다 해도 아직 실질적인 권력자는 유명선 회장이니 잘 보일 필요가 있겠지. 그래서 먼저 만나러 가는 걸 거야.
“오랜만에 뵙는 거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진혁이 운전석의 아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아빠도 어릴 때 몇 번 인사드린 게 전부야. 항상 바쁘셨거든.”
창업주인 부친을 도와 세인그룹을 일군 사람이니 바빴겠지. 진혁이 기억하기로, 유명선 회장이야말로 창업주나 마찬가지였다. 그 부친은 액화탄산가스 공장 하나만 도맡아 운영했으니.
진혁이 지켜본 아빠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을 콕 집으라면 엄마 정도일까. 그런데 지금 아빠의 음성은 떨렸고 말은 길지 않았다.
‘긴장하신 모양인데.’
유세라와 홍기준, 손광연 세 사람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은 아니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겠어.’
진혁의 관심은 문석일로 하여금 나쁜 짓을 사주한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빠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땅히 의심할만한 배경은 제한적이었으니.
우연히 결정된 서울행이 중대한 영향을 줄듯한 예감, 진혁의 정수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명선의 인맥과 정보력을 고려했을 때, 쓸만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자면 아빠의 역할이 중요했다.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엄마와 유진이를 확인한 진혁이 손광연을 보았다.
“아빠-. 회장님 뵈면 해주실 일이 있어요.”
***
약속 시간이 되어 가자 유명선 회장은 분주해졌다.
추석이 지나 하와이에서 돌아온 손광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어린 시절 이후 대면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손광연은 제 후원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원이라고 해봤자 자식들처럼 유학을 보내준 것도 아니고 가끔 집사를 통해 용돈이나 전해 준 정도였지만. 아무튼 은혜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니 노 회장의 가슴이 괜히 두근거렸다.
‘기준이가 말했겠지.’
천방지축에 주변머리 없는 딸 유세라가 손광연을 설득했을 리 없다. 정치력 있고 똑똑한 사위가 늙은이의 갈증을 해갈하려 어려운 말을 꺼냈을 터. 유명선은 아들 복은 없어도 딸과 사위만은 제대로 두었다고 생각했다.
“이 여사, 이거 넥타이가 잘 매진 거 같소?”
“새장가 가셔도 되겠어요. 호호호.”
“다 늙어서 무슨.”
듣기 싫지 않았는지 유명선의 입꼬리가 삐죽이 올라갔다.
집안일을 두루 잘 챙기는 이 여사가 유명선의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나섰다. 눈에 이채를 띤 채였다. 대통령을 만날 때도 와이셔츠에 자켓만 걸치고 대면했던 회장이 답답하다며 꺼리는 넥타이까지 매고 있지 않은가.
“아가씨는 안 오나 봐요?”
“일 없네. 여러 사람 오면 시끄럽고 불편하기나 하지.”
어차피 저녁만 먹고 딸네 집으로 갈 텐데 번잡스럽게 할 필요 있을까. 딸 유세라에게도 그리 말해둔 참이었다. 너 오면 시끄럽고 귀한 쿠키만 없어진다며.
‘죄지은 것도 없는데 떨리는구먼.’
젊어서부터 사업을 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쟁 때는 인민군 장교가 이마에 총을 겨눈 일도 있었지.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며 자포자기했을지언정 떨지 않고 총구를 노려봤었다.
홍기준의 활약으로 세인 그룹이 급부상하며 정재계 인사들과의 회동도 잦아졌고 그중에는 청와대 고위관리는 물론 대통령도 있었다. 그때도 유명선은 여유롭게 행동했다. 그런데 손광연 그놈이 뭐라고 이리 두근거릴까.
“이 여사, 저녁 준비는 잘 되었소?”
“네. 손님들이 좋아하실지 모르겠네요.”
“이 여사 솜씨면 누구든 좋아하겠지.”
“회장님께서 이렇게 신경 쓰실 정도면 정말 귀한 손님인가 봐요?”
지팡이를 짚고 응접실을 서성이던 유명선이 멈춰 섰다.
귀한 손님.
그래서 내가 이리 안절부절 못하는 게로구만. 노 회장이 중얼거렸다.
70년을 넘게 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사람의 마음이었다. 갖고 싶은 물건도, 사람의 몸도 살 수 있는 것이 돈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쉽지가 않다.
어쩌면 그 어미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어린 동생처럼 보던 애틋함,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사내는 늙어도 철이 들지 않는다 했다. 그 철들지 못함을 낭만이라는 말로 포장한다던가.
유명선은 피식 웃고는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와이셔츠 단추도 하나 풀고 거울을 보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연습했다. 대통령 앞에서도 여유를 부렸는데 왜 이리 얼굴이 굳는 걸까.
푸푸- 소리가 나도록 볼에서 바람을 빼던 유명선이 권 집사를 찾았다.
“아이들도 온다고?”
“예, 회장님. 남매라고 합니다. 아, 그리고-.”
권 집사가 안경다리를 잡아 올리고 수첩을 노려봤다.
“개도 한 마리······.”
“허헛!”
유명선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굳었던 얼굴 근육이 그제야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개라니. 하여간 말수는 적어도 어릴 때부터 유쾌한 놈이었다.
***
“와아-! 빠방 많아요오-.”
“그치, 그치? 정말 많다아-. 서울 시내는 처음이다아-.”
헤헤헥-.
뒷좌석에서 두 여자와 개의 감탄이 들려왔다.
피식 웃은 진혁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가 강남대로였던가?’
신기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나던 곳에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오다니.
도심과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30년 세월이 느껴졌다.
대로를 벗어나 좁은 오르막길을 운전하며 손광연이 혀를 내둘렀다.
“역시 높다, 높아. 새도 못 들어가겠네. 자기야, 우리도 이렇게 담벼락 높게 세울까요?”
“어휴, 답답해서 어떻게 그러고 살아요.”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말하면 성채, 나쁘게 말하면 감옥 같은 담장. 담장 위에는 뾰족한 철물도 빈틈없이 박혀 있었다. 훔쳐 갈 물건이 많아 도둑이 빈번한 동네인가 보다. 백여 미터 남짓 지나오며 순찰차도 두 대나 봤다. 태양군에서는 읍내에 나가도 보기 힘든데.
‘수정이도 이런 데서 사는 걸까.’
성인 홍수정은 오피스텔이나 호텔에서 지냈는데 지금의 꼬맹이는 어디서 살까. 뛰어놀기 좋아하는데 정원은 널찍할까. 바다 보며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꽉 막힌 담장 안에서 지내면 답답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진혁이 피식 웃었다.
‘내가 별일이네.’
미련이겠지. 감정이 무디고 서툴렀던 전생, 멀쩡해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추억을 만들고 역사의 성을 쌓을 기회가 참 많았구나. 이제야 누군가를 생각할 줄 알게 되다니. 당시에도 좀 반추하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도 했다.
괜시리 심장이 간지러워 벅벅 긁자 운전석의 아빠가 곁눈질했다.
“진혁이 안 씻었니?”
“씻었어요······.”
장군이한테 벼룩 옮았나. 들리지 않게 웅얼대는 진혁을 싣고 손광연의 차가 마침내 인연의 산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