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 우연이 빚은 운명 >
***
유진이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뭐든 잘 먹었다.
진혁이 좋아하지 않는 메기나 멍게 따위도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엄마! 멍게 주세요오-.”
“멍게는 지금 없는데?”
“그럼 메기 주세요오-.”
“메기는 오빠가 안 잡아서 없어요.”
“그래요? 오빠! 메기 잡아주세요오-.”
메기는 조슬찬과 운 좋게 잡은 후 구경도 못해본 진혁이다.
“그게 잡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야.”
“왜지요?”
“그······.”
다섯 살짜리가 사람 말문을 틀어막아 버린다.
진혁은 학생 신분이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면 유진이 눈동자에 마음이 약해진 나머지 강제로 어부가 되었을 거야.
유진이는 다른 해산물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낙지와 꽃게를 특히 좋아했다. 편식 아닌 편식 아닐까 걱정했으나, 체온이 높은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유세라의 말에 안심이 된 한유영도 있을 때마다 챙겨주곤 했다.
어느 일요일 이른 오후, 그림책을 보던 유진이가 그림책에 있는 문어를 보며 침을 흘렸다.
“엄마, 유진이 낙지 먹고 싶어요.”
“낙지?”
여름 지나고 이제 낙지 사려면 읍내 시장에 가야 할 텐데, 한유영은 좁아터진 읍내에 나가는 게 두렵다. 아들 성화에 가족 외식이나 외출을 하지만,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칠까 저어되는 탓에 다른 지역으로 나가곤 했다. 남편에게 부탁해도 되지만 남편은 요즘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수화기를 들었다.
“아, 그래요? 낙지잡이 가셨어요?”
안마을 이웃들에게 전화를 넣어 오늘 낙지를 잡는 집이 있는지 확인했다. 여러 집에서 낙지잡이에 나섰다는 대답을 들었다. 마침 해가 길고 햇살이 뜨거워 올해는 뻘낙지잡이가 길어질 거라는 정보와 함께였다.
“제가 성찬네 가서 사 올게요.”
동생이 먹고 싶다는데 잠자코 있을 오빠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도맡아 심부름을 하던 진혁이지만, 엄마가 안마을 사람들과 통화를 시작한 직후부터 자신이 당연히 자신이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기도 했고.
운동화 끈을 동여맨 진혁이 작은 배낭을 메고 자전거에 올랐다.
똑똑한 장군이는 진혁이 자전거에 오르면 따라나서지 않는다.
월-. 한 번 짖어 배웅하는 게 전부였다.
‘성찬이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는데. 내가 전학을 안 가서 그런지 자주 만나네.’
이전 생에서는 어린 시절 헤어진 후로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친구였다. 중학교 반 편성이 다르다 해도 1학년 학생 수가 400명 남짓이었고 고향이 같았으니 우연히라도 만났다면 알아봤을 텐데.
길이 잘 닦인 덕에 자전거로 빨리 달려 육성찬네 집에 10분 만에 도착했다.
“성찬이 교회 안 갔네?”
“이이, 중학상은 과자두 안 주니께.”
과자는 초등부까지만 주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까먹기 전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하던 육성찬이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간다기에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성찬이 신실한 교인인 줄 알았는데?”
“어이구, 내가 실신허기는 무슨. 기도허는 것두 쫌 그려. 밤에 자기 전이 기도허는디 어느 날부텀인가 무섭더라고.”
의외의 대답에 진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서워? 왜?”
육성찬은 팔을 벌려 몸을 십자가처럼 만들며 눈을 감고 인자한 미소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예수님 나올께미. 이히히힉-.”
느허허-.
진혁은 모처럼 친구와 더불어 실없이 웃었다. 성찬이는 개그맨을 해도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친구와 웃고 떠드는 중에 외출복 차림의 육영구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낙지 열 마리만 파실래요?”
“이이, 그려. 지넥이 왔구나. 야, 승찬아. 지넥이 낙지 넉넉히 줘서 보내잉? 아버질랑은 읍내 파출소 좀 댕겨올라니께. 남은 건 츄럭 오먼 큰 거만 굴러서 팔어. 이 빌어 처먹을 사기꾼 놈의 새끼들이 짝은 눔은 둔두 안 쳐주먼서 막 집어갈라 그려-.”
“예, 아부지.”
육영구는 자신보다 훌쩍 커진 진혁의 등을 탕탕 두드리며 씨익 웃고는 125cc급 오토바이로 향했다. 그 발걸음이 흥겨웠다.
진혁이 눈으로 쫒아가 보니, 오토바이 뒷좌석에 짐 끈으로 묶은 물체가 보였다.
‘뭐지?’
나무판자 두 개를 양옆에 세워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 것이었는데, 기억 속에서 물체의 정체를 끄집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뻘겋게 녹이 슬었지만 작은 뼘 정도 되는 길이, 후미에 붙은 여러 장의 날개.
‘고폭탄?’
크기로 봐서는 60mm 고폭탄이 아닐까. 진혁은 짧은 순간 제원과 성능을 떠올렸다. 살상반경이 27미터였던가.
그런 물건을 오토바이에 싣고 파출소로 가신다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폭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고라는 게 상식의 범위 안에서만 발생하던가.
“아젔-!”
“진혁아, 여기.”
빠다다다다-.
거의 동시였다. 육영구를 부르기 위해 팔을 뻗은 것과 육성찬이 진혁에게 낙지를 건넨 것은. 아차 하는 사이 육영구는 이미 출발해 20미터 남짓 멀어졌다.
겉보기로는 괜찮은 것도 같았다. 서스펜션 단단한 오토바이 위에서 얌전하게 있는 걸 보면 저 녀석도 폭발할 의도는 없는 거 아닐까.
그래도 안전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끝없이 조심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 진혁은 육영구를 멈춰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금세 멀어져 길을 가로지른 쇠파이프를 넘고 있었다.
시골길 위에는 길을 가로지르는 급수 호스를 보호하기 위한 쇠파이프가 있었다. 급수 호스를 쇠파이프 내부로 통과시켜 밭에 물을 대는데, 자동차가 밟아도 안전하도록 쇠파이프를 놓고, 때로는 그 위에 시멘트 포장도 했다.
아무튼, 그 파이프가 과속방지턱 역할도 했고······.
지금처럼 고폭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덜컹- 후슝-.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진혁은 육성찬의 멱살을 부여잡고 대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감각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토바이에서 발사되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고폭탄을 보며, 육성찬의 멱살을 잡고 뒹굴며, 찰나의 순간 진혁은 깨달았다.
‘불발탄이 아니었구나!’
성찬이 아버지는 어디서 저걸 주우셨을까, 왜 미사용품이 마을에 있는 걸까. 단순 불발탄이었다면 아저씨가 돌아가셨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찾은 일상인데, 여기서 죽을 순 없는데.
‘나 할 일 많은데.’
아빠 사업도 도와야 하고, 이승훈과 신우성 씨름 가르치고 공부도 도와야 한다. 염병택과 조슬찬 자세 교정 봐줘야 하고, 채규호 과학고도 보내주기로 했다. 문석일이 완쾌 후 돌아오면 시킬 일도 많다.
비장감이 무색하게 찰나는 말 그대로 일수유였다.
육성찬네 집 대문 좌우는 단순한 벽이 아니었다. 한쪽은 농기구를 보관하는 광, 한쪽은 곡물을 저장하는 광이었다. 대문은 광을 옆에 두고 외벽에서 집 내부로 1미터 이상 들어간 구조였다. 그 구조가 뜻하지 않게 고폭탄 처치공 역할을 했다.
꽈과아아아앙-!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우드득- 하며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도 들렸고, 꽈지직하며 약한 시멘트 벽돌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대문을 비롯한 한쪽 광의 벽이 우르르 무너졌고, 광에 있던 쌀자루가 터져 쌀알이 사아아- 마구 쏟아져나왔다.
“으아아아아아-!”
육성찬이 양쪽 귀를 틀어막고 울부짖었다.
진혁도 귀가 먹먹했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육성찬을 먼저 살폈다.
“야! 성찬아! 손 떼 봐!”
“으아아아아아아-!”
다행히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으나 귓구멍에서 피가 흘렀다.
눈이 화등잔만 해진 육영구가 오토바이를 자빠뜨리고 달려왔다.
“아저씨! 119!”
넋이 나간 얼굴로 육성찬을 일견한 육영구는 진혁의 외침에 잔해를 헤치고 집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
멀리 앰뷸런스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마을을 벗어났다.
마을로 들어서던 활어차가 잠시 한쪽으로 멈춰 서자, 앰뷸런스는 감속 없이 빠르게 떠나갔다.
“나 아니다 이놈들아. 100살까지 살 게야.”
그 난리를 지켜보던 천길룡이 그리 중얼거렸다.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곰방대를 물고, 한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했다.
“하이고오-, 추석 지난 지가 언젠데 이리 덥나.”
집 안으로 들어서던 천길룡은 신경질적으로 부채를 접었다.
그리고 대나무 숲을 향해 빼액 소리를 질렀다.
“난 입도 뻥긋 안 했어! 나도 몰랐다고!”
부산스럽게 좌우로 흔들리던 대나무 숲이 잠잠해졌다. 한참을 대나무 숲을 쏘아보던 천길룡은 그제야 마저 발을 들였다. 대나무 숲이 잠잠해지니 펄럭이던 오색 깃발도 축 늘어졌다.
“희한한 놈이여. 귀신같이 찾아와서 살려내니.”
대나무숲에서 한줄기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 바람 소리의 의미를 아는 천길룡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좀 지내라 이것들아!”
잡귀들과 저승사자들은 허구한 날 지지고 볶고 싸운다. 귀신끼리도 싸우고 저승 차사끼리도 내가 더 옛날에 죽었네, 내가 더 많은 혼령을 인도했네, 짬밥을 논했다.
집에 들어가는 천길룡의 귀에 처녀귀신이 몽달귀신에게 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개 선배, 인생 그따위로 살지 마세요.
“뒈진 것들이 무슨 인생이여?”
천길룡의 핀잔에도 처녀귀신은 들이대지 말라, 못생긴 귀신 싫다는 말을 쉼 없이 쏘아붙였다.
천길룡이 방에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대나무숲이 조용해졌다.
“죽어서 배도 안 고플 종자들이 관심은 고픈 모양여······.”
방에 들어간 천길룡은 혀를 끌끌 차며 목침을 베고 벌렁 드러누웠다.
누가 있을 때만 관심 좀 가져달라는 듯 떠드는 걸 보면 귀신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
“성찬아, 내 말 들리니?”
“으으으으아-. 우웩-.”
육성찬은 헛구역질까지 했다.
육영구를 달래는 응급구조사의 말이 들렸다. 구수한 어투에 다정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아저씨, 괜찮을 뀨. 고막 다쳐가구 어지러워 그런 거니께에-.”
“이, 이-. 그려요.”
육영구가 눈물을 쏟으며 아들의 얼굴을 매만졌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과 뭐라 대화를 하면서도 구조사는 육성찬의 상태를 살피고 육영구를 다독였다.
“어려서 재생도 잘 될 뀨. 뭣허믄 요샌 수술허믄 완전히 나스니께-.”
“그려, 그려요. 아이구우-, 내가 병신같이 우리 아들 죽일 뻔봤네.”
육영구는 끝내 솥뚜껑 같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빌어 처먹을 놈들이 탄약 간수를 어떻게 했기에 이 꼴을 보게 만든단 말인가.
진혁은 귀가 먹먹하지도, 어지럽지도 않았다. 구조사와 육영구의 대화가 또렷이 들렸다.
“제가 대고 있을게요.”
진혁이 육영구의 손에서 거즈를 빼앗아 육성찬의 귀에 댔다. 감정이 북받친 육영구의 손이 너무 떨렸던 탓이다.
낙지를 사러 가지 않았다면 성찬이는 무사했을까, 아니면 나 때문에 성찬이가 살게 된 걸까. 진혁은 심경이 복잡했다.
그때 펑펑 눈물을 쏟던 육영구가 진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음무우흐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육영구가 눈물을 쏟으며 진혁의 등을 강하게 쓸었다. 옷 위로도 코끼리 가죽 같은 굳은살이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진혁은 알 수 있었다. 감사의 표시라는 걸.
“니 덕이 살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는지 그제야 육영구가 입을 열었다.
굉음에 놀라 뒤를 돌아봤을 때, 아들을 끌어안고 바닥에 엎드린 진혁의 모습이 육영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읍내 병원에서 마땅한 처치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앰뷸런스는 범산시 의료원으로 직행했다.
“성찬아, 괜찮을 거야.”
진혁은 구조사가 교대할 때까지 두 손으로 육성찬의 귀를 감쌌다.
다행히 피는 멎은 상태였다.
지난 생의 신문에 이런 기사가 한 토막 올라왔었다.
「박격포탄 폭발로 중학생 사망. 장마철 해안부대 유실 폭발물 추정.」
물론 진혁도 신문 배달을 하며 접했던 기사였다. 그러나 현생이 버거워 누구였는지, 언제였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대화 상대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제 안에 갇혀 사느라 세상일에 관심을 끄고 살았으니. 다만, 요즘 날씨처럼 가을임에도 더워서 신문 배달하는 내내 뛰다 걷다 반복하던 때였다는 기억이 날 뿐이었다.
‘설마 그게 성찬이였을까?’
어찌 모를 수 있느냐 되물을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진혁은 자폐적 학창시절을 보냈다.
육성찬과 함께 앰뷸런스에 실려가며 그 신문기사가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번 생에는 그 기사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 “······그르구 보니께 우리 지넥이랑 영구 아들만 내가 안 받었네. 내가 받으야 잘 산다구 무당 영감탱이가 그래싸서 산파 노릇허구 댕긴 건디.”
아, 육성찬네 아버지 이름이 영구였구나.
아이들이 왕래가 적은 어른의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았다. 부모들이란 대개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는 법이었기에. 동네에서 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노총각 조일헌 정도였다.
할머니 말이 들어맞은 것이라면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하나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된다고 하던가.
앰뷸런스가 속도를 줄이며 구조사가 목청을 키웠다.
“의료원 다 왔어요!”
진혁은 구조사들이 육성찬을 옮기는 동안 침대가 밀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그런 진혁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