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 수호의 대운 (4) >
***
며칠간 드보크로 의심되는 바위를 감시했으나 그림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가 불안해할까, 아빠와 홍기준에게만 조용히 그 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놈들 군부대 불러서 싹 훑어야지!”
손광연이 길길이 날뛰었다. 아내가 보이지 않으니 이때다 싶어 광기를 마음껏 분출하는 듯했다. 아빠야말로 사춘기 아닐까, 진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을 때 홍기준이 만류하고 나섰다.
“음. 증거도 없고, 허위신고로 몰릴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게 좋겠어.”
“제 생각도 그렇긴 한데 불안해서요.”
“그런 놈들은 은밀히 움직이니까 정보기관이 주시하도록 정보를 넘기는 게 좋지. 내가 지인 통해 연락을 취해 보마.”
“네.”
순순히 물러서는 진혁을 보며 홍기준은 크게 안도했다.
은밀히 붙여둔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릴 뻔하지 않았나.
‘그거 드보크 아닌데.’
홍기준은 며칠 전의 행동을 떠올리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
며칠 전.
홀로 산책에 나선 홍기준은 혀를 끌끌 찼다. 때때로 멈춰 서서 손광연의 집이 잘 보이는지 확인하면서였다.
평탄하지 않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대지는 대광야가 제 속살을 가린 듯하고, 숲은 빽빽하게 자리한 나무로 한낮에도 시커멓다.
그럼에도 손광연의 집은 잘 보이는 고지대에 있어서 지켜볼 장소가 많을 듯했다. 땅덩이가 넓다 하나, 평야 지대가 아닌 탓에 논밭 중간중간 고분처럼 솟은 여러 개의 작은 숲이 마을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이래서야 어디서 일하는지 알 수가 있나.’
마을 어귀에 접어드는 교통로부터, 수로 제방길, 뒷산의 굵은 나무 위도 살펴봤지만,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손광연에게도 넌지시 물었으나, 종종 땅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 외에는 마을에 거동수상자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프로들이라 눈에 띄지 않는 거겠지.’
노출되지 않도록 하라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들이 타고 다닐 자동차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육안으로 식별하기 힘든 곳에서 망원경으로 관찰 중일지도 모르겠다.
홍기준은 손광연을 지켜보라고 붙인 사람들을 만나 금일봉도 전달하고 격려도 해줄 생각이었다.
손진혁이 부동산 뚱보를 응징하는 모습을 관찰한 보고서도 그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집이 보이는 곳에 매복을 했을 텐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아, 먼저 약속을 잡아둘 것을.’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그들은 홍기준의 얼굴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홍기준을 지켜보며 이렇게 배회하는 이유도 짐작할 터.
홍기준은 두툼한 노란 편지봉투를 꺼내 높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보란 듯 한 바퀴 돌며 사방에 눈짓을 보냈다.
충분한 의사전달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근처 바위 밑에 봉투를 숨기고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홍기준을 보지 못했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집으로 돌아가 전화하면 그만이니까.
‘양 팀장이 쪽지 읽으면 좋아하겠지.’
친구에게도 슬슬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속이는 마음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고, 경호요원들에게도 할 짓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24시간 눈을 떼지 말라고 이른 터였으니, 아무리 강골 요원이라 할지라도 그 괴로움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웠다.
‘혼자만 알고 있으려니 머리도 아프고.’
가족이 알기를 원치 않는다는 당부,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혁에게 제 엄마의 사정은 얘기하면서도 아빠의 과거를 말하지 못했다.
‘서울 올라가기 전에 말해줘야겠다.’
마당에 도착해 다시 근처를 둘러보았다.
다소 거리를 두고 집을 지을만한 터는 충분해 보였다.
‘프로젝트명은 ‘음지에서 양지로’가 적당하겠네.’
피식 웃으며 수첩에 메모하는 손이 분주했다. 사소한 아이디어도 사업구상으로 연결하는 홍기준이었으니, 떠오른 영감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경호동 4개, 12名, 보안기업 설립 병행, VIP 전담팀 구성.」
메모를 마친 페이지를 찢고는 품에서 고이 접힌 양피지를 꺼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시커멓게 채워진 양피지에, 찢은 종이를 포개 다시 접었다. 중요한 정보는 이렇게 보관해야 마음이 놓이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홍기준을 대단한 경영 천재라 재단했다. 하나 이 양피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어? 소화 좀 시키느라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홍기준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양손에 두 아이 손을 잡고 유세라가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짐짓 태연한 척 홍기준이 되물었다.
“당신도 산책 가려고? 더운데 안에서 쉬는 게-.”
그때였다.
“자기야, 자기야아악-!”
짝-.
손광연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집안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홍기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광연 오빠 운세 적중하는 소리.”
유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홍기준은 끝내 폭죽소리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
다시 무더운 여름 날이 밝았다.
담장이나 울타리 있는 집이 많지 않았다.
있다 해도 사나운 겨울바람과 태풍을 막기 위해서나 존재할 뿐,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 거의 없어 누구나 이웃의 안마당과 마루에 쉽게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밥때 찾아온 우체부에게 자리를 권하며 수저를 새로 내주고 따뜻한 밥을 퍼주는 동네였다. 마루에서 자루를 뒤적이노라면 뭘 하나 싶어 서슴없이 들어오는 이웃들. 그들은 일단 들어오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일손을 거들다 가곤 했다.
하다못해 노루나 살쾡이가 마당에 들어와 놀아도 그런가 보다 하는 동네였으니 사람은 언제나 환영의 대상이었다.
처자식을 읍내에 두고 건넛마을에 살며 소규모 낙농을 하는 아저씨는 너무 외로운 나머지 도깨비와 고스톱을 치다가 의형제를 맺었다며 자랑했다. 하루는 도깨비가 밑천을 탕진해 뿔을 뽑아주고 갔다며 그 뿔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설마하니 도깨비라는 놈이 있겠나 싶지만, 그만큼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고 품는다는 뜻이었다.
서울이었다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 거머리는 무섭지만 사람은 좋아하는 손광연도 시골의 그런 면이 마음에 들어 울타리도, 대문도 두지 않았다. 현대식으로 지었기에 창호문이 아닌 단단한 철제 현관문이어서 이제 대문은 필요 없지만. 아무튼.
“허어-, 날 따땃허다-!”
천길룡이 길을 나섰다.
땡볕을 막기 위해 삿갓을 쓰고, 구불구불 포장된 버스 길을 따라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놈 그림자가 짙었어.’
소년에게서 풍기던 기백에 억눌려 며칠 밤을 지새웠다. 귀신도 느끼는 사람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대개 역술인이란 자들은 편히 앉아 얼굴이나 뜯어보고 사주를 살핀다. 간혹 영적인 능력을 보이는 이들도 있으나 편함을 추구하다 제 능력을 잃곤 했다. 천길룡은 역술인과 궤를 달리 하는 인물이거니와 모든 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능력이 그러했으니.
‘노인네 살아계셨으면 단박에 알아봤을 터인데.’
형 천기륭은 영안靈眼의 소유자였다. 말썽쟁이 잡귀들을 자신의 집 근처에 모아 사람을 해코지 못하게 하거나, 원한에 사로잡혀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노려보며 호통을 치곤 했다. 나아가 신령스러운 존재나 곧 죽을 이를 알아보기도 했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넋의 유언을 듣고 상주에게 전할 정도로 영력이 놀라운 사람이었다.
지금 천길룡의 집 대나무숲에 모여 사는 귀신들도 형이 타일러서 동생 곁에 붙여 둔 녀석들이다. 대부분 선량하고 개구쟁이에다 겁도 많았다. 웃기는 건, 이승이 좋다며 저승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저승 차사도 몇 있다는 사실이다.
‘잡귀에 차사 동무들까지 숨죽일 정도면 놈에게 뭔가 있다는 게여.’
천길룡은 타고난 영안은 없으나 강한 신기와 형이 전수한 지혜가 있다.
며칠 전 손진혁이 찾아왔을 때는 경황도 없었고, 저절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기운을 풍기는 통에 매섭게 살피지 못했다.
‘집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도대체 그 집에 뭐가 있기에 동네의 기운이 바뀌었는지 알고 싶었다.
신령스럽다는 영귀靈鬼나, 대신大神이라 불리는 힘이 세고 무서운 귀신이라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천제대신쯤 된다면 그의 신력으로도 볼 수 없고 기운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
‘뭐······, 대신께서 계시면 X 빠지게 튀어야지.’
그게 빠져도 딱히 아쉬울 거 없는 처지지만 뭐,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는 뜻이다. 얼마 전 찾아왔던 아이에게서 귀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리지 않던가.
먼 거리를 휙휙 걸어 금세 진혁의 집에 닿았다. 명아주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모습이 흡사 축지법을 쓰는 도인 같았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사람을 좋아하는 손광연이 반색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안 마을 어르신 아니던가. 손광연도 집 지을 때나 뵈었으니 벌써 15년 만인가 생각했다.
그때 그 사람 아닌데.
진실을 알지 못하는 손광연은 숨죽여 감탄했다.
듣기로 구순을 넘기셨다 했는데 어쩜 이리도 정정하실까. 휘적휘적 걷는 폼이 가볍지 않고 시원시원한 데가 있어 고대의 무사라 해도 믿을 것 같다. 키도 손광연보다 커서 산신령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려, 그려.”
천길룡은 손광연의 인사에 기꺼워하며 마당에 서서 집을 둘러보았다.
마당을 한 바퀴 빙 둘러 걷고, 소독하듯 곰방대 연기를 뿜으며 집을 한 바퀴 돌았다. 명아주 지팡이로 벽을 딱딱- 두드리기도 했다.
손광연은 왜 왔는지, 뭐하는 중인지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천길룡의 뒤를 따랐다.
지팡이가 얌전한 걸 보니 대신 같은 건 없는 모양인데. 천길룡이 중얼거렸다.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손광연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터가 아주 좋아졌네. 바람도 잘 들고, 볕도 잘 들고, 달빛도 잘 들겄어.”
화답하듯 손광연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해주신 말씀이 있어서, 전에 살던 집도 방향 틀어서 새로 지었습니다.”
“그려, 그려. 거기서 메주도 말리고 등도 지지면 좋겄구먼.”
내가 해준 말은 아니지만 잘했네. 입술을 달싹이며 천길룡이 손광연이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
손광연이 팔을 뻗은 방향에 진혁이 태어나 살던 옛집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 지었으나 외형은 그대로였다.
천길룡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볼일은 다 봤다는 듯 그대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집에는 이상이 없으니 소년을 다시 살펴야 하는데 주인공이 보이지 않으니 아쉬운 입맛을 다시면서.
그런 천길룡을 한유영이 급히 불렀다.
“어르신, 진지 잡숫고 가세요.”
“진지는 무슨-.”
사양하려던 천길룡이 한유영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자신을 보는 그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 울음마저 삼키는듯한 얼굴이었다. 멀리서 시집온 시골 아낙네들이 자신을 대하는 감정, 그리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 해야 할 것이다.
천길룡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정정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낙들은 천길룡을 보며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를 떠올리는지 뭘 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귀한 인삼이나 약재라도 생기면 몰래 가져다주고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나 살피기도 했다.
그러니 한유영의 감정을 천길룡이 읽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형 천기륭 만큼은 아니어도 그 역시 선인 중의 선인이었으므로.
‘제 아비가 생각난 모양이구먼.’
천길룡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저 부인은 필시 늦둥이 중의 늦둥이 상이라, 아비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을 텐데 그리움이 얼마나 클꼬. 그 부친이 살아있다면 나와 연배도 비슷할 터. 밥 한번 먹는 게 뭐 어려울까.
천길룡이 손을 조심스럽게 모으고 읍소하듯 한유영을 보았다.
“여기 마당에서 먹어도 되겠소?”
“네. 금방 차려드릴게요.”
부리나케 행주로 평상을 닦은 한유영이 신난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향했다. 붉어진 눈을 하고 연신 코를 움찔거리는데, 입술에는 환희를 걸었다.
처음 보는 아내의 모습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손광연은 묵묵히 상을 내왔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금세 상이 차려졌다.
천길룡은 숟가락을 들기 전 차려진 음식을 살폈다.
‘야무지구먼. 얼마만의 만찬인고.’
영구 마누라가 엊그제 약소하게 전복찜을 해줬으니 이틀 만인가.
젓가락을 들기 전 천길룡이 상을 굽어보았다. 세상을 아우르는 신선의 풍모였다. 두부가 듬뿍 들어간 북엇국과 샛노란 버섯이 들어간 된장찌개, 생선구이와 정갈한 나물무침에 마음이 흡족했다.
생전 처음 보는 반찬도 곧 따라 나왔다.
“하다부디 이거또 드데야.”
앞니가 몽창 빠진 여자아이가, 들고 온 접시를 조심조심 상에 올렸다.
달걀옷을 입혀 부친 반찬인데, 천길룡으로서는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얼핏 육전과 비슷해 보였다.
“오호호, 이게 뭔고?”
“햄. 이거 투덩이가 제일 저아하는 고에야.”
꼬마가 좋아하는 반찬을 직접 내어주다니, 이보다 더한 귀빈 대접은 없으리라. 천길룡이 홍수정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달걀 입혀 부친 햄을 덥석 베어 물었다.
‘어이크, 짜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아이를 위해 천길룡은 최선을 다해 씹었다. 이 녀석은 이빨도 없어서 제대로 씹지 못하고 제 반찬을 양보했을 거 아닌가. 어쨌거나 그래도 짰다. 밥을 듬뿍 퍼 입에 담으니 살만했다. 목이 막혀 시원한 보리차도 한 컵 비웠다.
“어허허-, 그것 참 밥도둑이구나!”
“그티, 그티. 마디뚀? 하나 더 드세야-.”
하나 더?
천길룡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아 툭툭- 가슴을 치는데 이빨 없는 아이보다 작은 아기가 다가왔다.
“하부지, 하나 더 먹지요?”
강적들이다.
‘끄응-, 괜히 왔나?’
귀신 있는지 살피러 왔다가 귀신 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