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 수호의 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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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땡- 집을 나서려는데- 화려한 햇살이 나를 감싸네-.”
상념이 정돈된 덕분일까, 진혁은 평소 부르지 않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장군이 내려온다- 장군이가 내려온다아-.”
목적지에 다다르도록 끝없이 불렀는데, 그중에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노래도 많았다.
이상한 노래를 옹알거리는 진혁을 장군이가 따랐다.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이 되는 것도 같고.’
두려움 없는 가벼운 걸음이었으나, 낯선 존재와 대면을 앞두고 으레 따를만한 불안감이 보조를 맞췄다.
들어가도 될까, 잠시 머뭇거렸다.
집에서 이해원네 구멍가게를 지나쳐 육성찬네 집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 한때 공동묘지가 있던 언덕배기에 있는 작은 기와집이다. 얼핏, 명문가의 사당을 닮았다.
대문 양쪽으로 기다란 대나무에 흰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 깃발이 매어져 있고 대문에도 뭐라고 휘갈긴 한지가 붙어있었다.
‘뭐, 알아보기 힘든 필체지만 좋은 말이겠지.’
이 집에 사는 천 씨 할아버지는 지금으로 치자면 병풍이나 부채를 그리는 무형문화재 같은 사람인데, 작품 가격이 비싸고 찾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텃밭을 일구며 산다고 들었다.
물론, 진혁이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천 씨 할아버지는 박수(남자 무당)로 통한다. 그런데 굿을 하거나, 점괘를 보는 무당과 다르다고 했다. 마을의 대소사가 있을 때 덕담을 해주고 술과 밥을 대접받는, 원로 할아버지라고. 그래도 제법 신통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최미경의 할머니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고.
신내림 받은 일도 없고, 귀신을 섬기지도 않으나, 달리 표현할 말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그저 무당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었다.
작명도 무료로 해주어 천 씨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드물었다. 최태양도 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지.
진혁이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귀신을 볼만큼 신통하다고 했어.’
끼이이-.
머뭇거리는 와중에 안에서 대문이 열렸다.
진혁은 헛숨을 들이켰다. 인기척을 내지도 않았는데 마중을 나온 탓이었다.
누리끼리한 삼베옷을 입고 탕건을 쓴 할아버지였는데, 키가 장승처럼 크고 눈빛이 형형했다. 머리와 수염이 회색으로 물든 모습이 차라리 신선이었다.
‘간달프보다 간달프처럼 생기셨네.’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데 할아버지가 휙 돌아섰다.
“왔으면 들어오너라. 개는 밖에 두고.”
물 흐르듯 부드러운 턴 동작과 간결한 말씨가 매우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였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내심 놀랐지만, 진혁은 할아버지를 따라 대문턱 너머로 발을 들였다.
장군이는 등 돌리고 앉아 딴청을 피웠다. 말을 알아들었다기보다 무관심한 듯한 뒤통수였다. 고지대에 올라 영토를 굽어보는 여왕의 자태였다. 꼬리는 왜 말아 숨겼는지 모르겠지만.
병풍을 등지고 앉은 갯마을 간달프가 진혁에게 자리를 권했다.
진혁이 마주 앉자 뜻밖의 말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내 형을 죽게 만든 놈이 왔구나.”
“예?”
다짜고짜 이게 무슨 소리람.
진혁이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할아버지가 진혁 앞으로 찻잔을 밀었다.
“너희 부모가 이 마을에 자리 잡을 때 내 형님께서 만류하셨다.”
찻잔을 채우며 천길룡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혁은 당장 천길룡도 처음 보는데 다짜고짜 형 이야기라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잠자코 들었다.
천길룡의 형 천기륭은 동생보다 유명한 사람이었다.
천기륭은 손광연과 한유영이 흘러들어왔을 때, 집터의 흉하기가 이를 데 없이 지독하니 다른 곳에 지으라고 권했다.
강제력 없는 말이었고 그저 나이 든 늙은이였으니 조심스레 권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젊은 사람들이라 미신으로 치부했던 것일까. 손광연은 집터를 바꾸지 않았다.
사실, 터를 옮기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었다.
손광연과 한유영은 가진 것이 없어 최장환이 내어준 땅에 흙집을 지은 것뿐이었다. 없는 형편에 그런 사정 고려 없이 제 할 말이나 하는 점쟁이의 말을 따를 형편도 안 되었을 테고.
아무튼 천기륭은 경고했다.
- ‘여기 집 지으면 사람이 죽어 나간다.’
집을 다 지은 후에도 찾아가 경고했다.
- “부수고 방향이라도 틀어. 10년 안에 초상 치르게 될 게야.”
당시에는 한유영이 만삭이었기에 손광연은 그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천길룡의 설명을 듣던 진혁은 모골이 송연했다.
이전 생에서는 천기륭의 말대로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 때문에 천기륭이 죽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내 형님께서는 젊은것들 살리자고 목숨 걸어 천기를 누설하셨는데, 너희 부모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지. 10년 안에 초상도 나지 않았고.”
천길룡은 눈을 지그시 감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대가를 형님이 당신 목숨으로 치르신 게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해도 부모님을 살렸을 진혁이지만, 천기륭의 일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자신이 부모님을 살린 일로 천기륭이 죽었다는 뜻이었기에.
“미안해할 거 없다. 어차피 늙을 만큼 늙었는데, 젊은 사람들 살리고 죽었으면 아주 잘 죽은 게지.”
진혁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천길룡은 그저 예사로운 표정이었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네놈이 바다에 나가 달덩이 만든 날 바로 돌아가셨지.”
천길룡의 눈매가 가늘게 찢어졌다.
천길룡에 의하면, 천기륭은 갯벌을 분주히 노니는 손전등 불빛을 안타깝게 보다가, 진혁이 돌리는 불깡통을 보고는 껄껄 웃었다고 한다.
- “됐구나! 됐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 채 진혁이 물었다.
“그때 동네에 초상집이 없었는데요?”
“선령은 그저 하늘로 올라가면 그만. 장사를 지내는 법은 없다. 그 영감, 조용히 바다로 들어갔어.”
천기륭은 그렇게 천기를 누설한 대가를 치렀다.
“어르신 제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요.”
“끌-. 머리 좋은 놈이 왜 이해를 못해?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숫자만 계산하는 버릇이 배서 그런 게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는 게야.”
모든 일을 옳고 그름이나 이치로 따질 수는 없는 게다. 천길룡이 혀를 끌끌 찼다.
천길룡이 저리 말하고 있지만 진혁은 뭔가 말끔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살리는 일에 그 할아버지의 도움을 얻은 바가 없는데 왜 죗값을 천기륭이 치른단 말인가.
“그래도 설명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10년. 그 안에 그 집 사람 목숨이 하늘로 갔어야 하는데 아무도 안 갔어. 네 덕에 살았겠지. 살을 맞아야 할 사람이 죽지 않으면 저승사자는 다른 혼령을 찾아. 아무나 데려간단 말여. 맨 처음으로 천기를 누설한 괘씸죄를 물어 선령을 찾아. 그런데 우리 형님은 마을 것들이 이르듯 그냥 무당이 아니여. 저승사자도 지 좆대로 못 데려가. 그리 되면 저승사자는 어찌할까? 마을에 해코지를 하고 다녀요. 쳐들어오긴 무서우니 애먼 놈 자빠뜨리고, 물에 빠뜨리고, 목을 조르는 게여. 엉뚱한 놈 데려가기 전에 나오라고 시위를 하는 셈이지.”
그리 말을 쏟아내면서도 천길룡은 호흡이 차분했다.
내심 경탄하는 와중에 진혁이 물었다.
“그럼 그 어르신께서는-.”
“그래. 어린 것들, 동네 사람들 살리겠다고 제 발로 가신 거란 말이다. 저승사자한테 잡혀간 것도 아니요,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당신 발로 직접.”
급살을 맞거나 행방불명이 되는 무당들이 대개 그렇게 사라진다고 했다. 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런 자들이 진짜 무당이라는 설명도 천길룡은 덧붙였다.
믿기 어려웠으나, 초현실적인 일을 많이 겪은 진혁으로서는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서운했다.
‘어차피 천기누설한 거 살려줄 수도 있었던 거 아닌가?’
그랬다면 전생의 자신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천길룡이 그 생각을 막았다.
“코앞에 닥쳐서야 그날이 됐음을 아는 게여. 개입해서도 안 되지만 개입할 수도 없는 연유지. 하늘의 뜻을 속속들이 아는 건 하늘뿐이다.”
속을 들여다보는 자의 말이었다.
진혁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제가 어떻게든 사죄의 뜻으로-.”
“사죄는 무슨. 가을에 망댕이나 몇 마리 가져와 인마. 동네에서 제일 잘 잡는다며?”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타는지 천길룡은 찻잔을 단번에 비웠다.
“끄으어-! 아잇, 씨발 뜨거.”
천길룡이 하얀 수염에 묻은 차를 훔치며 뱉는 말이 상스러웠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경박스러움이었으나 부조화 속에서 멋이 느껴졌다. 힐끗 진혁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조차 대인의 여유로 보였다.
진혁의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무서운 영감님일 거라 생각했는데 동네 아저씨 같은 말투여서, 자신을 편하게 해주고자 하는 할아버지라서 고마웠다.
오감과 육감을 넘는 감각도 진혁의 판단을 거들었다.
‘좋은 분이시다.’
그나저나 말 할 틈을 주지 않으신다.
찾아온 목적은 따로 있는데.
***
유세라 엄마가 아침부터 뜨개질에 심취한 사이, 홍수정은 신문을 폈다.
십자 낱말퍼즐인데, 두뇌 발달에 좋다며 홍기준 아빠가 적극 권장했다.
가로열쇠에 제법 쉬운 문제가 나왔다.
홍수정은 친절한 언니다. 거실 바닥에 언니와 머리를 맞대고 엎드린 유진이를 위해 지문을 또박또박 읽었다.
“세 글자. 예두의 어머니.”
“예수? 어머니?”
물론, 발음은 유진이가 더 정확했다.
홍수정은 언니의 자존심으로 제대로 발음하며 답을 채워 넣었다.
“마. 리. 아.”
스스로 흡족해 씨익 웃으니 치아가 있어야 할 곳에 새빨간 잇몸만 보였다.
홍수정은 ‘아’로 시작하는 세로 퍼즐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한글은 맞는데······.’
눈으로 읽을 수는 있으나 머리로 이해할 수는 없는 열쇠였으니. 여느 아홉 살짜리가 풀기에는 고난도라 할 문제였다.
배 깔고 엎드려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 고민했다.
홍기준 아빠는 동네 산책한다며 나갔고, 유세라 엄마는 광범위한 지식을 보유했다 할 수 있으나 그 깊이가 없다. 경제관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을 때도 이 닦고 잠이나 자라며 정색을 했다. 닦을 이도 없는데.
지금도 보라지. 딸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크흠- 하며 뜨개질하는 척만 하잖아. 저게 목도리인지 걸레인지 모르겠네.
‘오빠가 있으면 바로 알려줬을 텐데.’
징역 오빠는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장군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따라가겠다며 유진이와 매달렸지만 무서운 곳에 간다며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얼마나 무서운 장소에 가는 건지는 몰라도, 오지 못하게 하는 그 모습이 더 무서웠다. 서러웠다. 홍수정은 마당 구석에서 혼자 삐죽삐죽 울다가 쓰윽- 눈물을 닦고 들어왔다. 두고 보자, 손징역.
유진이가 한숨을 쉬었다.
함께 뭔가 하다가도 당연하다는 듯 눈빛이 풀리는 홍수정을 보노라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한숨이 나온다.
역시 이럴 땐 아빠에게 묻는 게 좋다. 손유진은 물어볼 사람이 많아서 행복하다.
“아빠, 이거 무에요?”
“응? 뭐?”
발톱을 깎던 손광연이 고개를 돌려 딸을 보았다.
오작교 모텔 사건으로 아내에게 등짝을 맞고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꿈틀거린 손광연이다. 이번에는 결코 무의식에서 답을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승모근에 힘을 주었다.
“아더띠, 데가 일거드릴게요.”
“그래. 수정이가 읽어볼래?”
“여러 사람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으아-.”
홍수정은 중간에 턱을 한 번 풀었다.
“울부딪는. 참상을. 비유적으로. 이드는. 말. ‘아’로 시닥하는 네 글따.”
최선을 다한 홍수정이었기에 손광연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천재란, 늘 그렇듯 사고하기 전에 두뇌가 알아서 반응하는 모양이다.
천재의 입이 부지불식 간에 열렸다.
“아사리판.”
인간지능을 아득히 초월하는 손광연의 응답 속도와 해박한 지식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유세라가 헛숨을 들이쉬었다. 번뜩이는 한유영의 안광을 목도한 탓이었다. 한유영은 아이들이 있어 출수를 자제하는 눈치였다.
그제였나, 안방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세라도 홍기준의 등을 때릴 때 종종 듣던 그 소리였다.
요상한 책을 펴고 올해는 재물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대운이라고 좋아하던 광연 오빠인데, 들불이 아니라 등판에 불나는 운세인가 보다.
“크흠! 이 사람은 어디로 산책을 가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수정아, 유진아 봉숭아물 들일까?”
한유영의 눈치를 살핀 유세라가 슬그머니 일어나 두 꼬맹이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