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64화 (64/338)

# 64 < 기꺼운 사명 (3) >

***

홍기준이 휴가를 보내는 방식이 바뀐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예전에는 유명 해수욕장의 호텔이나 명산 등지의 콘도를 찾아 휴가를 보냈다. 어린 딸이 캠핑을 해보고 싶다 하여 텐트를 사서 주말에 야영을 하기도 했다. 잠버릇 고약한 딸이 이리저리 뒹굴다 우연찮게 나무뿌리를 베고 자다 뒤통수에 혹이 생긴 후로는 그마저도 하지 않지만.

가늘게 뜬 눈으로 갯벌을 훑던 손광연이 물었다.

“올 때마다 운전하기 힘들어서 어쩌냐?”

“그런 소리 말아. 나는 운전만 하면 되잖아. 텐트 안 쳐도 되고, 사방이 뻥 뚫려서 답답한 호텔보다 훨씬 낫다. 음식은 어떻고.”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음식을 실컷 먹고, 친구와 마음 편히 술을 마신다. 연고 없는 곳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계획을 세우고 가족을 챙기느라 절대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놀고먹기만 하는 건 아니다.

헥헥-. 홍기준이 장군이처럼 혀를 길게 빼고 연신 거친 숨소리를 냈다.

손광연이 친구를 향해 딱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힘들면 그늘에서 쉬라니까.”

“아니야. 이럴 때 운동 삼아 하는 거지 뭐. 헥헥-.”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노란 물 장화를 신고 갯벌을 한 걸음씩 딛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 빠진 갯벌은 햇볕도, 바람도 뜨거웠다. 물기 가득 머금은 갯벌이 햇빛을 반사하니 모자를 써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익어갔고, 뜨거운 바람이 전신에 열감을 부추겼다.

“같이 잡으면 나야 재밌고 좋지만. 너 그러다 몸살 난다.”

“파스 붙이지 뭐. 뻘낙지 먹으면 없던 힘도 솟더라고.”

친구의 너스레에 손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갯벌 바닥을 살피면서였다.

어쩌면 기력 없는 소에게 산낙지를 먹인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거 아닐까. 영양 관련 지식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할 뿐,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 낙지를 먹고 벌떡 일어서는 소를 보며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나도 여름에 너무 힘들 때 산낙지 한 마리 먹으면 힘이 솟더라.”

손광연이 여름 낙지잡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일에 치여 피로를 달고 사는 친구에게 몸보신을 시킬 수도 있고, 아이들도 좋아한다. 특히 어린 딸 손유진이 낙지라면 만세를 부른다.

소처럼 무식하게 힘이 좋은 친구를 보며 홍기준이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이 친구도 어쩌면 소 같아서 낙지를 먹으면 힘이 나는 거 아닐까.

“민간요법이니 뭐니 해도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모양이야. 아, 여기 있다.”

손광연이 가리킨 곳에 보일 듯 말듯한 구멍이 뽕- 뚫려 있었다. 최장환에게 배우기로, 갯벌 속으로 숨어든 낙지가 숨을 쉬는 구멍이라고 했다.

손광연이 능숙한 자세로 삽질을 시작했다.

넓게 파도 금세 뻘이 무너져 내리거나 물이 차오르니 삽질 속도가 생명이다. 구덩이를 판다기보다 깊숙이 헤집는다는 느낌으로 천공을 하는 거다. 겨울 논 미꾸라지와 달리, 낙지는 구멍을 깊이 파고 들어간다.

손광연의 삽질을 구경하며 홍기준이 혀를 내둘렀다.

“흥겹다, 흥겨워.”

힘들이지 않고 리듬을 타듯, 발목에서 시작된 힘이 허리를 타고 어깨를 거쳐 마침내 손목으로 가는 동작은 메커니즘을 갖춘 기계처럼 보였다.

무조건 급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푸우-푸우-. 운동선수처럼 호흡도 조절한다. 그렇게 해도 삽질은 쉼 없이 이어졌다. 신출내기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역학이 낙지잡이꾼의 몸에 배어 있었다.

홍기준도 삽을 들고 나왔으나 친구가 하는 것을 몇 번 따라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허리는 끊어질 듯했고 숨도 컥컥 막힌 탓이었다. 파란 하늘이 금세 노랗게 변하고 갯벌에 강처럼 흐르는 물길이 삼도천으로 보였다. 그 너머에서 홍기준이 중학생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짓도 하셨다.

손광연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 넘어질 뻔할 정도로 비틀거렸으니, 홍기준은 군대 삽질이 갯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깨달음만 얻었다.

“됐다!”

어른 무릎 깊이까지 파 들어간 손광연이 구멍에 팔을 집어넣었다. 이내 밖으로 나온 그의 손에는 어린아이 주먹보다 큰 낙지 대가리가 잡혀 있었다. 몇 가닥은 늘어뜨리고 몇 가닥은 살길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낙지다리가 건네는 생명력에, 홍기준은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충분히 잡은 거 같네?”

손광연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홍기준이 멘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면서였다.

서른 마리가량, 제법 굵은 씨알의 낙지가 하얀색 스티로폼 박스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물을 가득 채워 얼린 페트병과 도토리 나뭇잎, 낙지가 전부인 아이스박스지만 귀한 여름나기 자산이었다.

“이만 가자.”

“벌써? 난 괜찮은데?”

말과 달리 비 오듯 땀을 흘리는 홍기준이었으니, 손광연이 하릴없이 피식 웃었다.

샌님 주제에 젊을 때부터 허세 하나는 알아주는 친구다. 지금도 벌겋게 익은 얼굴 절반이 뻘에 덮인 채 헐떡이지 않나. 짱뚱어처럼 얼굴로 뻘을 판 것도 아닌데 혼자만 꼴이 아름답다.

“어디 팔 것도 아닌데 먹을 만큼 잡았으니 가야지. 여기서 쓰러지면 구급차도 못 타. 구급대원들도 갯벌 들어오다 쓰러질 걸? 갯벌도 해본 사람이나 다니는 거야.”

해루질, 그리고 아들과의 낚시. 바다를 찾는 즐거움을 알게 된 후 조일헌과 최장환에게 뻘낙지잡이 과외를 받은 손광연이다. 타고난 근력과 체력에, 학습능력을 뒷받침하는 지능이 더해져 훌륭한 낙지잡이꾼이 되었다.

홍기준은 순순히 친구 뒤를 따랐다.

이 염욕 같은 한여름의 갯벌을 탈출한다니, 내심 해방감을 느꼈다.

“평소엔 혼자 다니는 건가?”

“안 다니지. 유진이가 낙지 먹고 싶다고 하면 사주면 되고. 가끔 진혁이랑 열댓 마리 잡으면 철수하고 그래.”

손광연의 말에 홍기준은 없던 힘이 솟는 기분이었다.

누구 때문에 친구가 이 고생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적당히 잡는 마음도 짐작 가능한 바였다.

낙지 씨가 마르지 않는다지만 이웃이 잡을 몫을 남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손광연이 사람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갯벌을 지키는 건 누가 대신 해주지 않아. 어족 자원 보호도 갯벌에서 뭔가를 얻는 사람의 책임이지.”

손광연은 작은 씨알의 낙지를 몇 번이나 방생했다. 뙤약볕에 고생스럽게 구멍을 파고도 말이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챙길 줄 아는 마음씨였다.

‘낙지 보기를 땅 보듯 했으면 낙지 씨가 말랐겠지.’

그리 생각하니 힘든 와중에도 홍기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멀리 갯벌 여기저기에서 마을 청년들이 손광연에게 인사했다.

일부러 소리 내어 불러도 음성이 닿지 않을 거리. 그런데도 너나 할 것 없이 삽을 들어 흔들고, 모자를 벗어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홍기준이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짜식,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 시골 인심이지, 어딜 가든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도 친구가 사는 모습은 텃세는 남 일이라는 듯 정겹다.

농사꾼으로서 처자식을 책임지고, 마을 일원으로서도 존경을 받으며.

대지주랍시고 소작료로 횡포를 부리지도 않고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는 소작료를 면해준다고 들었다.

-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지. 내가 조금만 양보해도 그 사람들은 몫을 제대로 챙길 수 있으니까.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무슨 재미냐?”

홍기준이 목에 건 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땀이 눈물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탓이었다.

아이스박스의 얼음물을 꺼내 목을 축이고 머리에도 부었다.

“후우- 살겠다.”

그늘 하나 없는 갯벌에서 고스란히 받아내는 뙤약볕은 ‘죽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정수리에 들이붓는 얼음물 한 컵이면 지옥에서 천당으로 이동하는 차비로 충분했다.

다리 근육을 재촉해 묵묵히 친구 뒤를 따랐다. 갯벌을 막은 제방과 바닷가 백사장 등지를 두리번거리며.

그러다 생각난 것이 있어 친구를 보았다.

앞서 걷는 손광연의 등에 대고 외치듯 목청을 키웠다.

“추석 때 비행기 안 탈래?”

***

푸웅-덩-!

홍수정은 신난다며 첨벙거리다가 개울에 자빠졌다.

물고기를 몰아야 할 녀석이 고기를 모조리 쫓아버린 셈이다.

“오빠아-!”

홍수정의 버둥거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애타고 절박한 심정으로 외쳤으나 이미 안전한 상태였으니까.

성큼성큼 다가온 진혁이 꼬맹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오빠를 외치기도 전의 일이었다. 깊지 않은 개울이라도 당황한 나머지 물이라도 먹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홍수정의 안전은 진혁의 책임이다.

“에구, 이 똥강아지야. 조심해야지.”

느허허-. 귀여운 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혁은 홍수정을 개울가에 옮기고 떠내려가는 장화를 부랴부랴 구조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서울 꼬맹이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든든하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은지 서울 꼬맹이가 개울가에 앉아 종알거렸다.

“오빠, 약똑 알지?”

“알지······.”

꼬맹이라고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 1년밖에 안 지나서일까, 아니면 어릴 때라서 기억력이 좋은 걸까.

아무튼 집요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걸핏하면 라면 먹자고 하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까짓거 스무 살 넘어도 기억하면 하지 뭐.’

밀짚모자를 벗은 진혁이 까까머리를 벅벅 긁었다.

생판 남과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홍수정을 보았다.

‘허어-. 얘, 언제 크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빠와 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체격 차이였다. 실제로 홍기준보다 진혁의 덩치가 크니 얼굴만 가리면 정말 부녀관계로 볼지도 모르겠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커플 행세를 했다간 수갑 차기 딱 좋은 그림이다.

진혁은 용기를 냈다.

“수정아, 오빠는 키 크고 그- 한 여자가 좋아.”

“그, 뭐?”

“그-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하는 사람이 좋다고.”

취향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설마 이런 것도 범죄가 되려나? 진혁은 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 일인지 은폐하듯 풀숲에 앉아 이쪽을 보는 장군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놈은 왜 숨어 있는 거야? 혼자 숨바꼭질하나?’

착각일까, 감시나 사주경계보다는 훔쳐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불도그처럼 생긴 놈이 이쪽을 빤히 보고 있으니 괜스레 언짢았다. 불량 청소년이 시비 거는 느낌이랄까.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홍수정이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우디 엄마마큼 크면 되까?”

“뭐, 그 정도면-.”

전생처럼 편식하다 꼬꼬마 되지 말라는 뜻이었지 딱히 다른 의도는 없었다. 잘 먹고 운동하라는 말만 했잖아. 이상하게 죄짓는 기분이 들어 진혁은 한 번 더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말 꺼낸 김에 확실히 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수정아, 꼼장어는 흙 맛이 나는 거야.”

“흙? 그엄 맛 이탕하게따.”

“응. 그러니까 그런 건 먹지 말자.”

“응!”

서울 도장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 진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꼼장어로부터 탈출 성공이다.

‘미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기분은 이런 거로구나!’

그래도 이 꼬맹이가 그 미녀가 될 거라 생각하니 나쁜 투자는 아니라는 앙큼한 생각도 들었다.

홍수정은 착한 아이처럼 똘망똘망한 눈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뭔가 더 바라는 게 있는 눈치였다.

“오빠, 또, 또?”

“또?”

“응.”

뭘 또 얘기해야 하나······. 오늘따라 진혁은 자꾸 머리를 긁게 된다. 머리도 감았는데. 사적인 대화에서는 청취 전문이지 말하기에는 능숙치 못했다.

어디 보자-, 서로 윈윈하는 게 좋겠지. 잠시 팔짱을 낀 채 고민하던 진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운동하기 전에는 준비운동을 꼭 하고, 운동 후에도 회복훈련이라는 걸 해줘야 해-.”

“응!”

“잠자기 전에는 무릎과 다리를 주물러주는 게 좋아.”

“응!”

“우유랑 멸치 많이 먹고, 라면은 자주 먹으면 안 좋아.”

“라면 마딘는데······.”

그 후로도 뭔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진혁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쁜 말을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장군이 시선도 신경 쓰였다.

“아침저녁으로 꼭 양치하고, 무릎이 너무 아프면 꼭 병원 가고, 혹시라도 뼈가 부러지면 절대 무리하면 안 돼······.”

분명 방학인데, 홍수정은 교실에 앉은 듯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 오빠가 말이 많아져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성당 신부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잖아.

기대에 찬 눈으로 두 인간을 훔쳐보던 장군이도 풀에 턱을 괴었다.

장군이는 스르르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멍’

- 내 탓이다.

마을의 비루하고 비리비리한 수컷들이 꽁무니 냄새라도 맡으려 들면, 장군이는 짖고, 물고 으르렁거리는 등 난리를 피웠다.

이른바 개지랄이다.

아이도 그것만 배운 모양이다.

그래서 쟤들도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거야.

주댕이 핥는 시범이라도 보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책임이다. 내가 아이를 잘못 가르쳤다.

길쭉하고 미끌미끌한 놈에게 물려서 그런지 눈이 감긴다.

건넛마을 도꾸가 까치살멍멍이라는 놈에게 코를 물렸을 때였나?

집주인 이왈왈이라는 아저씨가 독 퍼지지 말라고 끈으로 코를 묶어서 숨 막혀 죽을 뻔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장군이는 그 꼴은 면했다.

따갑기만 하다. 벌에 쏘였을 때와 비슷하다. 정확히는 두 배로 따갑다. 벌은 침이 하나지만 뱀은 두 개니까. 장군이는 똑똑한 개라서 이런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앞이 점점 어두워지냐.

죽는 건가.

‘멍.’

- 행복한 삶이었다······.

질풍의 감성과 노도의 허세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고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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