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 기꺼운 사명 (2) >
유혈목이는 주로 가을에 잡아먹은 두꺼비로부터 독을 흡수해 체내에 비축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 말은, 여름엔 비교적 독성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몸집이 작은 아이라도 위험한 지경에 처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데.
‘속 편한 소리!’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나. 꽃을 꺾다가 커다란 뱀에 물린 아이가 침착할 수 있을까. 보호자 입장도 그렇다. 뱀에 물린 사람이 끔찍하게 아끼는 어린 여동생이다. 아마 뱀에 물렸을 유진이보다 진혁의 심장박동이 더 빠를 터였다.
진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혼자 달려갈 순 없어서 홍수정을 조심스럽게 물가로 당겼다.
이빨 빠진 도장구가 제대로 선 것을 확인 후 유진이에게 달려갔다.
유진이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주저앉아 토끼 눈을 떴을 뿐,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 않았다. 늘 웃기만 하던 동생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진아! 그대로 있어!”
으르르-끼잉!
장군이의 사정이 더 급해 보였다.
뱀 꼬리를 물고 흔들다가 콧잔등을 물렸다. 뱀 이빨이 박혔음에도 장군이는 꼬리를 아작아작 씹으며 거칠게 흔들었다. 가히 사자다운 맹렬함이었다.
진혁은 득달같이 달려가 장군이 입에서 뱀 꼬리를 빼앗아 굳세게 쥐었다. 뱀의 감촉은 징그러웠고 무늬는 섬뜩했다. 그렇다고 겁먹을 진혁이 아니었다.
뱀이 진혁을 향해 대가리를 쳐들었다.
그러나 진혁의 팔이 더 강했고, 뱀보다 빨랐다.
‘율메기야, 미안하지만 네가 죽어야겠다.’
진혁은 풀스윙으로 뱀을 도리깨처럼 휘둘렀다.
딱-! 소리를 내며 유혈목이 정수리가 단단한 땅바닥에 충돌했다. 뱀의 급소. 운이 나쁘면 살짝만 스쳐도 뱀이 즉사하는 곳이 정수리다. 그런데 진혁의 괴력에 머리가 터져버렸으니. 유혈목이, 진혁의 고향에서는 율메기라 불리는 뱀은 탄력 잃은 고무처럼 축 늘어지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유진아!”
코를 땅에 비비며 괴로워하는 장군이를 두고 동생에게 달려갔다. 홍수정을 무사히 내려두고 동생에게 달려가기까지, 몇 초 지나지 않았음에도 진혁에게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동생이 있는 곳에 다다르기 무섭게 발목을 살폈다.
“어디 좀 보자.”
이제 상처 부위 위쪽을 묶고 피를 빨아내면······.
유진이의 발목을 살핀 진혁의 눈동자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상처가 없어?’
발목에 핏방울이 묻었고, 뱀독으로 의심되는 투명한 액체도 있는데.
뱀에 물린 상흔이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유진이의 표정을 살폈다.
눈물을 흘렸지만 또렷한 눈으로 오빠를 보고 있었다.
“유진아 괜찮아?”
“녜, 에헤헤-.”
이 녀석이 오빠를 보며 웃기까지 한다. 꿈을 꾸나 싶어 몇 번을 다시 살펴도 유진이는 멀쩡했다.
진혁은 장군이에게 다가갔다. 통증에 익숙해졌는지 장군이도 가만히 앉아있었다. 쉭쉭- 숨소리를 내면서, 뱀 사체를 코로 툭툭 건드리며.
벌에 쏘인 것처럼 콧잔등이 부었지만 숨 쉬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하는 건가?’
뱀의 사체에서 독니를 하나 뽑아 냄새를 맡아보았다. 군시절 독사를 잡아 독을 뽑았었는데, 독 자체는 냄새가 없다고들 하지만 집중하면 아주 약한 비린내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
이내 진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게 독 냄새인지 뱀 비린내인지 알 수가 있나.’
역시 모든 정보를 현장에 반영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발달된 감각으로도 확신을 얻을 수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뱀 이빨을 던져버렸다.
당혹감이 지나쳐 머리가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유진이 안 물렸어?”
“안 물렸지요? 에헤헤-.”
동생의 환한 미소를 보며 진혁은 그제야 안도했다.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는 녀석이고 육안으로도 확인했으니.
‘비명은 왜 지르고 왜 운 거지?’
동생에게 물어보려다 말았다. 뱀을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법인데 소리 지른 게 뭐 대수랴. 유진이를 꼭 안은 채 눈물을 글썽이는 홍수정이 눈에 밟히기도 했다. 더 캐묻는다면 저 꼬맹이는 죄책감을 느끼리라.
진혁은 등 뒤에서 벌어졌을 상황을 재구성했다.
뱀을 발견한 유진이가 놀라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장군이가 유진이를 보호하기 위해 뱀 꼬리를 물고 흔들었다.
그렇다면 발목의 액체는······.
‘유혈목이가 코브라처럼 독을 쏘나?’
찌이익- 하고?
사건 재구성에 걸림돌을 만났다.
어쩌면 유진이 발목의 액체는 독이 아니라 침이나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의문 부호를 붙여두고 다음 단계로.
‘그런데 혈흔은 누구 거지?’
말끔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허허벌판에서 DNA 검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의할 사람도 없고 돌겠네.’
아주 오랜만에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들에게 이야기하면 또 외계인부터 시작해서 별 이야기를 다 할 테고.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집에 가자.”
“녜, 에헤헤-.”
홍수정이 유진이를 일으켜 세웠다. 훌쩍거리며 유진이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저보다 어린아이의 손바닥이 까지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기특한 꼬맹이다.
진혁은 뱀 사체를 멀리 저수지에 던져 버리고 꼬맹이들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어휴-, 피곤해.’
진이 다 빠져버렸어.
거칠어진 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폭력을 사용하면서도 흥분하기는커녕 맥박이 차분했는데, 뱀 한 마리 때문에 심장이 터질 뻔하지 않았나. 가족이 위험해서 그런 거지만 뭐, 아무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동생들을 안심시킬 겸 노래를 불렀다.
“이빨 빠진 도장군-, 개울가에 가지 마라-.”
“붕어때끼 노단다-.”
뱀의 습격으로 놀랐던 홍수정이 따라불렀다.
그런데 도장군이 무슨 뜻일까. 어릴 때 이빨 빠진 진혁을 보며 엄마가 불러준 노래인데 뜻은 알지 못한다. 도장군인지 도장구인지도 모르겠다.
‘알 게 뭐냐.’
진혁은 제 손을 하나씩 잡은 홍수정과 유진이를 번갈아 보았다. 놀라기는 했지만 경기를 일으키지도 않고 오빠를 따라 씩씩하게 걷는 녀석들.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오빠는 머가 되꺼아?”
진혁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도장구가 물었다.
아직 놀란 여운이 가시지 않은 꼬맹이를 보며 진혁이 피식 웃었다.
평소였다면 들은 체 만 체했을 텐데, 큰일 치른 녀석이니 다정하게 대하는 게 좋겠지.
“그게 궁금해?”
“으응. 아빠가 그어는데 오빠는 천재라서, 그대서 머든 할 뚜 있다고 했더.”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도 평범하게 살려고.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래.”
가족이 있고, 부족함 없이 사니 별다른 욕심이 생기지 않는 진혁이었다. 누굴 괴롭히지도 않고, 괴롭힘당하지도 않고. 텃밭 일구며, 운동하고 낚시하며 사는 삶도 괜찮지 않을까. 평화롭게.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
“응, 수정아.”
“그럼 나도 그어케 살아야지.”
여기서 오빠랑. 홍수정이 홀로 중얼거렸다.
도장구에게서 코맹맹이 소리가 들려 진혁이 바라보니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긴장이 풀리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되새긴 까닭이리라. 어쩌면 제 방학 숙제 때문에 생긴 일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여러모로 기특한 꼬맹이다.
수정이도, 유진이도 이런 일을 겪으며 크는 거겠지.
“수정아, 미안해하지 마.”
홍수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의 작은 머리통을 보며 진혁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늘 내게 관심을 보이는데.’
진혁은 예나 지금이나 제대로 관심을 주지 못했다. 타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던 삶이니 그럴 수 있다 해도, 서울 도장구는 특별히 대해줘도 되지 않을까.
이럴 땐 뭘 물으면 좋으려나.
“수정이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이히-.”
도장구가 못난이처럼 잇몸 미소를 선보였다.
스스로도 대답하기 부끄러운 모양인데, 진혁은 답을 알 듯했다.
질문을 바꿔볼까.
“수정이는 오빠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응, 응. 있지. 유명한 사람. 응응, 그이고 부자.”
홍수정의 꿈은 소박했다.
이 오빠가 유명해져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고, 유세라 엄마가 가져간 용돈보다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만 원짜리도 선뜻 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미간을 오므린 진혁이 고개를 거칠게 한 번 꺾었다.
‘유명?’
아무래도 나 얘랑 안 맞는 거 아닐까······.
그래서 전생에도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진이는 아장아장 잘 걸었고, 홍수정은 아직 충격이 남았는지 중간중간 코를 훌쩍였다.
진혁은 그저 꼬맹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홍수정을 달랬다.
‘누굴 보호하는 건 힘든 거구나.’
괴롭히기는 쉬운 모양이던데.
헤윽-헤윽-.
장군이 숨소리는 좀 안 됐네.
콧잔등이 퉁퉁 부어서 볼수록 웃음이 나오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뱀독이나 박테리아 감염인가?’
부기가 점점 위로 올라가 시야도 불편할 듯했다.
“유진아, 장군이 좀 만져볼래?”
“녜. 이케지요? 만졌지요?”
“응. 이제 됐어.”
‘유진이 손 약손’ 가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확인해본 건데, 역시나 평범한 아기 손이었다. 다독이고 쓰다듬어도 장군이의 부기는 여전했다.
진혁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장군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쉬익-쉬익-. 장군이가 뱀처럼 바람 소리를 냈다.
끼잉-. 간간히 앓는 소리도 냈다.
‘그러고 보니 장군이가 아파하는 건 처음 보네.’
도사견을 이기지는 못해도 이빨을 드러내고 당당히 맞서는 녀석인데.
장군이도 진혁이 책임질 생명이다.
그러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음만큼이나 무거웠다.
***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는 유진이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여전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고 안색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어찌나 달게 자는지 쌕쌕 숨소리를 내며 침까지 흘렸다.
“농약을 좀 쳐야 하나?”
뱀 습격 사건을 전해 들은 손광연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농촌에 정착했을 때 거머리에 놀라 주저앉았고, 뱀을 마주했을 때는 머리에 피가 빠져나가는 공포를 경험했다. 지금은 놈들을 봐도 그러려니 하지만, 그때의 충격을 새삼 떠올리면 아직도 손이 벌벌 떨린다.
“진혁이 어디 가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던 손광연은 아들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밀짚모자를 쓴 진혁의 손에는 양동이와 족대가 들려 있었다.
“냇갈에요.”
손광연이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개울? 뱀 잡으려고? 술 담그는 거야?”
······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진혁의 의도를 읽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꽃무늬 장화를 신은 홍수정이 슬그머니 진혁의 손을 잡았다.
“무꼬기.”
“큭! 수정이가 물고기 잡고 싶대요.”
홍수정의 발음에 진혁은 복근을 쥐어짜 웃음을 참아냈다.
개울에서는 손가락만 한 물고기부터 손바닥만 한 녀석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어종이 잡혔다.
한유영은 아들이 고기를 잡아오면 어죽을 끓여주곤 했는데, 한번 접하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어죽에 소면 삶아 넣고 막걸리랑 크으-.’
추릅-.
손광연이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농약을 치지 않는 이유도 다시금 기억해냈다. 논과 개울에서 나오는 우렁이와 미꾸라지, 붕어 등. 맛있는 녀석들.
손광연은 뱀도 생명이니 일부러 해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생태계 일원 아닌가.
뱀은 죄가 없다.
듬직하게 걷는 아들과 신나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홍수정을 보며 손광연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쩌면 홍기준이 두 아이에게 바라는 그림은 저런 게 아닐까.
“그런데 쟤는 누구네 개야?”
발바리 체형에 불도그처럼 못생긴 개가 진혁의 꽁무니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