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 조커 대장 (4) >
*
진혁아아아-. 슬찬아아아-. 장군아아아-.
멀리 집 마당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꿈을 꾸는 듯하다.
저를 부르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늘 비슷한 감상에 젖는다. 목가적인 스케치에 천상의 소리로 채색한 풍경화를 대하듯, 심장이 은은하게 달아오르는 까닭이었다.
“가자.”
“이이, 그려. 기다리시겄다.”
여기저기 모기에 뜯겨 붉은 반점이 생긴 두 친구가 메기 한 마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다리가 짧아 배털이 축축이 젖은 장군이가 붉은 노을을 업고 뒤를 따랐다.
“엄마, 이거 어떡할까요?”
“이리 줘.”
한유영은 메기를 받아 새끼줄로 아가미와 입을 관통시켰다. 능숙한 솜씨였다. 그렇게 포박당한 메기는 연못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엄마가 내일 아침에 수제비 넣고 매운탕 끓여줄게.”
메기에게는 사형집행 예고였으나 세 명의 인간 남자는 군침을 흘렸다.
“신기허다.”
조슬찬이 중얼거렸다.
제 손으로 뭔가를 잡아 음식을 한다는 경험 자체가 색다를 터였다.
조슬이의 반응에 진혁은 뿌듯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계획했던 내용과 얼추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으니.
***
손진혁이 방학이라고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슬찬이 유진이와 블록쌓기를 하는 동안 진혁은 아빠와 농약 대체 효소에 대해 논의했다.
“다른 집 제조 조건도 확인하신 거예요?”
“확인은 했지. 재료는 다 거기서 거기야.”
“발효조건은요? 생장환경이랄까, 환경이 동일해야 효소 성능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손광연이 티나지 않게 목을 움츠렸다.
괜히 아들에게 혼나는 듯한 착각이 들어서였다.
“아니, 나는 그냥······.”
웅얼웅얼- 서서히 잦아들던 손광연의 음성은 결국 자체 음소거 되었다.
진혁은 벽걸이 달력 뒷면에 사인펜으로 표를 그리고 볼펜으로 뭔가 채워넣기 시작했다.
손광연이 눈으로 따라가며 표에 채워지는 글자를 읽었다.
“온도, 습도, 시간, 첨가물······?”
진혁은 이 아빠가 어떻게 효소를 개발하게 된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붉은수수밭〉이라는 영화를 보니 술 취한 남자가 술독에 소변을 본 후 기가 막힌 고량주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아빠도 어쩌다 개발하게 된 건 아닐까.
‘정말 쉬야 타신 건 아닐까?’
그러나 우연으로 치기에는 아빠가 몇 년간 사용한 효소는 그 효과가 비슷하다고 했다. 병충해 예방은 물론 작물의 생육도 좋아졌다고. 옥수수만 해도 다른 집보다 키가 훨씬 커서 소를 키우는 아저씨들이 사료용 옥수숫대를 예약할 정도다.
진혁으로서는 이 천재 아빠가 설명하지 못하는 열쇠를 풀어야 할 이유가 있다.
먼 훗날을 위한 안배랄까.
‘사업화하려면 레시피를 확실히 정리해 두는 게 좋지.’
대지주와 그 아들로 아쉬움 없이 살고 있으나 아빠의 재능을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을 한 차에 괜찮은 아이템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주위의 모두가 잘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 진혁이 생각하는 성공은 혼자만 잘 되는 삶이 아니었다.
‘아빠가 사업해서 돈을 벌면 몰래 땅파는 짓 안 해도 되잖아.’
그러자면 대체농약에 대한 보편적 신뢰성 확보라는 선행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건 바로 제조와 약효에 대한 농부의 지지를 얻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웃에도 기술을 전파하고 직접 테스트하도록 유도하는 거다. 대규모 경작지 단위로 효과를 입증하는 것만큼 확실한 홍보 효과는 없을 테니.
진혁은 달력 맨 위에 타임라인을 의미하는 긴 화살표를 그린 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요. 제조 환경을 일치시키는 게 우선이예요. 우선 아빠가 어떤 환경에서 제조하는지 확인하시는 거예요.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체크해야 돼요. 방학 중에는 저도 도울게요.”
“으응. 그래. 그런데 진혁아.”
손광연이 뺨을 긁으며 아들을 보았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니?”
“중학교에 농업도 있고 기술 과목도 있어요. 과학도 있고요.”
요즘 학교는 정말 실용학문을 가르치는구나. 손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마당에 심은 과실수 관리에 진혁의 농업 교과서가 도움을 준 바 있으니. 진혁의 거짓말이 진짜처럼 들리는 이유였다.
사실 손광연도 이웃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단지 남들은 왜 자신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할 뿐.
대학 시절 홍기준은 손광연에게 천재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차갑고 무뚝뚝했던 청년 손광연은 그때마다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 “내가 천재인 게 아냐.”
니들이 별거 아닐 뿐.
옛일을 생각하니 손광연의 목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으으으······ 쥐구멍이 필요해.’
가정을 꾸리고, 오두방정 떨며 사는 행복을 깨달으니 그때의 손광연은 얼마나 싹수없고 재수 없는 놈이었던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제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도표로 표현하는 아들을 보며 겸손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달력에 뭔가 써가며 설명하는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 엄마랑 쏙 빼닮은 녀석인데. 이런 자식을 낳다니, 우리 자기야말로 천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똑 닮은 유진이도 천재겠구나.
요즘 피곤하지도 않아 밤잠도 설치는데, 하나 더 낳을까?
“······ 아셨지요?”
“응?”
아차,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아들이 하는 말을 놓쳤다.
정신을 차리니 아들이 가늘게 뜬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뭔가를 두 번 설명하는 걸 싫어하는 아들인데. 이 자식은 내 자식이지만 어딘가 무서운 구석이 있는 자식이다.
“아빠, 아셨지요?”
“하하핫! 당연하지. 아빠도 다 아는 거야.”
다행히도 이 자식이 화가 난 건 아닌지 동생 흉내를 낸다. 썩 어울리는 애교는 아니지만 곰 같은 자식이 재주 넘는데 억지로라도 너그럽게 웃어줘야지.
이렇게 손광연은 오늘도 가장의 권위를 세웠다.
뭐, 하던 대로 대충 하다보면 되는 거 아닐까.
하다가 막히면 일헌 형 도움 좀 받아야겠다.
***
‘음. 몰랐는데 나 메기 싫어하네.’
아침을 먹으며 진혁은 취향을 확인했다.
먹어보지 못했으니 몰랐던 사실이다.
홍수정이 기획팀장을 지낼 때였나, 광화문 근처 어딘가에서 함께 꼼장어를 먹었던 때가 떠올랐다.
‘분명 다른 물질인데 왜 느낌이 비슷하냐.’
흙맛이 났다.
진혁은 그때도 맛을 본 후 더이상 꼼장어에 젓가락을 뻗지 않았다. 남들은 잘만 먹던데, 저만 머리가 이상해서 미각이 오류를 일으키는 건 아닌가 고민도 했다. 그런 진혁을 두고 홍수정은 여자들이 좋아할 남자라는 말을 했다. 귀한 꼼장어를 몰아주는 좋은 사람이라던가?
‘흙을 먹다니, 이 마녀!’
정말 진혁 혼자 입맛이 이상했던 걸까.
아빠와 조슬찬은 숨도 쉬지 않고 밥과 매운탕을 떠 넣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혁을 살폈다.
“왜? 맛이 없니?”
“아뇨. 정말 맛있어요.”
국물은 먹을만했다.
그래도 영 내키지 않아 밥은 한 그릇만 먹기로 했다.
‘흙흙. 완전 흙맛이야.’
매일 흙을 퍼먹어서 그런 걸까, 유진이는 매울 텐데도 메기 살점과 국물에 밥을 비벼 오물오물 예쁘게도 먹었다.
한유영이 씻은 김치를 유진이 숟가락 위에 얹었다.
“우리 유진이, 맛있어요?”
“녜, 에헤헤. 마이찌요?”
그 모습에 진혁은 동생을 위해서라도 종종 메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전날 통발에서 수거한 미꾸라지는 10kg 정도였다.
이제 경제활동 액티비티 중 판매에 돌입할 차례였다.
“슬찬아, 미꾸라지 팔러 가자.”
“얼루?”
“시장에 가야지.”
건강원이나 추어탕집에 팔아도 되지만 그런 사업장은 주공급원이 있어 수급이 아쉽지 않으니 가격을 잘 쳐주지 않는다.
두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향했다.
기껏 놀러 왔더니 땀 뻘뻘 흘리며 다시 나가는 마음이 기꺼울 리 없건만, 조슬찬은 방학이라고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니 즐거웠다.
“헤헤헥-, 쫌 찬찬히 가-.”
진혁에게는 매일 통학하는 길인데, 10km 구간이 조슬찬에게는 버거웠던 모양이다. 두 친구는 구멍가게에 들러 시원한 콜라를 한 병씩 비웠다. 역시 병 콜라가 최고다.
짧은 휴식 후, 쭈쭈바를 하나씩 물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즈-.”
“그르-.”
시장에 도착해 미꾸라지를 넘기니 1kg당 3천 원을 계산해줬다.
여름 미꾸라지는 겨울철과 비교해 1/3 가격밖에 하지 않는다고.
“이거 슬찬이 너 해라.”
“왜왜왜, 이걸 왜 다 주는 겨?”
“위로금.”
오줌 쌌잖아. 진혁은 속으로만 중얼댔다.
위로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조슬찬은 얼굴이 벌게져 키득거리다가 만 원 지폐 세 장을 소중히 갈무리했다.
“슬찬아, 김밥이나 한 줄 먹고 가자.”
아침을 한 그릇밖에 먹지 않은 진혁은 허기를 느꼈다.
“그려, 내가 사께. 차부께 가먼 돈까스 맛있는 집 있는디-.”
“안돼!”
진혁답지 않게 단호하게 잘랐다.
돈가스는 당분간 집에서만 먹기로 결심한 진혁이었다.
“그려······.”
조슬찬의 눈에는 친구 돈을 아끼고 싶어 하는 우정으로 비쳤다.
한 줄 천 원 하는 김밥 두 줄에 시원한 콩나물국을 곁들여 요기를 했다.
밥에 재료를 올려 김으로 말아 참기름을 바르고 깨를 뿌렸을 뿐인데, 왜 맛있을까.
씩씩하게 우걱우걱 씹는 조슬찬을 물끄러미 보던 진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슬찬아.”
“이?”
“어려운 일,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라. 친구끼리 자존심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너 부담되라고 하는 소리도 아니고, 그냥 그래 주면 내가 고마울 거 같아서.”
조슬찬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스러웠다. 직선적인 진혁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무슨 뜻인지 잠시 고민했을까, 그 수다스러운 조슬찬이 말없이 히죽 웃어 보였다.
기분 나빠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너도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거 많을 텐데.’
값싼 동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빈말도 아니었다. 진혁이 아직 어리다 한들, 도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자신을 친구로 대해주고 조커 대장으로 인정해주는 조슬찬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널 보면 옛날의 나보다 훨씬 대견하기도 하고.’
그런데 조커 대장이 무슨 뜻일까.
유머 감각 없는 자신에게 반어적으로 붙인 별명일까.
단무지를 씹으며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조슬찬은 유진이를 끔찍이도 예뻐했다.
진혁은 조슬찬에게 형제가 없어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슬찬은 다른 친구들 동생은 그렇게 예쁘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야-, 어쩌먼 애가 이렇게 인형같이 생겼다니? 미스코리아감이여-.”
유진이를 향한 조슬찬의 애정은 여전했지만, 최미경 청소년을 본 후로 이상행동을 보였다. 열무김치를 담갔다며 전하러 온 최미경을 본 조슬찬이 갑자기 서울 말씨를 쓴 것이다.
“진혁아-, 엄마가 이거 아주머니 드리래.”
“안녕하세요오-. 저는 진혁이랑 제일루 친한 친구 조슬찬입니다아-.”
“네, 안녕하세요.”
최미경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빙글 웃었다.
조슬찬은 언월도에 가슴을 베인 몽골기병처럼 어버버거렸다.
밝은 달을 보며 잠도 설쳤다.
너무 뒤척여 신경 쓰였을까,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은 진혁이 나지막이 조언했다.
“슬찬이 잠 안 오면 장군이네 가서 자라.”
“크크큭-.”
아침이 되어 진혁이 구봉산 정상까지 다녀온 후에도 조슬찬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새벽까지 잠을 설친 탓이었다. 그러던 조슬찬의 열정은 다른 타겟을 만났다.
유진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이해원네 가게에 갔는데, 조슬찬이 이해원을 보고 또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다.
“유진이 먹고 싶은 거 다 사! 이 슬찬이 오빠가 다 사줄게.”
“녜에-.”
듣는 사람도 없는데 큰소리를 왜 치는지 진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슬찬이 저러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기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이 동네 여자애들은 왜 다 이쁜 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진이 손을 잡고 걸으며 조슬찬이 혀를 내둘렀다.
진혁은 뭐라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진혁의 눈에는 그냥 아이들이었으니까.
*
2박 3일간 머문 조슬찬이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할머니 혼자 계셔서······.”
조슬찬이 아쉬움을 삼키며 집을 나섰다.
한유영은 조슬찬에게 자주 놀러 오라며 용돈을 쥐여주었다.
조슬찬은 한유영의 눈치를 살피며 뭐라고 어물어물 쭈뼛거렸다.
그제야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품에 꼭 안아줬는데, 조슬찬은 결국 눈물을 떨궜다.
“어이구, 우리 슬찬이 엄마 보고 싶으면 자주 놀러 와. 알았지?”
“겅강하세요-.”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데도 아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진혁은 트렁크에 자전거를 한 대 실었다. 미꾸라지 팔러 가던 날 조슬찬이 탔던 자전거다.
“이거 다리 짧은 사람이나 타야지. 너무 낮아서 내가 타면 무릎 아파. 학교 다닐 때 타라.”
“그려. 내가 타지 뭐.”
진혁이 부쩍 말이 많아질 때는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할 때다. 함께 지내며 깨닫게 된 조슬찬도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갔다.
달리는 차에서 창밖을 보며 조슬찬이 계속 중얼거렸다.
“태어나서 제일루 행복했다······.”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긴 여운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영원히 가지지는 못할 행복일지언정, 조슬찬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아련함보다 선명한 감정이었다.
“조커 대장 덕분이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진혁은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제 부모가 친구에게 베푼 사랑이 다시 되돌아 자신에게 닿은 기분.
‘내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전의 생에 저를 그렇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조슬찬처럼 행복하다는 말을 뱉을 수 있었을까.
아주 잠시라도.
“행복하다.”
새로운 하루하루에 위로를 담았다.
과거의 오늘을 사는 자신에게 닿기를 기도하며.
“아빠, 지금 몇키로예요?”
“응? 70키로.”
“10키로만 더 밟으심 안 될까요?”
부우우웅-.
우리 아들이 원하는데 그러지 뭐. 손광연이 속도를 올렸다. 창밖으로 팔을 뻗어 공기를 쥔 아들이 뭔가 실험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왼손으로는 왜 제 가슴을 더듬는 걸까.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보면 장난치는 건 아닌 모양인데.
‘짜식,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신기한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