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 조커 대장 (3) >
***
논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비가 쏟아졌다.
진혁은 조슬찬과 함께 흙집 마루에 앉아 비를 구경했다.
‘와 진짜 무섭게 온다.’
흙집 마당은 비교적 지대가 낮고 발길이 뜸해 땅이 무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에 금세 고랑이 파이고 황토색 웅덩이가 생겼다.
비소리가 어찌나 큰지 바로 옆에서 나누는 대화에도 목청을 키워야 했다.
쏴아아아아-!
“슬찬아! 비 그치면 뭐 할래!”
“뭐어! 통 안 들려어-!”
심혈을 기울여 세워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물이 뒤집혔을 저수지에 들어가 마름을 채집할 수도, 폭우로 불어난 개울에서 물놀이를 할 수도 없다.
플랜 B가 필요했다.
“비 그치면-!”
꾸르릉-!
천둥소리까지 가세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했다.
대화를 포기하고 마루에 벌렁 누웠다. 진혁의 시야에 처마 밑 제비집이 들어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런가? 제비도 집에서 쉬네.’
우천 시 실내 체력단련 계획이 있었지만, 진혁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획을 수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슬찬에게는 추억이 될 것 같지 않았던 까닭이다.
‘비디오나 볼까?’
거실장에는 제법 많은 비디오테이프가 있다. 영화와 음악 감상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신작 비디오가 유통될 때마다 보내주는 홍기준 덕분이었다.
‘안방에 있는 비디오는 뭔가 뭔가······. 뭔가.’
부모님 방에는 제목이나 사진도 붙어있지 않은 비디오도 있었다. 이 또한 호르몬의 영향이겠지만 가끔 비디오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운동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니 그나마 호기심을 억제할 수 있어 다행이랄까.
“슬차-.”
비디오를 보자고 하려던 진혁의 입이 헤- 벌어졌다.
마루에 대자로 뻗어 잠든 조슬찬 때문이었다.
카아아-.
이 폭우 소리를 들으며 잘 수가 있다니 대단한 녀석이다.
백색소음도 정도가 있지, 지금은 흡사 전쟁터 한복판처럼 시끄러운데도 코까지 골다니.
‘예민하지 않은가 봐.’
어쩌면 조슬찬은 무던한 성격 덕에 크게 엇나가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살며 빈번히 겪은 상처 탓에 무던해졌을 수도 있고.
진혁은 흙집 안방에서 침구를 꺼내다 베개를 받치고 이불을 덮어 조슬찬이 푹 잘 수 있도록 했다.
‘이것마저 네게 추억이 된다면야.’
홍기준과 대화하며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다고 했었다. 그게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진혁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일에는 쉬운 일도 있을 테고, 어려운 일도 있을 거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만이 의미 있고 가치가 큰 것은 아닐 터였다. 모든 시간은 소중한 법이니까.
‘이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지.’
신우성과 이승훈은 같은 반인데다 과외를 해주느라 늘 붙어 다닌다. 가끔 씨름장에서도 어울리고 도시락도 함께 먹는다. 운동부 소속이어서 방학 중에는 합숙 훈련을 하니 어차피 보기 힘들지만, 옛친구들과는 소홀함 없이 지내고 있다.
‘지금은 슬찬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진혁은 부엌으로 이동해 가마솥에 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솥 안에 국그릇을 엎었다. 국그릇을 왜 이렇게 뒤집어 넣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가 그렇게 하시더라.
이제 인원수에 맞게 옥수수를 넣으면 된다.
‘유진이 한 개, 엄마도 한 개, 장군이 두 개, 슬찬이도 두 개, 아빠는 많이 드시니까 세 개. 나는 소식하니까 열두 개······.’
옥수수를 세는 진혁의 손이 분주하다.
장작과 솔가리를 넣고 성냥을 당겼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눅진해진 성냥인데도, 늘 그렇듯 진혁의 손에서 크고 화려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
다행히 저녁 어스름이 찾아오기 전에 비가 그쳤다.
진혁은 조릿대를 네 개 잘라 2미터 남짓이 되도록 손질했다. 워낙 가느다란 대나무라서 톱으로 베기보다는 낫으로 끊는 편이 수월했다.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졸랑졸랑 따라다니던 조슬찬이 눈을 끔뻑였다.
“걸루 뭐 헐라고?”
“메기 잡으러 가자.”
진혁은 조슬찬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추억을 선사하겠다 계획한 터였다. 붕어나 망둥어처럼 흔하고 쉬운 낚시보다 접하기 어려운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한바탕 퍼부은 비도 이런 계획 변경에 한몫 거들었고.
‘때론 목적 없이 여가를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호오-, 조슬찬이 경이감 어린 반응을 내놓았다.
“메기는 한 번두 뭇 봤는디. 잡어본 겨?”
“아니. 나도 처음이다.”
진혁 또한 생물 메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척척박사 조일헌에게 설명만 들은 방법이다.
흐린 날이나 비온 후 흙탕물이 된 저수지 둑에서 메기를 잡을 수 있다고.
개울에서도 미유기라는 작은 메기가 잡히기는 하는데, 흐르는 개울에서는 낚시로 잡기 어렵고 장애물을 설치해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강원도와 북한 일대에서는 미유기를 산메기라 부른다는 설명도 들었다.
진혁은 조일헌이 찾아와 옛날이야기처럼 늘어놓는 말들을 모조리 흡수했다.
“재밌겄다아-. 메기 맛있나?”
“글쎄.”
진혁도 메기는 먹어보지 않았다.
‘붕어는 먹어봤는데.’
가끔 붕어를 잡아오면 엄마가 매운탕이나 붕어찜을 해주셨는데 고추장 베이스의 요리가 얼큰하면서도 달달해서 제법 입에 맞았다. 비늘을 쳐내고 소금을 뿌려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붕어구이도 괜찮았다.
“일단 시도는 해보자.”
잡아야 먹든가 말든가 하지.
사람들은 잡기도 전에 물고기로 뭘 할지 고민하더라. 매운탕 재료를 준비해두고 낚시를 가는 식이다. 그러다 결국 꽝치고 어시장 가서 돈 주고 사는 사람도 있다던가.
손질한 조릿대 끝에 낚싯줄을 매고 망둥어 낚시용 바늘을 달았다.
봉돌이나 찌가 없는 단순한 채비다.
“미끼 잡으러 가자.”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마당 외곽에 붙어 있는 연못가를 족대로 훑어 송사리와 새우를 잡는 걸로 미끼 준비는 충분했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개체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시 방생했다.
2미터짜리 낚싯대 네 개와 미끼 몇 마리가 든 깡통을 들고, 두 친구가 집 앞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갔다. 버스길과 산을 넘어가야 하는 저수지보다는 집 앞 멀리 조성된 수로가 좋을 것 같았다. 털이 젖을까 염려했는지, 진혁과 다니는 걸 좋아하는 장군이는 웬일로 개집에서 눈알만 굴렸다.
“여긴 강이여?”
“수로인데 저수지처럼 큰 수로지.”
할머니가 농사를 짓는다고는 해도 조슬찬은 읍내와 가까운 농가에 살았다. 논농사를 짓지도 않고 시골에 올 일이 없으니 폭이 좁게는 5미터에서 넓게는 20여 미터나 되는 수로를 강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투리만 안 쓰면 영락없는 도시 촌놈인데.’
어디서 낚시를 해야 할까, 저수지였다면 석축에서 하면 될 텐데. 수로 둑은 비탈지고 미끄럽다. 비까지 내려서 더 위험할 터였다. 잠시 두리번거리며 고민한 진혁이 결정을 내렸다.
“다리 위에서 하면 되겠다.”
“이이-, 그려.”
진혁은 낚시바늘로 송사리와 새우 등을 살짝 꿰었다. 미끼가 죽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조슬찬이 곁눈질하며 진혁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조슬찬이 칭찬을 바라는 학생처럼 바늘로 꿴 미끼를 들어 보였다.
“이르케 하믄 되는 거간?”
“응, 잘했네.”
낚시 바늘에 꿰인 후에도 파닥거리는 미끼가 싱싱해 보였다.
진혁이 다음 단계를 시범 보였다.
“이렇게 해 봐.”
이제 미끼가 수면에서 움직이도록 낚싯줄 길이를 조정한 다음, 낚싯대를 들고 있으면 된다. 낚싯대 손잡이 쪽을 바닥에 대고 돌로 누르거나 발로 밟아도 된다. 오래 들고 있으면 팔 아프니까.
각다귀, 모기 등등 귀찮은 녀석들이 덤볐지만 그런 불청객 신경 쓰면 시골에서 못 산다.
짝-! 짝-.
두 친구는 목, 뺨, 종아리 등 모기에게 공격당하는 부위를 후려치며 낚시에 열중했다.
수면에서 발발거리는 송사리를 보며 조슬찬이 아련하게 말했다.
“좋다. 이런 것두 해보구.”
친구의 반응에 진혁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성인이 되어 이승훈과 신우성을 만나 맥주를 마시기는 했어도 이런 여가활동을 함께 해보지는 못했다. 어른이 되면 각자의 삶을 살기 마련이니까.
아빠와 함께 하는 낚시도 즐거웠지만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도 진혁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쩌면 학창시절이야말로 친구와의 추억을 만들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그러게. 좋네.”
우엉- 우엉-.
10분쯤 지났을까, 사람 발소리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황소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제방과 수면에 튕겨 더 커진 반향이 고막을 때렸다.
“저것덜은 워디서 흘러온 겨? 소리 디게 무섭다.”
아마 일본에서 들여오던가. 도입한지 20년 정도 됐을 거다.
식용 목적으로 들여왔다가 장사 안 돼서 가게 주인들이 버린 게 퍼졌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시끄러워도 언젠가 얌전해질 거야.”
“그럴라나?”
“그럼.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애들이 주인이니까.”
조슬찬은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똑똑한 놈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진혁도 휴가 때마다 텐트를 들고 고향을 찾을 때면 황소개구리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 소리는 점차 작아졌고, 사라져갔다.
‘고양이, 너구리, 족제비, 수달, 왜가리.’
그리고 가물치 같은 포식자가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먹어치워 이놈들의 개체수가 줄었다고 들었다.
진혁이 옛 기억을 더듬을 때였다.
푸확-!
수면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미끼에 한 놈이 거칠게 입질했다.
“으어-!”
붕어낚시처럼 찌 보기가 아닌, 미끼를 삼키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낚시 방법이다. 물속 괴물이라도 등장한 듯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기겁하는 조슬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진혁도 깜짝 놀랐으니까.
‘지릴 뻔했다.’
어쨌거나 놀랍게도 조일헌이 설명한 낚시법이 실현되었다.
비 내리고 흐린 날, 흙탕물이 되어 숨쉬기도, 먹이 사냥도 여의치 않아지면 물고기가 수면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구멍이나 돌 틈에 숨어 지내는 포식자들마저 활동하도록 만드는 여건이라고.
“으엇-!”
“슬찬아! 힘 빼고, 팔에 힘 빼고! 버티기만 해.”
황토색 수면이 핫초코처럼 꿀렁거리는 걸 보니 제법 사이즈가 되는 녀석 같았다.
조슬찬은 진혁이 알려준 대로 팔에 힘을 빼고 조릿대의 탄성을 최대한 이용했다. 여차하면 부러질 거라 생각했는데, 조릿대는 낭창하게 몸부림치며 메기의 힘을 빼고 있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는 걸까.
‘신기하네.’
진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몽둥이 같은 글라스 낚싯대도 아니요, 최첨단 카본 낚싯대도 아닌데 저 가녀린 풀줄기가 메기의 힘을 버티지 않나. 자연물을 활용했을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때, 우직- 조슬찬의 낚싯대가 부러졌다. 그러나 질긴 대나무였기에 끌어당기면 그만이었다.
“줄 팽팽하게 유지해!”
진혁은 낚싯대를 내팽개치고 손으로 낚싯줄을 당겨 조슬찬을 거들었다.
낚시에 걸린 메기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꾸물거렸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물고기였고, 진혁의 힘을 감당할 물고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와하하! 엄청 크다!”
“와-, 슬찬이 대박.”
“대박? 그게 뭐여?”
“아하하-, 대단하다는 뜻이야.”
부처님 같은 손진혁이 감탄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큰 메기였다.
처음 해본 낚시에 메기를 낚은 조슬찬은 놀란 가슴을 주저앉혔다. 이게 진정 내가 잡은 물고기란 말인가. 위에서 보면 대가리는 주먹만 하고 몸이 갈수록 가늘어지는데 주둥이 근처에 길쭉한 수염도 있다.
만화 〈개구리왕눈이〉에 나오는 괴물 메기처럼 무섭게도 생겼다.
“사십 쎈치 넘을 거 같지?”
“응. 그러네.”
조슬찬의 물음에 진혁이 손뼘으로 길이를 쟀다.
실속 없이 길쭉한 꼬리까지 5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사이즈였다.
“근디 진혁아. 낚싯대 부러져서 워쪄?”
조슬찬이 미안한 기색을 보였으나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이럴 줄 알고 여분을 챙겨왔고, 어차피 조릿대는 1회용 낚싯대니까.
조슬찬은 부러진 낚싯대 대신 멀쩡한 조릿대를 잡았다.
그러는 사이 진혁은 갈대를 꺾었다.
“그건 뭐 헐라고?”
“고기 담을 그릇을 안 가져왔어.”
설마하니 진짜로 잡힐 줄은 몰랐지. 진혁은 들리지 않도록 중얼댔다.
조일헌에 대한 마을의 신뢰도가 그런 걸 어쩌겠나.
아무튼.
메기를 바닥에 방치하면 퍼덕거리다 물속으로 도망칠지도 모를 일이다.
진혁은 길쭉한 갈대를 메기 아가미에 넣어 입으로 나오도록 관통시켰다.
“이렇게 하면 들고 가기도 편하겠지.”
“이이, 그러네. 희한허다.”
갈대를 꿰어두면 발버둥칠 수도 없다.
진혁은 그리 꿴 고기를 잠시 웅덩이에 넣었다.
조슬찬은 손맛이 짜릿했는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여운을 만끽했다.
“어우-! 온몸이 걍, 전기 오는 거 같어.”
정말 짜릿한지 진저리친 조슬찬이 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신난 얼굴이라 진혁도 뿌듯했다.
“근디 진혁아.”
“응?”
“니 낚싯대는 워딨는 겨?”
“······.”
처음 보는 생물 메기가 신기해 구경하던 진혁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수면 위를 뒤졌다.
조슬찬이 고기 잡는 사이 잠시 내려두었던 진혁의 낚싯대는.
“저기 있네······.”
저 멀리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진혁의 손끝을 좇은 조슬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 빨리 가네? 모타 달린 것마냥.”
두 친구는 물고기가 운전하는 낚싯대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건 어떤 눔이 물고 가는 거랴?”
“글쎄······.”
새우 미끼를 사용했으니 붕어 소행일 수도 있겠다. 힘을 봐서는 가물치 같기도 했다.
요리조리 휘젓는 낚싯대를 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키득거렸다.
“이히히- 웃기다.”
“느허허-.”
왈! 왈!
붉게 물들기 시작한 수면 위로 발바리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장군이가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마치 힘찬 트럼펫 소리처럼 물수제비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