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 조커 대장 >
***
손광연은 이틀 동안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다.
벌써 7월이라 날도 더운데, 아내에게서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 겨울 목감기 때문에 병원 순회를 했을 때보다 더했다.
“상녀리지요?”
헤헤헥-?
장군이를 가리키며 이상하게 부르는 유진이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개밥을 해치우는 장군이를 보면서도.
“오구오구, 우리 상녀리 맘마 잘 먹지요?”
마당에 그림을 그렸을 때도.
“엄마! 유진이 상녀리 그렸어요오-.”
그림책을 볼 때도 강아지를 짚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엄마. 이거 상녀리지요?”
“유진아, 그건 강아지지요?”
한유영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표현을 정정해줄 뿐, 남편을 나무라지 않고 묵언 수행 중인 수행자처럼 굴었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응, 우리 아들 차 조심해.”
그래도 등교하는 아들에게는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래서 진혁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페달만 밟았다.
휑- 하니 집으로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손광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우씨-, 나만 미워해.’
사고 친 건 아들인데 왜 나한테 저럴까. 가장의 외로움이란 이런 것인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마저 들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마당 쓸던 빗자루를 얌전히 세워두고 집으로 향했다.
‘가장의 권위를 세울 시간이군.’
밥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괄시를 무려 이틀이나 묵인해주었으니 아내도 각오하고 있을 터.
마당의 설익은 과일을 따먹으며 버티는 서러움도 이제 끝이다. 한유영이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주는데도 스스로 위축되어 반공기씩 먹었더니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서울 사나이의 박력 넘치는 애원 앞에서는 아내도 언제 저기압이었냐는 듯 웃으며 밥을 고봉으로 퍼주겠지.
“어헙!”
기합을 잔뜩 넣은 손광연이 조신하고 공손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
시간이 흘러 학교 근처에서 사건 당사자 일부와 학부모가 모두 모였다.
얼핏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모양새였지만, 사건 처리는 교장실에서 협의한 대로 이루어졌다.
서울로 떠나며 홍기준이 부탁해둔 대로 강준성과 동료 형사가 주관했는데, 수배범 윤길중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형사들 주머니 가볍지 않냐며, 수사비도 부족할 거라며 봉투도 찔러준 홍기준의 성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깁스와 붕대 신세의 3학년생들은 강준성으로부터 일장 훈계를 들으며 눈을 떨궜다. 그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가스와 본드 흡입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이를 악물었다가 일수놀이나 사채꾼 흉내를 낸다는 말에서는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여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는 말에는 숨쉬기 힘든지 가슴을 치는 부모도 있었다.
“부모님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충격이 크지 않길 바랄게요. 학생들 쾌유를 빌어요.”
한유영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위로했고, 녀석들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숙였다. 깁스 때문에 제대로 숙일 수가 없었다.
손광연은 진혁이 폭주했던 데에 아내에 대한 욕설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테이블 위에 파지감 좋게 생긴 유리 재떨이를 자꾸만 잡고 싶었다.
피해 학생의 부모 중 누군가 우물거렸다.
“······ 치료비 감사합니다.”
제 눈에도 자식의 행동이 떳떳하지 않았으니, 부모로서 면구스럽다 할 것이었다. 처음에는 치료비 외에 합의금을 뜯어내자고 부모들끼리 작심을 했었으나, 군수를 비롯한 정치인과 이웃 도시 경찰서장이 손광연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깨끗이 포기해야 했다. 적당히 살점이 붙은 뼈다귀는 뜯어 먹기 좋지만, 살이 많고 단단한 고깃덩어리에 혹해 덤벼들었다가는 턱이 빠지는 법이다.
“학생들 중에 할 말 있는 사람 있나? 없으면 이만 합의서에 지장들 찍으시고-.”
진혁은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윤성동과 3학년생들도 차마 진혁을 쳐다보지 못하고 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진혁의 서릿발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그날의 공포를 떠올리자니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서울로 올라간 홍기준은 다시 바쁜 날을 보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처남 유문식을 찾았다.
‘윤길중이부터 해결을 봐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
강준성에게 듣기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위험한 인물이었다.
세인케미컬 사장실에서 기다리자니 유문식이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유세라처럼 모친을 닮아 인물이 훤하다.
“매제, 많이 기다렸어?”
“방금 왔습니다.”
소파에 앉은 홍기준은 녹차에서 올라오는 김으로 피로한 눈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편한 자세였다.
“에스팀 인원을 늘려야겠습니다.”
“그놈들이 자네보다 월급 많은 건 알고 있지?”
맞은편에 앉은 유문식이 빙글빙글 웃었다.
“아버지가 아시면 큰일 나는 거 아냐?”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곧 컨트롤도 제가 직접-.”
크흠. 홍기준이 말을 삼켰다.
그러나 유문식은 그 뜻을 알기에 사람 좋은 웃음만 던졌다. 매제 홍기준은 곧 세인전자 사장으로 취임이 예정되어 있다. 세간에서는 그런 홍기준을 두고 유문식의 강력한 경쟁자라는 표현을 썼다.
‘경쟁자는 무슨.’
홍기준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유문식이 몇 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다니는 경구였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매제 부탁인데 도와야지. 그런데 그놈들 1년 넘게 어디에 쓰는 건지 물어도 되나? 쿠데타라도 하려는 건 아니지?”
저 장난기 어린 표정. 배우를 꿈꿨다더니 진심인지 연기인지 모를 얼굴이다. 그러나 유세라를 닮은 얼굴을 보고 있자면 유문식의 성격이 왜 그런지 알 것도 같았다.
말해줘도 될까.
홍기준은 잠시 눈을 굴렸다. 아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구상 중인 사업의 하나일 뿐입니다. 아직은 기밀로 취급해야죠. 그래도 형님께만 말씀드린다면, 회사에 도움이 될 일입니다. 가족에게도요.”
유문식 사장이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둘러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대하는 모습도 유세라와 닮았다.
구레나룻을 긁적이는 유문식을 뒤로 하고 홍기준이 사장실을 나섰다.
지나가던 직원이 허리를 굽혔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직 부장인데, 아부성 인사에 푸륵- 콧김이 나왔다.
세인케미컬 사장실에서 나온 홍기준은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8차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소음이 많은 곳이었지만 부스 문을 닫으니 완벽한 혼자만의 공간이다.
“양 대위, 아니 양 팀장 자리에 있습니까? 네, 기다리죠.”
전화부스 밖에 대기하는 사람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슬쩍 웃어주었다.
공중전화에서 통화가 길어진다며 칼로 사람을 찌르는 세상이다. 자신은 손광연처럼 힘이 세지도 않고, 손진혁처럼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니 조심해야 한다.
“양 팀장? 등기로 보낸 자료는 받았습니까? 조폭 사십 명 처리하는데 몇 명이나 필요하겠어요? 원래는 이백 명이 넘는데, 약은 놈들은 모두 잠적한 모양이예요. 강형사 말로는 양 팀장 근무지와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다고 합디다. 형사기동대도 정보는 가지고 있는데, 이놈들이 모여 다니는 것도 아니고. 경찰력 동원하다가 그 넓은 지역에서 흩어지면 더 골치가 아픈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도시와는 다르니까- 아하, 그래요?”
수화기 건너에서 제법 믿음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 돈은 아니지만 돈 쓰는 맛이 이런 걸까.
“어떻게든 처리해서 경찰에 넘겨요. 휴가? 올 추석 땐 내가 방법을 찾아보겠소. 계속 수고 좀 해줘요. 그리고 윤길중이는 꼭 찾아서 처리해줘야겠어요. 예. 방법은 맡겨두겠습니다. 당연히 출장비 처리해드려야지.”
휘유- 한숨이 나온다. 친구 놈 하나 보호하기 어렵다.
‘확실히 손을 써둬야 후환이 없겠지.’
처가 신세를 단단히 진다 생각하니 결혼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세라에게 잘해야지.
이제 뭘 할 차례인가, 홍기준은 이마를 두드리며 다음 계획을 점검했다.
재발신 버튼을 눌러 통화를 확실히 끝낸 후, 수화기를 몸체 위에 얹고 나왔다. 300원을 넣었는데 60원이 남은 까닭이었다. 내년 2월부터 30원으로 오른다던데, 그래도 회사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기에는 괜찮은 통신수단이다.
뒤에서 기다리던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래 걸려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사내가 홍기준을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역시 공중전화에서는 잔액이 곧 매너다.
***
박용석은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주일 근신 처분을 받았다.
쓰레기 소각장을 청소하고, 이병세를 따라다니며 운동장 보수를 했다.
울타리 개구멍을 막고 보수하는 일도 했는데, 손수 만든 개구멍을 막을 땐 아쉬운 한탄이 절로 나왔다.
“선생님, 저 진짜 저승사자 봤어요.”
“근신이 편한 모양인디, 정신병원 갈쳐?”
박용석은 근신을 마친 후 더이상 저승사자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 저승사자보다 정신병원이 더 무서웠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진혁은 학생주임을 찾아가 근신 처분을 요청했다. 죄책감이 크게 든 탓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이 선생님이 너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야. 정당방위 알아, 정당방위? 그런 상황에서는 불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자구책 정도는 인정해야 하는 거야. 그런 면에서 법보다는 교칙이 유연한 편이지. 야-, 이 선생님이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냐면 태권도에 킥복싱에-.”
사회 과목 교사다웠다.
학생주임의 입에서는 말도, 정보도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진혁에게는 쓸모없는 정보뿐이었지만. 어쩌면 학생주임은 고막 출혈을 유도하는 벌을 주는 건 아닐까.
진혁은 예, 예- 하다가 학생상담실에서 나왔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는 박용석에게 진혁이 다가갔다.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남 괴롭히지 말고 떳떳하게 살자.”
“······응.”
“너 수업 진도 밀렸지?”
“······.”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진혁의 신념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다.
박용석은 이승훈과 신우성 사이에서 진혁에게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그런가. 이해가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가장 무섭냐는 채규호의 물음에 박용석의 손가락은 손진혁과 이승훈, 신우성의 사이에서 방황했다. 이건 무슨,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사찰 입구의 사천왕 눈빛 같잖아.
“나는 진도 따라잡았으니 이제 그만 와도 될까-아?”
존댓말이 나오는 것을 극한의 인내로 참아내는 박용석이었다.
진혁은 어느 저녁, 홍기준과 통화하는 아빠가 신문을 손가락으로 짚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운 틈에 그 내용이 뭔지 살폈다.
「尹〇〇(42, 남) 경북 구미에서 종적 감춰.」
- 살인, 폭력, 범죄조직구성 등 당국에 수배된 인물. 경찰, “증발하듯 사라져.”
왜 아빠와 홍기준이 그 내용으로 통화를 해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윤성동의 부친이어서 관심을 갖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악은 항상 빠르다고 했지.’
더 강하다고도 했다.
입안에서 그 말을 굴리려니 부자연스러웠다. 평소 사용할 일 없이 불현듯 떠오른 말이라는 뜻이렷다. 검거하지 못해 비난받을 경찰을 향해 그 말을 떠올리는 것으로 위로를 보냈다.
‘차라리 나를 찾아온다면 좋겠는데.’
조용하고 으슥한 곳에서 마주치면 더 좋고.
진혁은 주먹을 꾸욱꾸욱- 쥐었다 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수록 힘이 강해진다고 느끼는 건 착각일까. 부동산 뚱뚱보부터 중학교 첫날 씨름부원, 그리고 윤성동 패거리에 이르기까지. 폭력에 몸이 반응하는 기분이었다.
‘성장기여서 그런 거겠지.’
진혁에게 얻어터진 7인방이 학교를 떠난 직후, 진혁은 아빠에게 부탁해 전교생에게 빵과 음료를 돌렸다.
당시 흔하다면 흔한 일이었는데, 물의를 일으킨 학생이 사과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델몬트 말고 피크닉 마실래!”
“소보루는 목 멕히는디-.”
“초코파이 하나랑 빅파이 두 개 교환할 사람?”
“이백 원에 쌕쌕 팔 사람?”
전교생 수가 많아 아이템을 단일화하지 못했더니 학교가 장바닥으로 변했다. 학교 곳곳에서 쿨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물물교환과 거래에 능한 민족이니 중고로운 나라나 홍당무마켓도 만든 거겠지.
진혁과 일부러 거리를 두는 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조커 대장을 연호하며 그저 뜻밖의 간식에 환호했다. 진혁은 그런 친구들이 그저 고마웠다.
소란 속에서 그렇게, 다시 평화를 찾아갔다.
‘우성이 미래는 바뀐 걸까?’
그러길 바랐다.
신우성을 위해 이 난리를 친 거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우성이 말고 한 명 더 있을 텐데.’
그 학생도 이제 괜찮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