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52화 (52/338)

# 52 < 두 호구 (2) >

***

교장실에 들이닥친 부모님은 진혁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진혁은 지은 죄가 있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충격이 적지 않았던 한유영은 진혁의 얼굴을 매만지고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손광연은 진혁의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꼼꼼히 살폈다. 신생아 검사하는 간호사보다 숙달된 솜씨였다.

“입 벌려 봐. 아- 해 봐.”

아-.

“입안도 멀쩡하네.”

입안도 멀쩡하네-.

진혁의 입속에서 아빠 목소리가 울렸다.

“머리카락 뜯긴 덴 없고?”

짧아서 머리끄덩이 잡히지도 않는데 머리카락은 무슨. 진혁은 낯을 들 수 없어 뒷머리만 쓸었다.

“아빠, 저 괜찮아요. 입원한 선배들이-.”

“선배? 이런 개 상려리 쉑덜-!”

“야! 손광연! 참아 인마!”

선배라는 놈들이 뭐하는 짓이냐며 뛰쳐나가려는 손광연을 홍기준이 허리를 끌어안아 겨우 말렸다. 다년간의 농사로 짱짱하게 단련된 손광연을 말리느라 홍기준은 팔이 끊어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형사들과 교장, 교감이 들어왔다.

‘나 수갑 차는 건가.’

진혁이 애먼 손목을 만지는 사이 강준성이 눈으로 홍기준을 찾았다.

한눈에 봐도 서울 사람 티가 났기에 알아보는 데 무리가 없었다.

홍기준과 눈인사를 한 강준성이 진혁에게 말했다.

“학생은 자리 좀 피해 주지.”

“어, 그래. 어른들끼리 얘기할 게 있으니까 진혁이는 나가 있어.”

강준성과 홍기준의 요청에 진혁 혼자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이구나.’

그래서 후회하냐고?

절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부모와 가족을 건드린 자에 대한 진혁의 분노는 컸다. 역린이라 표현할 만큼 거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짓이었다.

아이들 놀이에서조차 금을 밟으면 죽는다 이르거늘, 진혁이 정한 마지노선을 넘는 놈들임에야.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한 벌을 당당히 받을 생각이었다.

헤헤헥-.

장군이가 곁에 있어서 위로가 좀 되는듯했다.

떠돌이 개가 학교 안에 들어와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는 신기하기만 했는데, 장군이가 들어오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 장군이.’

진혁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장군이를 안았다.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군이가 연신 진혁의 턱을 핥았다.

***

진혁이 복도에 앉아 괴로워할 때, 교장실에서는 회의가 벌어졌다. 홍기준과 형사, 그리고 교감이 주도한 협상이었다. 손광연은 심경이 복잡한지 턱을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강준성이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 안에 의외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병원에도 동료 형사들이 잠복 중입니다. 윤길중이 그놈, 송탄 국빈관 사장 살해하고 도주 중인 놈이에요. 집 근처에 잠복했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습니다. 지 자식이 다쳤다는데 올지, 어떨지 두고 보죠. 혹시 모르니 학교에서는 학생들 집에 연락해서 부모들이 학교로 오도록 연락을 취해주세요. 아무래도 병원은 규모가 작다 보니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학교로는 올 거라 보는 겁니까?”

홍기준의 물음이었다. 의외의 인물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주니 반가움마저 들었다. 친구에게 시달리느라 지쳐가던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경기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형사씩이나 올 줄은 몰랐다. 혹시나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큰 처남에게 전화한 건데.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니까요. 작은 기대라도 걸어보자는 심산입니다.”

“그런데 저희한테 그런 내용을 말씀해주셔도 되는 건가요?”

이번에는 교감 선생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예, 뭐. 여기 홍 선생님이 연락 주신 것도 있고······.”

강준성은 홍기준을 가리키며 어물쩍 넘어갔고, 홍기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과 교감은 홍기준이 대단한 사람인 모양이라 생각해 더 묻지 않았다.

입고 있는 정장도 비싸 보이고, 외모만 봐도 도시에서 온 높은 사람 같았으니.

“그런데 손진혁 학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준성을 보는 홍기준의 눈이 날카로웠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그건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고소가 이루어진다 해도 관할서에서 맡아야죠.”

“그래도 의견이라도 주신다면······.”

“학교 측 처분에 맡기겠습니다만, 피해자들과 합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법이 그렇고, 법이 아니라 해도 통념상······.”

피해자라는 말에 손광연과 한유영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학생들 아닌가.

다친 학생들과 그 부모들 심정을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죠······.”

강준성이 홍기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한유영을 힐끗거리기도 했다.

“학교 측에서 신경은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 박용석이라는 학생에게 간단히 듣기만 했습니다만, 폭력 써클 조직, 음주, 흡연, 금품 갈취, 상습 폭행······, 여기 어머님이 계셔서 말은 못하지만 입에 담지 못할 범죄까지 다양합니다. 여기 홍 선생님께서 부탁하셔서 제가 문제를 키우지는 않겠지만, 죄질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높은 분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학교에도 좋진 않을 거 아닙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교장은 눈을 꿈뻑였고 눈치 빠른 교감은 재빨리 반응했다. 그 높은 분이라는 사람은 분명 홍기준과 관계있는 사람이리라. 학부모가 아닌데도 동행한 것도 그렇고, 형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는 점을 봐도 의심할 만하지 않은가.

“모두 전학 시키겠습니다. 그 학부모들께도 통보하겠어요.”

“제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시는 게 학교를 위해서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애들 누구나 한때 방황한다지만 얘들은 방황이라는 말로 변호가 안 됩니다. 그냥 범법자예요.”

“예. 교육청에 보고하고 각각 다른 학교에 전학 보내는 쪽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안 되면 퇴학이라도 시키겠습니다.”

교감은 손광연과 홍기준을 향해 들으라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교육청이라는 말에 교장이 흠칫 놀랐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감이 저러니 말릴 수도 없었다. 교장은 곧 정년퇴임이지만 교감은 다음 교장을 노릴 사람 아니던가.

지 앞날 지가 조지겠다는데 뭐.

“저, 그런데요.”

듣고 있던 한유영이 조심스럽게 시선을 끌어모았다.

“어쩌다가 싸움이 난 건가요?”

엄마로서 연약하고 순한 양 같던 아들이 왜 갑자기 폭력 시비에 휘말린 건지 궁금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 않는가. 진혁에게 설명을 들으면 아들 편만 들 것 같았다. 당사자가 아닌 객관적 입장에 있는 사람의 증언이 듣고 싶었다. 그래서 진혁에게 잘못이 있다면 단단히 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장과 교감이 머뭇거리는 중에 강준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어머님 욕을 했-.”

“내 이 개상려리 새끼들을 확-! 어디 감히 우리 자기를!”

“아이고 아버님!”

“아이고 선생님!”

“야 인마!”

테이블의 재떨이를 들고 급발진하는 손광연을 말리느라 홍기준과 강준성, 교장과 교감까지 나서야 했다.

유진이를 안고 있던 한유영은 남편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대부분의 농사일에 인부를 투입한다지만 농사꾼 손광연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네 명의 남자는 손광연에 의해 질질 끌려가다가 문 앞에서 겨우 멈춰 세웠다.

강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런 소 같은 사람의 아들이니 그 학생도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여럿을 때려눕힌 거겠지.

***

서울로 올라가기 전, 홍기준은 진혁을 따로 불렀다.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에 홍기준과 앉으니 진혁은 기분이 묘했다.

‘왠지 익숙하다.’

가끔 라운딩에 나설 때면, 홍기준 회장은 골프장 그늘집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인자하게 웃곤 했다. 회의를 할 때도, 함께 차에 탔을 때도 진혁에게 유독 친밀감을 보였다. 그래서 더 어색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유독 진혁에게만 그랬으니.

‘나를 그렇게 대했던 건 친구들 정도였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빠가 진혁을 볼 때와 비슷했다. 그때마다 진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홍기준의 시선을 피하곤 했다.

‘편하게 해주시려 그랬었나 봐.’

너무 늦게 깨달았으나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오너라 불리는 보스 중의 보스였으니까. 업무상 필요한 말이 아니면 꺼내지 않던 성격은 여전히 제 목을 조였다.

진혁은 홍기준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젊은 홍기준이 엷은 미소를 띤 채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축구를 하는 중학생들, 그네를 타는 여고생들, 밧줄을 타고 튜브를 당기는 씨름부원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올 터였다.

“좋구나. 에너지가 넘쳐.”

홍기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 냄새는 좋았으나 소나기가 오려는지 흐린 하늘이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홍기준의 얼굴이 어두웠다.

“흐음-.”

홍기준은 하늘을 보며 콧소리만 냈다.

“흐음-.”

콧소리가 나올 때마다 진혁은 숨을 멈췄다.

‘누가 나 좀 안 구해주나.’

사고를 치고 교장실에서 대기할 때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부모님은 다른 학생들의 부모와 면담 중이다. 학부모들 외에도 어디선가 관용차가 들어와 정장 입은 사람들과 제복 입은 사람이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누굴까. 그 사람들은.’

홍기준과 함께 앉았다는 불편함을 잊으려 진혁은 그들이 누군지, 왜 왔는지 추측해보려 했다. 나름의 짱구 굴리기였다.

흐으으음-, 콧소리가 길어졌다. 드디어 홍기준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응시한 채.

“진혁아.”

“예.”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듣기도 했고, 네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할 마음도 없다.”

잠자코 들으려니 홍기준의 손이 진혁의 손 위에 얹혔다.

진혁이 경험한 바 있는 온기였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네? 훼방꾼 손광연 없을 때 들어나 보자. 뭐가 될 거니.”

“평-.”

“평범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넵.”

진혁이 급히 입을 닫았고, 홍기준은 웃음을 흘렸다.

“요즘도 한문 시간에 그런 말 배우나?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라고 하잖아. 재능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살고자 해도 세상이 가만히 두지 않는 법이다.”

진혁의 손을 쥔 홍기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과 평범하게 산다는 게 같은 말이 될 수는 없지. 이 아저씨도 처자식과의 시간을 소중히 하고 있다. 친구와 친구 가족과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소셜- 아, 사회적 위치에 따른 기대를 외면하지는 않아.”

이래라저래라 안 한다더니.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행동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던가. 그래도 진혁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니까.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마 욕을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놈이 평범하다고 볼 수도 없고.”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때려눕히긴 했지만 두들겨 패지는 않았는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진혁은 괜히 억울하고 머쓱해졌다. 홍기준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뺨을 긁었다.

“널 탓하려는 마음은 없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생기는 거지. 가족을 아끼는 마음도 예쁘고, 튀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기특하지만, 나는 네가 평범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음, 그래.”

웬일로 진혁이 말을 끊고 들어오자 홍기준이 반색했다. 몇 년을 봐왔지만 손진혁이라는 놈은 먼저 뭔가 말하는 일이 없었으니.

“저는 평범하지 않아요.”

존재 자체부터 사고방식까지 또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없다.

힘도, 스피드도. 전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스스로 둔하다 한들 초인적인 능력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둔하다는 말도 고통에 둔감하고 적응이 빠르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좀 멍청해지긴 했어.’

두뇌 회전과 지능은 좀 낮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교과서를 암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예전보다 오래 걸리는 느낌이다. 뭔가 추론하는 데에도 잡음 섞인 라디오처럼 머릿속이 너저분했고, 전생의 기억이 뚜렷하지도 않으니까.

아무튼.

“제 꿈은 평범하게 사는 거 맞아요. 몇 번을 물어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저승 문턱에서 물어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평범한 삶은, 능력을 숨기고 살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운동할 때도 흐트러지지 않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말을 급하게 한 탓이었다.

진혁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에요. 사람이라면 대개 누리는 일상을 원한다는 뜻이었죠. 제게는 가족이 가장 소중해요. 친구도 중요하고요. 그걸 해치거나 제게서 빼앗으려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뿐이에요.”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많다. 진혁도 그중 한 명이었고.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의 평화를 깨는 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날 밤, 차 안에서 홍기준 회장이 물었었다.

- “자넨 꿈이 있었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진혁은 이제야 내놓았다.

진혁은 용기 내어 홍기준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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