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51화 (51/338)

# 51 < 두 호구 >

***

진혁은 혼자 교장실에 앉아 있었다.

교내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지 못하고 경험도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안 배웠는데.’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뉴스에서나 접했던 학교폭력 아닌가. 그 당사자가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진혁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태양군에는 경찰서도 없다. 읍내에 파출소만 두 개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해양경찰서가 있지만 그들 관할은 아니고.

범죄와의 전쟁은 도시의 일이었다.

치안 인력이 부족해 자율방범대가 야간 순찰을 도맡을 정도였으니, 인접 도시와 연결한 도로가 없다면 섬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었다. 그런 점을 노리고 살인이나 각종 강력범죄자가 뱃사람으로 위장해 숨어들며 일부 어촌 마을은 민심이 흉흉해지는 한편으로, 체포를 피해 폭력 조직원들이 흘러들어오며 일시적으로 어촌에 건장한 일손이 늘기도 했다.

아무튼, 진혁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참았어야 하나.’

호르몬 때문인가, 아니면 과거로 돌아오며 인성에 문제가 생긴 걸까.

숨을 쉬지 못하다가 이빨을 토해내며 겨우 숨을 쉬던 윤성동이 떠올랐다. 코가 뭉개지고 이빨이 사라진 얼굴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는데, ‘아빠’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빠를 찾는 걸 보면 열일곱 살도 애는 애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사실 자신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고민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고를 쳤고, 사고를 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고 배웠다. 몸뚱이만 미성년자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 욕하는 놈은 용서하지 않아.’

진혁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리 난리를 치고도 주먹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채규호가 걱정할 텐데, 신우성, 이승훈 이놈들 공부 땡땡이치는 거 아닐까.

그 와중에도 친구들이 생각나는 걸 보니 스스로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퇴학당하려나?’

검정고시는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참에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약간 불편한 마음과 별개로 한구석에 호기심이 일었다. 놀라울 만큼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다만, 부모님 생각에 어두워지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 아빠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잡히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였다.

드르륵-.

교장실 문이 열리며 교감 선생이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있던 진혁이 엉거주춤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어, 앉아. 앉아.”

교감이 맞은편에 앉았다.

제법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어둡거나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다친 덴 없고?”

“예. 죄송합니다.”

“아니다. 알면서 막지 못한 학교에 책임이 있는 거지. 그래, 얼마나 뺏겼기에 폭발한 거냐?”

교감 선생은 뭔가 오해를 한 듯했다.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닌데.

잠시 머뭇거리자 교감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이 워낙 입단속을 잘 시켜 놔서 말이야. 제보조차 들어오지 않았어. 그런 짓을 하는 걸 이 교감 선생님이 우연히 발견했는데 인력도 마땅치 않고.”

마치 학교 입장을 변호하려는 말처럼 들렸지만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름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학생은 천 명이 넘는데 교사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

중학교는 선도부도 없다. 있다 해도 계도 목적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테고. 선도부랍시고 힘자랑하고 다니지 않으면 다행이지.

“누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는지도 중요해. 머릿수도 적은데 네가 먼저 도발했을 거라는 생각은 않는다. 왜 싸웠는지도 확실히 파악해둬야 하고. 교감 선생님에게 말해주면 좋겠구나.”

그 새끼가 20년 후에 우성이를 죽인단 말이에요! 진혁은 외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아닌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조사로 밝혀질 내용이니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싸우게 된 건, 채규호에게 일수를 찍으려고 했더라고요. 저희 반 부반장이고 제 짝꿍입니다. 저는 그걸 말리러 갔다가 선배들이-.”

진혁은 잠시 입술을 축였다.

선배라고 부르려니 욕지기가 올라와 속이 영 좋지 못한 탓이었다.

“말리러 갔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여럿이서 제 옷을 잡아끌어서 일단 따라갔습니다.”

“흠······, 이놈들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는.”

교감 선생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확신도 깃든 얼굴이었다.

“윤성동이 먼저 제 이마를 툭툭 건드리긴 했는데요. 엄마 욕을 하기에 저도 모르게.”

“엄마 욕?”

그때를 생각하며 진혁이 이를 꽉 다물었다. 턱과 광대근이 도드라졌다.

교감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혹시 경찰에 아는 사람이 있니?”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감의 표정을 살피면서였다.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교감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진혁으로서는 교감의 질문 자체가 의아했다. 단순히 경찰에 재직 중인 지인이 있느냐는 물음으로 들리지 않았기에.

‘경찰이 어떻게 알고 와?’

***

고등학교 교실에도 소문이 퍼졌다.

최태양이 있는 3학년 7반도 마찬가지였다.

“야야! 소문 들었어? 중학교에서 패싸움 났대!”

“패싸움? 몇 대 몇?”

“하이고-, 좋을 때다. 젊은 놈들이라 힘이 넘치는구먼!”

“아-, 구경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가정법 과거 완료!”

“영어로 해야지 미친놈아!”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라고 정신상태가 멀쩡한 건 아니다.

책상에 나란히 엎드려 잠을 청하던 최태양과 박만수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삽시간에 교실이 시끌벅적해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열아홉, 운동부 선수들은 운동량에 비해 휴식이 부족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장을 돌고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데다 수업까지 들어야 했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열아홉 남자아이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칠 대 일인가, 팔 대 일인가.”

“한 명? 아이고 많이 다쳤겠다.”

“난리도 아녀. 구급차 한 대로 부족했댜. 형사도 왔다던디?”

“한 명인데 구급차가 왜 부족해?”

한 명? 그건 패싸움이 아니잖아.

관자놀이가 찌릿거리는 감각에 최태양이 고개를 들었다.

그 미간이 와락 일그러져 있었다.

다정하고 은근한 말투로 친구를 불렀다.

“야, 거기 너.”

“응? 아아-. 태양아 미안. 시끄러웠지?”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울룩불룩 불거진 최태양의 상완이두근을 보며 동급생이 쭈뼛거렸다.

최태양이 할 말을 찾아 고민할 때, 박만수가 입을 열었다. 머리가 무거운지 여전히 팔에 얼굴을 기댄 채 옆으로 돌리기만 했다.

“그 한 명 이름이 뭐냐?”

“이름은 모르는데 중학교 1학년이라던데······.”

그때, 다른 친구가 대단한 발견을 한 듯 외쳤다.

“손 뭐래!”

박만수가 최태양의 어깨를 짚어 다독였다.

신경 끄고 잠이나 자자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최태양이 다정하게 으르렁거렸다.

“야, 서태지 노래 좀 작작 틀어라. 신승훈 없냐?”

잠잘 땐 발라드가 좋다.

두 거구가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

구급차 부족할 만하네. 중얼거리며.

최태양이 잠꼬대하듯 웅얼거렸다.

“박만수가 일곱 명 있어도 진혁이는 못 당하지.”

“최태양 일곱이면 가능하고?”

“음, 일단······ 씨름으로는 안 돼.”

키는 곧 따라잡힐 거 같고, 나이로는 이길 수 있겠다. 어허허- 최태양이 빙구처럼 웃었다.

킥킥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거구의 어깨가 들썩였다.

***

이병세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이병세의 바람을 외면하듯 경찰서에서 형사가 온 까닭이었다. 파출소도 아니고 경기도의 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피해자나 가해자 조사도 아니고 현장에 있던 학생을 보자며 박용석을 조사했다.

“네가 박용석이니?”

“예? 예, 예.”

박용석이 덜덜 떨며 대답했다.

학생상담실에서 강준성 경위가 박용석과 마주 앉았다.

학생의 임시 보호자로서 이병세가 동석했다.

“아는 대로 말해볼래?”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박용석은 강준성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정보를 토해냈다.

“그 형들은 써클하는 형들인데요, 후배들 맷집 키운다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집합시켜서 때리고요. 그래서 저도 고막이 한 번 나갔었고요. 일주일에 담배 한 보루랑 소주 열 병씩 바쳐야 하고요. 써클 이름은 식스틴인데요, 식스틴이 무슨 뜻이냐면 숫자 십육이란 뜻이거든요? 군인 총 애무십육할 때 그 십육이요. 근데요, 그래서 그 형들이 일곱 명인데요. 1반 반장네 집이 존나 부자라고 작업한다고, 사전작업인가? 그거 한다고 그 짝꿍한테 일수 찍기로 해서 저한테 찍새를 시켰거든요? 그렇게 하면 2만 원 준다고 했는데 저 돈 아직 못 받았거든요? 근데 성동이 형은 1년 꿇은 사람인데요, 그래서 저보다 세 살이나 많거든요? 자기 아빠가 조폭인데 사람도 죽였다고 말 안 들으면 아빠 시켜서 죽인다고 겁줬거든요? 으으허허헝-.”

박용석은 마치 숨을 쉬지 않는 생명체 같았다. 숨 쉴 새 없이 말을 잘도 쏟아냈다.

강준성이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았다.

“아무도 너 못 죽이게 할게. 울지 마라. 그런데 싸움은 어쩌다 난 거냐?”

“일 반 반장 짝꿍한테 수금하러 갔다가- 억! 억! 성동이 형이 일 반 반장 엄마 욕하다가 존나 처맞았- 억! 억! 맞아도 싸직! 으헉! 억! 억! 저 깜빵 가요? 억! 억!”

박용석은 평정심을 잃고 울음과 말을 섞어서 토해냈다.

“하하하-! 깜빵을 왜 가 인마?”

“깜빵 가야하거든요? 으헝헝-.”

“왜?”

“저승사자가- 저 죽일려고 으엉-어헝-.”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보다 못한 이병세가 나섰다.

“형사님, 죄송헌디 학생이 충격을 좀 받았네요. 안정을 좀 취헌 다음에 다시 면담을 허시는 게-.”

“예. 필요한 얘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 기록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예, 따라오시죠.”

이병세는 다른 교사로 하여금 박용석을 돌보도록 한 후 서무실로 앞장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형사기동대에서 왔을까.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조용한 태양군인데.

한때 경찰을 지망했던 이병세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그저 강준성이 교육청에 언질을 주지 않기를 바랄 뿐.

‘근디 워치게 알고 두 시간도 안 돼서 왔지?’

유식한 말로 일일생활권이라 이거여?

학교에서는 신고한 사람도 없다는데 너무 빠르지 않은가 말이여.

***

진혁의 집에서는 홍기준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고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전하기 마련이었으며, 법대로 처리하면 그만인 성인 간의 문제보다 청소년 문제가 골치 아픈 법이었다.

‘나도 곧 사장 달 몸인데, 촌구석에서 따까리 노릇이나 하다니.’

동네 호구도 아니고 이 무슨. 거푸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친구의 곤란을 외면할 수 없지. 내가 도와주마.

손진혁이 당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못된 놈들을 참교육을 할 생각이었다.

“제수씨, 여기 물부터 한 잔 드세요.”

사시나무처럼 손을 떨다가 냉수를 두 컵이나 들이켜고 나서야 한유영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진혁이가 애들한테 맞았나 봐요. 담임 선생님이 울면서 전화가 왔는데-. 으으흑-.”

다시금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제수씨 진정하시고요.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야! 손광연! 칼은 뭐하려고!”

“눈에 안 넣으면 아픈 내 새끼를! 이런 개 상려리 자식들을 내가-!”

저놈이 뭐라는 거야! 울음을 터뜨리며 부엌에서 칼을 찾는 손광연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그다음 홍기준은 학교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 군데에 전화를 넣었다.

‘손진혁 이놈.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거냐.’

한유영이 무너지기에 폭행이라도 당한 거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홍기준은 손광연의 주머니까지 뒤져 흉기가 없는지 소지품을 검사했다.

“주머니에 자갈은 왜 넣어 인마!”

“그거 심심할 때 물수제비 하려고 지니고 다니는-.”

“웃기고 있네!”

도대체 어떤 남자가 주먹만 한 자갈을 바지 주머니에 소지하고 다닌단 말인가.

자갈을 연못에 던진 홍기준이 한유영을 진정시켜 차에 태웠다. 한유영은 그나마 딸을 안으니 진정되는 모습이었다.

홍기준이 운전에 집중하며 말했다.

“제수씨, 진혁이 다친 데 없고 교장실에 있대요. 일단 학교로 갑시다.”

“네. 감사합니다.”

“이 개 상려리 새끼들이 우리 아들을-. 어이구흑-.”

“진혁이 다친 데 없다고 인마!”

제 자식이 관련된 일이니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쳐도, 이 친구는 너무 감정이 격하지 않은가. 와이프보다 더 심성이 여리다. 정작 다친 건 다른 학생들이라는데.

잠시 차를 세운 홍기준이 뒷좌석에 앉은 친구와 친구의 아내, 그리고 딸을 돌아보았다. 손유진은 엄마 무릎에 앉아 방글방글 웃고 있었고, 손광연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홍기준의 시선을 외면하는 걸 보니 정신이 든 듯 보였다. 친구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였으니 창피하겠지.

다시 출발하기 전, 조수석을 본 홍기준은 이를 아득 깨물었다.

‘아, 짜증나.’

개는 도대체 언제 탄 거냐.

유세라 전용석에 장군이가 앉아 있었다.

천하의 홍기준이 치킨 한 마리 얻어먹고 별꼴을 다 당한다.

헤헥-.

사람 속도 모르고 장군이가 해맑게 웃었다.

차는 역시 벤츠지.

개보다 더 눈치없는 손유진이 전방을 가리키며 힘차게 외쳤다.

“출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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