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50화 (50/338)

# 50 < 사고 쳤어요 (3) >

***

윤성동을 처음 봤을 때, 진혁은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본드나 부탄가스.’

표백 작업을 거친듯한 광택 없는 흰자위에 선명하게 돋은 실핏줄, 제대로 살이 낀 눈동자까지.

어찌 자신이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자연스럽게 통찰하는 현상도 있는 법이다. 이지와 오감이, 그리고 오감을 뛰어넘는 육감이 판단을 도왔다.

게다가 진혁은 환각물질을 상습 흡입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매일 보고 살 때가 있었다. 진혁보다 일곱 살 많은, 이모의 첫째 딸 황가윤이 그 주인공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

결국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는 건가. 신우성을 핑계로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윤성동을 책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난 감상적인 인간이 못 되어서 말이지.’

전국구 깡패 아버지를 믿고 어려서부터 탈선을 일삼는 녀석이 갱생하기를 기대할 정도로 진혁이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벌어진 일을 매조지기 위해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3학년생 일곱 명과 1학년 박용석까지, 여덟 명에 둘러싸여 보조 운동장으로 나섰다. 학기초 씨름부 소속이었다가 제명당한 녀석들도 있었다.

진혁은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자신을 에워싼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놈의 자식들 많이도 몰려왔네. 빠구리에 장사 없다 이건가?’

다구리였나······.

두 단어 모두 바른생활 사나이 손진혁이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의문도 아니다.

뭐가 맞는 말인지 미간을 찡그리고 엉뚱한 고민을 하는데, 윤성동이 검지손가락으로 진혁의 이마를 쿡쿡 밀었다.

“어이, 으이-.”

윤성동의 입에서는 본드 냄새인지 술냄새인지 모를 악취가 풍겼다. 정확히는, 분해가 덜 된 아세트알데히드 냄새에 가까웠다.

시큼하고 고약한 악취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윤성동이 침을 찍 뱉고 건들거렸다.

역시나 제법 다리를 떨어본 솜씨였다. 도대체 다리는 왜 떠는 걸까.

“이 새끼야, 느 아무리 잘났어도 선배님 거룩한 사업을 방해하면 못쓰지이-.”

선배님, 시발 후배들 상대로 돈놀이하시는 분이 혓바닥이 무척 기시네요. 속으로 그리 이죽거리며 진혁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윤성동을 노려보는 채로.

여유 부리던 윤성동이 얼굴을 볼썽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이 새끼가 웃네?”

십새가, 저도 웃으면서 괜히 지랄이네. 웃을 자유가 있는 나라 아니었나?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이 꼬리를 내린 모습으로 비쳤을까.

윤성동이 한숨을 푹 쉬며 누그러진 목소리로 훈계하듯 말을 꺼냈다.

“세상이 무협지도 아닌디 우덜이 느 새끼 헛소문인 것도 다 알고 있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아, 씨름부와 부딪쳤던 사건을 말하는 건가 보다. 그때 현장에 있던 녀석들도 있는데 헛소문이라니, 쟤들 눈은 개눈깔인가.

부정확한 발음과 걸핏하면 뱉어대는 침 때문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진혁은 자신과 키가 비슷한 윤성동을 쥐어박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기왕이면 기회를 주고, 대화로 해결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역겨운 기분을 겨우 참고 나지막이 말했다.

“한 번만 경고할게. 그거 하지 마.”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느물거리던 윤성동과 일행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윤성동이 이내 이죽거렸다.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구기면서였다.

“함 븐만 경고하께-, 그거 하이 마아-.”

우히히히히힉-.

윤성동을 비롯한 녀석들이 시실시실 웃었다. 그 모습이 나사 빠진 좀비 같았다.

진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텄네.’

대화로 해결해보려던 진혁 최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비뚤어진 웃음으로 무장한 윤성동이 어깨로 진혁의 가슴을 툭툭 밀었다.

수적으로도 우세한 데다 자신과 친구들은 경험도 많다.

눈앞의 손진혁이 제법 분위기가 있지만 어린놈을 상대하는 법은 쉽다.

속을 뒤집는 비웃음과 섬짓한 눈빛, 그리고 욕설 한마디.

이성을 잃고 먼저 덤비면 오히려 고마울 일이다.

몸에 익은 대로, 늘 해왔던 대로 윤성동이 욕탄을 장전했다.

이 한마디면 눈앞의 1학년은 깨갱하리라.

그리 생각한 윤성동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찰나였다.

“야이 씹쌔끼야, 느 에미 보-.”

꽈작!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호랑이처럼 상체를 튼 진혁이 팔꿈치로 윤성동의 턱을 날리는 모습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감히!’

진혁 앞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입에 담은 대가는 컸다.

윤성동의 명치에 주먹이 꽂혔다. 반사적으로 놈의 몸이 숙여졌다.

진혁은 쓰러질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옆구리에도, 인중과 턱에도 묵직하게 주먹을 올려쳤다. 갈빗대가 푹 꺼지고 잇몸이 내려앉고 턱뼈가 깨지는 느낌이 주먹을 따라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숙인 뒤통수를 팔꿈치로 찍었다.

그제야 쓰러질 자유를 얻은 윤성동이 풀썩 엎어졌다.

“끄으-.”

불과 한 호흡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코와 입에서 흐른 피가 흐르고, 부러지고 생으로 뽑힌 치아가 흙바닥을 굴렀다.

윤성동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처럼 꿈틀거렸다.

진혁이 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역시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다.’

진혁답지 않은 행동이었음에도 호흡은 차분했고 의식은 또렷했다. 부동산 뚱뚱보의 멱살을 잡았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터였다.

‘혼란스럽다.’

힘이란 사용할수록 무감각해지는 것인가. 이전에 폭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본 경험이 없는 진혁으로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런 씹!”

“어우! 죽을라고!”

아주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윤성동 무리가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차라리 이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한 명쯤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진혁은 누굴 쫓아가서 때릴 마음이 없으니.

‘그래, 이미 벌어진 일. 다 와라.’

진혁이 상체를 숙이는 듯하더니 다리 하나가 뒤로 쭉 뻗어 나갔다.

뒤에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턱을 맞은 녀석의 머리가 크게 젖혀졌다. 덜컥 소리와 함께였다.

백 허그를 시도하던 녀석은 업어치기로 꽂아버렸다. 낙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지 허리부터 떨어졌다.

프런트킥을 날리려던 녀석은 디딤발에 로우킥을 맞고 단단한 땅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제법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보조 운동장은 보수를 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단단했다.

그러나 진혁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지면에 의해 2차 충격을 당하며 널브러지는 녀석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뼈를 부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주먹을 통해 갈빗대가 뿍, 들어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살살 쳤는데 이상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맞는 공포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괜찮아, 아직 성장기니까 금방 나을 거야.

내면의 목소리가 충돌하는 와중에도 진혁의 주먹과 발은 쉬지 않았다.

내 눈앞에 누구도 서 있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듯, 모조리 쓰러뜨리고 나서야 진혁은 우뚝 멈춰 섰다.

오직 한 명, 다리가 풀려 스스로 주저앉은 박용석만이 진혁이 넘어뜨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박용석은 동공이 풀려 아래턱을 달달 떨었다. 귀신이라도 본듯한 표정이었다.

진혁은 윤성동 패거리를 눈으로 훑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져 애벌레처럼 꿈틀댈 뿐, 더 달려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박용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너. 내가 오라고 했을 때 왔어야지.”

“어버버-. 내가 요, 용서를 잘못해서-.”

뭐라는 거야. 한 대 쥐어박으려던 진혁의 의도는 한숨과 함께 사라졌다.

박용석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공포에 의한 반사작용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후우- 거푸 한숨이 나왔다.

부모님과 함께 동생 얼굴이 아른거린 탓이었다. 한 조각 남은 분노가 사그라들며 그제야 현실을 온전히 자각했다.

‘이러라고 과거로 보내준 건 아닐 텐데.’

괴로운 심정이 되어 신경질적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멀리서 교사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고 제대로 쳤네.’

***

진혁의 담임교사 김선숙은 목소리가 가늘다.

눈을 감고 들으면 어린아이 음성처럼 들렸다. 왕방울만 한 안경을 쓰고 수업을 하자면 학생들로 하여금 ‘선생님 귀여워요’를 연호하게 만드는 교사였다.

교대 졸업 후 2년 만에 담임을 맡았기에 여러모로 서툴렀지만, 반장인 손진혁 덕분에 아이들이 반항하거나 맞먹으려 들지 않아 내심 고마웠다.

친근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 재밌는 수업을 위한 고민과 연구도 쉬지 않았다. 학급 시험점수도 잘 나와 기분이 좋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으흠흠-. 오늘은 벼락의 원리에 대해서 재미있게 설명해 볼까?”

애들이 궁금하다는데 선생님으로서 알려줄 의무가 있지.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 준비를 하던 김선숙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김선숙 선생! 당신네 반장이 패싸움을 벌였다는데?”

“머머머, 머라고요?”

분명히 한국말인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녀가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패싸움이 벌어졌고, 자신이 맡은 반 반장이자 최고 우등생이 거기 휘말렸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손을 벌벌 떨었다.

“머머머, 멀 해야 하지?”

“집에는 아직 연락하지 마. 조사부터-.”

“네, 네. 집에-. 감사합니다.”

담임교사의 역할을 알려주는 고마운 동료다. 집에 연락해서 조사부터 하는 거구나!

심호흡을 하고 진혁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진혁의 어머니일 거라 생각되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김선숙은 그때까지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지지지, 진혁이네죠?”

안녕하세요, 라고 해야 하는데 안녕하실 내용이 아닐 때는 뭐라고 인사해야 할까. 이런 건 사범대에서 못 배웠는데.

- 어디시죠?

고맙게도 전화기 건너편에서 질문을 던져줬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대화의 방향을 잡아주는 이는 얼마나 고맙던가.

“하, 학교인데요.”

- 어머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목소리가 예쁘셔서 아이가 장난전화 건 줄 알았어요. 인사도 한 번 드려야 하는데 찾아뵙지도 못했네요.

옳거니.

“마침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진혁 어머님.”

아뿔싸.

선생이라는 게 이딴 식으로 말해도 되는 걸까.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왜 이리도 모자란 인간이란 말인가.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으흐흑, 진혁이가. 글쎄 진혁이가요오-. 패싸움이 진혁이를. 으흐흐흑-.”

언제 왔는지 잠자코 듣고 있던 이병세가 인상을 구겼다.

신경질적으로 김선숙의 전화기를 낚아챘다.

“저어-, 아드님은 괜찮습니다만, 학교에 오실 수 있으신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병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보나 마나 진혁의 모친도 충격을 받았을 상황 아닌가. 엄청나게 오해를 하고 있을 텐데. 패싸움이라는 말에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군수도, 국회의원도 인사를 하러 가는 지역 유지가 진혁의 아버지라고 했다.

“하아-, 씨이.”

학교에 경찰이 오면 교육청에도 보고가 올라갈 테고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거푸 한숨이 나왔다. 당황감이 가라앉으며 그제야 현실이 뇌리에 자리 잡았다. 당연한 궁금증도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한 놈이서 무슨 수를 썼기에.’

현장에는 그 흔한 대걸레도 없었다. 웬만한 고교생보다 체격이 좋고 운동능력이 좋다곤 해도, 윤성동은 뒷배 믿고 설치니 학교에서도 어쩌지 못하던 놈 아닌가. 게다가 씨름선수였던 녀석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하릴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병세가 젊은 남자 교사를 불렀다.

“그놈들 어떻게 됐어?”

“전부 병원에 실려갔어요. 여기 박용석이만 멀쩡해요.”

“그게 멀쩡한 거여?”

침을 흘리는 것 같은데?

수족구병 걸린 어린애처럼.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확인한 거여?”

내가 가봐야겠다.

명색이 육상부원이 엮인 사건인데 모른 척할 수 없지.

“중앙정형외과요.”

“아, 그 돈만 밝히는 돌팔이······. 어우 씨-.”

되는 일이 없다.

이병세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었다.

두 거물의 아들이 충돌한 개교 이래 최대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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