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 새로운 미래 (3) >
「11.35」
관중석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서로 다독이는 아빠와 김영태 선생이 보였다. 그 유쾌한 연출에 진혁이 씨익 웃었다.
‘허헛. 그렇게나 좋으실까.’
혼자 남겨졌을 때도, 부모님을 구한 후에도. 주야장천 뜀박질만 하며 살아있다는 기분을 만끽했었지. 그 집착이 이렇게 결실을 맺는다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게 단거리 맛이구나.’
짧은 순간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후의 쾌감이 단전을 달궜다.
이주근은 의자에 앉은 채 끝내 인상을 찡그렸다. 입이 뻐끔거리는 걸 보니 욕설을 뱉는 것 같았다. 공주에서 함께 온 아이들이 잠시 코치 눈치를 살피다가 진혁에게 달려와 축하를 건넸다.
“와-! 너 진짜 잘 뛴다.”
“축하해!”
진혁은 아이들과 한차례 얼싸안는 것으로 인사를 나눴다.
허리에 피로가 몰려오고 가슴이 제멋대로 들썩였다.
“휘유우- 힘들다.”
허리에 손을 얹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100미터를 달리고 이렇게 힘들었던 순간이 있던가. 그만큼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뜻이었다. 넓은 상체가 맞바람의 저항을 크게 받기도 했고.
시상식은 경기 직후 이어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시상대로 이동했다.
선수 이름과 기록을 확인 후 메달을 걸어주는 것이 곧 시상식이었다.
“히야-, 니 또 신기록이네-?.”
진혁의 목에 금메달을 걸며 진행요원이 빙글빙글 웃었다.
진혁은 어제 멀리뛰기에서도 신기록을 세웠음을 상기했다. 흥이 나지 않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악수나 함 하자.”
“고맙습니다.”
“하-, 짜슥. 덤덤-한 거 보이 크게 될 놈이네.”
무표정한 얼굴이 진행요원에게는 패기로 비쳤다.
*
손광연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카메라로 아들의 모습을 담았다.
‘장하다, 우리 아들.’
눈을 강하게 끔뻑여 눈물을 떨구면서였다.
주위에 앉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하하! 쟤가 우리 아들이예요.”
“하이고- 억수로 빠릅니데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거센 억양의 남자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혁보다 손광연이 축하를 훨씬 많이 받았다.
오늘 경기는 끝났다.
진혁은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 아빠가 계신 관중석으로 향했다.
‘김영태 선생님은 가셨구나.’
이틀 이상 머무는 것도 무리하는 거라고 했었지. 이제야 사람 사귀는 재미를 알게 됐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아빠랑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옛 기억을 더듬어 아빠와 함께 먹은 돼지국밥이 너무 맛있었다.
‘오늘은 아빠랑 막창 먹으러 가야지.’
선수단과 어울려야 하는데 진혁을 찾는 사람이 없어 택한 결정이었다. 진혁으로서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탈이었다.
‘고마 배 째라카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이 진혁의 등에 걸려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
4일차.
오늘도 역시나 직선주로에는 맞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러나 태풍 속에서도 달리는 진혁에게는 실바람일 뿐이었다.
200미터에서도 신기록을 달성했다.
「23초 17」
정장 차림에 하얀색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장내 식순 안내와 사회를 맡은 진행요원이었다.
[······ 장내에 계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어제에 이어 금일도 트랙 경기에서 한국 신기록이 나왔습니다. 종전 기록을 크게 단축하는······.]
짝짝짝- 바람 소리를 뚫고 박수 소리가 퍼졌다.
공식 기록을 측정한 이래 최초의 23초대 기록이었다.
2위로 들어온 선수와 1초 이상 차이가 났다.
“야아, 이거 한 30년 동안은 깨기 힘들 것 같은데?”
경기기록관 장연배가 혀를 내둘렀다.
어동초등학교라기에 육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학교인 모양이라고 생각은 했다. 한데 그 학교에서 온 관계자도 없었다. 실상이 그러하니 어디 박혀 있는 학교인지 아는 직원들이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충남 대표로 발탁되어 연고도 없는 지역의 학생들과 함께 온 선수라고 했다.
“신기하네. 마지막에 힘을 아끼는 것 같더라고.”
“그건 아닐 거야. 국민학생은 200미터 기록이 100미터의 2배수 이상 나오는 법이야. 체력 때문에.”
장연배의 설명에 동료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나라 기록은 어때?”
“서울 가서 확인해봐야겠어. 경기기록부 박흥식 과장님이 아실 거 같은데. 그 양반은 육상에 환장하는 분이니까.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 칼 루이스 나오는 거 아냐?”
“에이, 우리나라는 틀렸어.”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겠으나 기초체육은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종목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조금만 발이 빠르고 키가 크다 싶은 선수는 야구나 축구 등 돈 되는 종목으로 빠져나갔다.
오죽하면 아시안게임 단거리에서 금메달만 따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스포츠 영웅 대접을 할까. 그런 나라에 칼 루이스는 무슨.
“아무튼 대단하긴 대단한 기록이야.”
장연배가 과거 기록을 들추며 한 번 더 강조했다.
체계적으로 기록을 시작한 1985년 이래 23초대를 기록한 것도 처음이었고, 24초 09였던 기존 최고 기록보다 0.71초나 빨랐다. 이 녀석은 무슨 종목으로 가려나? 축구든 야구든 다 잘하겠지.
“그런데 기자들이 안 보이는 거 같지 않아?”
“대회 끝나고 보도자료만 달라고 했다더라.”
“별일이네? 출장 와서 사진 몇 장 찍으면 하루 꽁으로 먹을 텐데?”
“모르지 뭐. 다른 대회 많으니 거기로 갔는지. 주 기자가 슬쩍 흘리기로는 거물이 이쪽 대회는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압력 넣었다는 말도 있다더라.”
“거물? 누가?”
“모르지. 기자들한테 거물이 정치인 아니면 광고주밖에 더 있겠어?”
장연배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기자들 생리를 모르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동료가 무심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촬영 나온 곳은 저기 두 군데가 전부인 모양이야.”
방송용 카메라 앞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선수가 보였다. 카메라 앞에 서본 경험이 많은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장연배가 다시 한 번 신기록으로 눈을 돌렸다.
“휘이-. 기록 대단하다. 이건 누가 깨려나.”
체크하지 못한 요인도 있었다. 풍속이 아직 기록되지 않던 시절, 진혁이 바람을 안고 뛰었다는 기록은 끝내 남지 않게 되었다.
곳곳에 걸린 깃발이 미친 듯이 나부꼈다.
***
“우리 아들은 내 차로 함께 가도 될까요?”
“그러슈.”
이주근은 끝내 뻣뻣하게 굴었다.
당연히 그럴 테지. 자신의 제자들은 예선에서 탈락했으니까. 육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단거리 종목과 오랫동안 깨지지 않던 멀리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도 덤덤한 손진혁이라는 놈이 재수 없기도 했을 터.
“차에 타 시끼들아!”
이주근은 애꿎은 학생들을 핀잔했다.
대회 내내 중학교 운동부 관계자라는 사람들의 접근도 칼같이 봉쇄한 이주근이었다. 그 좋아하는 술을 사겠다는 유혹도 단호하게 뿌리쳤다. 하여, 중학교 체육관계자들도 유망주 근처에 기웃거리지도 못했다. 그중에는 이해동과 정봉수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이주근이 손진혁을 보호한 셈이다.
차에 탄 아이들이 진혁을 향해 소심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진혁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잘들 커라.’
아마도 저 친구들을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진혁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아빠를 따라 차에 올랐다.
세 개의 금메달은 이미 아빠의 목에 걸려 있었다.
“폐회식 안 봐도 되겠어?”
“네. 아는 사람도 없고요.”
시도별로 적게는 수십, 많게는 백여 명의 선수가 오는데 종목별로 참가 날짜도 달라 같은 팀이라는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다. 진혁에게 남겨진 것은 금메달 세 개와 충남이 인쇄된 유니폼뿐이었다.
추억? 아빠와 함께 차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훨씬 더 값지다. 최우수 선수로 선정될 것 같으니 폐회식에 남으라는 말을 대회 관계자로부터 들었지만, 엄마와 동생이 보고 싶어서 일찌감치 경기장을 나섰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1차로에 진입했을 때 손광연이 물었다.
“진혁아, 육상하는 거 좋아?”
“달리는 건 좋은데 아까 걔들처럼 훈련하는 건 싫어요.”
일부 지도자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목격한 지도자가 그러하니 좋은 인상을 받기 어려웠다. 한창 민감할 나이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 없는 지도자들에게 느낀 실망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육상이 좋아도 어느 팀에 소속되어 자신도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사양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한마디 하고 싶어서였다.
그만 때려라. 맞는 기분을 너희가 아느냐. 맞다 죽을까 봐 손으로 막고, 그러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진 아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았느냐.
크흠-. 진혁은 애써 헛기침하며 잠기려는 목을 끌어올렸다.
“아빠는 제가 육상하는 거 좋으세요?”
“아빠는 우리 아들이 하고 싶다면 뭐든 지원해줄 거야. 그러려고 열심히 살았던 거고. 어릴 때 많이 못 놀아줘서 이제부터라도 팍팍 도와주려고.”
허헛, 이 양반이 왜 논점을 흐리시나.
똑똑하고 감성적인 사람들은 이게 문제다. 직설적이기보다 에둘러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진혁은 여러모로 자신보다 다재다능한 아빠를 보며 되물었다.
“저 응원하는 거 좋으시죠?”
“······허허허. 응. 너무 좋더라.”
손광연은 아들의 집요함에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또다시 등장한 착한 바보의 웃음이었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금메달 세 개가 출렁거렸다. 그러나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혁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우리 아들이 뭘 하든 아빠는 도와줄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데 다른 선수들 다 제치고 질주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더라. 아빠도 어렸을 때는 달리기를 잘해서 운동회에서 공책도 받고 그랬거든. 그런데 진혁이 할머니가 못하게 하셨어. 다친다고······.”
평소 꺼내지도 않는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인지 손광연이 급히 말끝을 흐렸다.
진혁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주억였다.
‘아빠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셨겠지.’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쉽사리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얼마나 많던가. 당장 이전의 진혁만 봐도 하고픈 일을 하기는커녕 배를 곯지만 않아도 좋겠다며 성장기를 보냈으니.
‘누가 있었더라······?’
진혁은 기억을 더듬어 전생에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몇몇 스포츠 선수를 떠올렸다. 팀에 소속되었다기보다 선수를 위해 팀이 꾸려졌던, 개인종목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이었던가. 다른 종목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당장 떠오른 선수들은 그들뿐이었다.
“아빠, 다른 지역 학교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면 육상대회는 계속 나가고 싶어요.”
달리는 저도 즐겁고, 지켜보는 부모님도 너무나 기뻐하시니까.
“그럴 수가 있어?”
“아마 가능할 거예요.”
뛰어난 선수가 학교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간다는데 만류할 학교가 있을까?
“아빠도 한 번 알아볼게. 기준이 아저씨가 그쪽으로도 좀 알거든.”
홍기준 회장이? 금시초문이었다. 오히려 유세라 이사장이라면 납득할 텐데.
유세라 이사장은 세인그룹의 자본으로 기초체육을 육성하는 재단을 설립해 직접 이사장에 올라 형편이 어려운 체육 꿈나무들을 육성하는 일을 했었다. 진혁 또한 홍기준 회장의 지시로 전략본부 차원에서 재단 운영에 관한 세부기획을 맡아 프로젝트를 지원한 경험이 있었고.
아, 과거에 남편의 지원이 뒤에 있었던 걸까.
‘근데 대마법사는 잘 지내나?’
***
“수정이 오늘 학교 어땠어?”
“몰라! 재미없어. 애들은 유치하고.”
픽-.
유세라는 이제 겨우 여덟 살 된 딸아이의 투정이 귀엽기만 하다.
기껏 신경 써서 재벌가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 수속까지 마쳤었다. 그러다 평범하게 집 근처 학교에 보내자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자들 다니는 학교에 가면 친구도 별로 사귀지 못하고 나중에 외롭게 클까 봐 걱정된다나? 결국 선택한 학교도 부촌 인근이니 그마저도 평범한 학교는 아니지만.
외동딸인데 친구라도 많은 게 좋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의견에 따랐다.
아무튼 딸 홍수정은 친구들 수준이 너무 낮다며 저렇게 투덜대곤 했다.
“아-, 빨리 방학이나 했으면 좋겠다.”
“왜? 너 진혁 오빠 보고 싶니?”
“응! 진혁 오빠는 키도 크고 잘생겼어! 공부도 잘 알려주고.”
얘가 커서 뭐가 되려고 벌써 남자 얼굴 따지나. 공부는 핑계로 둘러대는 거겠지. 이제 1학년인 녀석이 무슨 공부를 한다고.
엄마의 눈빛이 신경 쓰였는지 꼬맹이 홍수정이 부연했다.
“진혁 오빠는, 응, 응. 있지. 말하는 것도 어른 같아.”
그건 인정. 유세라도 손진혁을 처음 만났을 때 겨우 열 살짜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랐었으니까.
‘어른 같다기보다 아저씨 같지.’
몸가짐도 어린아이 같지 않고 조심스럽지 않던가. 몸에 밴 예절은 어떻고.
“그리고 잘생겼어.”
아까 말했는데 뭘 또 말하니.
“내가 하자는 건 다 해줘.”
그래, 싫다는 걸 본 적이 없지.
‘진혁이 같은 애도 없지.’
방학 때마다 놀러 가는 철부지 홍수정을 질려할 만한데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친오빠처럼 안아주지 않던가. 친오빠가 다 뭔가. 유세라의 친오빠들은 거만하고 불손하기 짝이 없어서 오빠가 아니라 원수였는데.
“그리고 정말 잘생겼어.”
얼씨구. 얘가 3절까지 하고 있네. 계속 떠들게 두면 진혁 오빠 잘생겼다는 말을 애국가로 만들게 생겼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애정을 다 바칠 기세였다.
“우리 수정이,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피아노랑 바이올린이랑 미술학원이랑 영어학원이랑, 발레학원 꼬박꼬박 다녀야 진혁 오빠가 방학 때 놀아 주는 거야.”
“아휴-, 알았어요. 간다고 가. 엄마 딸 홍수정 학원 간다아아악!”
기합을 넣듯 박력 있게 외친 꼬맹이 홍수정이 끝내 학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대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김 기사가 가방을 받아들고 유세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틱틱거릴까.’
난 온순했는데. 근거는 없지만.
외출 준비를 위해 거울을 보며 유세라가 한숨을 쉬었다.
거울 속에 홍수정을 쏙 빼닮은 30대 여인이 귀걸이 두 개를 들고 비교하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잘생긴 광연 오빠를 좋아하긴 했지.’
쩝-.
진혁 엄마처럼 나긋한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다면 내숭 좀 떨면서 살 걸. 그랬다면 진혁이 같은 아들이 나왔을까. 유세라는 별생각을 다 한다며 피식 웃어버렸다.
‘어릴 때야 뭐. 저러다 마는 거지.’
취향이라는 건 변하고 영원한 것도 없더라.
유세라가 산증인이다.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귀걸이를 고르자니 가정부가 무선 전화기를 들고 왔다. 맥슨과 바텔을 제치고 하루 여섯 번 이상 TV 광고를 타는 세인전자의 히트상품이었다.
“사장님, 전화 왔습니다. 사장님이세요.”
사장님의 사장님이라니, 이 집에서나 알아들을 설명이었다.
유세라가 입을 동그랗게 말고 코맹맹이 소리로 깍쟁이 사모님 흉내를 냈다.
“어, 홍부장? 자네 언제 오나?”
- 껄껄껄-. 나 비디오 하나 검토할 게 있어서-.
“뭔데, 뭔데? 좋은 거면 같이 보장-.”
유세라가 다 듣지도 않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말 밤마다 해외 에로 영화를 탐미하는 유세라 부부였다.
- 껄껄껄-. 그런 거 아냐. 우리 진혁이가 방송에 나왔는데 지역 방송이라 어렵게 구한-.
“에휴, 알았어.”
뚝.
유세라 역시 남편이 먼저 끊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인간이 늦는다는데 전화 좀 먼저 끊으면 뭐 어떠냐.
세인그룹 직원인지 손광연네 집사인지 헷갈리는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