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37화 (37/338)

# 37 < 새로운 미래 (2) >

***

7월을 앞둔 어느 날.

도내 다른 지역 선수들과 공주에서 합숙을 했다.

“네, 잘 지내요. 훈련은 늘 하던 건데요 뭐.”

공주 모처에서 진혁은 아침저녁으로 집에 전화를 했다.

아빠와 엄마, 동생 유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행복했기에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반면, 훈련은 즐겁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감스러웠다.

“야! 장필원! 발목, 발끝 신경 안 써? 엎드려 이 새꺄!”

총감독 이주근은 도시의 다른 초등학교 육상부 감독이었는데, 아이들의 인화에는 관심 없고 성적을 뽑아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욕을 하고 매질을 했다.

‘김영태 선생님 보고 싶네.’

진혁은 달리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주근과 함께하는 합숙은 화가 치밀었다. 합숙 훈련에 대한 회의도 드는 것이, 이번 대회에서 400미터 계주 대표는 다른 학교 육상부가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탓이었다. 도 대회 준결승에서 떨어진 학교라는데, 왜 그렇게 결정되었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 이름이 대성이랬던가.’

그저 충남이라는 하나의 팀으로 출전하기에 형식적으로 단거리 선수끼리 합숙을 할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주근은 저녁마다 차를 몰고 나갔다가 새벽녘에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무슨 선생이라는 사람이······.’

타지역 학생이 포함된 합숙 훈련 중에 저런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평소에는 더 심하겠지. 매질도, 무책임한 이탈과 음주운전도 평소엔 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은 구역질이 났다.

‘때리고 싶다.’

도 대표를 뽑아 경기를 치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들은 것 같다. 내년부터는 학교별로 전국단위 대회도 나간다는데, 내년엔 대회에 나갈 일 없는 진혁으로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야, 이새꺄! 턱을 왜 치켜들어!”

“야이 씨발!”

“어우-, 저 병신!”

진혁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이주근이 지도하는 학생들이었다. 높이뛰기와 800m 등 다양한 종목의 출전 선수들이었는데, 이주근은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건 기본, 따귀를 때리는 일도 빈번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던 아이들에겐 익숙한 일인 듯 학생들은 억울한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나한테 손대면 가만 안 둘 거야.’

울 아빠한테 일러야지. 멀리서 지켜보던 진혁이 중얼거렸다.

사실, 이주근은 진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진혁이 아무리 잘해도 자기 제자가 아니라 이거겠지. 진혁은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혼자 웜업 러닝을 했고. 기록 측정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주근의 관심은 평소 지도하던 선수들에게만 있었다.

“니가 워낙 잘해서 그런 걸 거여.”

100m 대표인 김희남이라는 녀석이 잠자리에 누워 진혁에게 말했다. 김희남의 뺨은 저녁 훈련 때 맞은 자리가 여전히 부어 있었다.

진혁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녀석의 부은 얼굴을 보는 것이 영 편치 않았기에.

‘저 감독 내가 혼내줄까?’

진혁이 성인으로 살던 시절에도 학원 스포츠 폭력이 이슈가 되었지만, 과거로 오니 실상은 더 끔찍했다. 이렇게 맞으면서 운동을 한 아이들이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어 선배나 지도자가 된 후 악습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언론사에 알려도 취재할 것 같지도 않고.’

언론의 이슈 장악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 시대의 어른들이 학원 스포츠에 만연한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를 일이다. 이거 원, 과거로 왔는데도 아는 게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왔다.

“희남아, 정현우, 장필원.”

이틀 내내 말수도 별로 없던 진혁이 이름을 부르자 아이들이 고개만 들어 진혁을 보았다. 마치 번데기에서 나오려는 나비가 머리만 내밀어 바깥세상을 염탐하는 모습 같았다.

진혁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운동 계속할 거니?”

“응. 난 체대 갈 거야.”

“하다가 야구로 빠져야지. 야구부 있는 학교 갈라고.”

“나는 축구할 거여.”

그래.

진혁은 아이들의 집에 전화라도 한 통 할까 하던 것을 참았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학교에서 교사에게 맞는 것에 문제 삼지 않던 시절이었고. 본인들이 운동을 계속하겠다는데 부모 속을 긁어서 뭐하겠나.

‘나도 그냥 이기적으로 살자.’

이전 생에 진혁은 멍들고 찢어진 얼굴로 학교에 다녔다. 일부 교사와 친구들이 궁금해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궁금증 해소를 위한 것이었을 뿐, 진혁이 처한 괴로움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진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

내일 대구로 간다.

***

대회장 인근의 공중전화 부스는 인기 폭발이었다.

한참이나 차례를 기다렸다가 동전을 넣을 수 있었다.

“엄마, 대구 잘 도착했어요. 오늘 100미터랑 멀리뛰기 예선 치르고요, 200미터는 내일이래요.”

- 멀미는 안 했어?

“네, 괜찮아요.”

- 아빠는 만났니?

“아빠 대구 오신대요?”

- 출발하신 지 여섯 시간 됐는데.

진혁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여섯 시간이나 됐는데 아직 안 오셨다고? 그렇다면 새벽에 출발하셨다는 뜻이 아닌가!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애써 떨쳐버리려 해도 불길한 생각에 휩싸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들어가자.”

이주근이 딱딱한 말투로 재촉했기에 언제 올지 모를 아빠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잠시 서성이던 진혁은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반갑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선생님?”

“진혁이 컨디션은 어떠니?”

김영태 선생과 박지범, 염병택이었다.

전국규모 대회가 열릴 때마다 경험을 위해 참관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컨디션은 괜찮다고 말한 진혁이 물었다. 제 몸 상태보다 중요한 용무가 있으므로.

“오시는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우리? 거의 여섯 시간 걸렸지?”

진혁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시절이다. 집에서 대구까지 오려면 그 정도 걸리는 게 맞는 거구나. 그래도 아빠 얼굴을 봐야 마음이 놓일 거 같은데.

“휴게소에서 진혁이네 아빠도 만났어. 우동도 사주셨어.”

알려줘서 고맙다 염병택.

진혁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이주근 같은 선생과 다녀야 한다면 육상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육상 좀 안 하면 어떠냐.

평범하게 살기로 했고 아버지가 부자신데.

*

〈체육청소년부장관기 제12회전국시도대항육상경기대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대회 이름만큼이나 긴 현수막이 애드벌룬에 매달려 나부꼈다.

1일차.

오전에 100미터 예선를 치렀다.

가볍게 100미터 예선을 통과한 진혁의 눈에 김영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사히 잘 도착하셨구나.’

앙금처럼 남았던 불안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며칠 만에 보는 아빠의 얼굴에 괜히 코끝이 시렸다.

짝-!

김희남이 100미터 예선을 마친 후였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이주근은 대회장 구석에서 기어코 선수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목이 덜한 곳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겠으나 대회장 어디도 외진 곳은 없었다.

진혁이 보기에는 그 선수의 평소 실력대로 나온 것 같은데, 저 선생은 어쩌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야, 이 새끼들아! 밥 먹고 운동만 한 것들이, 촌에서 온 놈보다 못 뛰어?”

악에 받친 이주근의 목소리에서 진한 분노가 배어 나왔다.

진혁의 실력에 배가 아픈 모양이었다. 보는 눈이 많았고, 이주근의 행태에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시, 도에서 온 지도자들도 이주근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여기저기에 엎드려뻗쳐 자세로 있는 선수들이 보였고. 그중에는 여학생도 다수였다.

‘아빠, 나는 얼차려 안 받았어요.’

일부러 아빠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어두워진 아빠의 얼굴에 진혁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

대회 2일차.

200미터 예선과 멀리뛰기 결승이 펼쳐졌다.

멀리뛰기는 한 번 리듬을 잡으니 어렵지 않았다. 공주에서 합숙을 할 때도 구름판을 최대한 많이 밟고 도약하는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해가 떨어질 때까지 도움닫기 후 구름판 밟는 연습만 한 날도 있었다.

‘흥이 안 난다.’

무감정에 가까운 기계적인 몸놀림이었다.

“6미터 일공.”

충청남도에서 멀리뛰기 금메달이 나왔다.

와아아-!

함성이 들렸다. 한참 예선이 진행 중인 800m 선수들을 향한 응원인듯했다.

“165번, 충청남도.”

하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진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제 목에 걸리는 금메달에도 시큰둥했다.

‘집에 가고 싶다.’

학교 이름은 별도로 불리지 않았다. 소속이 그러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멀리까지 와서 응원해주는 김영태 선생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리뛰기라는 종목은 김영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테니. 웅성거리는 소리도 무시하고 멀리 보이는 아빠와 김영태 선생의 표정만 살폈다.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두 어른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도 참 쓸데없는 감정 갖고 사네. 그러면 피곤한데.’

이전 생에는 저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어서 동정심을 갖지 못했고, 혼자 있는 게 편해서 아무리 예쁜 여자가 다가와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었는데. 어찌 된 게 어린 시절로 돌아오니 별것이 다 마음 쓰였다.

‘이것도 호르몬 영향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날이 갈수록 옷이 작아져 신경 쓰이던 참인데. 뼈마디까지 근질거려 신체 균형과 코디네이션을 위해 운동량도 조절하는 중이다.

***

3일차.

감독의 눈치를 보느라 아이들은 어제부터 진혁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진혁은 이주근 꼴보기가 싫어 아빠가 계신 곳만 힐끗거렸다.

군중 속에 오롯이 혼자만 존재하는 일은 익숙하다.

오후에 100미터 결승이 펼쳐졌다.

‘아빠! 여기예요, 여기!’

그래도 저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진혁이 환하게 웃으며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트랙에 들어섰다.

맞바람이 제법 불었다.

뜨거운 바람이 이마를 때렸다. 하루 종일 내리쬔 뙤약볕으로 트랙은 후끈거렸고, 여름을 알리는 공기는 뜨거웠다. 대기와 트랙의 압박감은 무시 못할 것이어서, 그늘에서 컨디션을 관리하다 트랙으로 나온 선수들은 스타트라인 앞에서 볼을 한껏 부풀렸다.

‘마지막이니 존슨 빠지게 달려볼까?’

이주근을 보며 더이상 육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운동이 아니어도 진혁이 잘하는 일은 널리고 널렸다. 예사롭게 살기로 결정한 이유도 한몫했다.

스피커에서 구령이 떨어졌다.

[제자리-.]

진혁의 마지막 100미터 레이스다.

‘후회 없이 하고 가자.’

제자리 신호에 스타팅블록에 발을 붙였다. 발을 밀어주는 알루미늄 프레임의 경도가 새삼스럽다.

출발선에 손가락을 대고, 무릎을 땅에 댔다. 피부에 느껴지는 트랙의 열기에 진혁의 심장이 보조를 맞췄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 마지막이라는 긴장감이 목덜미에 소름을 세웠다. 턱관절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지그시 물었다.

[차렷-.]

차려 신호와 함께 숨을 들이쉬어 폐를 잠갔다. 고꾸라질 것처럼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들어 올렸다.

차려 신호 후에는 시간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수 입장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가장 두려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외 없이 그 두려움이 커지기 전에 총성이 울린다.

[타아악-!]

입술을 굳게 닫고 볼을 부풀렸다. 일부러 숨을 내뱉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왼팔과 오른 다리로 힘차게 공기를 때렸다.

퓌휘히이이-. 맞바람을 만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더욱 거셌다. 관중이 제법 많이 들어찼지만 바람 소리에 가려 응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관중석은 흐릿하고, 1.25 미터를 규정한 좌우의 흰색 라인만 시야에 들어왔다.

영원 같은 찰나였다.

아이러니한 시간 개념 속에서 결승선이 거리를 좁혀 왔다.

복근을 쥐어짜며 다리를 올렸고, 트랙을 박찰 때는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쭉 뻗었다. 뛰어오르는 개구리처럼 일체화시키는 거다. 그 다리가 언제 뻗었냐는 듯 직각으로 다시 땅을 박찼다.

‘아, 달리니 좋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일이 싫어 떠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싫어 떠난다더니. 직장인이나 운동선수나 다를 게 없구나.

씁후-씁후-! 심장이 터질 듯 달리는 자체가, 폐를 쥐어짜 마지막 하나의 산소까지 태워버리는 기분이 진혁을 짜릿하게 했다. 아쉬움에 비장감을 더했다. 힘을 남기기 싫었다.

‘살아있어.’

파악-.

손진혁이 가장 먼저 결승선에 가슴을 들이밀었다.

잠시 후 전광판에 결과가 나왔다. 즉시 나오다니, 전국대회쯤 되니 운영 수준이 달랐다.

우와아아아!

경기장을 찾은 관계자들과 가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2위 선수와 상당한 거리 차가 있었기에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함성에 놀라 전광판을 돌아본 진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년부 100m 한국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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