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평범하게 살기로 했더-33화 (33/338)

# 33 < 무명 선수 (2) >

***

“봉수야, 걔 내일도 뛰지?”

“걔가 안 뛰면 누가 뛰겠냐?”

“그렇게 뛰면 힘들지 않나?”

“힘들지. 대신 운동한 애들은 회복이 빠르잖아. 너도 운동한 놈이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

“하긴. 어리니까 더 빨리 회복되겠네.”

정봉수와 이해동은 공설운동장에서 김영태에게 까였다.

최대한 공손하게 접근했는데.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으로 접근한 게 문제였을까. 야구부 코치들은 선글라스까지 쓰고 왔던데 그 사람들이랑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라고.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추레한 차림이었기로 잠깐 시간 좀 내달라는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에이! 나도 야구나 할 걸 그랬나.”

“으히히히! 그랬으면 도루는 잘 했겄다.”

실없이 웃어젖힌 정봉수가 소주를 한 모금 털어 넣었다.

“야, 걔 빠르긴 진짜 빠르더라. 100미터도 100미터지만 계주할 때는 진짜 내 옛날 모습 보는 거 같더라고.”

“그래. 옛날에 누구는 앵커 안 해본 놈 있겠냐.”

“난 진짜여 임마!”

“나도 진짜여 시꺄!”

이해동은 정봉수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잔을 들었다. 정봉수도 잔을 들어 맞댔다. 잔 속의 소주가 출렁였다.

“크으- 좋다!”

좋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잔을 비우는 건데. 발 빠른 유망주 좀 못 건지면 어떠냐. 그래도 그놈은 너무 아깝다.

이해동은 계주 예선을 떠올렸다.

곡선주로를 빠르게 빠져나온 1번 주자. 육상을 꽤 오래 했는지 자세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직선에서 따라잡히기는 했지만 배턴 패스가 매끄럽던 2번과 3번 주자. 손바닥에 낙지 빨판이라도 달린 것처럼 배턴을 손에서 손으로 쫙쫙- 주고받던 어린 주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문제의 마지막 주자, 앵커.

‘미쳤지! 그걸 뒤집어 버리냐.’

2번 주자와 3번 주자까지는 5위에 쳐져 있었다. 1번 주자와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 주력이었는데 순전히 배턴 패스 덕분에 5위라도 유지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3번 주자가 4번 주자에게 배턴이 넘어가는 순간, 경기장의 모두가 벌떡 일어섰다.

와아아-! 그 함성이 아직도 귓전을 때리는 듯했다.

급격히 스로틀을 개방한 오토바이가 앞바퀴를 들고 튀어 나가듯 앵커가 트랙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승선에 사냥감이라도 있는 듯, 한 마리 호랑이처럼 질주하던 모습이란.

결국 1위는 태양군 초등부였다.

회상을 마친 이해동이 마지막 남은 술을 정봉수의 잔에 따랐다. 마치 자신이 경기에 뛰었던 것처럼 아련한 눈빛이었다.

“내일도 경기장 갈 거냐?”

“가야지. 술도 마셨는데 지금 어딜 가겠냐고.”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 이해동의 눈빛이 뜨거웠다.

오해를 부를 만한 눈빛이었다.

오해에 부채질하는 말도 나왔다.

“오늘 나랑 같이 자자.”

“오해할라! 미친쉐꺄!”

“숙박비 아끼자고.”

“진작에 그렇게 말을 해야지, 인마!”

중학교 축구 감독 월급이 몇 푼 하지 않았다.

급히 당일치기로 오느라 출장비 신청도 못하고 왔다.

***

“먹어, 먹어! 선생님이 다 사준다!”

“와! 이틀 연속으루 삼겹살 먹는 거는 지 평생이 첨있는 일이유-.”

와하하-.

조슬찬의 넉살은 양쪽 세월을 합쳐 반백 년 가까이 산 진혁도 흉내 내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저 녀석도 회귀자가 아닐까, 진혁은 피식 웃었다. 조슬찬이 아니어도 웃을 일은 또 있었다.

‘금메달이라니. 공부해서 상장은 많이 받아 봤지만 운동으로는 처음이네.’

그리고 아빠의 흥분한 목소리도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진정으로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목소리였기에 시합에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부모님과 동생과 행복하게 살기로 다짐했는데 기쁜 일, 웃을 일은 많을수록 좋겠지.

‘우리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유진이랑 장군이도.’

왁자지껄한 변두리 식당에 앉아 진혁은 가족 생각뿐이었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떠드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 변성기 지나지 않은 여러 어린 목소리도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본선에 진출한 다른 지역 참가 팀도 테이블을 두 개, 혹은 세 개씩 차지하고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시골 고깃집 사장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빙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인심 좋은 여사장이 진혁의 테이블에도 찌개와 매콤한 골뱅이무침을 턱- 올렸다.

“여기도 서비스유-. 아이고 여기는 꼴랑 네 명인디 내일두 뛰나 부네.”

“아줌마! 얘는 오늘 금메달도 땄슈! 내일두 결승전 세 개나 뗘유!”

조슬찬이 참지 못하고 진혁을 가리키며 자랑했다.

나와 조금만 관계있는 사람이 잘 풀리고 재능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게 인간인 모양이다. 예전이었다면 쓸데없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고 지청구를 댔을 텐데. 진혁은 친구들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이 왜 저러시지?’

그런데 김영태 선생님이 아까부터 수상하다.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것에 정신이 팔린 사이 지갑을 슬쩍슬쩍 확인하는 게 아닌가? 여느 아이들이라면 진혁도 눈앞에 지글지글 익는 삼겹살과 보글보글 끓으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찌개에 눈이 돌았을 텐데. 진혁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니, 격랑의 바다를 건너며 대양의 시야를 가진 뱃사람과도 같은 평정심의 소유자였으니 김영태 선생님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돈이 부족하신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모든 일을 아는 건 아니다.

이미 경험한 일이라 해도 세부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고,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분야는 과거로 왔다 한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의 현실은 과거와 전혀 새로운 미래 아니던가. 하여, 시골 학교의 운동부 운영과 재정에 대해 눈곱만큼의 지식도 없었다.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주먹구구식이겠지. 학부모 회비로 참가하는 걸 테고.’

그러고 보니 진혁은 회비를 내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다. 유니폼도 태양초등학교에서 준비해줬다. 부채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어린 제자가 가방에서 돈을 꺼내주면 선생님 자존심에 얼마나 큰 금이 갈까.

“많이 먹은 것 같은데 소화시키고 일찍 자자. 내일도 뛰어야지.”

진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의 추가 주문을 막는 정도였다.

기다렸다는 듯 어색하게 웃은 김영태가 카운터로 갔다.

“얼마예요?”

진혁이 귀를 쫑긋 기울였다.

“저쪽 손님들이 냈슈-.”

뭐라고?

진혁은 듣지 못한 척 눈동자만 굴려 구석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확인했다.

‘저 사람들은······.’

부채 의식.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얼마나 양심적인가. 유니폼부터 회비 면제까지. 군 대표라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학교, 남남인데. 진혁은 김영태 선생님과 태양초등학교에 빚을 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저녁 식대를 대신 계산했다는 저 사람들이 더 불편해졌다.

낮에 선글라스를 쓰고 주위를 얼씬거리던 사람들이다.

“너희들 먼저 나가 있어. 선생님은 친구랑 얘기 좀 하고 갈게.”

아이들에게 밝게 이야기하는 김영태였지만 목소리에 은근한 노기가 묻어 있음을 진혁은 놓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영태 선생은 그들에게 다가가 정색한 채 뭔가 이야기하고는 카운터에 음식값을 지불했다.

‘김영태 선생님이 저런 분이었구나.’

이전 생에 강제로 태양초등학교에 전학을 했기에 학교에서 종종 마주치던 선생님이었다.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삼촌 같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타협할 줄 모르는 선비 같지 않은가.

진혁이라도 김영태 선생님처럼 했을 것 같다.

부채감이 생기면 운신에 제약이 따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혹여 밥이라도 얻어먹게 된다면 학생의 미래에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으니. 김영태 선생님의 염려가 진혁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러 가지로 빚을 지네요.’

김영태 선생님의 모습은 풍랑을 정면에서 막아내며 바다를 가르는 배의 몸체 같지 않은가. 선원들은 너희 할 일이나 하라는 듯이. 스승은 그런 존재로구나. 최응묵 선생님 이후로 좋아하는 선생님이 한 분 더 생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존경심은 소속 학교와 무관한 것이었다.

진혁의 눈이 친구들을 찾았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하는 염병택이 보였다.

“응, 엄마. 나 오늘 못 가. 내일도 뛰어야 해. 진짜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왜 사기꾼 취급하고 그래? 못 믿겠으면 와서 보면 되잖아!”

염병택의 어머니는 믿음이 부족한 분 같았다.

박지범은 그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고, 조슬찬은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깜깜해진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조슬찬은 그렇게 하면 어딘가 계실 부모님이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도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진혁도 조슬찬을 따라 밤하늘을 살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심정으로.

그러다 이내 친구들에게 눈을 돌렸다.

‘과거에는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은 녀석들인데.’

읍내에 단 하나뿐인 초등학교였다.

학급도 11개나 되었고, 학급에 50명 가까이 되었으니, 시골 학교치고 규모가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데 씨름부가 무슨 무슨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거나, 씨름부의 누가 몇 위를 했다는 플래카드가 학교 정문에 걸린 것은 봤어도 육상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문구는 본 기억이 없다.

‘녀석들이 메달을 따야 하는데.’

더 미안해졌다.

김영태 선생님께도, 친구들에게도 미안해져서.

‘역시, 갚을 방법은 하나뿐인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

한유영은 남편보다 더 놀랐다.

아들이 아빠를 닮아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운동까지 잘할 줄이야. 집에서 오골계와 강아지와 뛰어노는 걸 보며 다리가 튼튼한 것 같다고 짐작은 했었다. 아침저녁으로 어딘가로 쏘다니고 학교에 갈 때나 올 때도 쉬지 않고 달리던 아들 아닌가.

‘그래도 이런 촌구석에서나 잘 뛰는 줄 알았지.’

그런데 한국 신기록이라니? 텔레비전도 없이 살다가 겨우 86아시안게임 시즌에 흑백 티브이를 얻어서 경기를 본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컬러 티브이로 바꿨지만 갓난아기 때문에 88올림픽은 제대로 못 봤고, 아무튼. 거기에 나오는 선수들처럼 빠르다는 뜻인가?

‘운동회 때는 그렇게 빠른 줄 몰랐는데.’

아, 멀리뛰기니까 빠른 거랑은 관계가 없나?

한유영은 아직 덜 마른 머리를 벅벅 긁었다. 스포츠 문외한인 자신을 원망하며.

“오빠, 우리 내일 거기 안 가봐도 될까요?”

손광연도 미처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엄마로서 당연한 반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손광연도 아들이 달리는 걸 가서 보고 싶었으니까. 내일 경기는 100미터 결승과 200미터 결승, 그리고 계주 결승까지. 무려 세 종목에 출전한다고 했다.

“아,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도 부모님은 오지 않으셨다고 했다. 인솔 교사 한 명만 동행했을 뿐이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진혁의 부모만 가면 다른 아이들이 내심 서운해하지 않을까.

손광연 또한 그런 일을 무수히 겪어봤다. 제 자식 챙기겠다고 자신들만 참석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진혁이도 엄마, 아빠가 보면 부담될 수도 있고요.”

“그렇네요. 오빠 말대로 참는 게 좋겠어요.”

한유영은 잠투정을 하는 딸을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홀로 남은 손광연은 최신형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낼 때면 한순간도 손에서 떼지 않았던 카메라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카메라를 넣었다 꺼내길 반복하자니 가슴에 물처럼 차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후우우-.”

일부러 힘주어 긴 숨을 밀어냈다. 아쉬움도 함께 빠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얼마나 외로운 삶이었던가.

어머니와 단둘이 서울에서 살며 모진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그래서 각종 행사나 상장 수여식에도, 졸업식장에도 찾아오는 가족은 없었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 잘생기고 듬직한 아들과 천사 같은 딸을 두었다.

참는 게 좋겠다고, 아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답 없는 카메라만 만지작거렸다.

‘가보고 싶다······.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지켜봐 주고 싶다.

‘우리 아들 달리는 거.’

손광연은 끝내 카메라를 도로 넣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자리에 든 후에도 한참을 뒤척이며 여전히 아가씨 같은 아내의 뺨을 쓰다듬었다.

까닭 모를 한숨이 계속 나와 숨조차 조용히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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